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절검록 비주얼 노블 버전




1-15



"노응"은 검객이 아닌, 병사다.


그가 사용하는 것도 검법이 아닌, 군도술이다.

그래서, 그가 역으로 자루를 잡을 때는, 습관적으로 손목을 틀어,

날이 항상 적을 향하게 한다.

그러나 오늘 밤은—


오늘 밤은, 승패와 생사가 모두 한순간에 뒤바뀌기에,

"노응"의 머릿속에서 기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생각은 그가 검무(劍舞)를 출 때부터, 어느새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었다.


'검술과 도법은, 다를 테니...'

단지 생각일 뿐이었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단지 생각일 뿐이었지만, 생사의 경계에 있는 "노응"에게, 손목을 트는 것을 멈추게 했다.

이것이 그에게 찰나의 시간을 절약해 주었다.

만약 이 찰나가 없었더라면, 결국 검이 소녀를 베기 전에, 그가 죽었을 것이다.

소녀의 수도(手刀)가 마치 번개처럼, 그의 머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

"노응"이 자루를 잡고, 역으로 쥐었다.


검은 도와 다르다. 날이 양쪽에 있어,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이러면, 찰나의 차이일 테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쇠도 자르는 검이 달빛을 갈랐다.

검 끝이 소녀의 몸에 닿아, 뚫고, 작별하며 양분했다.


종이를 자르는 것처럼 간단했다.

그녀의 시선은 허공 어딘가에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치명적인 수도도 힘을 잃고, 움직이지 않았다.

"노응"이 소녀를 죽이고, 검을 빼앗았다.



힘들고, 잔혹했지만, 그럼에도 승리했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하지만 검이 나아가, 이소상의 허리를 찌르려 할 때, "노응"의 진기가 돌연 사라졌다.

다년간 단련된 내공이 모두 사라져, 마치 태어나지 않은 것만 같았다.

아무리 그가 힘을 써도, 비어버린 경맥에는 반응이 없었다.


'이럴 수가—'

공포라는 이름의 냉기가 "노응"의 혈관에 흐르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기의 흐름에 아무 문제가 없으니,

주화입마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승리하려 할 때, 그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것이 오늘 밤의 두 번째 내력 소실,


"노응"이 무언가 깨달았지만, 너무 늦고 말았다...

검을 잡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헌원]이 공중에 있는 소녀를 베어, 뼈가 보일 정도의 깊은 상처를 남기고, "노응"의 손에서 벗어났다.

소녀의 수도가 그의 뺨을 찔렀다.


따귀 소리와 뼈가 파열하는 소리, 그리고 크나큰 고통이 찾아왔다.


'어째서?'

부서진 두개골에서 오는 어둠이 그를 감싸려 하자, 전력을 다해 저항하고는... 미친 듯이 눈을 굴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어째서—!?'

그는 보았다.


저 멀리, 부서진 역참의 응접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의자 앞에, 한 남자가 서있었다.


'나찰인...'

그 남자의 곁에는, 관 하나가 조용히 서있었다.


'네가...'

남자가 멀리서 "노응"을 바라보았다. 촛불이 흔들렸고, "노응"이 저 남자의 표정을 보려 했다—



'네가!!!!!!'

그의 사고는 거기까지였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자, 어둠이 그를 사로잡았다.



1-16

백화흑연



피로와 고통이 밀물처럼 들어와, 소녀에게 신체의 통제권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그저, 깨우는 방식이 너무 가혹했을 뿐이지만.


"아프다..."

입안이 짭짤한 피맛으로 가득해, 인생에 회의감을 들게 했다.


'내장 파열은 아니겠지?'

...검에 베인 허리가 움츠러드는 듯 갑자기 통각 신호를 던졌다.

무예를 닦는 것과 상처는 뗄 수 없는 관계라지만,

이렇게 심하게 다친 것은, 소녀에게 처음이었다.


'이게 그 승리의 맛인가...'

'승리의 맛은 씁쓸하군.'


