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절검록 비주얼 노블 버전




1-1

설자




끝없는 어둠 속, 죽었던 선인의 의식을 되찾았다.

처음에는, 마치 이 세계에서 처음 탄생한 것처럼, 그저 태허 속의 작은 점이었다.

[그것]의 권능은 극히 한정되어, 감각에서 오는 신호를 받거나, 신경에 명령을 전달하지 못했다.

혼란 속에서, 그저 옛 본능을 따르는 의식만이, 맹목적이면서도 확고하게, 뻗어나갔다.

아직 자신의 죽음을 발견하지 못했다.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는 걸 거부했다ㅡ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선인은 분명 죽었다.

그녀의 오른발목은 부러져 있다.

그녀의 양손 힘줄은 나가있다.

그녀의 내장은 전부 파열되었다.

상처가 매우 심한 심장, 열 군데가 넘게 파열되었다.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상처는 바로 머리였다.


검상이었다.


검이 그녀의 이마를 관통해, 뇌를 파괴하고 두개골을 뚫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 중 하나만으로도 치명적일 것이다.

하지만 "선인"은 평범하지 않았다.

선인은 불사, 불멸이다.

몸은 천년이 지나도 죽지 않는다.

혼은 만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쇠망의 법칙을 완벽히 뒤엎은,

신주의 유일한 선인.

이 고요한 석실에 있는 유해가, 바로 그 존재였다.


그리고,


하나의 신경에서부터 시작하여,

선인의 뇌와 육체가 점차 복구되고 재생하기 시작했다.

주위의 모든 기를 흡수하여,

찢어진 피부를 메우고,

부러진 골격을 연결하고,

파괴된 근육을 붙이고,

손상된 장기를 복구한다...

점차, 선인의 [의식]이 지각을 얻었다.





그녀는 석실의 창에서 빛줄기가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들어오는 걸 보았다.

그녀는 석실에 퍼진 개미 시체와 시든 식물의 썩은 내를 맡았다.

그녀는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눈송이를 안는 가지들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아픔, 슬픔, 시려움, 저림, 더부룩함, 가려움... 을 신체 곳곳에서 느꼈다.

일천의 고난, 일백의 고통이 몸에 남아, 끝없는 고문인듯했다.

...끝없는 회복, 끝없는 고통.

선인은 묵묵부답이었다.


'난 누군가?'


머릿속은 아직도 혼란하여, 기억나는 것도 있지만, 잊은 것이 더 많았다.


'여기는?'


기억에 남은 문자들로는,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왜?'


생각을 하자, 사라졌던 감정이 가슴속에서 격동했다.


일곱...

그녀와 가장 가까웠던 일곱 사람.

그녀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했던 일곱 자루의 검.

일곱 사람은 모략으로, 그녀를 이곳에 빠트렸다.

일곱 자루의 검은 끌어내려, 그녀를 죽였다.


'...왜?'


흉포한 감정이 멈추지 않았다,

증오,

의혹,

원망,

분노,

그리고 슬픔이.


'...어째서?'


답은 없었다, 오직 답을 얻고자 하는 의지만 있을 뿐.

...선인은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긴 세월을 지켜봐왔고, 시간은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몸이 회복되기 전까지, 계속 기다려왔다.

그녀는 일곱 사람을 찾아가, 왜 자신을 죽였는가라고 묻고 싶었다.

강렬한 충동이 흐릿한 의식에 각인되었고,

재촉하고, 일깨웠고, 변화시킨다,

기다림은 습관이 되고, 시련은 천성이 되었다.

그리고...


고통


...끝없는 회복, 끝없는 고통.

선인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인내해왔다,

그녀는 오랜 시간 인내할 수 있다.




1-2

역참



이곳은 그저 사막 속 작은 역참.

지금부터 1400년 전, 유랑하던 투이카인이 샘물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들은 신의 보호에 감사하며, 맑은 물을 마셨지만, 머무르지는 않았다.

삼백 년이 흐른 후, 색국상단의 긴 행렬이 이곳을 지나갔다.

상단에는 보석과 비단이 가득했고, 외교사절이 한 명 함께했다.

