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이 아닌, 운

『총, 균, 쇠』를 읽고



 

 

문명은 어느 순간 시작되었다. 문명이라는 것은 이제 우리와 함께, 떼놓을 수 없다. 문명이 우리와 하나가 된 사례로 하나를 보면, 시민의 영단어는 ‘Civilian', 문명의 영단어인 'Civilization'이다. 시민은 곧 문명인이다. 우리는 문명 안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데, 어떻게 문명은 바뀌어 나갔는가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왜 역사의 수레바퀴는 왜 공정한 속도로 모두에게 굴러가지 않았는가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다. 과연 무엇이 문명의 발달을 촉진시켰고 그게 경쟁력이 되었는가?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 해답을 총, 균, 그리고 쇠로 답한다.

 

 문명은 우리가 알듯이 지구상의 단 네 곳에서 시작되었고 퍼져나갔다. 흔히 단순하게 말해서 수렵채집 생활을 하다가 농업을 통해 정주를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회가 발달했다고 한다. 맞다. 그러나 수렵채집이 농업에게 뒤처지는 데에는 수많은 일들이 선행이 되어야했고, 그게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선행이 되지 못해서 농업이 시작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왜냐하면 그냥 농업은 수렵채집에 비해 훨씬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에, 이 둘을 병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인간은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극히 낮은 확률에 도전하는 도박을 통해 수많은 야생식물들 가운데 괜찮은 (작물화의 조건에 들어맞는) 작물들을 작물화 후 개량했고, 역시 수많은 야생동물들 가운데 괜찮은 (가축화의 조건에 들어맞는) 동물들을 가축화해서 농업에 투자해 수렵채집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렇게 문명의 수레바퀴를 굴려나가던 중 한 가지 시련에 대면한다. 바로 ‘균’이다.

 

 발달한 농업의 힘은 인간 사회를 발달시켰고, 인구수를 늘렸다. 그러나 농업이 균을 불러온 것은 아니다. 바로 가축이다. 동물들의 질병은 동물들 사이에서는 문제가 안되지만, 면역이 없는 인간에게는 문제가 된다. 근대사의 전염병들인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등은 모두 동물의 질병에서 진화했고, 현대의 신종플루나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동물들에게서 유래했다. 질병은 인간의 가장 큰 사인(死因)으로, 역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농경에 따른 비료의 조달을 위한 분뇨의 저장과 사용, 식량의 저장에 따른 설치류의 영향 등이 비위생적인 환경을 만들었고, 이 곳에서 병균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한 지역서 밀집해서 살다보니 모두가 비위생적인 환경서 살게 되었고, 교역로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병균들도 수송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균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지금은 발달된 교통수단으로 더 빠르게 퍼져나간다. 근데 짐승의 균이 왜 인간을 괴롭히냐? 가축들의 균이 인간을 만나고 나서 인간에 맞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우역(牛疫)은 인간을 만나고 홍역이 되었다. 그러나 서로의 타깃 종에게는 무해하다. 인간에게서 살아남기 위한 자연선택의 치명적인 선물이었다. 백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진출을 도운 것 역시 원주민들이 면역을 갖고 있지 않았던 유럽대륙의 질병이었다.

 

 발달되어가는 사회는 점점 사람들을 늘렸다. 그러자 이제 소수의 부족 사회에서 결정을 내리듯이 이 많은 사람들을 이끌 수는 없었다. 그렇게 문명이 고도화되면서, 중앙집권적 사회와 문자 등이 등장했다. 그렇게 국가가 등장했고, 각 공동체간의 경쟁과 식량 생산이 결국 전쟁을 탄생시켰다. 각자 주어진 환경이 달라서 훨씬 나은 것을 쟁탈하기 위해 공격하고, 서열 관계의 확립을 통한 조공 등이 전쟁의 큰 요인이었다. 이런 생활은 쇠의 용도를 농기구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게 되었고, 잉카제국의 곤봉은 스페인 군대의 철제 검에 박살났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침략자들의 총에 박살났다. 이 모든 것은 불공평한 출발선에서 시작된 차이였다.

 

 전 세계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고, 그 위에 다양한 문화권이 존재한다. 문명의 잣대에서, 누구는 선두를 달리며 누구는 후미에 위치해있다. 분명히 같은 인류다. 누구는 호모 사피엔스고 누구는 네안데르탈인이고 그런 시작이 아니었다. 같인 인류였지만, 결과는 지금도 알 수 있듯이 판이하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이를 파헤쳐서 그 해답을 불공평한 출발선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총, 균, 쇠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이아몬드 박사가 뉴기니에서 만난 원주민들이 현대 문명인들보다 못나다는 것이 아니다. 현대 문명에서는 문명인들이 원주민들보다야 더 잘 살겠지만, 원주민들의 정글에서는 문명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문명의 발달에는 민족의 우수성 따위는 없다. 저자가 만난 뉴기니 원주민들도 충분히 똑똑한 존재들이었다. 각자의 초점이 다를 뿐이었다. 긴 타임라인 속에서 진보와 퇴화가 모두 존재해왔지만, 결국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달한 문명일 뿐, 서로 같은 조건에 위치한 문명이 아니기에 서로의 우열을 가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뉴기니인들이 ‘화물’을 가질 수 없던 것이 아니란 것이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p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