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면업에 대해 애기해 보자. 여러분은 조선 상업 개폭망이라고 알고 있을 거다. 그러나 일본,중국에 비해 뒤떨어질 뿐이다.  개항기 일본인이 1888년에 조사한  <경상도,전라도 여행기사 농상황조사록>에 따르면 전라도 '남원'에서 11만 700필에 면포가 경상도.충청도.경기도로 '수출'되고 1300필의 면포만이 남원으로 흡수되었다. 경상도 '진주'에 경우 10000호가 면작에 종사했고 그중에서 5000호가 견직물을 생산했이 경기도로 수출되었다.  그러나 진주뿐만이 아니라 '순천'은 전라도 최대의 면작지 인데 5000호가 면작호,2000호가 마작에 1000호가 양잠에 종사함 면작에 종사 경상도,전라도에서 생산된 면포 881056필중 769040필이 군 너머로( 27개군이 있고 군 너머로 수출됨) 대다수가 10필 이하의 소농이지만 조선은 1-2필만이 자가로 소비함 흥미로운 것은 10필 이상을 생산한 지역의 면포가 7/8의 정도의 시장을 장악했지만 10필이하의 생산하는 15개군의 원격지율이 78퍼센트이고 500문 이하의 지역은 전라도가 500문 이상은 경상도가 높았는데 원격지율은 경상도가 높음 국내면포 거래량은 250만필 수준이었고 이는 1780년 영국과 유사함 <개항기 면업을 통해본 국내시장의 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