이 자는 서역으로 출사하여 교류를 한다는 중책을 어깨에 메고 있었기에, 그 가치는 상단의 다른 모든 것들을 넘었다.

상인들은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떠났다.

그들은 막북을 벗어나지 못했고, 그 누구도 그들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칠백사십 년 전, 반유족의 유목민이 이 샘물 근처에 야영지를 세웠다.

족장은 그녀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샘물로 인해, 반유인은 다시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일백 년 후, 흉인들이 북쪽에서 왔다. 그들은 반유의 촌락을 몰아내고, 노인과 남자를 죽인 후, 여자와 아이들을 끌고, 머나먼 서역을 향했다.

...흉인들이 떠난 샘물은, 다시 세상에서 잊혀졌다.


유유세월, 백운창구.


문명이 흥하고, 쇠망한다; 사람은 오고 가며, 역사의 긴 강 너머로 사라진다.

올려다보니, 타오르는 태양이 하늘 높이 걸려있고, 빛이 대지를 빛내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글거리는 열기 속에서, 파도와 같은 모래 언덕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후우."


샘물의 거주민이, 옛벽의 그늘 아래서 계속 한숨을 쉬었다.

이 찌는듯한 모래 바다, 이미 삼 개월 동안 보아온 광경.


"후우..."


남자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사막의 황량함과 열기가 그를 더욱 불안하게 하였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시야의 모든 것이 똑같았다:

태양, 하늘, 모래... 모두가 정체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대기마저 굳어버려, 그의 주변에는 바람 한 점 없었다.


"라오롱... 그쪽은 괜찮나?"


 "......"


저 멀리서, 남자의 동료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없다는 의미였다.

상대방도 남자가 던진 말이 그저 무료함을 풀기 위해서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모래의 찜통 속에서, 대화는 일종의 사치였다.

입을 연다는 건 활력이, 수분이 흩어지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금사단]의 보초들은 힘을 쓰고 싶지 않았다.


"알아, 안다고...XX, 나도 알아."


남자는 거절당하더니, 혀로 자신의 입술을 훑었다.

그는 아직 신참이었고,[금사단]에 들어온 지 수개월, 아직 모든 규범을 숙지하지 못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물의 귀중함을 깨닫고, 말을 아꼈을 것이며, 오래된 벽에 움직이지 않고 기대어 단주가 올 때까지 그림자 속에서 기다렸을 것이다.


"XX, 아주 큰 장사를 하는구만."


남자가 욕설을 하며, 불만을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크지 않았기에, 동료가 들었더라도 무엇을 저주하는지 모를 것이다.

...사실 그는 단주가 신입이라고 그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저 주둔지의 방침상, 공교롭게도 지금의 책무를 지게 된 것이다.

금사단의 규범에선 수비와 공격의 공로가 동등하기에, 그가 받을 보상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ㅡ 그는 무법자였다. 그의 양손은 피비린내로 물들었고, 발밑에는 무수한 시체들이 있었었다.

약탈, 강도, 능욕, 살인이 바로 그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칼날에 튀는 피가 바로 그가 얻고 싶은 보상이었다.

남자가 믿는 자신의 가치는 바로 : 전투 와 살육이었다.

만약 [악]의 정도를 가린다면, 이 남자는 진정으로 흉악한 무리일 것이다.

그는 폭력을 수치스럽게 여기기보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렇기에, 길게 계획된 [장사]에 제외된 그의 마음속에는 굴욕과 가까운 분노가 나타났다.


벌컥─


기분이 좋지 않은 남자가 물병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어─"




남자가 굳었다.

그의 눈앞에, 한 소녀가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남자에게 노안은 없다, 그리고 보이는 것도 막북에서 흔히 보는 "신기루"가 아니다.

저 소녀... 먼 사막에서 천천히 오고 있는 저 소녀는 의심할 바 없이, 진짜였다..


"라, 라오롱─!"


목소리가 입을 나와, 빠르게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무의식적으로, 남자는 금사단의 금기를 어셨다.

경황망조, 가 첫 번째,

경거망동, 이 두 번째,

만약 금사단의 고참이었다면, 절대 이렇게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의심이 빠르게 남자의 마음을 휘감았다.

