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느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빈민가의 하루였다, 그럴 터였다


이른 아침바람부터 옆집에서 엉엉 우는소리가 들려온다, 배급에서 소외된 천민의 최후다

보아하니 옆집의 아이가 허기를 못이겨 지애비가 잘못 받아온 그랑사가라는 가축용 사료를 먹다 위병에 걸려 제명을 다하지 못한것 같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우면서도 멍청하단 생각이 든다, 고작 배고픔 하나 참지 못해서 저런 변을 당하다니...

찢어지게 가난하면 결혼이라도 하지말아야지... 빈손으로 부모아래 태어날 자식이 불쌍하지도 않은것인가


자식잃은 부모가 내는 통곡소리는 들을만한것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애잃은 부모앞에 직접 찾아가서 따질수도 없는 노릇이니 좀 조용해질 때 까지 바깥을 좀 거닐다 들어와야겠다 생각하며 집을 나선다. 대충 한두시간이면 목이 찢어지든 기절하든 알아서 하겠지




삼십분은 걸었을까 빈민가의 한가운데에는 막고라채널이라는 언제나 비어있는 광장이 있다. 정처없이 집주변을 떠돌다가 어느새 여기까지 온듯하여 광장꼴을 살펴보니 무슨일로 눈앞이 시끌벅적하다


보통 이런경우는 말싸움을 하던놈들이 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대낮부터 대판 싸움질을 하는 경우다


보통 그런경우는 한쪽팔에 파란색 완장을 찬 노예가 끼어들어 칼부림을 일으킨다만, 이번은 사뭇 분위기가 다른듯하여 곁눈질을 하며 옹졸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다가가 무엇을 하는지 쳐다보니 안익장이라는 이름의 빈민가 촌장이 가운데서 무언가 투표라는걸 하는것 같았다 


안익장은 몇년전 처음 이 빈민가에 정착하여 거지부랑자들을 모아 히페리온이라고 하는 일종의 이익단체를 만든 사내다.


허기를 이기기 위해 풀뿌리를 쥐어뜯어 먹고살아와서 그런지 머릿색에 역겨운 초록빛이 선명하다, 물론 모두 자기 입으로 말한것일 뿐 아무도 본적 없긴 하지만.


저놈이 평소에 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항상 거짓을 일삼고 그 속내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만 나름의 권력자이기 때문인지 빈민가에서는 그를 지지하는 세력또한 존재하는것 같다.


이번에도 선동질을 하기위해 광장 한가운데 역겨운 풀대가리를 치켜들고 침을 튀기면서 이야기한다.


"여러분 이 빈민가가 만들어진지 벌써 4주년이 되어갑니다"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하지만 나랑은 상관이 없다.




"오늘은 4주년을 기념해 여러분들에게 갤럭시수토어 대신 특별 배급을 저희가 제공하도록 할것입니다"


내 귀가 잘못된것인가? 저 사내가 배급을 한다고?


평소의 안익장은 오히려 배급을 강탈하고 옆동네에서 빈민들에게 베풀기 위해 날라온 쌀에 모래를 섞어 뿌리고 멀쩡한 쌀을 빼돌리는둥의 온갖 악행을 저지른놈이다. 그러고도 아직도 지지를 받는게 신기할 따름인데 이번에 갑자기 배급을 한다고? 말이 안된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옆나라에서 시작된 로테이션이라는 제도를 자기입맛대로 고쳐 들여와 빈민들에게 가야 할 음식을 빼돌려 돈을 꽁쳐먹은것을 술자리에서 자랑했다 하는 소문을.


이외에도 나 또한 몇수년간 당한것이 많으나 기억하기 힘들정도이다.


게다가 갤럭시수토어의 배급은 받지 못하면 옆집 아이꼴이 날것이 분명한데 갤럭시수토어를 대신해서 배급을 한다니 이 사내가 배급을 맡아서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다음 배급을 기다리는 동안 험한꼴을 볼것 분명했다.



...





"여러분 그럼 이제부터 투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투표라 하는것은 들어보기만 했지 직접 해본적은 없는것같다. 어릴적 듣기로는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가장 많은 지지를 얻는 항목을 뽑는것이라 하던것만 기억나는데 배급품의 목록을 보니 쟁쟁한 품목중 하나 눈에 띄는것이 있었다


'양갱' 


양갱? 이런거를 도대체 무슨 연유로 여기다 박아놓은것이지? 양갱이 사람이 먹을수 있는 음식이였나? 이런것이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수 있을것이라 생각한건가?


양갱이라고 하면 갤럭시수토어의 배급만도 못한 품목임이 분명한데 이것을 넣는다는것은 정상인의 머리로는 나올수가 없을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순간 광장 한가운데의 초록머리 사내가 외쳤다.

"양갱 한표요!"


순간 뒷통수를 얻어맞은듯 했다. 내 귀가 먹은건가


"양갱 두표!"


또 들려오는 터무니없는 소리, 안타깝게도 이때까지도 나는 눈치채지 못했던것 같다


"양갱 세표! 네표요!"


또 수작질이구나. 광장 한 가운데의 사내가 웃고있다, 이내 얼굴이 얼룩지다 못해 흉측할정도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양갱 만장일치요! 더는 없습니까!"


정말이지 놀라울정도였다. 광장 한가운데에 모인놈들이 하나같이 양갱만을 외쳐대고 있었다, 보고있자 하니 광기라는 단어 이외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양갱이 웬 말이냐.


"아..."


어이없는 광경에 실수로 입에서 소리가 새어나간 느낌이였다

어른 아이 할것 없이 사방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다


광장 한가운데의 초록머리의 사내또한 나에게 시선을 보낸채로 입을 열었다.


"무슨 다른 의견 있습니까? 붕붕씨. "


저 사내는 나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있는것인가.


또 이 사내에게 당하는것인가. 기가차는 와중에 반발심이 일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면 후회할것이 분명했다


"저는 예감..."


하지만 광장의 수많은 인파의 시선의 기에 눌려서인지 바퀴벌레 기어가는 작디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봐도 그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갑작스럽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눈앞이 하얘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무리의 대부분이 어른아이 할것없이 가슴팍 한쪽에 검은색 뱃지를 매달고 있었다

언젠가 들어본적이 있다, 무한... 적멸이였나... 하는 이름의 뱃지였다

그중에서는 노란색 왕관을 머리에 쓴 노란색 짐승의 빛나는 뱃지를 달고있는 놈들또한 존재했다


처음부터 한통속이였구나.


순간 누군가가 가슴팍을 콱 하고 때리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는 그자리에서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만.


상황을 수습해야겠다 생각했으나 기에 눌려서 그런지 다시한번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로 말하였다


"저... 저는... "




초록머리 사내가 상황을 이해했는지, 아니 처음부터 상황을 주도한것인지 웃으면서 말하였다


"붕붕씨? 다시한번 말해보세요."


양갱이 웬 말이냐.


"저는... 예..."






"예...예앙갱이요..."







그날 집에 돌아왔을때의 문앞에는 안익장이 발신이라 적혀있는 양갱 한박스와 수필 하나가 놓여있었다


"응 그건 니가 못해서 그런거야"


옆집에서는 아직도 엉엉 우는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옆집에서의 소리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