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작품과의 크로스 오버물이며 실제 인물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음을 알립니다.





저마다의 하루가 끝나고 사람들이 돌아갈 길을 재촉할 무렵, 그 식당의 하루는 시작된다.


톤지루 정식 600엔

맥주(대) 600엔

청주(2홉) 500엔

소주(1잔) 400엔


주류는 인당 석잔까지


메뉴는 이것 뿐.

그 외엔 원하는 것을 주문할 때 만들 수 있는 한 만드는 것이 가게 주인의 방침이다.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사람들은 심야식당이라고 부른다.


손님이 오는가 묻는다면


"꽤 많이 오는 편이지."



"안녕하세요, 마스터!"


미닫이문이 열리며 주황색 머리카락에 작은 요리모자를 쓴 미인이 들어오며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다.


"여, 키아라. 오랜만이군."


마스터는 대번에 그녀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타카나시 키아라.

우연히 심야식당에 방문했다가 맺은 연 이래, 홀로라이브의 아이돌로 데뷔한 그녀는 발걸음이 꽤나 뜸해졌었다.

데뷔한 이후 한참 지났으니 마스터도 꽤나 오랜만에 맞은 셈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 키아라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서, 키아라보다 신장이 조금 더 큰 분홍 머리카락의 미인이 들어왔다.

인상은 무뚝뚝해보이고, 걸친 옷은 가끔 마스터가 장을 볼 때 신주쿠 거리에서 보던 코스프레를 하던 이들의 모습을 상기할 정도로 화려했다.

머리에는 작은 왕관과 투명한 베일, 이건 또 우리 식당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손님이군 하고 마스터는 무심코 생각했다.


"동기인 칼리에요. 모리 칼리오페."

"안녕하세요."


칼리는 무뚝뚝한 인상 그대로, 제법 굵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이윽고 정면 카운터석에 앉은 키아라가 방긋 웃었다.


"마스터, 파인애플 피자 주세요."

"여기 그런 것도 있어?"


키아라의 말에 메뉴판을 보던 칼리가 그렇게 물었다.


"메뉴엔 저렇게 밖에 안 쓰여있는데, 먹고 싶은 걸 얘기하면 만들어주거든. 재밌는 가게지?"

"흠……."

"칼리 너도 뭔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봐. 마스터는 재료가 없어도 대용품을 써서 비슷하게도 만들어주니까."


키아라의 말에 칼리는 조금 궁리하는 듯 하다가 이내 마스터를 바라봤다.


"그럼 낫토 주먹밥 주세요."

"낫토, 먹을 줄 아는가봐?"


마스터가 묻자 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 자주 먹었어요. 작은 시정촌이 첫 발을 내딘 곳이었거든요."

"호오."


마스터는 잠시 뒤에 키아라가 시킨 파인애플 피자와 칼리가 시킨 낫토 주먹밥을 내놓았다.

마스터가 한 방식은 꾸덕하게 밥을 비빈 뒤에 속에 멸치를 넣고 모양을 낸 것이었는데, 칼리는 별다른 감상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게 썩 마음에 들기는 한 듯 조용히 집어서 먹고 있었다.

평소 하와이안 피자를 자주 시키는 키아라도 약간 관심을 보였다.


"그거 맛있어, 칼리?"

"나쁘지 않아. 낫토는 밥에 잘 어울리니까."

"저기 마스터, 피자에도 낫토 넣을 수 있어요?"

"뭐?"


칼리의 말을 듣고 키아라는 뭔가 호기심이 동했는지 그렇게 물었다.

옆에서 듣던 칼리가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스터는 안 될 건 없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파인애플 토핑은 못 얹을텐데."

"괜찮아요. 다음 피자는 낫토 넣어서 주세요."


무슨 그런 주문을 하느냐는 눈빛이었지만 칼리는 딱히 그걸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마스터는 또 제법 그럴듯하게, 낫토를 토핑으로 해서 피자를 내놓았다.


"통상 피자와 같은 방법으로는 제대로 구울 수 없어서, 다른 토핑도 바꿔서 넣었어."

"마스터, 역시 센스 좋네요. 칼리 너도 먹어봐."

"……그럼 한 조각만."


동기가 권하자 그걸 거절할 수는 없었는지 칼리는 일단 한조각을 받아서 먹었다.

생각외로 맛있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어? 하는 감탄사를 내뱉는 칼리를 보면서 키아라는 씩 웃었다.



"낫토 주먹밥이랑 피자요."


며칠 뒤에 칼리는 혼자서 식당에 왔다.

미닫이문을 열면서 바로 그렇게 주문을 하자, 마스터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곤 먼저 주먹밥을 만들어내줬다.


"오늘은 구운 주먹밥으로 해봤어."

"고마워요."


서비스로 함께 내놓은 톤지루(소)와 함께 낫토 주먹밥을 음미한 칼리는 이윽고 마스터가 내준 낫토 피자를 받아들고 씩 웃었다.


"의외로 맘에 들었나보군."