막북을 휘젓는 금사단은, 스스로 들어오는 여객을 맞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 애는 대체 뭐지?'

'미쳤나? 여긴 금사단의 구역인데!'

'감히 누가 우리를 귀찮게 하는 거야? 감히 누가 금사단을 건드리는 거지?'

...의심이 멈추지 않고 계속 머릿속을 스쳐가며, 마침내 하나의 의혹이 되었다.


"저 애는... 뭐지?"



1-3

소녀




남자는 예상하지 못했다: 비록 방문객의 나이는 어리지만, 절대 녹록지 않다는 것을.

소녀의 이름은 이소상.

그녀는 천중[억검산장]의 젊은 당주, 정위진인의 일곱 번째 제자 [염향검] 진소의의 독녀.

정위진인, 염향검, 억검산장.

신주 무림에서, 이 중 아무 이름이나 꺼내도 모두에게 존경받기 족하다.

하지만 모래로 가득한 사막에서, 그런 이름들은 그저 의미 없는 문자의 나열일 뿐.

사막에는 명성도, 허명도 없다; 그저 약육강식과, 사생결단의 황야.

강자는 살아남고, 약자는 모래바람의 묻혀 뼈가 된다.

그렇기에ㅡ 이소상은 생각했다.

그렇기에 어머니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린 나이의 자신을 사막으로 보낸 거라고.




이소상이 한 살일 적, 언변에 소질이 없자, 양친은 그녀에게 무예를 가르쳤다.

어머니는 그녀를 끔찍이 사랑해, 조금도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였지만;

검을 수련할 때면,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엄격해졌다.

소상은 적지 않은 고생을 하였고, 허리와 무릎이 아프거나, 뼈가 곱는것은 일상이 되었으며, 밤마다 고통에 잠에 들지 못했다.

그녀는 아버지를 찾아 울며 하소연을 하였고, 그 결과로 더욱 가혹한 훈련을 받게 되었다─


아버지가 딸의 수련량이 과하다는 말을 꺼내자, 진소의는 그를 째려보았다.

긍지 있는 억검산장의 당주, [천공자] 이신은 그 눈빛에 말문이 막혀버리더니, 멋쩍게 떠나버렸다.

이후, 소상은 검 수련에 배는 노력하여, 가문에 전해지는 열두 가지 [억심검법]을 통달하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볼 때면,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소상은 어느 곳에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노력이 아직 부족한 것인가?

왜 자신은 항상 어머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가?

어느 날, 그녀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제가 보기에, 문제점은 이가의 무공에서 나오는듯합니다."

어머니는 냉랭했다.


"비연공과 수연공 십삼식 천공의 절기가, 사부의 [태허검기]에 비할만합니까? 당신의 허튼소리를 듣고, 억심검법을 개조할 수는 없습니다."


"......"


아버지는 작게 말하여, 소상이 들을 수 없었지만, 어머니의 냉소는 들을 수 있었다.


"이제는 절 탓하시는군요. 제가 노력한 십년의 세월을 헛되이 만들고 말입니다."

"제가 당신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소상에게도 신경 쓰지 않으셨군요. 소상은 당신과 다릅니다, 검을 익히는 것에 소질이 있고,  다섯째 사매에 미치진 못하더라도, 저보다는 뛰어납니다."


창 밖에서 듣고 있는 소상은, 어머니의 말에서 끝없는 쓸쓸함을 보았다.


"저의 검심은 무너졌고, 당신의 검심은 연마할 수 없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명일 저는 막북의 다섯째 사매에게 가, 소상을 거두어 달라 할 것입니다."

"다섯째 사매는 제게 인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염치없지만, 말을 꺼내면, 거절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버지는 놀라더니, 이내 강하게 반대하였다. 이소상도ㅡ 마음속에서, 놀라움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가 말했던 [막북], [다섯째 사매] 같은 신기한 것들을 함께하고 싶었다.


"─태허검기."

이 짧은 네 글자에 마력이라도 있는지, 말을 꺼내자 모든 잡음이 사라져, 실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사부가 돌아가신 후, 태허 제5온을 숙달한 자는 오직 능상뿐입니다."

