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샤를 2세


-서프랑크 카롤루스 왕조의 초대 왕, 신성 로마 제국 5대 황제 


왜 이 사람이 먼저임? 하고 묻는다면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이 된 인물이 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초상화보면 풍성한 이 남자가 어쩌다 대머리란 조롱을 듣게 됐느냐하면 그에게 상속받을 땅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통성약한 아버지가 상속을 일찌감치 끝냈다보니 후처소생의 늦둥이인 그에게 상속을 해줄 땅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쓸 왕관없는 왕자의 별명은 대머리가 되었다. 이 사람의 사례만 봐도 대머리는 동서고금 막론하고 대단한 모욕이었던게 맞다. 아무튼 문제는 그 다음인데 얘한테 왕위를 주려고 한 트롤짓은 아버지 편에서 소개하겠다.



경건왕 루도비쿠스 1세


-프랑크 카롤루스 왕조의 2대 황제, 신성 로마 제국 2대 황제 


위에 언급한 샤를 2세 아버지고 카를루스 대제의 아들이다. 경건왕이란 별명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라 얻은 별명. 정통성 부족으로 상속을 일찍 했고 장자상속을 도입하려 했다. 그러나 늦둥이로 샤를 2세가 태어나면서 모든게 어그러졌다. 마치 모 드라마 16화처럼... 샤를 2세한테 꽂힌 그는 이미 다른 아들에게 상속이 끝난 땅을 뺏어서 주려다 폐위당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너무 독실했던 그를 교황은 열성적으로 지지했고 이 지지를 등에 업고 복위한다. 그리고는 대놓고 샤를 2세한테 상속을 몰아준다. 어쨋든 이런 일련의 트롤짓으로 아버지의 제국을 박살낸 모질이



대제 카를루스


-프랑크 카롤루스 왕조의 1대 황제, 신성 로마 제국 초대 황제 


저 모질이의 아버지. 프랑크 왕국은 경제가 빈약해서 외정과 내치가 모두 전쟁인 나라였고 이를 매우 잘 이행한 왕이었다. 업적은 워낙 기록이 많아서 생략



단신왕 피핀 3세


-프랑크 카롤루스 왕조의 초대 왕 


카를루스의 아버지. 키가 작다는 소리다. 비록 작은 키는 역사에 박제당했지만 쿠데타로 왕위에 오른 우리보다 성공한 사람이다.



말더듬이왕 루이 2세(서프랑크 카롤루스 왕조 2대 왕): 말을 더듬었다.


단순왕 샤를 3세(서프랑크 카롤루스 왕조 7대 왕): 간단 명료하고 솔직한 성격 때문에 붙은 별명. 근데 오역되서 단순무식한 놈이라는 이미지가 붙었고, 미련왕(Stultus), 멍청왕(Hebes), 우둔왕(Insipiens), 미미왕(Parvus), 열등왕(Minor) 이란 바리에이션이 따라오게 되었다. 불쌍한 왕이다. 실제론 성격만 솔직하지 권모술수에도 능했다는데...


비만왕 카를 3세(프랑크 카롤루스 왕조 3대 황제, 신성 로마 제국 6대 황제): 말 그대로 비만이라 비만왕이다. 일시적으로 프랑크를 통합한 왕인데 동시에 프랑크왕국을 사실 상 끝으로 이끈 왕이기도 하다. 서프랑크의 왕으로 즉위는 했지만 왕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사생아왕/정복왕 윌리엄 1세


-노르망디 공작 노르만 가문 기욤 2세, 잉글랜드 노르만 왕조 초대왕


사생아왕은 그의 출신이 사생아라 붙은 별명이고 정복왕은 잉글랜드를 정복해서 붙은 별명. 화끈한 청혼으로 유명한데 사생아라고 청혼을 안 받아주자 그 여자가 사는 곳까지 쳐들어가서 팼다고 한다. 



사자심왕 리차드 1세


-앙주 제국 앙주 왕조 황제


너무 유명하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 사자의 심장을 가졌단 뜻이다. 단순히 뛰어난 전략가이자 기사로 알려져 있지만 정체성이 프랑스인임에도 잉글랜드 의전을 중요시한 점(자신들을 프랑스의 단순 신하가 아닌 왕으로 만드는건 잉글랜드의 왕이란 자리였다), 요직에 부하들을 잘 데려다 쓴 점 등을 볼때 정치적 감각도 상당 수준이었던 것 같다.


 

결지(缺地)왕/실지(失地)


-앙주 제국 앙주 왕조 황제


말 그대로 있던 땅 날려먹은 왕이란 뜻이다. 그렇다고 능력이 아주 없는 왕은 아니었던거 같다. 아마도? 경쟁자인 필립 2세와 형 리차드 1세가 너무 뛰어났다는게 가장 큰 문제지. 덕분에 무능한 왕의 표본이 되었다. 결과론적으로 일생동안 프랑스의 비옥한 땅들을 다 날려먹었고(아키텐 지역만 해도 당시 잉글랜드 전체 생산량과 거의 같았다고 한다) 백성들의 민심도 잃었다. 결국 그가 프랑스에 남긴건 '마그나 카르타' 밖에 없다. 어쨋든 그렇게 인기가 없으니 존이라는 이름이 인기가 있을리가 없고 덕분에 넘버링이 없다.



신이 주신 자/오귀스트(Auguste) 필리프 2세


-프랑스 카페 왕조 7대 국왕


리차드 1세와 존 형제의 경쟁자였던 인물. 신이 주신 자는 정통성 논란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카를루스 가문의 여자와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다 보니 붙은 별명이고 오귀스트는 앙주제국(잉글랜드) 땅을 뺏어 프랑스 땅을 넓혔다고 붙은 별명. 권모술수의 달인이고 리차드 1세만큼은 아니지만 명장이기도 하다. 내정도 상당히 뛰어나 이래저래 프랑스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꼽힌다.



가시공 블라드 3세


-왈라키아 공국 16대 공작


왕은 아닌데, 너무 유명해서 넣었습니다. 죄인을 말뚝에 박아죽이는 형벌로 이런 별명을 얻었다. 드라큘라의 모델이기도 하죠. 적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 적들은 평민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평민들에게는 굉장히 잘해줘서 후대의 평가는 국민영웅급이라고 합니다.



행운왕 마누엘 1세


-포르투갈 왕국 아비스 왕조 5대 국왕


1495년에 즉위했는데 1498년 인도 신항로 개척을 시작으로 1500년 브라질, 1501년 래브라도, 1505년 인도총독 임명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희망봉 발견, 토르데시아스 조약같은 개고생은 전임이 다 하고 그는 꿀만 빤것이다. 왜 행운왕인지 알겠지?



신사왕(The Gentle) 프리드리히 2세


-신성로마제국 호엔슈타우펜 왕조 3대 황제


지적호기심이 넘치고 개방적인데다 비기독교 세계(주로 이슬람)의 선진 문물을 수입하는데 거부감이 없없고 이슬람인들과 통역없이도 대화하는 등 당대에도 세계의 경이로 불릴 만큼 재능있다고 평가받은 사람이기는 하다. 하지만 당시의 사회분위기 덕에 파문을 3번 당했고 외정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며 그의 사후 대공위 시대가 시대가 시작된 점에서 최초의 계몽군주라는 칭호와 중세 최강의 거품이라는 극단적 평가가 공존하는 흥미로운 통치자다. 여성편력이 대단해서 공식적인 부인만 4명이었다고 한다. 부러운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