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절검록 비주얼 노블 버전




1-11

결정



이소상이 몸을 낮추며 왼쪽 무릎을 땅에 닿을 정도로 굽혔고, 엄지, 약지, 새끼손가락이 땅에 살짝 닿았다.

만약 누군가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면, 가소롭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소상의 신법은 쾌속, 범인의 동체시력으로는 이 이상한 손동작을 포착할 수 없었다.

태허검기는 아니었지만, 이씨 가문에 내려오는 경신무공:

[비연공](飛燕功).


푸른 일섬과 함께, 이소상이 "노응"의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녀가 먼저 수도(手刀)를 날렸다.

오른손으로 "노응"의 손목을 쳐, [헌원]을 떨어트리고,

이어서 번개처럼 손을 뒤집어 남자의 명치를 가격해, 충격을 주었다.

그와 동시에, 왼손으로 고대검을 집어 들었다.

일종의 익숙한 안도감이 마음속에 흐르는 게 느껴졌다.

다시 검을 쥐니, 기분이 좋았다.

이소상이 보검을 흔들며, "노응"을 향해 싱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녀의 말투는 사랑스러웠지만, "노응"에게는 엄청난 모욕으로 들렸다.

막북을 여러 해 다녔지만, 이렇게 좌절한 적은 없었다.

"노응"의 살의, 동시에 강렬한 복수심도 끓어올랐다.

그냥 이소상을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더없이 잔혹하게 죽여야 한다.


자세를 계속 유지하면서,

금사단의 두목은 정신을 차리고,

눈앞의 소녀를 진정한 [강적]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이건 전쟁이다.

비무도, 결투도 아닌, 전쟁이다.

규모도 작고, 목적도 단순하지만, 전쟁이다.

그러니,

이곳은 "노응"에게 가장 익숙한 전장,

지금은 "노응"에게 가장 익숙한 전시였다.

그 짧은 몆초 안에, 마음속으로 우세와 열세, 변수를 계산해냈다.



열세는, 바로 [실력의 차이]다.

"노응"은 수치심 없이, 그 사실을 인정했다:

눈앞에 있는 작은 소녀는, 내외를 막론하고 모두 그보다 아득히 위에 있었다.

심지어 그가 알고 있는 그 어떤 강호인들보다도 강했다.

천지와 같은 거대한 실력차가, 처음부터 이 비무의 결과를 알려주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비무였다면 말이다.


변수는, 바로 [미지의 일]이다.

방금 양손에 내력을 쓰지 않았는데, [절기산](截氣散)의 효과가 아직 있는 건가?

두 사람이 지하감옥에서 도망쳤는데, [나찰인]은 이 근처에 있을까?

이 두 가지 일도 종극의 문제를 좌우할 수 있다.

그것들을 최악의 경우로 생각한다면, "노응"에게는 일말의 승산도 없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불행한 도박이었다면 말이다.

...형세가 열악하여, 승기가 0에 가까웠다.

하지만 "노응"은 여전히 승리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우세]를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우세는 세 가지.


"하하하하하―"

남자가 호쾌하게 웃었다,


"대단하군! 소저, 좋은 무공이다!"

"널 하찮게 봤었다; 나이나 더 먹으라고 말이야... 그런데 내 손의 물것을 빼앗다니, 하하, 십만 나찰귀들도 하지 못했던 것을."


"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본디 제 것이니까요. 결코 빼앗은 게 아닙니다, 주인에게 되돌아간 것뿐입니다."


"흐흐흐..."

남자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럼 물건이 주인에게 돌아갔으니, 떠날 텐가?"



"아직 당신을 이기지 못해, 떠날 수 없습니다."


"......"

"그런가... 날 죽이러 온 것이군."


"아닙니다, 그럴 생각... 죽일 생각은 결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따귀 두 대는, 광명정대(光明正大)하게 돌려드리겠습니다."


"허."

