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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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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4.


집 앞에서 택시에서 내렸다.

확실히 버스나 걸어 다니는 것보다 택시가 편하긴 편하다. 비싸서 그렇지...


양손에 짐이 있었기에, 약간 힘들게 번호키를 누르고 자취방에 들어갔다.


속옷이 든 종이가방은 옷장 앞에 일단 두고, 식재가 든 가방을 식탁 위에 얹었다.

생각해보니까, 그냥 물건을 내려놓고 번호를 눌렀으면 더 편했을 거 같기도 하고.


햇반이랑 스팸 캔 같은 거는 조금 이따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로 하고, 일단 건면부터 밀폐용기에 담아서 찬장에 넣었다.

이 정도면 그래도 사려던 거를 크게 안 잊어먹고 산 거 겠지?


소스는 안 뜯었으면 전부 실온에 둬도 되니까 이것도 찬장에 넣고...

베이컨은 저녁에 쓸 거니까 냉장칸에... 목살은...

아, 목살을 편하게 나누려면 옷부터 갈아입어야겠지.

어차피 겨울이니까 잠깐 둔다고 크게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거다.

원래 집에 오자마자 옷부터 갈아입어야 했는데.


나는 목살이 든 스티로폼 접시를 식탁 위에 둔 채, 옷장 앞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패딩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 후드티를 벗으려고 하던 나는 무언가를 기억해냈다.


`편하게 입을 옷이랑, 샴푸를 사오는 걸 잊어버렸다.`라는 사실이었다.

운동화 사러 간 신발가게 바로 옆이 SPA 브랜드샵들이었는데, 이걸 까먹고 그냥 왔네.

바보 멍청이.


밑단이 안 맞는 트레이닝복 바지나 몇 벌 인터넷으로 사고, 샴푸도 로켓 배송 시켜야지.

다른 거랑 같이 오늘 빨리 시키면, 내일 중으로는 올테니까...


아. 이래서는 나가서 한 게 속옷 20만원어치 산 거 말고는 거의 없잖아. 짜증...


잡생각은 이쯤 하고... 좀 더 편하고 후줄근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흰색 긴 팔 면 셔츠에 하늘색 잠옷 바지. 거울 속 모습을 보니 이런 처참한 복장으로도 충분히 귀엽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역시 남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좀 깬다 싶기도 하는 그런 차림새였다.


다시 고기를 나누려고 주방으로 향했는데, 카톡! 하는 알림음이 들렸다.


아마 녀석한테서 온 거 겠지.

채팅창을 열자 내가 보낸 메시지 다음에, 녀석에게서 온 메시지가 보였다.


[야. 겜말고 할 거도 없는데 영화나 보러가실?]

<ㄴㄴ>


짧은 거절이었다. 살짝 머리가 지끈했다.

왜? 어차피 다 20대 초반인데 남아도는 게 시간이 아니겠는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유나 들어보도록 하자.


[왜]

<오늘 중고거래하러 나와서 바빴음 피곤함>

<집가서 겜 조금만 하다 잘거임>

녀석에게서의 답장은 첫 답장과는 다르게 칼처럼 날아왔다.

보자마자 헛웃음이 났다. 그냥 게임 한 판 같이 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같이 오래 걸리는걸 당일에 약속을 잡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아까 낮에 동네 마트에 있는걸 보기도 했고, 나도 피곤하니까 오늘은 보자고 해도 사양이다.


내가 그렇게까지 덜렁대는 멍청이로 보였나.



[뭔소리야 또]

[누가 오늘 보쟀냐, 일요일날]


<아 ㅅㅂ 일요일에는 됨>

<뭐 볼건데>


[그 10월에 개봉밀린 공포영화]

[니도 그거 보고싶다매]


한도윤 그 녀석은 공포영화를 즐겨봤으니, 이거만 한 떡밥이 없을 거다.

만약에 숨겨둔 여자친구 같은 게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랬다면 애초에 일요일에 비었다고 이야기하질 않았겠지.


<ㅇㅇ ㄱ>

<그래서 영화는 다같이 넷이 보냐?>


아, 역시 이 이야기 나올 줄 알았는데.

안된다. 동시에 절친 셋을 전부 속이는 건 아무리 생판 남 같은 얼굴로도 불가능해.

하지만 나는 이미 방법을 다 생각해 두었다. 괜찮다.

안 먹히면 어쩔 수 없지만.


[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

[둘만 갔다오자]

<왜>


역시 바로 알았다고는 말 안하지..