"소상이 검을 배워야 한다면, 가장 뛰어난 검법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는 말씀하신 걸 실천했다.

이소상의 다섯 살 생일날, 양친은 그녀에게 훌륭한 선물을 주었다.

억검산장, 천중, 한번 도 떠나보지 않았던 자신의 [집]을 멀리하고,

이소상은 막북으로 가, 꼬박 십 년간 [최고의 검법]을 배웠다.

십 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집에 대한 그리움이 이미 종잇장처럼 얇아졌고, 오직 어머니가 이별할 때 해준 말만이 가슴속에 새겨졌다.


'검법에는 소득이 있었느냐?'

'무예는 완성하였느냐?'


지금의 자신은, 어머니의 기대를 만족할까?

...소상은 몰랐기에, 증명이 필요했다.

그리고 증명의 방식은, 바로 [시검].

그렇기에, 도검을 쥔 적들이 포위하며 나가올 때,

이소상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오른 것이다.

더 말할 필요가 있으랴, 이 미소가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소녀의 첫[시검]이, 바로 오늘이다!




'하나,'

소녀가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둘,'

두 거한이 좌측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일찍이 소녀를 발견하고, 경고를 했던 남자다.

그는 검을 손에 쥐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마치 함정에 빠진 사냥감을 보는 사냥꾼처럼, 죽음을 알리는 미소였다.

하지만, 소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옆으로 시야를 옮겼다.


'셋,'

우측 뒤에 있는 거한은 소녀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경고를 들은 후에 왔다.


'넷,'

소녀와 가장 가까운 도적과는 고작 다섯 보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손에 큰 칼을 든, 근육질의 장정이다. 네 명 중, 그는 가장 연장자였고, 실력도 가장 뛰어났다.


...소녀는 오직 사부만을 상대해 왔기에, 실전 경험이 없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자신이 무공의 고수라 해도,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상황을 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홀로 잘 훈련된 도적 네 명을 상대하는 건, 목을 내미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안타깝게도, 소녀는 이런 [상식]을 알지 못했고, 그녀의 그 무정한 사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했다.

─도적들이 그녀와 다섯걸음 거리에 들어왔다.

소녀가 천 가방을 털더니, 고대검 [ 헌원 ]을 거꾸로 쥐었다.

검을 쥔 손의 느낌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이후에 일어날 일은,


대략 이럴 것이다:

소녀가 날아갈 듯한 몸놀림으로 뛰어오른다.

착지할 때, 검은 이미 거한의 가슴에 꽂혀있다.

검을 뽑고, 몸을 돌린다─ 빠른 속도였기에, 피가 흐르지도 않는다.

검을 꺼내면서 흉악한 웃음을 짓던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그렇게, 네 명의 적이 이제는 두 명 밖에 남지 않았다─ 간단하다.

...소녀는 찰나에 이 각본을 구상하였다.

그녀의 무공과, 고대검 헌원이라면─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건, 어려운게 아니었다.


ㅡ도적들이 네걸음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소녀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할 가치가 없었기에.

고대검 헌원은─ 이런 자들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눈 앞의 네명은, 이 보검의 진면목을 볼 가치가 없다.




이 검은 천선과 인간이 함께하던 시대부터 이어진, 천만 년의 시대를 겪은 검.

이것의 주인은 무림전설, 유일한 진선, 신주의 수호자 [정위진인].

이십구 년 전, 정위진인은 동해에서 한 고아 소녀를 받아들여, 검을 가르쳤다.

태허 제칠검 진소의와 [묵염향]이란 이름이, 강호를 뒤흔들었다.

정위진인이 우화등선한 후, 진소의는 은거하여 삼십 년이 흐르니, 명성이 예전만 못하였다.

그녀와 [천공자]이신과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만이, 미담으로 젼해졌을 뿐이다.

십 년 전, 일찍이 강호를 떠났던 어머니는 [묵염향]을 어린 소상에게 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주어진 것은, 태허오온에 더욱 정진하여, [천하제일]을 이루라는 기대였다.