"노응"이 씨익 웃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첫 번째 우세: [경험]이다.

그와 다른 강호에 비하면, 이소상의 사회경험은 거의 무(無)에 가까웠다.

그녀는 "노응"의 말속에 묻힌 단서를 찾아내지 못하고,

무지하게 함정에 빠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우세: [성격]이다.

"노응"은 패배를 맛봤다. 승리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이소상은 정직하고 완고한 멍청이,

공평과 정의가 그녀의 마음속에서, 아주 높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가지 우세를 활용하여,

세 번째 우세를 얻어야 한다.

변수를 하나 더 만든다.

"노응"은 [승리]의 저울이 자신에게 기울 것이라 믿고 있었다.


"광명정대라... 좋다, 나도 동의한다. 어떤가, 소녀, 내기를 하나 하는 것은."


"도박은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당신의 말, 듣겠습니다."


"하하,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광명정대하게 겨루도록 하지. 날붙이를 쓰지 않고, 주먹으로만."

"내가 지면, 이 머리는 네 것이요; 네가 지면, 보검은 남을 것이다."


"그건 할 수 없습니다."

소녀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머님께 검을 제 몸에서 떨어트리지 않겠다 약속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지면, 제 머리는 당신 것입니다. 공평하죠?"


"......"

"노응"이 멍해지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공평해! 하하하하하, 아주 공평해, 정말 공평을 좋아하는군!"


"그럼... 결정한 겁니다?"


"결정이군."


"예."

이소상이 손을 흩뿌리자, 헌원검이 땅에 박혀, 칼자루만이 오랜 청석위에 우뚝 섰다.


"먼저 가도 되겠습니까? 제 나이가 어리니까요."

말하는 사이, 소상은 검심(劍心)을 운용해, 마음이 지수(止水)와 같았다.

청풍이 스치고, 은월이 높이 걸렸다.

달빛 아래 비치는 그림자 한 겹, 흔들리는 등잔불에 또 한겹의 그림자가 겹쳤다.

그림자가 왜곡되어 각종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였다.

하지만 그림자의 주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1-12

호후경비련



소녀가 왼손으로는 검을, 오른손으로는 주먹을 쥐었다; 이것이 바로 태허계검형(太虛啓劍)의 착수식 [잔월](殘月).

그녀의 첫수는, 이가(李家) [수연십삼식](垂燕)의 제6식: 우연쌍귀(雨㷼雙歸).

자부심으로 가득한 소녀는 인생의 첫 정식 비무를 즐기고 있었다.

춤을 추는 등불이 밤중의 소녀를 비추며, 그녀의 신형을 더욱 커보이게 했다.



그리고 그에 맞서는 남자는, 허리, 팔과 다리를 살짝 굽혔다.

하동 낙씨의 절학 호후진구소(虎吼震九霄).

만약 무림인이 여기 있었다면, 대체 금사단의 주인이 어떻게 하동문파의 무공을 알고 있냐며 기이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호의 경험이 없는 소녀는 그런걸 알지 못했다.

남자와 소녀는 서로 마주 보고, 움직이지 않고 서로를 탐색하고 있다.


침묵의 달빛이, 이 작은 정원을 덮고 있다.

동방 사람들은 왜 결투 전에 저런 침묵을 가지는 걸까?


"......"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의 허점을 찾고 있었지만,

제3자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다.


"신주인의 사고방식이란..."

이 사람은 손에서 작은 십자가를 가지고 놀고 있다가,


"확실히 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테니."

십자가를 공중에 던지고 안개처럼 녹는 것을 지켜보았다.



—동시에, 소녀가 갑자기 공격했다.

오랜 대치 끝에, "노응"이 마침내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일순간: 그의 호흡이 짧게 멈추었을 때,

그 순간, 운용하던 진기가 정체되어, 범의 형세가 사라졌다.


'—망할!'


"......!"

이소상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으로 뛰어들었다—!

