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믿기 어렵지만……



침식의 율자는……이미 탄생했어.



게다가……이 「안내 로봇」에서 태어나다니.



가장 어려운 연결 과정은 이미 끝났다. 레이븐은 다시 지하실의 전등을 킨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지. 이 기계에는 기계의 의지는 없고, 「확산」하려고 하는 욕망을 가졌단 걸――지금 연결되어 있는 나는 느낄 수 있다.



나는 율자의 선결 조건이……「인간」.



혹은 「사상」이라고 생각했거든?



그 범위를 확정하는 건 아주 어려워. 최소 인간 어린이와 비교하면 지금 이 기계는 분명 더 독립된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지――그래봤자 어린이에 비해서지만.



그리고 이 또한 인류의 가장 큰 「행운」이기도 하지.



저게 정지된 실험실 안에 계속 남아서, 아무 행동 없이 꾸물대는 건……지금도 「어려서」라는 거야?



아무리 「침식의 율자」라도 갓 태어난 「아이」일 뿐이다.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어떻게 「실천」할까 정하진 못 한다;

「성장」할 기회도 없어서 권능과 힘이 매우 허약하거든.



아마……지금까지 이 율자가 가장 많이 시도한 것 역시 「백업」이 전부겠지.



물론 어떤 더 높은 차원의 「경로」를 통해 세 조직의 「포위망」을 눈치채서 경거망동 못 한 걸 수도 있고.



요컨데 이 정지된 실험실에서 저것이 지금까지 「백업」 시도를 한 것도 단지 똑같은 네크워크 설비가 없어서 그런거지.



추적할 수 있겠어?



회색뱀은 자신의 뇌를 가리켰다.



다 여기에 있다.



그는 천천히 기계 번호와 유형을――말했고 레이븐은 말없이 펜으로 종이에 기록한다.



기록하는 동안 농담, 쓸데없는 이야기는 안 나왔다. 일찍이 여러 번 협력한 두 「오랜 친구」는 서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이걸로 마지막이군.



레이븐이 다시 숫자와 번호를 확인했다.



음, 다 맞군.



저게 율자의 또 다른 「백업」이 아니라……「본체」라고 확신해?



확신할 순 없다.



하지만……「바깥」의 모든 침식은 저것에서 나왔고, 「안」의 부분은 나도 못 봤다.



침식의 율자가 「현실」을 초월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기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말이지



그런데 그게 정말로 가능할까?



만약 정말로 맞다면, 적어도 이번 임무에선 우리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사실대로 보고하지.



다음으로 리스트에 있는 설비를 찾아내고――소각시킨다.



그래. 하지만 「수단」에 신경써라.



우리가 작전을 하기 전에 상상했던, 최악의 「가능성」 기억하나?



……만약 우리가 한 발 늦었다면, 안내 로봇 소각 작업은 한참 전에 시작됐겠지.



그럼 그 순간, 침식의 율자는……「죽음」이 뭔지 이해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러고서――「살려는」 의지를 얻게 된다.



살려고 하는 집념은 가장 두려운 힘이거든――지난 번 강림 때, 숙주인 그 여자 아이가 생명의 끝에서 「절망」과 「분노」를 체득한 것처럼.




좋아. 이제……네가 끝내야할 작업이 남았군.



이번에 온 사람이 너라서 정말 다행이야.



내겐 「마지막 한 걸음」이지.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회색뱀이 웃었다. 적어도 레이븐이 그가 웃는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옛날 인류가 어떻게 침식의 율자에게 이겼는지 알고 있나? 그들은 마지막에 그것을 「검은 상자」 안에 봉인했다.



그리고 이번 「검은 상자」가……네 눈앞에 있지.



아쉽네……만약 네가 평생 네트워크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도 다른 방법이 있을 지 모르는데.



하하, 이제 됐어. 그게 발현된 것으로――자랑은 아니지만――나는 이렇게나 완벽한 몸을 얻었다고. 뒷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만.




그래 꺼내라고. 황천의 지팡이를.



이별할 시간이군, 오랜 친구여.



일단 말해둔다만……



……나도 「죽을 생각은 없어」.



그리고 아무 소리 없이 고요했다.



적막함 속에서 어떠한 소리도 새지 않았고, 어떠한 사람도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다.




거기 있는 녀석――가기 전에 나한테 인사할 줄 알았는데.




당신이 슬픔 속에 더 잠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자식 말야? 너랑 관련 없잖아.



그렇다면, 일찍이 이곳에서 당신에게 피해를 입은 발키리도 저와 관련이 없을까요?




나와 결판 내려고 찾아온 거야?



물론이에요. 단지――지금이 아니고, 당신이 상상하는 방식도 아니지만.



……그럼 「고맙다」고만 말할게.



천만해요. 어쨌든 세상의 매우 많은 현실들은 모두 사람의 상상을 뛰어 넘으니까요.



아무튼……이번 일은, 천명은 당신들이 율자를 억제해낸 공헌에 감사드립니다. 나타샤 양, 다음에 뵙죠.



살짝 드러난 기척은 완전히 사라졌다.



레이븐은 조금 짜증이 났다――만약 평소의 자신이라면 분명 그 여자에게 이렇게 휘둘리지 않았을 것이다.



레이븐은 묵묵하게 섰다. 그녀는 오늘 일어난 모든 걸 자세히 음미한다――소화가 끝난 정신의 잔재를 햇볕이 닿지 않는 마음 한 구석에 조용히 묻어둔다.



몇 년 된 직업 경험으로, 그녀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방금 흥이 깨지는 일을 겪어선지 의외의 한 마디가 점점 가라앉던 기억 속에서 갑자기 뇌리에 떠올랐다.



「침식의 율자가 "현실"을 초월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기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말이지」



「하지만 그게 정말로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