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절검록 비주얼 노블 버전




2-9

시험





마비마(馬非馬)가 이 기묘한 조합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금발의 나찰귀.

길고 얇은 몸에, 준수한 외모, 보기만 화려하고 쓸모없는 화분 같았다. 호흡법 같은건 없고, 무공은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마비마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이 보이는 만큼 간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검심을 통해 보면, 그의 진기의 흐름은 정말 기이했다.

보통 사람들에게 내력을 공급하는 기경팔맥은 거의 텅 비어있었고,

손에 있는 3양3음의 진기는, 그를 주화입마에 빠지기 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


방금 그가 일검으로 마차를 멈춘 후에도, 이 나찰인의 대응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 손발의 움직임이 없었지만, 마치 마차가 뒤집혀지지 않았거나, 허공에 떠 있는듯 했다.


'...나찰국에 저런 신통이 있었나?'


마비마는 믿을수 없었다.

그가 보기에, 만약 금발의 남자가 내공을숨긴 고수가 아니라면, 배운 무공이 이상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저 사람의 두 눈은...

저렇게 젊은 얼굴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심오한 눈빛...

지옥을 보고, 고해를 지나, 혈연을 밟아온 눈빛이었다.

한 목소리가 넌지니, 마비마를 일깨웠다:

나찰인이야 말로 그를 죽일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말일까? ...그가 가능하다고?'


가슴속에서 깊은 고통과 열망이 소용돌이 쳤다.

마비마가 눈을 감았다.


죽음.

죽음이라는 이름의 자극이 추운 밤에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온 몸의 한기를 몰아냈다.


'좋아... 그의 수준을 시험해보겠다!'


마비마가 스스로에게 말했다.

낮은 목소리가 그를 위로하며, 잠시 충동을 억제했다.

그것은 주인의 호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그녀야 말로 마비마가 나서는 원인이었다.

겉에 살구빛 옷을 걸친 소저로, 아름다운 두 눈의 앳된 느낌이, 친숙해보였다.

친숙한 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검도 있었다.

잠깐 보더라도, 심지어 칼자루만 보더라도, 마비마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헌원검— 정위진인이 일곱 제자에게 하사한 신명보기, 태허[검의](太虛[劍意])에 의거한 물건.

뿐만 아니라, 마차가 격동할 때, 소녀는 수검•정련(守劍•凈蓮)으로 몸을 바로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비마가 그녀의 사부를 도출하는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정통의 태허검기! 태허진결도 아니고 일곱째 사매의 억심검도 아니라니...'


마비마는 이 소녀가 분명 능상(淩霜)의 후계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하, 좋아! 그런거였군, 과연 태허검기가 계승되었을끼?'


소미가 그토록 막으려 한 일을, 다섯째 사매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다.

마비마가 갑자기 즐거워졌다.

그는 이 미숙한 태허수검형 속에서, 20년간 종적을 감췄던 고요한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

아, 지나간 시간이여...

그리우면서도, 가슴아픈 시간이었다.


그러는 동안, 나찰인이 입을 열었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마비마의 작은 감개를 깨기에는 충분했다.


"소상, 조심해라."

나찰인이 소녀에게 말했다


'신주어를 참 잘하는군, 마치 중원사람이 말하는 것 같은... 다섯째 사매가 어떻게 이런 놈을 알고 있는거지...?'


"저 자는 네 검을 노리고 있다."


"예? 제 헌원을요?"


'......'


두 남자의 시선이 교차했다.

한 사람은 눈을 돌렸고, 한 사람은 눈을 떼지 않았다.


'허... 들켰나? 저 나찰귀는 확실히 요령이 좀 있군.'


상처 투성이의 남자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마치 불 속에서 활활 타는 것처럼, 그의 얼굴을 가로지른 칼자국들이 더욱 붉어졌다.

호기심이 다시 솟구치고, 참을수 없는 충동이 되었다.

목소리가 또 귓가를 맴돌며, 그에게 말했다: 저건, 그를 충분히 죽일수 있는 사람이라고.


'결정이다! 자, 와라! 죽음이 무슨 대수인가— 그가 할 수 있을까?'

'한번 진면목을 보도록 하지!'


—그는 이런 결정을 좋아했다.


2-10

천·지·나선


끝없는 모래, 불타는 태양.

무형의 공기가 이글거리며, 사람들의 등에 땀을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가 발산하는 엄청난 살기에, 이소상은 오한이 들었다.


남자는 수염이 있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붉은 번개같은 엄청난 흉터가 그의 뺨을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턱쪽에서 갈라졌다.

...흉터는 떨어지는 것처럼, 멈추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이 남자의 몸에는 수많은 흉터가 있었다.

만약 이런 상처들이 없었다면, 수려한 용모의 남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핏빛 가지가 지나가고 있음에도 그의 얼굴은 공포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남다른 기개를 더하고 있었다.