—유려한 주먹은 바람과 같고, 촌경을 펼치는 손은 번개와 같으니!


짝!

따귀 소리가 났다.


"노응"이 비틀거리며 물러났고, 입가에는 선혈이 흘렀다.

그가 입에서 쓴 액체와 섞인 이빨을 청석 바닥에 뱉었다.


"이게 첫 번째 따귀입니다~"

소녀가 히죽 웃었다:


"두 번째가 갈 테니, 조심하시길."


"......"

"노응"이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기를 잘못 다루어 짧은 순간 기가 소실되었는데, 그새 소녀에게 손바닥으로 맞은 것이다.


비록 큰 피해는 아니었지만, 이 실수로 그의 체면이 구겨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소상은 역시 악랄한 수는 쓰지 않았는데,

[변수]에 대한 확신이 더해지면서, 굴욕감이 배가 되었다.

아주 오랬동안 [호후공]을 사용하지 않다가 다시 사용하는 거니, 서툴 수밖에 없었다.


적은 결코 방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기에, 같은 실수를 다시 해서는 안됐다.


"다시!"

이소상이 거듭 [경연불염](驚㷼拂簾)을 사용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공중에서, 두 사람은 세합을 나눴다.

실력이 대등해, 그 누구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소녀가 재빨리 착지하여, [계검·잔월]을 다시 보였다.

범이 울자 제비가 날아올랐다.


하동 낙가의 호후진구소는 맹렬하기로 유명했다.

변화무쌍한 수연십삼식과 다른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실력 차이가 월등한 소녀와 "노응"이

비긴다, 이것 자체가 이미 불가사의한 실패였다.


'...어째서?'

"노응"의 노림수가 통했다:


결투가 시작하고, 이소상은 진기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태허계검형에서 집안의 수연십삼식으로 이어간 것이,

이것을 증명해 주었다.



'그 약은 내게 효과가 없을 텐데...'

내공을 논하자면, 자재문의 [태허검기]는 독보적이었다.

신주의 각 파벌마다 각각의 수련법이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은 모두 끊임없이 수련을 하는 것.


진기를 물에 비유하면, 일반적인 내공이란 물을 담는 그릇을 단련해, 그 용량을 끊임없이 늘리는 것이다.

이는 거듭된 훈련이 필요하고, 성장도 극도로 느린 데다가 신체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태허검기]는, 다른 무공과 그 본질이 달랐다.


[검심]은 [잔도](棧道)를 닦지, [그릇]을 단련하지 않는다.


천지만물에서 진기를 얻어, 신체의 내력을 마치 개울처럼 자유로이 흐르게 하는 것이다.

이 색다른 방법은, 태허일맥의 옛스승 정위진인이 창시한 것.

신묘하지만, 그 제한은 크다.

남성은 아무리 태허검기를 수련해도, 중도에 막혀버리고, 발전하기 어렵다; 천부적으로 재질이 뛰어난 소년이 아니라면 이 기공을 연마할 수 없었다.


여자가 태허검기를 수련하면, 사반공배인 경우가 많다;

평범한 재능을 가졌더라도, 배우기만 한다면 걸출한 남성보다 우월했다.

소상의 사부는 역대 가장 검심이 강했던 자로, 내공의 경지만을 논하자면 천하에 비할 자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가르친 소녀 또한, 조예가 남달랐다.

하지만, 지금은 내력이 봉쇄당한 상황—

주먹이 계속해서 소녀를 향했다.

초인적인 반응과 직감에 의지해, 이소상은 피하거나 막아내며, "노응"의 주먹을—풀어갔다.


'이 자의 무공이 약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기는 건 나야.'


그동안 맞붙었던 강도들은 그저 무식하게 칼만 휘두르는 무리들이었지만, "노응"은 그렇지 않았다.

이 사람은 권법 말고도 진기를 사용해 권력을 강화하는 등, 내공에 대한 조예가 남달랐다.

