개념글 모음

전편





후진이와 드디어 헤어졌다.



드디어 온전하게 끝마무리를 지었다.



그동안 도망치느라고 질질 끌려왔던 악연을 끝냈다.



그렇게나 무서웠고 도망치고 싶었는데, 막상 끝내고 나니 허전하다.



인생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주었던 사건이다보니 끝나는 것도 쉽게 끝나지가 않았다.



아마도 조금은 좋았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인연 정리를 하길 잘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쌓이고 쌓여서 얀순이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얀순이와도 깨지게 되었다면,



그땐 정말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큰 공허함에 그대로 무너져버릴지도 모르겠다.



이제 엄마를 만나러 가야한다.



내 인생이 꼬이게 만든 사람을 만나러 가야한다.



그나마 후진이와의 인연을 정리하면서 도망치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엄마 앞에 선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아직까지도 엄마는 나를 때리는 사람으로 남아있었으니, 또 얻어맞을까 무서웠다.



어쩌면 말은 제대로 못하고 엄마 눈치만 보다가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앞으로 나가서 과거의 악연을 청산해야 했다.



그래야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얀순이와의 가정생활 뿐 아니라 뒤틀려버린 내 인생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했다.



도망치면 영원히 도망쳐야 한다.



체력이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과거에서 영원히 도망쳐 다닐수는 없었다.



지하철에 올랐다.



벌써부터 몸이 긴장하는게 느껴진다.



그렇게 먼 곳이 아니었기에 두어 정거장을 지나서 내렸다.



카드를 찍고 개찰구를 통과했다.



핸드폰을 쥐고 있던 손이 벌써 축축해졌다.



손수건을 꺼내 이마와 손을 닦아보지만 금세 또 축축해졌다.



날씨가 그렇게 더운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땀이 날일인가 싶었다.



카페에 도착했다.



이번 카페는 특이하게 독실이 있었다.



단 둘이서만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이었다.



엄마는 먼저 와서 음료를 주문해놓으셨다.



어딘가 초조해 보이셨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긴장하셨는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후진이와 마찬가지로 엄마도 말을 먼저 걸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한 상태로 음료만 홀짝였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여러가지로 머리를 굴려봤지만 잘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엄마에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은 죄송해요 라는 말 뿐이었으니까.



때리지 말아달라고 했던 말이 전부였었으니까.



"그... 죄송합니다, 어머니. 바쁘실텐데 이렇게 불러서."



"아, 아니야. 아들이 부르는데 달려와야지."



엄마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손사레를 치셨다.



말을 걸 타이밍이 어긋나 버린 것 같았다.



최소한 말을 걸때는 뭘 마실때는 피했어야 했는데 또 뭔 소리를 듣는건 아닐까 무서웠다.



엄마가 입을 여셨다.



"지난 번에 못했던 사과를 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단박에 달려왔지."



엄마는 최대한 웃으면서 말씀하셨지만, 그 모습마저도 견디기 조금 힘들었다.



엄마가 웃을때는 항상 나를 때리고 난 뒤에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 때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제가 도망쳐버리는 바람에 시간을..."



"괜찮아. 괜찮으니까 사과 그만하렴."



엄마의 말투가 또 다시 싸늘하게 식었다.



한창 야단 치던 때의 목소리처럼 가라앉았다.



내가 먼저 사죄를 하니 엄마가 사과할 타이밍을 못잡아서 화가 나셨던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사과좀 그만... 아냐, 됐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만들었는데 뭔 말을 하겠어."



엄마는 다시 입을 닫으셨다.



내게 안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지금이라면 내가 가지고 있던 상처들을 꺼내놔도 되지 않을까?



"사실, 이 자리까지 오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 알지. 이해해. 내가 얼마나 큰 상처를 많이 줬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아."



"어떻게 깨달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전 아직도 어머니가 무섭습니다. 왜 이제서야 사과를 하러 오셨는지도 의문이 들고요."



"그건... 얀순이네에서 내 접근 자체를 막아서 그랬어."



"...그 전에 하셨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는 잠시 커피잔을 내려다보셨다.



대답이 없으셨다.



"아버지와 찢어지시기 전에 야단치시기보다 감싸주셨으면 이렇게까지 안됐을 것 아닙니까?"



"...뭐라 할 말이없네. 미안해, 그땐 그 생각을 못했어."



엄마는 이제 속내를 풀어놓기 시작하셨다.