그것은 바로 천하무쌍의 신병, 그 칼끝은 강자만을 향한다.

어찌 이 눈앞에 있는 녹록한 무리들의 피로, 이 검의 위광을 더럽히겠는가?


─도적들이 세 걸음 안으로 들어왔다.

작은 긍지와 만족감이 소녀의 가슴을 채웠다.

하, 이런 것들로는─


─두 걸음.

─[시검]할 자격도 없다!


한 걸음!

무인에게 있어: 한 걸음은 이미 치명적인 거리다.

거한이 철검을 휘둘러, 소녀의 작은 머리를 자르려 했으나, 푸른 그림자만이 보였다.

...소녀가 사라졌다.



"─뭐야?!"


그는 본능적으로 밑을 내려다보았고,

그 순간, 종아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거한은 분명 땅을 보려 했지만, 눈에 들어온 것은 태양이었다.


'어떻게...'


그는 자신이 공중에서 차이면서, 관자놀이에 차가운 게 닿았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태양이 어둠에 잠겼다.

몸이 아직 허공에 있을 때, 거한은 이미 기절한 상태였다.

장검이 번쩍이고, 장정을 힘껏 차올린 뒤, 손가락으로 혼절시키는 데에, 소녀는 눈 깜짝할 시간만을 들였다.


그녀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된 상태였다.

소녀의 머릿속에는 눈앞의 적을 제거한다는 것을 제외한 생각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태허검기 제5온 [심온].

기초적인 온, 그리고 가장 어려운 온.

[검심-지수]!


"XX!"

남자는 라오롱의 몸에 걸려 늦어버렸고, 운 좋게도 소녀와 떨어질 수 있었다.

나머지 세명은 합류하여, 빠르게 보조를 맞췄다.


"이 여자는 수련가다!"


양쪽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련한 금사단은 이를 개의치 않았다,

그들 눈앞에 있는 소녀는,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모래 위에 엎어져 있던 소녀가 갑자기 튀어 오르더니, 오른발로 모래를 차 모래가 폭포처럼 솟구쳤다.

모래를 이용해 적의 시야를 빼앗고, 시간적 우세를 취한 것이다.

전장의 모든 요소를 이용하여, 승리의 가능성을 최대로 높였다.


이것이 소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적이 예상했던 바.

이 사막에서 다년간 일해왔기에, 도적들은 이런 유형에 익숙했다.

오히려 이들이 이런 방법에 가장 익숙하다고 해야 할까.

소녀가 모래를 일으킨 것에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들이 매번 상대에게 해오던 일이었으니까.

이들이 이걸로 인해 당황해할 줄 알았다면, 이 금사단을 얕본 처사였다.




─막북의 도적단 [ 금사단 ] , 신주와 은유, 백회의 경계에서 육십 년을 도망 다녔다.

이들은 강도질로 살아갔다: 각국의 상단을 강탈해, 부귀를 빼았고, 남자와 노인은 죽이고 여자와 아이는 노비로 팔았다.

하지만 좀도둑과 비교하면, 금사단은 좀더 규율이 있었다.

금사단의 우두머리 "노응"은 군인 출신이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부당한 죄로 인해, 삼족이 휘말리고 말았다.

"노응"은 분노 아래 산적이 되었고, 막북에 와, 금사단의 주인이 되었다.

단 하루 만에, 칼 한 자루와 머리만으로,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이전 우두머리의 이름은, 이제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노응"을 두려워한 것은, 바로 그의 무정함 때문이었고;

"노응"을 섬긴 것은, 바로 그가 패배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 남자는, 금사단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이전의 좀도둑들이 작지만 기강 있는 세력으로 변하더니, 이윽고 막북 변경지대의 맹주가 되어버렸다.

이들은 조석으로 무술을 연마하고, 단련하였다.

무술을 닦으면, 다시 훈련을 하였다.

"노응"은 멈추지 않고 진형, 변화, 합류, 그리고 각종 수신호와 명령을 가르쳤다.

그가 원했던 것은 평범한 도적이 아닌, 군대였다.


그렇기에, 세명은 이 이상한 소녀를 앞에 두고도, 기죽지 않았다.