하지만 자신의 진기를 운용하지 못하더라도, 소녀는 여전히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검심에 단련된 육체는 일반 사람들보다 강했고,

검형은 천하에서 가장 심오한 무술이기 때문이다.


[수검·수류](守劍·垂柳)!

이 빗발치는 주먹을, 이소상은 하나의 수검형으로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범의 주먹은 거센 파도처럼 끊임없이 두들겼다.

소녀는 천천히 물러나며, 수도를 사용해 철권을 무형으로 만들었다.


'아니... 이 노응이라는 사람, 안 힘든가?'


"훗."

지치는 것도 잊은 금사단의 주인은,

주먹이 버들처럼 늘어진 소녀의 부드러움에 막히고 있었지만, 잠시도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도도하게 이소상을 향해 주먹을 퍼부었다.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지 못해, 공격이 적중한다면, 자신의 몸이 썩은 나무처럼 부서질 것이다.


'아냐, 수검형에 빈틈은 없어.'


사념이 이소상의 심호(心湖)를 순간적으로 스쳐갔지만, 파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주먹은 대략 파악했으니, 6식 수검으로 충분해. ...그리고 이 사람, 이렇게 기력을 낭비하면 제풀에 꺾이고 말 거야.'


이런 간단한 이치를 "노응"이 모를리 없었다.

그런데 왜 그는 변함없이 맹공을 하고 있는 걸까?


'에이, 조금만 더...'

신체의 내력이 한정되어, 이소상은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

그녀는 기회를 찾고, 빈틈을 기다려야 했다.



1-13

허점



"노응" 또한 그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 빈틈을 드러낼 생각이었다.

빈틈이란, 정말 찾기 쉬운, 자신의 뺨이다.

"노응"은 소녀의 성질을 파악했다,

[따귀]를 돌려주지 못한 이상, 소녀의 목표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적의 의도를 알았다면, 그 의도는 더이상 명문(命門)이 아닌, 생명줄이 된다.

전력을 다하는 대신, "노응"은 어깨 위쪽만 지키면 되었다.

똑같이 생사를 걸고 싸우지만, 그의 압박감은 이소상과 확연히 달랐다.

그는 당연히 [내기]를 따르지 않고, 보검과 이소상의 목숨을 남길 생각이었다.


그러니, 따귀를 한대 더 맞는 게 무슨 대수인가?

첫 시작부터, 이 싸움은 대등한 전투가 아니었다.

"노응"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목적은 상대를 해하는 것이 아닌, 고대검[헌원]이 있는 곳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서로가 수를 나누자, "노응"은 소녀의 어린 나이에 비해 내공이 놀랄 정도로 탄탄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공의 세기, 속도를 제외하더라도, 호후진구소아래 무공을 자유로이 변용하는 것은, 무림에서 명수의 반열에 오를만 했다.

그 한 가지 만으로도, 그는 따라갈 수 없었다.

오래 싸운다면, 필패할 것이 분명했다.

—규칙을 지킨다는 가정하에 말이지만.


"노응"은 규칙을 준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내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닌, 전투의 승리다.

이것이, 바로 그의 세 번째 우세: [목적]이다.


같은[승리]. 하지만 "노응"의 [승리]와 이소상의 [승리]는 사뭇 달랐다.

소녀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비무]의 승리.

"노응"이 생각하는 것은, 바로 [전쟁]의 승리다.

[전쟁의 승리]... 원하는 것을 얻고, 파괴하고 싶은 것을 파괴하는 걸 의미했다.


그래서 이소상은 규칙을 지켰다.

그리고 "노응"은 규칙을 이용했다.


상대의 [목표]를 이용해 스스로를 지키고,

자신의 [허점]을 이용해 적을 유인하고,

그 예리한 [보검]을 이용해 죽인다.



이것이 바로 "노응"이 계획한 계책.