"소상, 조심해라."

나찰인이 천천히 마차에서 내려, 아주 조심스럽게 관을 모래위에 놓았다.


"저 자는 네 검을 노리고 있다."


"예? 제 헌원을요?"

이소상은 매우 놀랐지만, 곧이어 깨닫고는, 많은 것을 이해했다.

그녀가 이 괴인을 바라보다, 나찰인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빛나고 있는걸 발견했다.


갑자기, 남자가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가자, 붉은 칼자국이 당기면서, 살짝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매우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웃음이 멈추자, 남자의 모습이 다소 온화해졌다:


"하, 소저! 자네는 능상의 자제이신가?"


"...알려드릴수 없습니다!"

이소상이 화가나 눈을 방울처럼 부릅떴다:


"뭐하는 짓입니까! 고작 인사나 하려고 했던 겁니까!"


"핫, 그런것 같군."

남자가 화내지 않고 웃으며, 손을 들어 나찰인을 가르켰다.


"미안하지만, 몇마디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말을 다하고 손을— 그래, 저 나찰귀와 싸우도록 하지."


"어... 에엥... 무슨 생각입니까!?"

소상이 황급히 나찰인의 앞에 섰다.


"아 자는 당신과 싸우지 않습니다, 그는... 당신은 대체 뭡니까? 왜 갑자기 이러는 겁니까!"


"사과하지, 소저, 자네 마차를 망가트린것 말이야. 그에 대한 사과로, 내 야혈마를 가져가는걸 허락하겠다."

남자가 그렇게 말하고, 관절을 꺾으며 뚜둑 소리를 내었다:


"나찰귀가 아주 정확했군. 그래, 난 네 헌원검을 원하지만, 강제로 가져갈 생각은 없다... 아, 최소한 지금은 그렇지. 소저, 그 검은 네것이 맞나?"


"이건 물론 제것입니다!"


"허, 그럼 역시 능상의 자제겠군, 어쩐지 익숙해보인다 했다. 좋아, 항렬에 따라 넌 날 사숙(師叔)이라 불러야 한다. 이 금발과의 싸움이 끝나면, 우리 네 사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아 자는 당신과 싸우지 않습니다."


"허허, 그는 싸운다. 싸울수 밖에 없다."

남자가 흥겹게 나찰인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러기로 결정했으니까."


"당신—"



—이변이 일어났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팽배하던 살기가, 갑자기 전부 사라졌다.

저 사람의 존재가 사라진 것 같았다.

이소상이 황급히 나찰인을 보았다: 그는 여천히 조용한 상태였다.

그렇다, 나찰인은 모르지만, 이소상은 알고 있다: 적이 검심(劍心)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무의미한 감정을 버리고, 무가치한 사고를 포기한다.


부탐부진, 부치부한, 지수무진, 명경태허.(不貪不嗔, 不癡不恨, 止水無塵, 明鏡太虛)

이것이 바로 태허검심, 정위진인이 만든 절세신공!


확실한 것은, 눈앞의 이 괴한은 바로 정위진인의 직계제자, 태허칠검중 유일한 남성:

[백리축구] 마비마다.


소상이 어릴적 억검산장에서 그와 수차례 연이 있었는데, 태허 부장문의 천하를 호령하는 기개가,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었다.


...내가 6대종 장문급의 상대를 이길수 있을까?


"나찰인, 당신은... 물러나세요, 제가 상대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소녀는 적의 기세에 눌려있었다. 목소리가 마치 모깃소리같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러지."

나찰인이 끄덕였다, 본래 그는 싸울 생각이 없었다.


몇걸음 물러나고, 고개를 끄덕인 나찰인이 마비마를 쳐다보았다.

말은 없었고, 눈은 텅 비어있었다.


"...겁쟁이군."

마비마가 탄식하더니, 소상에게 말했다:


"그를 왜 죽이지 않았지?"

"분명 능상이 가르쳤을 것이다, 태허일맥의 사람은 악을 자비없이 죽여야 한다고 말이야."


"그는 아직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하, 시간문제일 뿐이지. 그의 방법은, 주화입마보다 더 큰 죄를 지을까 걱정되는구나.

후, 너는 왜 그를 숨기느냐? 이 나찰귀가 숨기고 있는 것은... 흠, 네 상상을 뛰어넘거늘."


"...그래, 내가 무슨 자격으로 널 가르치겠느냐?"


"......"

이소상이 거한을 노려보며,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휴, 네가 그를 죽이면, 이렇게 번거로운 일도 없을거다만."

마비마가 어깨를 으쓱했다.


"좋다, 계속 그를 감싸줄 생각이라면... 네가 먼저 싸워라.

아직 준비가 덜 됐지? 시간을 줄테니, 최선의 상태가 되거라.

명심해라, 날 반드시 죽이겠다는 각오로 싸워라, 알겠지? 나도 가만 있지 않을것이다."