왜 나를 그렇게까지 야단을 치셨는지, 내가 조금이라도 모자란 꼴을 두고보지 못하셨는지 다 털어놓으셨다.



엄마는 내가 아무리 어렸더라도 아버지와 엄마의 자식이니만큼 똑똑하리라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뭐든 해내실줄 아셨나보다.



여섯살짜리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숙제를 내밀어도 어떻게든 해낼줄 아셨나보다.



"...그래서 그때는 실망감이 앞섰던 것 같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 아빠와 나 사이에서 난 아들인데 당연히 그정도는 완벽하게 해낼 줄 알았거든."



"그럼 이제서야 사과하러 오신건 얀순이가 철벽을 치지 않아서 그러신 겁니까? 아니면 제가 당신의 아들이라고 자랑을 해도 좋을 만큼 좋은 스펙을 가지게 돼서 그런 겁니까?"



정말로 그게 궁금했다.



얀진 회장님네로 들어갔을 때, 아무리 동네가 달라도 엄마의 재력이라면 충분히 찾아서 사과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정도 그때의 상처를 이겨내고 난 이후로는 엄마에 대한 철벽을 더이상 치지 않으셨었으니까.



"...난 그게 속죄라고 생각했어. 네 옆에 붙어있던 얀순이가 네가 날 무서워한다고 했었으니까."



"얼마 전까지도 그랬어요. 얀순이가 밀어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그러고 있었겠죠."



그렇게 생각하니 떨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심리적으로 너무 의존관계에 있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얀순이를 생각하면 떨리고 무섭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힘들때마다, 무서울때마다 항상 곁에서 지켜주었던 얀순이었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태가 되지 않으려고 이 자리에 나온건데 어째 얀순이에 대한 의존만 더 확인하고 가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난 네게 사과를 하려고 나왔어. 아들이 더 이상 내 잘못 때문에 사회생활도 제대로 못하는 꼴을 보고 있을수가 없어서..."



"아버지께는 들었습니다. 제 결혼을 축하해주고 싶어하셨다면서요."



"...그랬지. 그런데 일이 너무 대차게 꼬여버렸네."



엄마는 잔뜩 인상을 쓴 채로 깊은 한숨을 내쉬셨다.



"미안해. 내가 널 더 괴롭게 만들었어. 너무 자세하게 그 망할 년에게 가르쳐주는 바람에 그걸 너무 이용해먹었던 것 같아."



머리를 숙여 사과하시면서도 후순이에 대한 적대감까지 드러내는 엄마.



최악의 엄마이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였다.



나를 학대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 편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멋대로 기대하고 실망해서 널 심하게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것도 정말 미안해. 달리 할 말이 없어. 내가 정말 나쁜년이야.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네가 그년에게 그렇게까지 당할 일도 없었겠지."



"...너무 늦으셨어요.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몰라. 모르니까 이렇게 사과하는거야. 엄마라는 사람이 아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몰랐으니까 이렇게 사과하는 거야."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미안하다고 절까지 하셨다.



딱딱한 돌 바닥에 머리까지 찍으시면서 머리를 조아리셨다.



"정말 미안하다, 후붕아. 이 못난 엄마를 절대로 용서하지 마렴."



입으로는 용서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일으켜 세워주기를 바라시는 듯 했다.



처음 엄마가 절까지 하시며 고개를 숙이셨을 때, 당장에 뛰어가서 일으켜 드리려고 했지만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엄마를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못했었나 보다.



아직까지도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이 남아있었나보다.



"용서 못해요. 이젠 용서를 하고싶어도 못할것 같아요. 저도 이제 엄마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것 같아요."



엄마는 피가 맺힌 이마를 들어올리셨다.



"얼마나 아프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미 엄마에게 그것보다 훨씬 많은 아픔을 당했는걸요. 단순히 음료 한잔 사고 절하신다고 용서가 되지 않을만큼 많은 상처를 입었어요."



볼때마다 발작버튼이라도 눌린 것 마냥 떨었던 그때를 떠올리며 응어리졌던 감정을 내뱉었다.



엄마는 피를 뚝뚝 흘리시는 채로 나를 멍하니 올려다보셨다.



"얼마나 반성을 하셨는지,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는지 모르겠어요. 알고 싶지도 않고요. 전 이제 그냥 엄마가 싫은 것 같아요."



