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례적으로, 언젠가부터 파이어모스에서는 연례행사처럼 열리던 파티를 제외하고 기념일을 챙기지 않게 되었다.

모든 날이 전우의 기일이었기 때문이다.


희망이 겨울날 불씨처럼 사그라들던 세기말에는, 승리를 축하하기엔 현실이 너무도 비참했다. 탈력감에 지쳐 기뻐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도 자각하지 못하는 새에, 이런 우울은 생존자들을 뱀처럼 휘감아 모든 사건에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생일 같이 하찮기 짝이 없는 일은 논할 가치도 없었다.



...



개인실의 문을 답지 않게 거칠게 열어젖힌 뫼비우스는, 벗는 것을 잊고 있던 수술용 마스크를 쓰레기통에 던진 뒤 불을 켤 힘도 없을 정도로 지친 몸으로 겨우 가운을 옷걸이에 걸었다. 어둠 속에서 째깍째깍 초침을 움직이는 시계를 바라보던 뫼비우스가 문득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생일이 몇 시간도 채 남지 않아 있었다.


갑작스러운 붕괴수의 출현이였다. 병상이 모자라 바닥에 방수포를 깔아 환자를 눕힐 정도로, 수급이 어려워 그동안 아껴왔던 인공혈액을 거의 몽땅 꺼낼 정도로, 온종일 사무직과 전투원을 가리지 않고 부상자가 밀고 들어왔으며, 뫼비우스 박사는 다른 의료팀들과 함께 부상자 한 명 한 명의 목숨을 붙여놓기 위해 밥도 먹지 못하고 바쁘게 뛰어다녔다. 꼬르륵. 모든 것이 끝났음을 자각하자마자 울리기 시작하는 뱃시계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원래대로라면 오늘의 일정은 꽤 한가할 예정이었다. 여와와 복희가 재고 점검 따위의 잡스러운 일을 빼돌려 몰래몰래 시간을 비워준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뫼비우스 박사는 멍청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다 같이 커피라도 한잔할 시간 정도는 있어야 했는데... 지나간 시간과 일어난 일은 되돌아가지 않는다. 뫼비우스는 갈 곳 없는 울분을 희석하기 위해 애썼다. 적지 않은 대원이 죽었고, 어린애처럼 굴 시간은 없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 모두가 똑같은 일 년 중 하루일 뿐이니까.


하지만 오늘 밤 어둠 속에는 어깨가 무거운 세기의 천재뿐 아니라,

언젠가 가족들에게 사랑받으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싶어 했었던 작은 꼬마도 있었다...


"...됐어, 유치해."


뫼비우스는 이런 종류의 쓸데없는 고민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머리를 비우기 위해 노력했다. 이대로 생각하지 말고 잠들어 버리면 다음 날이 시작된다. 언제나처럼, 인류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는 하루가......


클라인으로부터의 개인 메세지가 진동을 울려 잠을 방해한 것은. 그녀가 거의 꿈나라로 떠나기 직전이었다.



... ...



"사랑하는 뫼비우스의~"

"생일 축하합니다!"


뫼비우스는 빛과 폭죽 소리에 반사적으로 눈을 찌푸렸고, 덕분에 얼굴 가득 장난스러운 미소를 띤 분홍빛 엘프와 시대의 별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오느라 확장된 동공이 빛에 익숙해지는 것을 기다리며, 뫼비우스는 식당의 끝에서부터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수가 미소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까딱했다. 한 시간 전까지 뫼비우스와 함께 병실을 뛰어다녔는데도 말끔한 모습이었다. 뫼비우스는 자기도 모르게 축 내려가 있던 어깨를 꼿꼿이 폈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위치 때문에라도, 그보다 약해 보일 수는 없었다.


케빈은 그 옆에서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 있었다. 뫼비우스는 언젠가 열렸던 그의 생일 파티에 불참했던 것이 떠올랐다. 뫼비우스가 싫어하는 남자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도 까마득하게 옛날 일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아토, 데스토피아... ...더 이상 불리지 못하는 이름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언젠가처럼, 영걸들이 이곳에 있었다. 뫼비우스는 무의식적으로 분홍색의 토끼 같은 여우 귀를 찾다가, 사쿠라가 동생을 보러 가기 위해 휴가를 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기대할 가치도 없는 칼파스의 불참보다야 조금 더 실망감이 컸지만, 그녀가 가족과 함께 있을 것을 생각하니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책상 위에 쌓여있는 선물상자 중 어떤 선물상자 위에는 금박으로 글씨가 쓰여진 갈색 카드가 올려져 있었다. 친애하는 나의 라이벌에게. 카드에는 제각기의 필체로 정확히 똑같은 문구가 정확히 8줄 쓰여 있었다. 그 옆에 뇌물처럼 바쳐진 토마토 통조림이 어떤 겁 많은 고양이의 선물인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반쯤 졸린 눈을 한 그리세오는 남아 있는 모든 에너지를 한껏 모아 들떠 있었는데, 얼마나 기다렸는지 빨리 선물을 건네주고 싶어서 참을 수 없는 것 같았다. 뫼비우스는 얇고 넓찍한 판 같은 것을 포장한 선물이 분명 그림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세오의 바로 옆에서는 코스마가 말없이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기가 불편한 듯 느리게 흔들리는 꼬리를 보아 아마 그리세오가 졸려할 정도로 늦은 시간에 파티를 하는 것이 불만인 거겠지. 자기도 꼬맹이인 주제에.


점심쯤에 반죽음으로 실려 들어와선 나갈 때는 멀쩡히 두 발로 걸어 나갔던 화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렇게 깁스를 하고 있으라고 했는데도 그 몇 시간 새 풀어버린 게 분명했다. 뫼비우스는 화가 대다수 사람들처럼 자신을 불편해해 가능한 피하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물만 보내지 않고 굳이 자리에 나온 것은 분명 연구실의 다른 사람들과 친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와나 복희 자매, 그도 아니면...


"...저, 박사님. 그게..."


무표정하게 관조를 마치자, 뫼비우스의 표정을 관찰하던 클라인이 점점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웃으려고 했지만 얼굴 근육이 마음대로 찌푸려졌다. 어째선지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 목이 메기 때문임을 깨닫기도 전에 뫼비우스는 클라인을 꽉 껴안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기에, 뫼비우스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다들... 고마워. 정말... 기뻐."


"뫼비우스 박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에 품 안에서 클라인이 긴장을 풀고 헤헤 웃는 것이 느껴졌다. 옆에서 엘리시아가 꺄꺄 호들갑을 떠는 소리가 들리고, 아포니아는 그녀를 무시하고 하나 둘 하고 생일 노래의 전주를 준비했다.


째깍거리는 시계는 벌써 9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뫼비우스는 그것이 더이상 아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