[니 진짜 다같이 갈라고]

[걔내 공포영화 별로 안좋아해서 액션영화나 보게될걸]

[공포영화는 좀 인기없다 싶으면 바로 내려가서, VOD 결제해야되는거 알지?]

[그리고 영화 끝나면 지난주처럼 100% 또 술판인데 술 먹고 뻗으면 영화 내용 기억이나 나겠냐?]

[내가 팝콘 세트 살테니까 ㄱㄱ]


완벽해. 영화를 즐겨보는 데다 술 먹고 뻗는 걸 싫어하는 녀석이니,

이렇게까지 운을 떼면 혼자 보거나, 같이 보거나 겠지.

이러면 나머지 둘은 일단 아웃이다.


<그래 시발 간다 가>

<어차피 보려던 영화기도 하고, 팝콘 세트는 어쩔 수 없지>

<표는 누가 예매하냐>


어? 생각보다 쉽게 넘어왔네?


[예매는 니가 하셈 어차피 니 영화 자주 보잖아]

[니가 예매하면 VIP 혜택같은거 있을거 아냐]

[나는 어차피 매년 일반회원이니까 니가 하셈]


<ㅇㅇ 그러면 일요일 오후 3시 표임>

됐다. 완전히 넘어왔다.


[ㅇㅇ 그럼 1시 쯤 영화관 건물 1층 햄버거 가게 앞에서 보자]

<ㅇㅇ>

[그럼 ㅅㄱ]


"후우..."

어떻게 약속을 잡는 데 성공했다. 솔직히 조금 떨리는데.

그 능구렁이 같은 녀석을 완벽히 속여넘길 자신이 없다.


그래도 어떻게 열심히 준비해서 커버하면 되겠지.

고3때 벼락치기로 인서울 국어국문학과에 골인했던 걸 생각해보면 어떻게든 될 거다.


나는 `뭐로 공부해야 하나` 하고 생각했는데, 잠깐 로맨스 판타지를 떠올렸다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니 뭔 로맨스 판타지는 얼어 죽을 로맨스 판타지야. 거기서는 영화관 같은데 가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역시 내가 연애를 해본 게 아니다 보니, 결국 준비는 책과 영상자료로 할 수밖에 없는듯하다.

선수처럼 100% 완벽하게 준비하는 건 역시 무리겠지.


그치만 상대는 나랑 똑같은 모쏠이다. 조금 미흡해도 괜찮지 않나...?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도 예쁘장한, 이 신체를 가지고 풀세트로 찌르면 당연히 흔들리겠지...

역지사지로, 만약에 저 녀석이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발상으로 공략해오면 아마 나는...


아 시발, 역시 이 새끼가 이런 애랑 영화관을 가는 게 아니라, 내가 이런 후배랑 영화관에 가야 되는데.

괜히 좋은 짓 해주는 게 아닌가 싶네.


휴대폰을 내려놓고 목살을 덮은 랩을 벗겨냈다. 그리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일회용 비닐백에 나눠 담았다

비닐백에 담긴 목살을 냉동실에 집어넣고 나서야, 나는 목살 1kg의 절반을 구워 먹을 생각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이렇게 덤벙대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이 좋은 소재를 갖고도, 게임을 할 때처럼 녀석 손안에서 놀아날 뿐이다.


정신 차리자 강연우.


인터넷으로 햇반, 햄, 츄리닝바지, 샴푸부터 주문 넣고...

기분이나 풀 겸 게임이나 해야지.


롤은 주말 내내 질리도록 했으니, 오늘은 하고 싶은 게임이나 원 없이 할 거다.

원래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니 영화관 데이트라... 역시 아까 봤던 로퍼랑 베이지색 코트를 중심으로 코디하고 싶은데...

그냥 마네킹에 걸린 거 사이즈 맞춰서 싹 사면 되겠지..?

전에 인터넷에서 본 건데, 옷을 도저히 못 입겠으면 마네킹에 입혀진 대로 사서 입으라고 했다.

그러면 최소한 반타작은 칠거라고.

수요일이나 목요일쯤에는 가서 옷도 좀 사고, 커피도 사서 마셔야겠다. 

바닐라라떼에 샷 추가하고, 카라멜 시럽 3펌프 넣어서..

이번 일에 대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것에 대비해서 PS VR로 바이오하자드 7과, 내년 초에 발매되는 신작 슈팅게임을 할 계획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장바구니 귀퉁이에 담아뒀던 PS4와 PSVR을 지웠다.

