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中.... (출처는 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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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城門)에 못 미쳐 소나기 한 줄기가 동에서 몰려든다. 이에 말을 급히 달려 성 문턱에서 내렸다. 홀로 걸어서 문루(門樓)에 올라 성 밑을 굽어 보니, 창대[마부1]가 혼자 말을 잡고 섰고, 장복[마부2]은 뵈지 않는다. 조금 뒤에 장복이 길 옆 한 작은 일각문(一角門)에 버티고 서서 위아래를 기웃기웃 바라보더니 이윽고 둘은 삿갓으로 비를 가리며 손에는 조그만 오지병을 들고 바람나게 걸어온다.

알고 보니 둘이서 저희들 주머니를 털어서 돈 스물 여섯 푼이 나왔는데, 우리 돈을 갖고는 국경을 넘지 못하는 터에 그렇다고 길에 버리자니 아깝고 해서 술을 샀다 한다. 나는,

“너희들 술을 얼마나 하느냐.”

하고 물었더니, 둘은,

“입에다 대지도 못하옵죠.”

하고 대답했다. 나는,

“네놈들이 어찌 술을 할 줄 알겠니.”

하고 한바탕 꾸짖었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론 스스로 위안하는 말로,

“이도 먼 길 나그네에겐 한 도움이 되겠구나.”

하고, 혼자서 잠자코 잔 부어 마실 제 동쪽으로 용만(龍灣)ㆍ철산(鐵山)의 모든 메를 바라보니 만첩의 구름 속에 들어 있었다. 이에 술 한 잔을 가득 부어 문루 첫 기둥에 뿌려서 스스로 이번 길에 아무 탈 없기를 빌고, 다시금 한 잔을 부어 다음 기둥에 뿌려서 장복과 창대를 위하여 빌었다. 그러고도 병을 흔들어 본즉, 오히려 몇 잔 더 남았기에 창대를 시켜 술을 땅에 뿌려서 말을 위하여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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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때가 한낮이라 불볕이 내리쬐어서 숨이 막혀 더 오래 머물 수 없으므로, 드디어 길을 떠났다. 정 진사와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다가, 나는 정 진사에게 물었다.
“그 성 쌓은 방식이 어떠한가.”
“벽돌이 돌만 못한 것 같애.”
하고 답한다. 나는 또,
“자네가 모르는 말일세. 우리나라의 성곽제도[城制]는 벽돌을 쓰지 않고 돌을 쓰는 것은 잘못일세... [대충 TMI] ....이로써 본다면 벽돌과 돌 중 어느 것이 이롭고 해로우며 편리하고 불편한가를 쉽사리 알 수 있겠지.” 하였다.

정 진사는 방금 말등에서 꼬부라져 거의 떨어질 것 같다. 그는 잠든 지 오래된 모양이다. 내가 부채로 그의 옆구리를 꾹 지르며,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웬 잠을 자고 듣지 않아.”

하고 큰 소리로 꾸짖으니, 정 진사가 웃으며,

“내 벌써 다 들었네. 벽돌은 돌만 못하고, 돌은 잠만 못하느니.”

한다. 나는 화가 나서 때리는 시늉을 하고, 함께 한바탕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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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장을 정돈한즉, 양편 주머니 중 왼편 열쇠가 간 곳이 없다. 샅샅이 풀밭을 뒤졌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장복을 보고,

“너는 행장에 유의하지 않고 늘 한눈만 팔더니, 겨우 책문에 이르러서 벌써 이런 일이 생겼구나. 속담에 사흘 길을 하루도 못 가서 늘어진다는 격으로, 앞으로 2천 리를 가서 연경에 이를 즈음이면 네 오장인들 어디 남겠느냐. 내 듣건대, 구요동(舊遼東)과 동악묘(東岳廟)엔 본시 좀도둑이 드나드는 곳이라 하니, 네가 또 한눈을 팔다가는 무엇을 잃어버릴지 모르겠구나.”

하고 꾸짖으니, 장복은 민망하여 머리를 긁으며,

“쇤네가 인제야 알겠습니다. 그 두 곳을 구경할 적엔 제 두 손으로 눈깔을 꼭 붙들고 있으면, 어느 놈이 빼어갈 수 있으리까.”

한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옳아.”

하고 응락하였다. 대체 장복이란 녀석은 아직 나이 어리고 또 처음 길이며 바탕이 몹시 멍청해서, 동행하는 마두들이 흔히 장난으로 놀리면, 그는 곧잘 참말로 곧이 듣고 그러려니 한다. 매사가 다 이러하니 앞으로 먼 길을 데리고 갈 일을 생각하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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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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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들으니,

“이곳에는 좀도둑이 많아서, 낯선 사람이 구경에만 마음이 팔려 자신을 잘 보살피지 못하면 반드시 무엇이든 잃어버리고 만다. 지난해 어느 사신 행차에 많은 무뢰배를 반당(伴當)으로 삼아 거느렸는데 상하 수십 명이 모두 초행이어서 의장(衣裝)이나 안구(鞍具)가 제법 호화로웠다. 이곳에 이르러 유람하는 사이에, 혹은 안장을 잃고 혹은 등자(鐙子)를 잃어버려 여간 낭패가 아니었다.”