지금까지는 그의 예상에 한 걸음씩, 완벽하게 들어맞고 있다.

소녀가 천천히 물러났지만, 가벼워지는 동작과 표정에서 그는 소녀가 자신의 권법에 적응했다고 판단했다.

승부의 저울은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는다, 우세라는 저울추가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 전투는, 반드시 수초 내에 결과가 정해져야 했다.



1-14

동귀


포효가 끊이지 않았다.

그가 끊임없이 압박하며, [헌원]을 향해 다가갔다...

보검이 곁에 있는 청석위에 꽂혀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

"노응"이 왼손을 풀었다.

포석이 완료되었으니, 거둘 준비를 해야 한다.

이 격투의 전개는, 이소상의 예상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기대하고 있던 신공과 그에 대응하는 초식은 행방이 묘연했다.

그저 노도와 같은 긴장감과 단조로운 공격, 그리고 정형화되는 방어만이 있었다.

...이건 이소상이 생각한 비무가 아니었다.

그녀의 눈은 이미 "노응"의 권술에 적응했고,

[검심]으로 지금까지 관찰한 결과, 호후진구소에도

파훼법이 있었다.

그리고 [허점]이 나타났다.

"노응"의 오른 주먹이 명백한 허수, 힘없는 허수아비 같았다.

허수는 적을 유인하지도, 방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소상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고, 실로 두서없는 수였다.


그 짧은 순간을 소상은 기다리고 있었다.

[화검·운응](化劍·雲鷹)으로 공수를 전환하고,

순식간에 [개검·순진](開劍·瞬塵)으로 바꿔 "노응"의 목을 노렸다.

태허검기는, 검이 없어도 약하지 않다.

만약 손에 검이 있었다면, 이 초식은 진기를 불어넣어 곧바로 적의 목을 취하는 검식이어야 했다.

그리고 이소상의 신속으로, 상대는 이 검을 억지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검을 대신해, "노응"의 변칙에 대비했다.

하지만 "노응"은 막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의 상체가 열려, 도처에 허점이 생겼다.


'어—?!'



소상이 크게 놀랐다, 이건 그녀의 예상이 아니었다.

어떠한 적이 스스로 허점을 드러낸다는 것은, 저항을 포기하거나, 목숨을 걸 결심을 하거나.

승리에 가까워질수록, 위험도 커져갔다.

사람은 생사의 기로에서,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곤 한다.

소상의 머릿속에선, 일순간 혼란만이 있었다:


'이 자를 죽일 텐데...'

[순진]의 빠른 속도는,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검이 없어도 약하지 않다. "노응"의 응수가 없다면, 그는 이곳에 묻힐 것이다.

이 중요한 순간, 이소상은 문득 깨달았다:

사실, 자신은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시검을 할 각오도, 전투를 할 각오도, 승리를 할 각오도, 살인을 할 각오도...

그녀는 그저 스스로 강호에 발을 들였다 생각하는 열다섯 살짜리 소녀였고,

상대가 인명에 대한 소중함과 경외가 말살돼있다는 걸 알 리가 없었다.


'!'


눈앞에서 죽어갈 극악무도한 사람 앞에서...

목을 건 승부, 따귀의 빛 같은 것은 모두 뒷전이었다.

이소상이 이를 악물고, 손을 풀기로 선택했다—


태허검기를 억지로 거두자, 튕겨난 손의 힘이 몸으로 들어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

그녀가 모은 힘을 빼기 위해, 발끝을 가볍게 해야 했고,

[비연귀소](飛㷼歸巢)를 사용, 회전력을 통해 힘을 죽였다.

그러자 발끝에서 쉬익 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줄기 빛이 번뜩이며, 그녀가 방금까지 있었던 자리를 갈랐다.



"쳇!"


소상이 물러남과 동시에,

"노응"의 왼손이 [헌원]을 뽑아, 위로 베었다.