PS4랑 PSVR을 동시에 포기하면 어느 정도 출혈이 많이 발생해도 걱정 없을 테니까.

저 둘은 스팀으로 사서 해도 되겠지. 신작 슈팅게임 쪽은 좀 아쉽긴 하겠지만.


이 모든 걸 다 사고 싶은 대로 펑펑 썼다가, 계란과자 벌크 따위로 끼니를 때우는 광경만큼은 누가 하더라도 흉하겠지..


츄리닝중에 하나는 녹색으로 사볼까... 생각보다 괜찮을 거 같은데.

녹색 츄리닝 차림으로 방에서 뒹굴 거리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림을 잘 그리지는 않지만... 갈색 머리도 예쁘지만, 금발도 괜찮았으려나..

 

어차피 에리리만큼 귀엽지는 않았을 거 같지만서도...


아, 지금이면 캐릭터송도 괜찮게 부를 수 있지 않나..?



"릴리 꽃은, 고상하게 Blooming-"


아, 또 딴생각이었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생각의 흐름대로 캐릭터송을 기억나는 대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전보다 집중력이 살짝 떨어진 듯한 느낌이다.

나중에 시간 나면 코인노래방도 한번 가볼까..

추억의 샌드글라스, 마리오네트의 마음 같은것도 괜찮을지도.


그래도 일단 지금은 까먹지 않고 물건부터 제대로 주문해놓는 게 좋겠지.

이번에 실수하면 진짜 일주일 내내, 바지 질질 끌고 다니면서 소면만 먹을 테니까.

매번 감봉만 당해서 낡은 쑥색 코트만 입고 다니는 형사도 아니고, 그럴 수는 없지.


일단 보던 츄리닝부터 장바구니에 담았다.

어차피 편하게 입으려고 사는 거니까, 윗옷은 집에 남는 티셔츠들로 버틸 수 있을 텐데...

역시 녹색은 조금 욕심을 냈다. 어차피 유명한 브랜드제 비싼 물건도 아니니까 괜찮겠지.


그다음은, 햇반 한 상자, 생수 2리터짜리 12병, 스팸 200g짜리 10캔 묶음, 샴푸 한 통을 샀다.

생수는 이미 있어도 미리미리 더 사놓는 게 좋다.

샴푸는 상품평을 2번 읽어보고, 다른 사이트 리뷰같은것도 찾아보고 샀다.


잠옷...은 겨울이니까 그냥 있는 털 잠옷 입으면 되겠지.

원피스형 잠옷 같은 건 역시 생각해보니까 좀 부끄럽기도 하고, 추울 테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는 이후 리스트에서 사려고 마음먹은 물건들을 전부 체크하고, 주문했다.

혹시나 해서 리스트도 2번 체크했다. 아마 내일 내로 박스가 대문 앞에 놓여있을 것이다.


확실히 요즘 인터넷 쇼핑몰은 대단하다. 주문 넣으면 다음 날 대문 앞에 배달되어 온다.

옛날에 중학교 때 물건 사면 한참 걸렸던 거 같은데.


물건도 샀겠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겠다, 나는 안심하고 게임을 켰다.

블리츠 섬광 방패랑 프로스트 곰덫 으로 캐리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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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즈는 완전히 최악이었다.

조용히 겜만 하려다 세판 내리 0:3으로 지고 나서, 열 받은 채 브리핑을 하려고 보이스를 켠 게 패착이었을까


켜고 나서 만난 아군들에게 사기 버프라도 걸린 것인지, 이후 4판을 내리 이기긴 했는데....

아군 중 일부가 기분 나쁠 정도로 보이스챗에서 들러붙었다.


처음에는 잘한다고 칭찬하더니, 나중에는 혼자 게임 하는 거면 같이 다인큐 돌리자는 식으로..

그중 소수는 유플레이 친구초대도 보내오더라...


욕이나 한 바가지 해주려고 딱 한 놈 받아보니까, 얼굴도 모르는 생판 남에게 작업 걸어오는 모습이 한심했다.

조금 불쌍하기도 했지만.


이상한 놈들.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나 같은 다른 게이머들도 다 싸잡혀서 욕먹잖아.


기분이 나빠져서 테러리스트 헌트 주간퀘만 혼자 깨고 그 후로는 싱글플레이 게임이나 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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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일 때문에 미뤄뒀던 싱글플레이 게임을 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 8시가 됐다.


오늘 저녁 메뉴는 햇반을 못 산 관계로, 아까 낮에 생각했던 파스타였다.