고 한다. 장복이 갑자기 안장을 머리에 쓰고 등자를 쌍으로 허리에 차고서 앞에 모시고 서서 조금도 창피해하는 기색이 없기에, 내가 웃으며,

“왜 너의 두 눈알은 가리질 않나.”

하고 나무란다. 보는 이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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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길을 떠났다. 길에서 되놈 5~6명을 만났는데, 모두 조그만 당나귀를 탔고 벙거지나 옷이 남루하며 얼굴은 지친 듯 파리하다. 이들은 모두 봉황성의 갑군(甲軍)으로 애랄하(愛剌河)에 수자리 살려 가는데, 대부분 품삯을 받고 팔려 가는 자들이라 한다. 이 일을 보니 우리나라는 염려할 것 없으나, 중국의 변비(邊備)는 너무나 허술하다고 느껴졌다.

마두와 쇄마 구종들이 나귀에서 내리라고 호통치니, 앞서 가던 둘은 곧 내려서 한쪽으로 비켜서 가는데, 뒤에 가는 셋은 내리기를 거부한다.

마두들이 일제히 소리를 높여 꾸짖으니, 그들은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쏘아 보면서,

“당신네 상전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 있어.”

한다. 마두가 바짝 달려들어 그 채찍을 빼앗아 그 맨 종아리를 후려갈기면서 꾸짖는다.

“우리 상전께서 받들고 온 것이 어떤 물건이며 싸 갖고 오는 것이 어떤 문서인 줄 아느냐. 저 노란 깃발에 만세야(萬歲爺 청의 황제) 어전상용(御前上用)이라고 써 있지 않느냐. 너희 놈들이 눈깔이 성하다면 황제께서 친히 쓰실 방물인 줄 모른단 말이냐.”

하니, 그제야 그들은 곧 나귀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서,

“그저 죽을 죄를 지었소이다.”

한다. 그 중 한 녀석이 일어나더니 자문(咨文)을 지닌 마두의 허리를 껴안고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띤 채,

“영감, 제발 참아 주십시오. 쇤네들의 죄는 죽어야 하옵니다.”

한다. 마두들이 모두 껄껄 웃으면서,

“너희들은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렷다.”

하니, 그들이 진흙 바닥에 꿇어 엎드려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리니, 이마가 죄다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일행이 모두 크게 웃고,

“빨리 물러가라.”

호통한다. 나는 다 보고 나서,

“내 듣기에 너희들이 중국에 들어갈 때마다 여러 가지로 요단(鬧端)을 일으킨다더니, 이제 내 눈으로 보건대 과연 앞서 들은 바와 틀림없구나. 아까 한 일은 대체 부질없는 짓이니 이 담엘랑 아예 장난으로 요단을 일으키지 말려무나.”

하니, 모두들,

“이렇게라도 아니 하면 먼 길 허구한 날을 무엇으로 심심풀이를 합니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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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이르기까지 온 나흘 밤낮을 눈을 붙이지 못하여 하인들이 가다가 발길을 멈추면 모두 서서 조는 것이었다. 나 역시 졸음을 이길 수 없어, 눈시울이 구름장처럼 무겁고 하품이 조수 밀리듯 한다. 혹시 눈을 뻔히 뜨고 물건을 보나, 벌써 이상한 꿈에 잠기고, 혹은 남더러 말에서 떨어질라 일깨워 주면서도, 내 자신은 안장에서 기울어지고는 한다. ...[대충 잠들기 직전만큼 졸아서 박지원이 헛소리하는 내용].... 하다가 한번 꾸벅하면서 깨니, 이 또한 꿈이었다. 그리고 창대도 가면서 이야기하기에, 나 역시 대꾸하다가 가만히 살펴보니, 헛소리를 자주한다. 대개 제가 여러 날 동안 주린 끝에 다시 크게 추위에 떨다가 학질에 걸린 듯 인사를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때에 밤은 이미 이경(二更) 즈음이다. 마침 수역과 동행하였는데, 그의 마부도 역시 벌벌 떨고 크게 앓으므로 함께 말에서 내렸다. 다행히 앞 참(站)이 5리[대략 2km]밖에 남지 않았다 하므로, 병든 두 마부를 각기 말에 싣고, 흰 담요를 꺼내어 창대의 온몸을 둘러싸고 띠로 꼭꼭 묶어서 수역의 마두더러 부축하여 먼저 가게 하고, 수역과 더불어 걸어서 참에 이르니, 밤이 이미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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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인 견해 셋,

1. 꼰대짓을 해도 ㄹㅇ 재치있고 기품있게 함 

2. 노비(마부)들이 트롤짓해도 그냥 점잖게 훈수질하거나 유쾌하게 넘길줄 앎

3. 아무리 노비들이라도 최소한의 인격과 안위는 걱정해가며 챙겨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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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제도 없는 현재보다 오히려 왜 저때가 차별이 덜 심해보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