"적은 적이다, 남자건 여자건, 너희가 죽여야 한다. 네 인생의 마지막 적이란 각오로 모든 방법을 사용해 상대를 죽여라."


"노응"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인지, 세명은 동료가 당하는 걸 보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전장의 동료를 지키되, 쓰러진 자는 전우가 아닌 짐이다. 그들을 서있는 자와 동등히 대하지 말라. 포기할 줄 아는 병사만이 오래 살아남는다."


"노응"이 거듭 상기시켰다.

그래서인지, 세명은 소녀가 모래를 차올리는 것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내 작전만 따르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노응"의 확신.

이들은 "노응"을 신뢰하고 있다.

애초에, 이 오 년간, "노응"의 지시는 빗나간 적이 한차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단 한차례도.


세명이 빠르게 눈을 감았다.

시야를 잃는 것보다, 눈에 들어간 모래로 인해 고통을 겪는 것이 더 위험했기 때문이다.

눈을 감는 순간, 세명은 서로의 위치와 적의 위치를 기억했다.

그들이 내딛는 발과 검의 위치는, 철저하게 [안인진]의 진법을 따르고 있었다.

중앙의 도적이 칼을 들어, 위에서부터 크게 내려친다.

좌측의 도적은 한걸음 나가, 수평을 그리며 목표를 노렸다.

두 검의 의도는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닌, 적을 유인하는 것.




"노응"은 적을 정해진 경로로 회피를 유도하기 위해, 세심하게 진형과 검술을 구상하였다.

만약 목표가 이 두 검을 피했다면, 반드시 그가 예상했던 시간에 예상했던 위치에 있을 것이다.

그때가 오면 우측의 칼잡이가 필살의 일격을 날리면 된다.

이들은 적이 보이지 않아도, 이 삼인진법으로 적을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진법은 틀리지 않았다, 그저 금사단은 소녀를 얕보았을 뿐.

그녀의 속도를 얕보았을 뿐.


모래가 날아오를 때, 소녀는 이미 앞으로 뛰어간 상태였다.

금사단이 "노응"의 진법을 믿는 것처럼, 소녀도 자신의 무공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다.

맑은 검심의 그녀는, 거한의 느린 칼질을 피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다.

중앙의 칼잡이가 칼을 들어 올릴 때, 소녀는 이미 그의 품 안에 있었다.

그가 반응할 시간도 없이, 턱에 충격이 전해졌다,

충격은 곧바로 두개골의 뇌까지 전해져, 격렬한 충격과 함께 혼절하였다.

그로 인해, 칼잡이는 자신의 무릎에 가해진 발차기를 느끼지 못하고,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소녀는 발차기의 여세를 몰아 마치 [ 제비가 돌아오듯이 ], 순식간에 왼쪽 장정의 뒤로 돌아갔다.

한 손으로는 장정의 뒷덜미를 때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검을 꺼내, 마지막 적에게 투척하였다.

찰나의 시간, 그녀는 힘과 속도를 완벽히 계산하여 신속히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태허오온의 [검심],

바로 뇌의 잠재능력을 극대화 하는 심법이다.


칼등이 정확히 검객의 복부에 명중했고, 갑작스러운 고통에 그는 입을 열지도 못하고, 끄윽거리는 소리만 내었다.

하늘이 팽 돌고, 몸에 균형이 잡히질 않았다.

무언가 참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것이 그의 오른쪽 뺨에 있었다.

남자가 눈을 뜨고, 그곳에 있는 묵색의 모래를 보았다.

무언가 그의 뺨을 누르고 있는 게 아니라, 그의 얼굴이 땅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분들은 좀 아니네요."


소녀는 남자의 등에 앉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어째서 네 명뿐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습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 청초한, 듣기 좋고 천진난만한 소녀의 목소리였다.


"솔직한 말을 듣고 싶습니다."





1-4

매복


한편, 백리 밖에서는...


남자가 금빛 모래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고 있다.

굵은 땀방울이 이마, 콧등, 목, 겨드랑이 와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며, 몸을 가렵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의복이 사이에 있긴 하지만, 뜨거운 모래는 마치 피부를 태우는듯했다.