이소상이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며, 미소를 참지 못했고,

또다시 고통으로 인해 얼굴을 찡그렸다.


"아, 나찰인... 거기 있습니까?"

소녀가 간신히 소리를 높여, 하늘에 뜬 달에게 물었다.


대답은 없고, 발소리만이 들렸다.

터벅, 터벅.

멀리서 가까이, 어떤 사람이 왔다.


"헤헤... 당신이죠, 맞죠?"

이소상이 물었다.


너무나 작은 목소리, 그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자신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당신이 절 도와준 겁니까?"


"말하지 마라."

금발녹안의 나찰인이 그녀의 곁에서 한쪽 무릎을 꿇더니,


"...운이 좋군, 심한 상처는 아니다."

'이게 안 심해?' 이소상이 묻고 싶었지만, 마음속에 묻어두었다.


그녀는 가만히 누운 채로 잘생긴 나찰인을 슬쩍 보며, 또 무슨 요술을 부릴지 호기심이 일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나찰인이 손을 펴자, 황금의 빛이 허공에서 흘러나오더니 이상한 물건이 형성되었다.

소상의 눈에는, 묘한 무늬가 그려진 흰색 종이 양산 같았다.

양산은 길었다. 그 머리끝은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그걸로 절 찌르는 겁니까?"


"말하지 마라."

나찰인이 거듭 말했다.


풀어진 장발이 그의 눈을 가렸고, 소상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그의 얼굴에서 흐르는 것을 보았다.

나찰인이 양산의 검은 손잡이를 잡고, 끝으로 소상의 상처를 누르더니, 머리를 돌려 그녀에게 말했다:


"아프지 않다, 하지만 이상한 느낌이 들 텐데..."

"시리거나, 저린 것, 움직이지 않고 참는가?"

소상이 고개를 끄덕이려다, 상처를 잡아당겨 극심한 통증을 일으켰다.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을 믿습니다."

자신이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양산 끝과 닿은 부분에서, 꿈틀대는 고통이 조금씩 사라졌다.

검심으로 바라보니, 소상은 나찰인이 양산에 진기를 계속 넣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소모가 막심한지, 그의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금발 사람은, 흘리는 땀도 금색일까? 이소상의 마음이 부끄러움, 기쁨, 수줍음으로 갈라졌지만, 그를 향한건 아니었다.



"의태한 것은, 성능이 너무 차이 나는군..."

나찰인이 혼잣말을 하였다,


"시간이 좀 걸린다."


"알겠습니다."

나찰인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소상도 입을 닫았다.

밤바람이 가볍게 지나가며, 나찰인의 금색 장발을 흔들었다.

얼굴에 약간 간지러웠다.

이소상은 말하려고 했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눈을 감았다.


나찰인이 말했던 대로, 그녀는 신체 곳곳에 시리거나, 저린 것을 느꼈다. 이상한 느낌이긴 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아~"

이소상이 이 우여곡절이었던 하루를 회상했다.


도적 4명을 격퇴하고, 이어서 죄수 체험도 해보고;

"노응"이라는 호를 가진 남자와 강호의 비무를 해, 엄청 힘들게 이기고;

금사단 두목에게 중상을 입혔지만, 자신도 크게 다치고 말았다.

그리고 기이한 외국인을 만나, 요술로 자신을 치료하는 걸 지켜도 보았다.


'정말 긴 하루였어...'



생사의 경계를 넘어, 소녀는 마치 천혜의 요새를 넘은 듯,

오늘 아침의 자신을 떠올리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만족과 공허함, 기쁨과 슬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소상의 마음속을 흔들었다.

알게 모르게, 통증이 사라졌다.

성장했다는 작은 자부심이 소녀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아, 당신... 신주의 규율을 모르면, 나중에 손해를 볼지도 모릅니다."

이소상이 하늘의 은월을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두 사람이 비무를 하고 있을 때는, 외부인이 방해해선 안됩니다."

"방금 구경꾼이 있었다면, 당신에게 강호의 도리를 지키지 않는 외도라고 하였겠죠."