아침에 라면, 점심은 샌드위치, 저녁은 파스타, 밀가루 3종 세트라니 건강에 완전 해롭겠네.

그래도 맛있으니까 됐다..


베이컨부터 먼저 볶기 좋은 크기로 썰어둔 다음, 면도 1인분을 재서 소금 친 물에 9분 정도를 삶는다.

면이 삶아지는 동안 베이컨을 어느 정도 볶은 다음, 면이 다 삶아지기 전에 토마토소스도 적당량 부어서 데워놓는다.

그다음 면이랑 살짝 볶아서 접시에 담으면 끝이다.

유튜브에서 본 영상들에서는 소스에 면수를 섞으면 좋다고 했지만, 그거는 내 취향은 아니더라..


토마토 파스타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남은 소스는 냉장고에 넣어도 오래 못 가니까, 주 중에 마저 처리해야겠다.

다음에는 베이컨 말고 채소도 몇 종류 섞으면 더 맛있을 수도 있겠다.


아, 이걸 다 먹고 바로 자기엔 조금 이른 시간인 거 같은데,

녀석한테 게임이나 한판 하자고 할까..

이기면 햄버거값이나 내라고 하거나, 팝콘 세트 반띵하자고 해야겠다.


저녁을 다 먹은 후, 세수부터 해서 입 주변에 살짝 묻은 토마토소스를 닦아낸 다음, 설거지도 끝내놓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휴대폰 화면을 켜서, 카톡을 보냈다.


[니 지금 바쁘냐? 안 바쁘면 1:1 겜 ㄱ]

저녁때라 그런가, 금방 답장이 왔다.


<ㄱㄱ 이기면 팝콘 말고 점심 햄버거도 사냐?>

[콜, 지는 새끼가 햄버거 다 사는거다 ㅇㅋ?]

<ㅇㅋ>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컴퓨터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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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 좋게 게임을 켠 것과 다르게 결과적으로 처참하게 지고 말았다.

뭐가 문제였지? 완벽한 작전이었을텐데.


녀석은 냉병기로만 이루어진 병력이었고, 이쪽은 총까지 들고 있었는데도 졌다.

처음 전장에 나타났던 병력의 규모도 이쪽이 훨씬 많았었는데.


전열을 갖춘 채, 측면에 창병들을 대기시켜놓고 천천히 전진하면서 화력으로 짓뭉개는,

냉병기 상대로는 치사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썼는데 졌다.

치사해져서라도 이기고 싶었는데.


전면전에서 빈약한 적의 모루가 녹아내리는 모습에 취해, 본대인 기병대가 뒤를 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기병 날빌이라니... 어찌 알았겠는가...


가장 먼저 창기병대가 아군 지휘관을 향해 돌진해오더니, 격돌과 동시에 장군이 죽었다는 알림이 떴다.

지휘관을 잃은 부대 전체에 사기 디버프가 걸렸다. 병력의 사기치가 내 멘탈처럼 크게 출렁였다.

이후 검기병들이 나머지 병력을 덮쳤다.

빠르고 확실하게 덮쳐오는 기병대는 전열 보병과 창병이 방진을 짜는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착검조차 하지 못하고 기병에게 유린당하던 전열 보병들을, 총에 맞고 한 줌 정도 남아있던 검병들은 아주 쉽게 베어 넘겼다.

분명히 처음에는 소수의 병력을 고화력으로 찍어누르는 느낌이었는데, 어느샌가 포위당해서 앞뒤로 얻어맞았다.

지휘관도 사라지고 앞뒤로 샌드위치 당하던 병력은 금세 반절 이상을 손실한 채 사기치가 바닥을 치더니,

백기를 꺼내 들고 대열조차 유지하지 못한 채 사방팔방 흩어져서 패주했다.


그리고 등장하는 [패배했습니다!]라고 적힌 팝업창.


이번에도 졌다.

또 패배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좀 더 하던 게임을 꺼내왔었는데.

잘 못 하는 장르의 게임도 아니었는데.

내가 좀 더 잘하고, 녀석이 좀 더 못할만한 게임을 꺼내온 거였는데.

플레이 시간도 내가 5배는 많았는데.

어째서.


`어째서 이번에도 졌냐`고 PC 카톡으로 물어봐도

`기적의 양처럼 생각하면 다 방법이 나온다`는 투로 답이 돌아왔다.

양은 무슨, 오베르슈타인같이 기분나쁜 녀석이면서.


