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무후때 거란이 날뛰고 고구려 유민들이랑 말갈이 연합해서 발해도 세우고 이때 토번도 좀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외적으론 혼란스러운 시기였던 걸로 암.
그동안은 진성여왕처럼 측천무후가 무능했기에 당이 외치가 혼란스러웠다는 시각이었다면 최근엔 이미 당 고종 시절부터 혼란의 징조들이 있어서 모두 측천무후의 실정으로 볼수는 없다는게 중론임.
내정이야 7년 수렴청정 짬밥으로 무난하게 잘 해나갔는데 하필 가르친링이 준동하는 바람에 거란애들을 제대로 때려잡지를 못했지. 묵철이 이진충 박살내고 북방 휩쓸 때 측천무후가 보낸 안도매가 군 몰고 오니까 바로 튀었던 거 보면 토번 쉑들 때문에 북방 토벌이 제대로 안된 거 아닌가 싶음
엇갈린다기 보단 최근 트랜드 생각하면 상당히 호의적임
측천무후가 행한 악행들-자녀 살해, 혹리를 이용한 숙청-도 대체로 어쩔 수 없는 거였단 식으로 덮고 가는 식이라고 할 수 있음
외정에서 대실패는 인정하고 넘어가도 내치에선 큰 공을 세웠다 이런 식으로 긍정적으로 인식함
최근 대중적인 경향은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측천무후 강의가 가장 잘 보여주는 거 같네
어떻게 보면 선덕여왕 보는 시각이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거 같음
무후에 대한 현 학계 시각은 악녀로 보는 전통적 시각에서 탈피하기는 하는데 고종 시대를 그녀한테 예속해서 보느냐로 차이가 있다고 봄
고종 시대도 그녀의 시대로 놓고 보거나 고종 때 업적도 그녀의 공적으로 보기도 하는 것이 대체적 인 듯
다만 최근 고종에 대한 정치적 위상이나 역할에 대해서 부각해 보는 시각이 없지는 않음
그리고 외치는 종국에 실패했어도 내치에는 성공해서 현종시대 개원 전성기 초석을 다졌다고 보는 시각도 나름 통설인 듯
측천무후는 물론 관롱집단 숙청 등 내정에 있어서는 큰 공을 세운 건 사실임. 하지만 다른 숙청은 둘째치고 자기 아들이나 손자손녀에게까지 거슬리는 간언을 했다고 폐서인/유배 정도도 아니고 아예 죽여 버린 건 여제 이전에 어머니/할머니로서 지나치게 잔혹했음. 솔직히 말해서 측천은 그나마 자기 장남 제외하고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는지도 의문임. 조선 시대 시각이기는 하지만 성종이 폐비 윤씨 사건 때 여후와 마찬가지로 악녀로 언급한 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