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보면 '북궁'이라는 곳이 2번 언급된다. 둘 다 삼국통일 이후에 언급되는데 삼국유사에서 혜공왕 시절 북궁 내 정원에 별이 두개가 떨어졌다가 뒤이어 별이 하나 더 떨어졌다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고 삼국사기에서는 진성여왕이 북궁에서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가 어딘지 정확히 모른다는 거다. 일단 동궁은 월성 바로 옆에 월지와 함께 있다는건 모두가 알고있고 남궁은 월성 남쪽에 딱 붙어있는 국립경주박물관이 남궁이 있던 곳이라는게 확실한데 북궁은 월성 서북쪽 어딘가 있는걸로 추정되는 금성과 함께 위치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궁전이다. 위 사진 둘은 월성 북쪽에 붙어있는 궁궐로 묘사되지만 저건 근거없는 상상이고 저 자리는 월성 북문에서 주작대로가 시작되는 곳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는 2개의 후보지가 있는데 전랑지와 용강동 원지다. 먼저 전랑지는 큰 건물들이 있고 금박이 발굴된 적이 있어서 북궁으로 추정되지만

위 사진처럼 건물배치 형태가 가운데 작은 정사각형 건물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배치되어있는 형태라 정전을 중심으로 주변을 행각이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통상적인 궁궐 구조와는 달라 북궁이 아니라는 반론의견이 있다. 다만 아직 궁궐이 아니라고 확실히 결론내릴 수 없는게 정궁인 경주 월성도 대형건물 없이 소형~중형 건물들이 자유분방하게 배치된 형태라 북궁도 월성처럼 자유분방한 형태의 궁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후손인 조선 창덕궁도 정전인 인정전이 동서남쪽만 행각이 있고 북쪽은 얇은 담장으로 되어있으며 심지어 인정전을 둘러싼 벽도 완벽한 직사각형을 이루지 않는 등 한국 궁궐은 궁궐건축양식과 상이한 구조를 이루는 경우가 있다.


전랑지는 대략적인 건물배치도만 알아낸 상태로 발굴이 중단, 다른 경주시 유적들 발굴작업 때문에 발굴이미뤄지고 있어 전랑지가 정확히 어떤 건물이었는지는 더 자세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야 알 수 있을듯하다.


두번째 후보로는 전랑지보다 더 북쪽에 있는 용강동 원지가 있는데 9년에 결친 조사결과 동궁의 월지에 비견되는 커다란 인공연못이 8~9세기 쯤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이곳이 북궁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월성으로부터 너무 멀다. 비록 신라와는 성향이 많이 다른 조선의 경우이긴 하나 조선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서로 가까운 곳에 모여있었는데 전랑지는 월성과 가까운 위치에 있던 반면 용강동 원지는 위 사진처럼 너무 북쪽에 있다.


일단은 전랑지와 용강동 원지 둘 다 자세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야 알 수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