"그, 그래도 넌 네 아들이잖니?"



"엄마 곁에 있을 때, 제가 엄마 아들이었던 적이 있어요?"



아무리 기억을 훑어봐도 화풀이용 샌드백이었지, 엄마 아들은 아니었다.



흔한 애정표현조차 없었고 과제만 던져졌다.



트집잡을 거리가 있다면 어떻게든 트집잡아서 때렸었다.



한번에 풀지 않고 한번 지우고 다시 풀었다느니, 수식을 지저분하게 써놔서 답을 알아보기가 힘들다느니,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를 만들어서 여섯살 짜리 애를 때렸었다.



그걸 과연 아들취급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전 엄마 곁에 있을 때, 화풀이용 샌드백이었지, 아들은 아니었어요. 어머니가 내 주셨던 모든 문제를 오답없이 풀어내도 학습지가 깔끔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람을 팼는데 그게 어떻게 아들이에요?"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이렇게, 이렇게 사과할게."



엄마는 다시 머리를 조아리셨다.



안그래도 피가 나는데 또 다시 머리를 바닥에 찍으셨다.



"그런다고 제가 용서할 마음이 들진 않아요, 어머니."



엄마는 그제서야 바닥에 머리를 찍는 것을 멈추셨다.



"뭘 바라시고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행복하길 바라신다면 제발 저랑 엮이지 말아주세요. 더 이상 찾아오지도 말아주시고요. 예전엔 그냥 무서웠다면 이젠 그냥 싫어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뒤에서 엄마가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 알바 아니었다.



오히려 운다고 한 대 더 때리진 않았으니 엄마가 내게 가했던 처벌에 비해서는 훨씬 관대한 처벌이었다.




*     *     *




카페를 나와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후진이와 이야기를 마쳤을 땐 조금 공허한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후련했다.



엄마가 내게 스트레스를 쏟아내 놓으셨던 것처럼 엄마에게 내가 지고 있던 상처를 모두 내던진 덕분인 듯 했다.



몸도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그동안 지고있던 묵은 짐을 전부 내던져서 그런지 어딘가 갑갑하던 느낌이 싹 사라졌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얀순이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걸 알려주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니 얀순이가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다.



집 대문 앞에서 흉기를 든 여자와 싸우고 있었다.





*        *        *




후붕이에겐 얼마든지 밀어주겠다고 이야기 했지만, 또 다시 후붕이가 큰 상처를 입고 돌아올까봐 불안했다.



집에서도 그랬고, 출근하는 차안에서도 후붕이 생각만 났다.



그만큼 후진년과 아줌마와의 관계는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태였다.



후붕이의 상처는 후순년이 정말 크게 만들어두긴 했지만, 뿌리 자체는 그 두년에게서 나왔다.



많이 호전됐다고 하지만 상처를 만든 근원을 뜯어내려면 그만큼의 아픔도 동반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동안 임시방편만 해왔던 상처라면 더더욱 아플게 분명했다.



후붕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전부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걱정이 안될수가 없었다.



업무용 서류를 보는 순간에도 후붕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커피를 내리기 위해 탕비실에 들어갔을 때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 망할년들이 적반하장으로 나와서 더 크게 상처를 입고 오면 어떻게 하지?



또 다시 후붕이가 그 년들의 잘못으로 인해 수렁에 빠져들면 내가 구해낼 수 있을까?



그래도 전화는 하지 않았다.



아무리 불안해도 후붕이를 믿기로 했다.



믿기로 했으면 끝까지 믿어줘야 했다.



난 이제 후붕이의 배우자다.



그냥 친구라서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믿을때 믿어줘야하는 배우자였다.



후붕이의 배우자가 되기로 한 이상 무너진 후붕이의 심리를 열심히 보수공사를 해줘야했다.



언제까지고 의존을 통한 임시방편만 두르고 있어서는 안됐다.



"...그렇게 불안하시면 먼저 들어가시죠, 사장님. 어차피 오늘 업무는 끝났습니다."



"어쩔 수 없어요, 결혼식 올리려면 좀 더 해놔야 하거든요."



"그러지 말고 저희 살려주는 셈 치고 퇴근해주십쇼. 사장님이 퇴근을 안하시니까 비서진들 전부가 퇴근을 못하잖습니까."



비서는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평소에는 정시가 되면 잘만 퇴근하더니 오늘은 굳이 물고 늘어지는 걸 보면 보는 사람마저도 불안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죄송해요. 괜히 신경쓰이게 해드렸네요."