"당신은 외지인이니,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세요."


"좋다, 끼어들지 않고, 네가 죽는 걸 지켜보겠다."


"히히..."

"감사합니다, 당신은 나쁜 나찰인이 아니군요, 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하."

나찰인은 그녀를 보지 않고, 계속해서 양산에 진기를 넣어 상처를 치료했다.


"감사할 필요 없다, 나도 네게 부탁할게 있으니."


"네? 무슨 일입니까."

소녀는 호기심이 생겼다,


"말해보시죠, 제 목숨을 구해주셨으니, 무슨 일이건 소녀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까 지하에서, 네 무공은 태허검기라 하고, 정위선인의 독문절학?"

나찰인이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그건 누구지? 왜 그녀를 선인이라 부르지?"


"정말로 신선이기 때문입니다. 듣기로 그녀는 불로불사로, 수천 년을 살았음에도, 아직 소녀의 외양이라고 합니다."

나찰인이 정신을 가다듬자, 손에 있던 양산이 갑자기 사라졌다.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저 말입니까? 모릅니다."

이소상이 의기양양하게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질문할 사람은 제대로 보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선인의 행방을 아는 자라면, 분명 제 사부님일 겁니다."

"알고 계십니까? 정위 진인께서는 오직 일곱의 제자만을 두셨는데, 사부와 제 어머니가 그 제자로..."

"앗, 그래서, 무슨 생각으로 선인을 보고 싶으신 겁니까?"


"......"

나찰인이 소상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돌연 활짝 웃었다:


"생각해 보지."

서역을 떠나 신주대륙에 오고 난 이후, 처음으로 이렇게 편하고 자연스럽게 웃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소상은 그의 과거도, 고통도 몰랐다, 그저 지금 즐겁게 웃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충동심에 삼켜진 소녀가, 생각 없이, 생각할 틈도 없이 일어났다:



"그럼 저와 함께 가는 겁니다! 함께 돌아가 사부님을 뵙고, 선인을 만나도록 청해보겠습니다!"





1-17

종장



천궁봉, 입운계. (天穹峰, 入雲階.)

봉우리가 하늘 높이 솟아있고, 계단이 천 자를 넘게 이어져 있다.



고개를 들어봐도, 돌계단의 끝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운무가 계단의 허리를 가리는 것만 보인다.

높은 산이다; 그리고 산꼭대기에 있는 사람도, 높은 사람이다.

수천 개의 청석 계단을 오르면, 봉우리 끝에서 [불운](拂雲)이라는 이름의 작은 사원을 볼 수 있다.


이름, 외형, 내부의 진열까지,

이 불운관은 태허산의 옛 정위선인의 집과 다르지 않았다.

이 사원의 주인은,

바로 신주 6대 종문 중 하나인 [태허검파](太虛劍派)의 수장;

정위의 수제자: [경진검](輕塵劍) 임조우(林朝雨).


...당문은 고요하고, 오는 길은 멀고 험하니;

태허문하의 제자라도 용무가 없으면, 결코 입운계를 오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날도 여느때와 같이, 평온하고 평범한 날이다.

똑, 똑, 똑.


하지만 지금 한 명의 불청객이, 조용히 웃으며 불운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늠름한 복장을 입고, 등에는 쌍검 두자루, 주발옥안의 아름다운 용모였다.

강호에서의 행동도 적었고, 문하제자로써의 행동도 굉장히 저조했다.

하지만 이 자의 명성은, 6대종의 당주와 장로에 비해 밀리지 않았다.

그녀는 정위의 두 번째 제자, 현재는 [무쌍문](無雙門)의 문주.

[무쌍선자]—소미(蘇湄).



똑.

손가락 마디로 나무 문을 두드리니, 소리가 탁하지 않고, 청아해 듣기 좋았다.

안쪽에서 반응이 보이지 않았지만, 홍발의 여자는 화내지 않고 얼굴의 웃음을 시종 유지하고 있다.


똑, 똑.

마침내, 문이 살짝 열렸다.