"...왜 손을 대야만 합니까?!"


"......"

마비마가 그녀를 노려보며, 조용히 웃었다.


그도 그럴게, 이미 다 말했는데, 또 길게할 필요가 있을까?

마비마가 [결정] 했기 때문이다, 그가 [결정]한 일은, 반드시 해야했다.

소녀가 입술을 깨물며, 마음의 분노를 억누르고, 의연히 있었다.

눈앞의 적은, 결코 함부로 대처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심지어 모든 실력을 보인다 해도, 반드시 이길수 있는것도 아니였다.

애시당초—그는 태허6검, 사부와 등급의 절정고수니까!

'아이고, 생에 첫 결투가 끝나고 며칠 지나지도 않아, 또 비무를 해야 하다니.'

상대 또한 무림 최강 7인 중 한명...

'정말 책에서 말한 것처럼, 강호는 끝없이 깊은 바다 같구나.'


이소상의 마음속에서 의미없는 탄식이 흘러나왔고, 이를 추진력으로 삼아, 전의를 불태웠다.

심호에 파도가 없으니, 맑고 투명했다.

이것이 마비마의 [지수]보다 높은 경계:

검심•명경. (劍心•明鏡)

그녀가 손을 올리자, 태허검기의 초식인 [계검•열공]이 되었다. (啟劍•裂空)


"허."

마비마가 웃었지만, 기쁘거나 싫어하는것 같지는 않았다:


"와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너무 빨라서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갑자기 부는 돌풍, 살짝 떨리는 대기, 지척에 있는 살의만이 그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다.

순식간에, 마비마의 몸이 이소상과 나찰인의 앞에 나타나 한 손을 들어올렸다, 평범해 보였지만, 이는 태허개검형(太虛開劍形)의—

개검•진풍! (開劍•震風)



이 초식을, 만약 사흘전의 소상이었다면, 분명 반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소상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었다.

마음이 명경과 같이, 바깥의 사물을 비췄다.


마비마의 움직임이 그녀의 맑은 심호에서 멈춰, 마치 서서히 퍼지는 잔물결처럼, 순간적으로 느려졌다.


공명에 진입한 그 순간, 그녀는 남자의 초식을 포착할 수 있었고, 최고의 대응을 할 수 있었다.

주저없이 소상이 오른손을 움직였다.

포대기에 감긴 헌원을 공중으로 날렸다.


검신이 회전하며, 칼날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남자의 손을 향했다.


'—피해라!'

이소상이 간절히 기원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철도 자르는 신병이 마비마의 손을 반토막 낼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의 손은 헌원을 향한채로,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마치 철을 깎는 신검이 아니라, 약하기 짝이 없는 죽대를 대하는것만 같았다.


"기억해라, 개검과 화검은 상통한다. 식을 쓰는건 검이 아닌 너, 형식에 얽매이지 마라!"

남자의 새끼손가락이 살짝 흔들리며, 헌원을 건드렸고, 세 손가락을 검신에 올린 뒤, 손목을 비틀어 검을 뒤로 넘겨버렸다.



'화검형[월로]... 어떻게?'   (化劍形[月鷺])

'어떻게 이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어떻게... 쓴거지!?'


"전세가 변한걸 알고는 있느냐? 왜 계검을 유지하고 있지? 너무 느리구나!"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손아귀로 변해 그녀를 공격했다!

소녀가 팔을 들어올렸지만, 이미 늦었다.


"컥—"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손이 소상에게 적중했다. 그녀가 입을 벌렸고, 압축된 기류가 폭음을 내며, 사람을 날려버렸다.

이 손이야말로, 바로 개검—[진풍]!


여린 몸이 모래위에 강하게 부딪혔다, 부드러운 지면이 대부분의 힘을 분산시켰지만, 소상은 여전히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었다.

선혈이 입과 코에서 흘러 나오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맞은곳은 아프지 않았음에도, 소녀는 이미 전투력을 상실했다.

피강취허(避強就虛), 방어력이 가장 강한 곳을 역이용하여, 약점으로 만든다.

—태허개검형의 [진풍]은, 바로 진기를 모아 강렬한 진동을 유발하는 형식이였다.

무방비한 상태로 맞은 소상의 몸은 무사해 보였지만, 오장육부가 심하게 손상되었다.

가장 큰 상처는 머리로, 그곳에는 아직도 격동의 여파가 남아있었다.


"아, 아아..."

소상이 몸을 세우려 했지만, 하늘이 빙빙 돌고 있었다.



하늘과 땅, 청색과 황색이, 한데 섞여 나선으로 돌고있다.

나선으로—


털썩.

소녀가 무릎을 꿇었다, 눈가에 스며든 피가 시야를 흐리게 했다.

열심히 앞을 바라보았다.

이 왜곡된 세계에서,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나찰인의 비취같은 눈 뿐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