"괜찮습니다. 남편분과 관련된 일이시지 않습니까?"



비서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서 서류를 빼앗아 갔다.



"별로 급한 일도 아니네요. 이건 아마 내일 처리하셔도 될겁니다. 이제 그만하시고 퇴근하시죠."



비서는 서류를 내 책상에 던져놓고 사무실 바깥으로 끌고 갔다.



순식간에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앉혀놓은 비서는 휘하 직원이 가져온 내 가방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남편분을 아끼시는 것도 좋지만, 일에 지장이 생기실 정도로 걱정하시면 오히려 남편분이 걱정하실겁니다."



"...알겠습니다. 명심할게요."



비서의 말이 맞았다.



후붕이에게 전화를 해서 내 상태를 알리진 않았으니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후붕이를 걱정하느라 일에 지장이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내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고 풀이 죽을게 분명했다.



안그래도 쳐져있는 사람 기를 살려주지는 못할망정 죽여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쉬이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그만큼 후붕이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어할지도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후붕이가 아줌마와 만나고 있을 카페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달려가서 잘 했다고 안아주고 싶었지만,



후붕이 말대로 이번 일은 후붕이 혼자서 해결해야하는 일이었다.



함께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 순전히 나를 위해서 후붕이가 선택한 길이었다.



아무리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도 믿어줘야 하는 일이었다.



설령 후붕이가 죽을때까지 상처를 이겨내지 못해서 나를 의존하고 불안해해도 상관 없었지만,



오로지 나와의 결혼생활을 위해,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상처를 준 사람들과 맞서겠다는 그 모습이 정말 멋있었고, 고마웠다.



나 또한 후붕이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던 죄인인데 이걸 내 마음대로 결정해서 후붕이를 곁에 묶어둔다면,



후순년이나, 후진년과 다를 바가 없는 나쁜년, 아니 썅년이 되는 것이었다.



난 다른 사람은 몰라도 후붕이에게 만큼은 썅년이 되기 싫었다.



후붕이를 괴롭힌 년들에게야 얼마든지 나쁜년, 썅년이 될 수 있지만 후붕이에게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그만큼 후붕이를 좋아했으니까, 그만큼 후붕이를 사랑하니까 상처가 많은 후붕이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고싶지 않았다.



이미 상처가 많아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후붕이에게 나 마저도 상처를 줘서는 안됐다.



그래서 후붕이에게 만큼은 정말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도록 말도 가려서 했고, 후붕이가 얼마든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언젠가 이 가면을 내려놓고 후붕이에게 안기긴 해야겠지만, 후붕이의 멘탈이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지금은 후붕이 앞에서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다 왔습니다, 사장님."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가방을 챙겨 문을 열고 나왔다.



"별 일 없으실거에요. 사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기사님은 넌지시 말을 건네셨다.



기사님께까지 걱정을 끼쳤던 모양이다.



도대체 얼마나 티를 내고 다녔던 거니, 얀순아.



넌 이제 얀진 그룹의 차기 회장이야, 이런 일로 걱정끼쳐서는 안돼.



"그렇겠죠?"



"그럴겁니다. 제가 보증할게요. 사장님 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후붕씨 자주 뵀잖아요."



기사님은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시며 대답하셨다.



그래, 후붕이를 믿자.



후붕이는 잘 해내고 올거야.



"고맙습니다, 기사님."



기사님께 감사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기사님은 내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걸 보고 가시려고 했지만, 후붕이와 함께 들어가겠다고 기사님을 먼저 보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아 참, 후희 아가씨는 회장님 본가에 데려다 드렸습니다."



기사님은 그 말을 남기시며 빙긋이 웃으셨다.



아마 부부만의 시간을 가지라는 배려로 그러셨겠지.



기사님께 감사인사와 함께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역시 센스가 좋으시네요."



"그렇다고 업무에 지장이 생기실 정도로 하시면 안돼요?"



"고작 그정도로 문제가 생길 사람이 아니라는건 기사님이 더 잘 아실텐데요?"



기사님과 나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아뇨, 사장님이 아니라 후붕씨 말입니다."



"아, 그건 제가 알아서 잘 조절하겠습니다."



기사님은 그제서야 안심하셨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시며 창문을 닫고 떠나셨다.



이제 집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왜 너만 행복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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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