방문한 사람의 긴 기다림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경진검] 임조우가 천천히 나와, 차갑게 두번째 사매(師妹)를 바라보았다.


"사저(師姐), 얼마 만인지요."

소미가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경쾌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세상에는 웃을 일이 많았지만, 임조우는 이런 상황에서 어찌 대처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20년이다."


"20년?"

[무쌍]소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개의치 않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 오래되었습니까?"

마치 바늘로 가슴을 찌르는 듯, 목소리가 임조우의 귓가로 흘러 들어갔다.


참지 못하고 눈앞의 여인을 쳐다보았다.

십몇년이 지났지만, 시간이 그녀의 세계에서 굳어버린것 같이, 소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의 붉은 머리칼은 아직도 윤기가 흘렀으며,

수려한 얼굴은 희고 매끄러워, 불면 깨질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눈은 여전히 크고,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녀의 입술은 붉은색, 요염한 붉은색이다... 이 요염함을 위해, 연지를 몆장이나 썼을까?

...왜 그녀일까? 왜 내가 아닐까?

질투심이 순식간의 임조우의 심장을 채우고, 빠르게 끓어올라 얼어붙었다; 얼음처럼 뜨겁고, 불처럼 차가웠다.

소미가 마치 생각을 꿰뚫어 본 듯이, 한탄하였다.


"아, 20년입니까, 저도 늙었군요."


"...그렇군."

태허검파 당주가 조용히 대답했다.


"옛일은 말할 필요 없으니, 서로 잡담은 그만하고, 할 일이나 말해보지."



"네, 그럼."

순간 소미의 눈동자에 그림자가 일었다 순식간에 사라져, 임조우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사저를 예방한 것은, 망아지에 대한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언경(彦卿)?"

임조우의 표정이 급변해,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어디있지?"

소미가 말한 망아지는, 두 사람의 사제(師弟) [백리축구][百里逐駒] 마언경(馬彦卿).


그 태허제육검은 성정이 광포하여, 세속에 구애받지 않았지만;


[무쌍]소미와는 왕래가 빈번하여, 무림인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그런데 돌연 20세나 차이나는 대사저를 아내로 맞겠다고 공표해, 강호가 일시에 놀랐다;

그러더니 혼례식 당일, 그는 또 술에 취해 헛소리를 지껄이니, 그 이름이 부끄러워지고, 가득한 세객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혼례 이후에도, 이 태허검파의 부당주는 멈추지 않았다.


일 년의 대부분을, 그의 애마 [야혈](夜血)과 여행했다. 간간히 들리는 말로는 [행협장의][行俠仗義] 였지만, 나쁘게 말하면, [제멋대로]였다.


위로는 권세가부터, 밑으로는 부랑민까지... 마비마(馬非馬)는 누구든 건드리고, 누구든 자극한다. 이 [광인]은, 근 10년간 이 중원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언경... 망아지는 그 이름을 싫어합니다."

"사저는 오늘까지도 바꾸지 않는군요... 아, 우리 중에선 사저를 가장 연모했었지요."


아니... 임조우가 속으로 대답했다. 그가 증오하는 그 과거는, 바로 네가 만들어낸 과거니까.

생각이 마음속으로 가라앉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녀도 말로써 띄우진 않았다.


"그는 어디 있지?"

임조우가 재차 물었다.


소미가 시선을 빠르게 돌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망아지의 성정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는 밤새 막북으로 갔습니다."


"국경 너머? 그가 거기서 뭘 하는 건가?"


"다섯 번째 사매를 찾고 있습니다."


"—!!!"

순간 분노가 얼음을 녹였다.

임조우가 앞으로 크게 내디뎠고, 은색의 장검이 소리 없이 왼손에 걸렸다.


"소미...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지?"

"20년이다, 우리가 네게 속을 거라 생각하는가?!"


"능상(凌霜)이 은거하는 곳을, 너는 나와 언경이 모른다는 건가?"

"너는 능상이 검을 들고 중원을 돌아다니다, 형세에 휩쓸려 재난에 발을 들였을 때, 누가 상남에서 벗어나게 도와줬다고 보나?"