소녀가 후퇴하지 않았다면, 몸뚱아리가 두 동강이 났을 것이다.

이소상의 착한 마음씨,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확실히 목숨을 건졌다.

검이 스쳐가, 공중에 떠 있는 이소상을 보며 "노응"이 잔혹한 웃음을 보였다.


"...피할 수 없다!"

"노응"이 달려들었고, 손에 있는 보검 헌원이 빛을 반사하며, 번개같이 내려왔다.


'이건 달빛일까 등불일까?'

죽음이 임박한 순간, 이소상은 문득 생각했다.


'아, 지금 궁금해하면 안 되는 거겠지?'


십 년을 수행한 검심은 파도 없이 평온했다.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소녀에게, 죽음의 순간은 굉장히 공허했다.


'아, 졌어— 지는 거에다, 죽기까지 한다니.'

'살인은 할 수도 없었고, 빛도 갚지 못하다니, 강호 경험이 없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죄송합니다, 사부; 죄송합니다, 어머니; 저 소상은—'


소녀의 마음이 마치 낙엽이 떨어지듯, 검심의 호수 위에서 작은 물결을 일으켰다.

순간, 소상은 호수 중앙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를 들었다.


"날 위해..."

어느 여인의 목소리,

저 멀리, 아주 먼 곳에서...

어, 누구지...?


"너는 살아야 한다, 소상, 잘 살아야 해... 약속해라."

어머니의 목소리...


"약속해라!"

정신이 아득할 때, 신체는 이미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비연귀소로 발생한 회전력을 축으로, 소상은 자신도 믿기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손을 내밀었다.

소녀의 신법은 평소에도 신속이었지만, 이 손가락은 그녀의 눈으로도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번개같이... 아니, 번개보다 빨랐다!

그녀가 몸에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검을 막았다.


이어서, 손가락을 튕겼다.

정신이 깨어있고, 검심이 가장 밝았을 때도, 소녀는 이렇게 능숙하게 태허검기를 운용한 적이 없었다.

완벽한 튕기기, 그때의 사부와도 비교할 수 있었다.

보검이 "노응"의 손을 벗어나, 하늘 높이 솟았다.



"노응"이 분노해 주먹으로 소상을 날려버리고, 검을 받기 위해 달려갔다.

소녀의 비연공을 과소평가했다.

소녀가 청석위에 쓰러져 피를 토했다, 튕겼을 때 이미 땅에 엎어져 있었다.

하지만 다시 순식간에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양쪽의 목적은 모두 고대검[헌원].

얻는 자는 승리할 것이고, 잃는 자는 죽을 것이다.


'...날 도와줄 거지?'

신체는 이미 본능에 맡겨졌고,

[소녀]이소상의 의식이 속삭였다:



'너는 내 검이잖아...'

헌원이 가장 높이 솟았을때, 잠깐 멈추고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소상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이 모습, 어디서 봤더라?


눈앞에서 떨어지는 이 검이, 왜 이렇게 친숙한 걸까?


......수년 전 부터......


손가락이 칼자루에 점점 가까워진다.

검의 소리가, 소녀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이소상은 자신이 [검의]를 깨달았다고 믿었다.


"이야야야야앗—"

하지만, 칼자루를 쥔 건 그녀가 아니었다.


"이겼다!"

귓가에 들리는 건, 죽음을 재촉하는 말.


"죽어라, 애송이—"


"............"

이번 절망과 낙담은, 저번보단 나았다.


소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희망을 얻었다가 다시 잃고, 정상에 오르고 다시 추락하는 아픔이,

신체 깊숙히 가라앉은 거대한 회한과 함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아냐!


이다음에 두 동강이 날지라도,

본능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암담한 의식이 소상의 수도에 실려,

동귀어진의 각오로 적을 공격했다.



마침내, [죽음]을 받아들인 소녀가,

뒤늦게 얻어낸...

[각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