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 북부 해안에서 우리 대군이 상륙 능한 곳은 하카타만뿐입니다.”


통제사 이광식이 그런 보고를 올렸다. 지도를 보면 뻔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규슈 북부 해안의 다른 곳은 대부분 산이나 절벽이 펼쳐져 있었다. 간혹 평평한 해안가도 너무 좁았다.


오직 하카타 만의 해안만이 광활한 평지가 펼쳐져 있어서 대군이 상륙하기 좋았다. 그리고 인근 도시 자체가 모두 평야여서 하카타에 상륙하면 향후 진격도 편했다. 거기다 하카타 앞바다에는 노코노시마, 시카노, 겐카이란 세 개의 굉장히 조그만 섬이 있었다.


상륙작전을 펼칠 군사들이 쉬거나 식량을 쟁여놓는데 쓸 만한 요긴한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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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산성이야말로 이 일대 신라 세력의 거점이라 할만 했다. 오늘날의 지명으로는 충청북도 보은이다.


‘조선말에는 동학교도들이 보은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지.’


이 보은이 역사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이곳이 전근대에는 교통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보은에서 동쪽으로 가면 상주, 문경이 나온다. 상주, 문경은 계립령이나 이화령 같이 소백산맥을 넘을 수 있는 고개가 있는 곳이었다. 소백산맥은 매우 높고 험준한 산맥이라 이 고갯길이 아니면 넘을 수가 없었다.


또 보은에서 북쪽으로 가면 괴산과 충주가 나왔다. 충주는 그야말로 요지 중의 요지였다. 이 시대 신라는 자신들의 영토를 5주 2소경으로 나누었다. 이 중 2소경은 부수도를 둔 것인데 충주는 이 소경 중 하나였다. 이 시대 신라는 충주를 국원경(國原京)이라고 불렀다.


‘고구려가 충주를 차지하고 있을 때도 충주를 국원성이라 불렀지. 나라의 근원이란 이름을 붙인 거야.’


그 정도로 전근대에 충주는 중요했다. 충주는 남한강과 달천이라는 꽤 큰 하천이 교차하는 곳에 위치했다. 그래서 남한강과 달천 인근 수십 개 고을의 식량을 모두 모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충주는 그 인근이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었다. 자체적인 방어력도 훌륭했다.


‘이 충주, 즉 국원경만 얻으면 남한강을 제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강은 본래 여름에 더울 때는 수량이 줄어든다. 그래서 계절에 따라 배가 다닐 수도 있고 못 다닐 수도 있다. 그런데 충주 인근은 계절에 관계없이 수량이 풍부해서 언제나 배가 다닐 수 있었다. 괜히 신라가 충주에 소경을 설치한 것이 아니다.


‘내 계획도 우선 관산성, 삼년산성을 깨뜨리고 그대로 북진해서 괴산을 지나 충주, 국원경을 함락시키는 것이다.’


국원경까지만 가면 그야말로 한강유역을 회복한다는 내 목표의 반이 이루어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난 대역 작가가 되고싶은 놈인데 저거 내가 재밌게 본 대역작품에서 전투가 일어날 곳에 대해 지리 설명을 하는 부분이거든?


대학원에서 역사지리학 제대로 배우고 연구하면 저런 거 다 자료조사 할 수 있음?


실제 역사에서 ~~전쟁이 났는데 거기서 ~~한 이유 때문에 ~~에서 전투가 일어났고 뭐 이런 거 혼자서 다 독자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음..


개인적으로 위성사진만 봐도 아 한반도 세력이 여길 침공하려면 여기서 싸움이 나야겠네 이런 거 딱딱 감잡을 수 있을만큼 훈련하고싶은데 그정도는 역사지리학 교수쯤 되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