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당신은 노예 생활을 시작하게 된 지도 벌써 1주일이 다 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데 노예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약간 부적절한 처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당신은 생각했다.

어떤 면면에서 보면, 앨리스는 지금까지 당신을 아주 잘 대해 주었다. 하루에 두 끼씩 나오는 음식은 비록 소량이지만 맛이 좋았고, 먹는 사람의 건강에도 신경을 쓴 듯 종류도 가지각색이었다.

이곳에 머물면서 용변은 어째선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는데, 아마 당신의 몸에, 아니면 그 음식들에 뭔지 모를 마술적인 처리가 가해진 듯했다. 물도 원한다면 언제든지 마실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또 언젠가 방에 창문을 만들어 달라고 마치 스쳐 지나가는 말처럼 부탁해보았을 때, 그녀는 잠시 고심하는 듯싶더니 의외로 순순히 수락해주었다. 그 뒤로 당신은 평상시에도 환한 빛을 받으며 지낼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일수를 정확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1주일이란 시간은 그렇게 계산되어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앨리스는 해가 떠 있을 동안에 찾아와서 당신을 빤히 바라보다가, 덥썩 끌어안은 채로 한참을 머무르다 간다든지 머리를 쓰다듬는다든지 하는 등 애정행위 비슷한 짓을 자주 했고, 한번은 더 불편한 게 없느냐고 물어오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매일매일 나체를 유지해야 했던 것이 불편했던 당신은 옷을 달라고 했다. 그녀는 그 부탁마저 쉬이 들어주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단순한 노예에게 그런 대접을 해줄 리는 없었다. 마치 귀한 보물단지인 양 애지중지되는 듯한 대접 말이다. 보물에게 집밖으로 나갈 권리가 없듯이, 당신도 꼼짝없이 이 방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신세긴 하지만.

당신은 기시감을 느꼈다. 어디선가 지금 상황과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납치자가 너무 잘 대해 준 나머지 납치 대상이 납치자에게 반하고 만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였다. 갑자기 그것이 앨리스의 인형극에서 나왔던 이야기들 중 하나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 인형극을 관람할 당시에는 너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만 여겼었다. 그 덕분에 이렇듯 기억에 남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물론 여전히 말이 안 된다고 여기기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조금쯤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문제만 없었다면, 그랬다면 당신도 그렇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 문제란 밤이 찾아왔을 때의 앨리스였다.

밤이 되면, 밝을 때 보여줬던 모든 태도가 한순간에 뒤집혔다. 그녀는 뭐랄까, 광기에 휩싸여서 당신을 강간했다. 고문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온갖 수단을 써서.

약물. 입에 담기 힘든 성적인 행위들과 수많은 폭행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거의 매일 밤, 그녀가 그럴 때면 당신은 고통과 쾌락, 애정과 증오를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앨리스를 좋아해야 할까. 아니면 미워해야 할까.

당신은 생각했다.

앨리스에게 있어서, 나는 대체 무슨 존재인 걸까.

"어쩌면… 노예도 보물도 아니고... 인형. 평소엔 소중하게 다뤄도 이따금씩 화풀이로 쓰기도 하는…."

당신은 침대의 옆자리를 돌아보며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거기에 그가 좋아하는/미워하는, 사랑하는/증오하는, 앨리스/주인님이 잠을 자고 있었다. 전날 밤 일을 마치고 곤히 잠들었던 그 얼굴이 그대로 보인다.

인형극에서 본 이야기. 그래. 앨리스는 누가 뭐래도 인형술사였다. 여기서, 그녀에게 잡혀 있는 당신은 그녀의 인형인 것이다. 그뿐인 것이고, 그 이하일 수는 있어도 이상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을 정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정했다.

당신은 상체를 일으켜, 머리맡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탁상에서 빈 잔을 집어 들어올린다. 도자기라서, 손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살짝은 묵직하다.

그리고 다시 앨리스를 본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새근새근 숨을 쉬고 있다. 당신은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잔을 소리나지 않도록 다시 탁상에 내려놓는다.

그런 걸로 내리친다고 해서 죽을 리가 없잖은가. 겨우 살짝 무거운 것으론 부족하다. 너무나 부족하다.

당신은 내려놓은 잔 옆의 물이 가득 든 물병을 본다. 잔보다 4배는 크고, 이것 역시 귀하고 무거운 도자기제다. 지금은 귀하다는 사실보다 무겁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물이 가득 들었다는 사실도.

그것을, 양손으로 잡아올린다. 앨리스의 머리 위로 가져간다. 새벽 햇살을 내리쬐던 평온한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제 이대로 힘껏 내리치면...

그러면 전부 끝날 텐데…

전부 다…. 이 모든 지옥이 다 끝날 텐데….

"왜…… 흐윽…..."

왜 해버릴 수가 없는 걸까.

갑자기 팔이 후들후들 떨려서, 눈물 같은 것이 시야를 가려서, 숨이 가빠져서.

별것 아닌 농담에도 폭소해주던 그녀가 떠올라서.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라던 말이 떠올라서.

아마 그런 이유들 때문일까.

결국 당신은 물병을 힘없이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는, 그대로 드러누워 앨리스를 외면하며 이불 속에 몸과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게 한참을 조용히, 그러나 한스럽게 흐느끼다가 다시 잠들고 말았다.





그 뒤편에서, 앨리스는 눈을 가늘게 떠 그런 당신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얕은 웃음소리가 새어나왔지만 당신은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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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되었다…

당신은 반발각인을 한 단계 잃었다. 반발각인 lv.2 -> lv.1


당신의 상태ㅡ

반발각인 lv.1
약물각인 lv.2
쾌락각인 lv.2
고통각인 lv.3
굴복각인 lv.3
공포각인 lv.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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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거 아니고 텍갤에서 누가 쓴거 복원.



S3에 깔린 크롬에 3편만 겨우 오프라인 페이지로 저장되어 있어서 긁어옴



S5에도 몇개 저장은 되어 있을것 같은데 배터리 하자나서 못키고 있다


배터리 사서 찾으면 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