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의 고기를 먹으면 불치병도 사라지고 불로장생한단 믿음이 퍼진 고대 일본의 어느 바닷가에서 귀족들의 의뢰를 받아 인어를 사냥해 팔아넘기는 인어잡이가 어린 인어와 만나는 것이 보고 싶다.


작살에 관통당해 죽은 어미 옆에서 울며 엄마만을 부르짖는 그 어린 생명의 모습을 본 인어잡이에게 어째선지 일평생 샘솟지 않았을 동정심이 생겨 그냥 못본체 하려던 것을 간신히 기어오며 그 발목을 붙잡고는 엄마를 살려달라며 우는 인어를 뿌리채고 떠나겠지.


다음날 마음에 걸려 다시 해변을 찾자 갈매기떼에 뒤덮인 어미인어와 그것들을 내쫓아보려다 몇번이고 쪼여 잔상처가 생긴 어린 인어의 모습에 순간 속에서 알수 없는 감정이 올라온 인어잡이가 달려들어 갈매기들을 쫓아내버리고 어미의 시신을 해변가에 파묻어주는 게 보고 싶다.


그날 이후부터 알수 없는 감정에 먹을 것을 싸들고는 여전히 바다로 못 떠나고 있던 인어를 찾아가 보살펴주는 거지.


처음엔 인간들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며, 그 역시 인어잡이라는 사실에 바닷물과 모래를 뿌리면서 폭언을 퍼붓던 그녀가 인어잡이 자신도 이유를 알수 없는 그 행동에 점점 마음을 열어갈 거야.


한편으로 인어잡이는 한순간의 동정심으로 어린 인어를 보살펴주게 된 것과 별개로 여전히 다른 바닷가에서 인어를 사냥하면서도,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인어들의 절규와 저주에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 삶을 이어나가겠지.


아이러니하게도 인어사냥으로 시작된 그의 트라우마를 그 어린 인어로 풀어나가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해가 지나면 그 어린 인어도 점점 성숙해져가며 그녀의 어미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해나가고, 둘 사이 수년 간 이어진 만남은 서로에 대한 동정심과 친근감에서 이성 간의 사랑으로 이어지겠지.


끝내는 둘이 처음 만난 해변가에서 서로의 육신을 탐하며 그 사랑을 확인할지도 모르겠어.


그 어린 아이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한 인어의 안에 몇번이고 남성의 것을 쏟아낼 때마다 인어잡이는 더욱 그 애에 대한 배덕감과 애착심으로 몸을 가눌 수 없을 거야.


그러던 어느날 마음을 다잡고 작은 옥반지를 사서 청혼을 한 인어잡이에게 인어는 한동안 눈물 머금은 미소로 바라보다가 묻겠지.


"그 반지는 인어를 죽인 돈으로 산 거야?"


인어의 물음에 순간 멍해진 인어잡이에게 인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미소를 이어나간채 계속 말할 거야.


아저씨가 좋지만 아저씨가 인어잡이라는 사실만큼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며, 만일 아저씨도 자기만큼이나 날 좋아한다면 인어 죽이기를 그만둬달라고 부탁한 거지.


하지만 천것인 인어잡이로써는 아버지에게 배운 기술이 그것 뿐이었고, 그걸 하지말란 건 굶어죽으란 소리나 다름없을테지.


한참을 망설이던 인어잡이의 입에서 결국은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차가운 바닷물이 그의 얼굴을 후려쳤을 거야.


지느러미가 물에 부딪히며 점점 떠나가는 소리만이 밤바다를 울렸겠지.


그 후로 며칠 뒤 인어잡이도 잘 되지 않아서 배를 곪던 그에게 인어사냥을 맡기던 영주에게서 서신이 왔어.


자기 휘하의 가신들에게 잔치를 베풀테니 와서 즐기란 내용에 인어잡이는 아무 생각 없이 그날밤 영주의 저택을 방문했겠지.


온갖 진미들과 고급술, 기녀들이 오가던 와중에도 입맛이 없어 젓가락을 휘적이고 있던 그의 귀에 영주께서 준비하신 마지막 요리가 도달했단 소리가 들려왔어.


여인네 하나만한 크기의 그릇,


갖은 향신료 냄새 사이로 풍겨오던 익숙한 향,


눈 앞에 보인 것은 그가 허무하게 떠나보낸 인어 소녀가 갖은 채소들로 장식되어 요리가 된 광경이었지.


기름칠 됐는데도 텅 비어있는 그 눈알, 얼마전까지 안았을 살들이 회처럼 뭉텅이로 썰려있는 광경에 인어잡이의 동공이 떨렸어.


근처 바닷가에서 도망치지도 않고 울고만 있던 걸 영주님께서 솜씨좋게 한방에 쏴잡았다며, 이 손맛에 인어잡이가 성행하는 거라며 폭소하던 관리의 말과 함께 인어잡이의 비명이 방 안을 메웠겠지.


정신을 차리고보니 그의 눈엔 피칠갑이 된 방, 칼부림에 썰린 시신과 다친 이들의 신음, 자기 손에 들린 칼이 보였을 거야.


영주의 가신들의 화살세례를 피해 달아나던 인어잡이의 발걸음이 어느샌가 그 인어소녀를 만난 해변가로 향하진 않았을까.


온 등과 왼팔에 화살을 맞고는 피를 흘리며 해변가를 헤매던 인어잡이는 이윽고 뭔가 발견한듯 미소를 지으며 점점 바다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점점 깊어지고 차가워지는 바닷물, 소금기가 배여와 쓰라려오는 상처들, 점점 눈이 감겨오고 발에 닿는 감각이 희미해져가는데도 그는 왜 계속 바다 속으로 발을 옮긴 걸까.


그 이유는 누구도 영영 알 수 없을 거야.


영주의 가신들이 도착한 해변가엔 바다 쪽으로 향하던 피에 젖은 발자국 무리를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