"누가 몰래 막북으로 가도록 호위하고, 준비를 해주었다고 보나?"


"언경의 성정... 허, 난 언경의 성격도 잘 알지만, 능상의 성격도 잘 안다."

"당장 내일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그는 그렇게 사소한 일로 능상을, 그녀의 수행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네가 말할 소식이 무엇이길래, 언경이 날 만날 시간조차 내지 못하는 거지?"


"......"


"...아직도 이런 방법인가, 소미, 달라진 게 없군."

"언경이 네가 [망아지]라 부르는 걸 듣고 싶을까... 후후. 넌? 너는 그를 사역하고 있지 않나, 이리저리 지시하면서... 내 부군이 누군지 아나?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나?"


"소미, 오늘 똑똑히 알려주마.

네 마음속에 동문의 정이 없다면,

나도 [무쌍]과 일전을 벌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


"......"


다년간 억눌린 호통이 나왔지만, 기분이 편하지는 않았다.

임조우는 상대의 침묵의 만족하면서도, 상대의 무언에 의아해했다.

바람소리가 울리고, 뼈를 파고드는 서늘한 바람이 천궁봉 정상을 맴돌고 있다.

이러한 날씨는 화를 키우기도 하지만, 마음이 식을 때까지 불길을 소모시키기도 한다.

심박소리를 열일곱 번이나 세고, 그녀의 인내가 끝날 무렵, 소미가 입을 열었다.


"[경진류](輕塵柳)..."

소미는 그녀를 보지 않고, 손에 있는 연검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립습니다..."

"이것 덕분에, 목숨을 보전했고, 다섯 번째 사매가 검으로 찌를 기회를 얻었죠."

그녀가 고개를 들어 임조우의 눈을 보더니, 눈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좋습니다, 아직 사저의 손에 있군요."


"넌—"

20년 전의 그날을 떠올리며, 임조우는 무의식적으로 한걸음 물러났다.


한기가 등에 맺혀 이슬이 되고, 식은땀이 되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년간 당시의 모습이 뼈에 사무쳐 그녀를 괴롭혔다.

자신이 성공하면 그 일이 사라질 줄 알았건만,

오늘 두 번째 사매의 방문이, 옛 상처를 건드리고 말았다.


"우리 옛일은 말하지 않기로—"


"네. 옛일은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 일은 이미 끝났고, 떠올려야 무익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말하는 것들은 새로운 일입니다."


"...뭐!?"

임조우가 순간, 사매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네... 말은, 사부가?"


"예."

소미가 하늘을 보다, 공중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의 헌원검이 또다시 검집을 빠져나오려 합니다. 짐작이 맞다면— 제가 더 앞서겠군요."


"이... 넌, 그럴 리가... 그..."

태허검파의 여당주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사부는 돌아가셨다."


"맞습니다, 하지만 선인이 어찌 죽겠습니까? 믿어주십시오, 사부가 돌아왔습니다."

"저, 사저, 망아지... 우리 일곱은 이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냐..."

임조우는 상대방이 터무니없는 말들을 해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만약..."

중얼거리는 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소미의 얼굴을 다시 보았을 때는, 임조우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져있었다.

분노의 극에 달한 미소, 피로로 가득한 미소였다.


"사부가 그해의 일을 계산하러 오신다면, 널 처음으로 찾겠구나, 소미."

태허검파의 여당주가 부드럽게 말했다.


"아뇨, 아뇨, 사부는 주동자가 누군지 모르십니다. 추정하기에, 저는 두 번째 일 겁니다~"

"하지만, 순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저를 찾아온 것입니다."

구름을 떠돌던 눈빛이 다시 임조우의 얼굴을 향했다.


임조우의 가슴이 가라앉았다.

그것은 그녀가 잘 알고 있는, 두 번째 사매의 눈빛이기 때문이다.

소미는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공포, 당황감은 보이지 않았다.


"사부가 이미 한 명을 죽였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