남자는 정신을 집중해, 혼절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때서야, 그는 "노응"이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자신들 같은 사람이 관병에 잡힌다면, 가슴에 달궈진 인두로 각인이 새겨진다고.

인두는 모래보다 단단하고, 태양보다 뜨거워 피부에 닿았다 떨어지면 피부 겁질이 벗겨진다고 했다.

그 기분은, "노응"왈: 지옥 같다고 한다.

금사단의 형제들은 평소에도 지옥이란 말을 버릇처럼 달고 살았는데, 분명 그들은 장차 그곳에 갈 예정이니 필수불가결이었다.

지옥은 끔직하고, 지루하다; 금도 없고, 술도 없고, 미인도 없다.

무언가 이름을 댈만한 좋은 것은, 그곳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만 장사에 성공하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을수 있다.

이번 장사는 이전보다 크다고, "노응"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받았다.

멀리서 오는 상단은 부유한 귀족의 자제를 데려왔고, 마차는 금은보화로 가득했다.

만약 정보가 틀리지 않을 때, 대략 2각 정도만 있으면, 전부 우리 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곁눈질로 홀로 서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만이 가진 특권이었다.

이 자는 사십 세는 족히 넘어 보였고, 희끗한 머리, 얼굴의 주름과 흉터에는 증오가 쓰여있었다.

사실 이자의 나이는 조금 더 어리지만, 그래도 불혹에 가까웠다. 얼굴 전체를 보았을 때,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매의 눈빛이었다.

마치 사냥감을 주시하듯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사냥감을 지켜보았고, 매복한 금사단은 그의 발톱이었다.




"노응"ㅡ 바로 이 사람의 별칭, 존경을 담은 유일한 이름.

"노응"의 명령이라면, 끓어오르는 모래에 엎드리라고 해도, 금사단은 불복하지 않을 것이다.

질문도, 맹세도 필요 없다,

그저 "노응"의 본부에, 잘 따르기만 하면─

─"승리"한다.

갑자기, 미소가 매의 얼굴에 떠올랐고,

그의 눈빛도 변했다.

그의 두 눈은 더 이상 보고 있지 않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바로 사냥의 신호다.

"노응"이 손을 들어, 뒤로 한 걸음, 다시 한걸음 물러났다.

상단 호위의 시야에서 물러나며, 손으로 출격의 신호를 보냈다.

남자는 눈을 떼고, 숨을 들이마셨다. 뜨거운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지만, 그는 참을 수 있었다.

저 멀리, 먼지가 일었다.




"온다."


누군가 낮게 말했다.

오랫동안 잠복한 남자들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가장 어려운 단계를 넘긴 것이다.


이제는, 승리뿐이다. 그리고 이 승리는...

그들이 오래 기다려온 것이다.


"......"




멀지 않은 곳의 어느 마차, 한 관이 묵묵히 서있다.

약 한 사람분의 높이, 목재는 백색 염료로 화려하게 칠해져 있었고, 그 위에는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밀봉된듯했으며, 주위의 작은 틈조차 찾을 수 없었다.

흑색의 가죽끈들이 관을 감싸며, 단단히 묶고 있었다.

마치 이 관의 주인이 이 안의 것을 외부와 단절시키려고 노력한 것처럼...

그 주인은, 바로 앞에 있었다.

금발녹안의 남자가 홀로 관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긴 손가락은 관의 표면을 지나가고 있다.

그의 동작은 애무를 하는 듯이 부드러웠지만, 동시에 전신의 힘을 다 쓰고 있는듯했다.


"............"


이 사람이 직접 관을 만들어, 관속의 물체와 세상을 단절시켰다.

바로 세상의 모든 법칙에 맞서, 그의 사랑을 현계로 되돌리기 위해.

염원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그는 자기 자신을 포기할 수 없다.


그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 비명, 곡소리;

낙타의 울부짖음, 마차의 전복, 도검이 내는 소리 속에서─

─남자는 움직이지 않고,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마치 관을 제외한 모든 것이, 그와는 관련 없는듯했다.

그와는 상관없는듯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