<그러면 일요일 점심도 니가 사는걸로 알고있는다?>

<그럼 자러감 ㅂ>

하고 카톡이 날아든 걸 확인하자, 이번에도 또 이겼다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짜증이 나서 견딜 수 없었지만, 소리를 지르면 동네에 민폐니까 접도록 하고..

일단 컴퓨터부터 껐다.



녀석은 늘 그랬다. 어지간한 것에서 늘 나를 앞서나갔다.

대학교는 내가 더 좋은데 들어가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그 녀석의 패배를 맛보고 일그러진 표정이 보고 싶다.

그래.. 나는 일요일날 이 치트키를 가지고 녀석의 콧대를 잘근잘근 짓밟아줄 거다.


나는 찌푸린 표정을 풀고 살짝 웃어 보였다.

꺼진 모니터 화면에 비친 얼굴은 역시 조금 귀여웠다.


어느 변호사가 그러지 않았는가, '변호사는 위기일 수록 뻔뻔하게 웃어야 한다고.'

확실히 웃으니까 기분이 나아졌다.


화가 식고나서 천천히 머리를 썼다.

어쩌면 이 황당한 일련의 사태 자체가 신께서 승리를 쟁취하라고 준 기회가 아닌가 싶다.

그러면 그 기회를 최선을 다해 잡는게 맞다.


그러니까 일단 오늘은 일찍 자는게 좋겠지..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아, 기대된다.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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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4자?

금요일에서 토요일 넘어가는 새벽에 글이 제일 쭉쭉 써지더라구요.
커피는 디카페인 같은게 아니면 새벽에 마시면 아예 못 자니까..

첫 잔은 따뜻하게 홍차 내려서 마시고, 그 뒤로는 미지근한 물 마시면서 쓰면 손가락이 막히지는 않는 듯 합니다.
품질이나 표현력같은건 이미 죽어서 사라지지 않았나 싶지만, 막히지 않는게 어디일까 싶기도 합니다.
마음은 이미 일 2회 연참인데, 능력은 주 1회도 간당간당합니다.


역시 16일이나 걸렸던 2화의 악몽만큼은 다시는 보고싶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거의 1달동안, 제목에 맞지 않게 일요일 영화관에 가지도 못하고, 이어지는 독백의 연속이 스스로도 질려버려서 

악셀 꽉 밟아서 풀 스로틀로 뇌절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처음에는 시간제한도 짧게 걸고, 주중에 아는 사람 아무도 안만나면 쓰기 편하겠지?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다음에 다른거 쓸때는 좀 더 느슨하고 여유롭게 잡는게 좋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래도 이전 3화처럼 페이스가 늘어지면 내년 봄에나 영화관에 들어갈거 같아서, 어쩔수 없었습니다..
고작 작중 시간상 1주일짜리 단편인데, 몇 달씩 연재할 수는 없으니까요.

주중 내내 계획상 여러 날짜에 조금씩 쪼개둔걸 고쳐서 한 화에 싹 몰아넣었더니 역시 좀 여러군데 마음에 들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막 제대로 플롯이나 시놉시스를 짜둔건 아니라서 전체적으로 봤을때 크게 지장이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햄버거 내기하던 게임은 DCS같은 시뮬레이션부터, 스타크래프트, 롤 미드빵, FPS같은걸 생각했었는데 고민하다가 토탈 워 쪽에서 따왔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 있다면...
4화 쓰면서, 주인공이 3화에서, 사기로 했던 물건중에 일부를 아예 빼먹고 샀다는걸 확인했습니다.

퇴고하면서도 놓쳤다는게 부끄러웠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게 잘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맹입직문 같은거려나요. 소 뒷걸음질에 쥐 잡기? 그런 느낌입니다.

다음 화는 드디어 일요일 편의 첫편입니다.
하이라이트 장면의 도입부니까 역시 좀 긴장되긴 합니다.
어떻게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정제해서 글로 써낼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첫 연재니까요. 역시 좀 부끄럽습니다.

욕심은 이미 연참을 향해 움직이지만, 목표는 기존에도 그랬듯 다음 주 일요일 자정 전에 올리는게 목표입니다.
더 빨리 완성된다면 더 빨리 가져오겠습니다.

과정은 좀 많이 아쉽지만, 일요일까지 시간대를 땡긴것도 살짝 마음에 들고, 챈에 소설도 전보다 많이 올라오니까 기분은 좋습니다.
미흡하고 부족한 글을 계속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