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에도 막부도 뭐 개항 안 한다고 이양선 죄다 격침시키겠다고 뻐팅기기도 했었고 청나라도 처음에는 큰 갈등 없이 있었다가 아편 때문에 전쟁하다 개털리기도 했었지만, 뭐 그래도 일본은 그 이전부터 나가사키에 있는 데지마로 네덜란드랑 꾸준히 교역했고 청나라도 기독교 선교사가 자주 왔다갔을 정도로 서양에 그리 큰 적개심을 보이지는 않았음 뭐 그렇다고 꼭 좋게 좋게 말만 한건 아닌 거 같다만, 에도 막부의 경우처럼 미국에서 군함만 구경시켜줬는데 바로 꼬리내리고 개항한거 보면 말이지


조선의 경우는 워낙 고집이 쌔게 나와서 일본이 강제로 열기 전까지는 서양과 전면전도 불사했을 정도였는데 갠적으로 흥선대원군 집권 초기때는 서양과의 무역 의지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였다고 생각함, 최강으로 보고 있던 주잉님 청나라가 영국 해병대에 줘털리는 걸 본 하응이는 적어도 군사력은 증강하려고 했었다는데, 그 유명한 제너럴 셔먼호를 복재해서 철갑선을 만들거나, 일본에서 총을 수입하려는 시도도 있었음 근데 이건 자금난 때문에 실패했다고 했고, 이후 잘 지내던 천주교와 갈등을 겪으면서 병인박해를 일으키고 오페르트라는 어떤 윾머인 병신새끼랑 제너럴 셔먼호의 행패 때문에 이후 하응이가 서양이고 뭐고 다 좆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함


사실 갠적으로 이때 개항하거나 하응이의 계혁이 성공했어야지 그나마 가망성이 있었다고 보는데, 애초에 이 시점도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꽤 늦은 시점이라는거 


일단 가문 하나가 지들 좋으라고 비리란 비리는 다 해먹어 나라를 거의 좆망시켜버린 세도정치로 하응이가 뭐 하기 힘들 정도로 이미 나라 꼴이 말이 아니였고 이후로는 틀니 냄새 풍기는 척사파의 방해로 개항은 더 늦춰졌고 결국 일본이 강제로 열었다고 생각함


물론 일본도 처음에는 좋게좋게 얘기해서 무역하자고 했고 정한론자들도 족치거나 타이완을 점령해서 정한론을 잠재우기도 했는데 이것도 국서 문제로 영 순조롭지 않게 흘러가다가 운요호 사건 바로 직전에는 고종이 개항하고 싶다면서 협상을 진행했었다고 하는데 척사파의 방해로 협상이 지연되다가 일본에서 걍 군함 보내자고 해서 이렇게 된 거로 알고 있음


참고로 사이고 다카모리 이 양반은 서계가 거부되자 지가 조선에 가겠다고 하면서 "가면 조선인들이 날 죽일거니까 그때 조선에 처들어 오든지 해라"라고 했다는데 글쎄? 교역하자 하던 이양선도 물자까지 주면서 정중히 돌려보던 애들인데 굳이 사이고를 죽일 이유가?


어쨌든 걍 옆나라랑 수교 맺으려다가 포함외교와 불평등 조약으로 맛 좀 본 일본은 제국주의에 눈을 뜨게 되는데 그게 경술국치로 이어지는 재앙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