"처음 키아라가 시켰을 땐 무슨 주문을 하는건가 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맛있더라구요. 거기에……."


한 조각을 집어 먹고 칼리는 씁쓸하게 웃었다.


"문득 내가 초심을 잃은 건 아닌가 해서."

"초심?"

"일본에 오기 전 하던 일이 있었는데, 너무 과감하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상사랑 싸우는 게 일상이었거든요. 록이나 헤비메탈 같은 걸 좋아하기도 해서, 기존의 일을 관두고 음악계 일을 하겠다고 몇 번이고 부딪치기도 했었고. 생각해보면 내가 아이돌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런 과감성 덕분이었는데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좀……."

"살다보면 그런 때도 있는 거지."


첫 인상은 무뚝뚝하다는 느낌이었지만, 바꿔 말하면 그건 또 어른스럽다는 의미가 되기도 했다.

마스터는 그런 칼리의 성격이 썩 나쁘진 않았다.


"결국 폭발한 상사랑 대판 싸우고 거의 어거지를 쓰면서 일본에 오게 됐는데, 생각했던 거랑 다른 것들이 앞을 가로막았던 게 여러모로 심적인 부담이었죠. 의식주 뭐 하나 제대로 건사하기 힘들었던 때였어요. 길거리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걸 안타까워한 노부부가 당분간은 자기들 집에서 지내라고 날 들여줬죠. 넉넉한 곳은 아니었지만, 식단엔 꼭 밥과 낫토, 된장국은 올라왔어요."

"호오."

"암만 먹을 게 부족하대도 이것만 있으면 최소한 버틸 수는 있다. 덕분에 며칠동안 끼니 걱정은 없었죠. 그래도 매일 같은 건 질려서 내 나름대로 낫토로 이것저것 해서 먹어봤는데, 비벼서 만든 주먹밥이 제일 평가가 좋았어요."


그렇게 말한 칼리는 마지막 낫토 피자 조각을 먹고는 방긋 웃었다.


"다음에 거기 가볼 일이 있으면 이 피자도 한 번 먹여줘보고 싶네요."

"레시피, 가르쳐줄게."


마스터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칼리는 그 이후로 나름 단골이 되었지만 어느 순간 발길이 뚝 끊겼다.

안부를 알게 된 것은 칼리를 데려온 날 이래 스케줄이 바빠서 오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온 키아라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칼리, 지금 근신 중이에요."

"근신 중?"

"SNS에서 악플을 달던 빌런들이랑 대판 싸웠거든요. 그게 하필 다른 팬덤도 자극해버려서 시끄러워진 탓에……."

"칼리도 심한 소리를 했던 건가?"

"칼리는 록이나 헤비메탈을 주로 하는데, 그래서 입담이 많이 거친 편이에요. 거기에 의리나 우정 같은 걸 중시해서 자기랑 가까운 친구들이 좋지 않은 일을 당하면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어버려요. 이번 일도 친구 한 명이 악플을 받은 것 때문에 칼리가 이성을 잃은 탓에……."


키아라는 그것이 꽤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그래도 칼리의 거취에 대해선 알고는 있었는지, 다른 동료들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낫토로 만든 요리를 몇 인분 포장해서 갔다.



칼리가 다시 발걸음하게 된 것은 키아라에게 이야기를 듣고 다시 2주가 지나서였다.


"낫토 주먹밥이랑 피자요."


미닫이문이 열리면서 오랜만에 온 칼리는 한 남자와 함께 있었는데, 칼리보다 더 큰 키에 검은 코트와 후드로 몸을 감싼 해골 가면을 쓴 남자였다.


"전 일터의 상사에요."


자리에 앉자마자 칼리가 그렇게 말했다.


"대장, 뭐 주문하실래요? 여긴 부탁하는 건 어지간하면 만들어주거든요."

"그럼 이 녀석이랑 같은 걸로 주시오."


전 부하의 말에 전 상사는 팔짱을 끼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서로 닮은 꼴이군, 하고 마스터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주문을 받았다.


"하여간 제 성질 못 참는 건 여전하구나."

"그게 저잖아요."

"주변에 폐를 끼치는 건 그렇다쳐도 너 스스로 곤경에 빠지면 어떻게 하냐? 소식을 들었을 땐 도로 일터로 끌고가려고 했다."

"그럼 또 마더퍼커 홀리 쉿을 연발했겠죠."

"그놈의 반골 성질, 대체 누굴 닮은 건지."

"부하는 상사의 거울이라잖아요?"


말투는 험악하고 신랄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덕인지 칼리는 꽤 재밌다는 듯이 말을 받고 있었다.

이윽고 음식이 나온 뒤, 상사는 칼리와 같은 것을 먹어보고는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괜찮죠?"

"먹을만은 하구만."


그 뒤론 조용히 식사를 하던 둘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다시 말을 주고 받았다.


"늘 얘기했던 거지만 성질을 좀 죽이는 법을 배워라. 전부가 일터에서처럼 그걸 받아주는 건 아니야."

"네, 주의할게요."

"퍽이나. ……신곡은 잘 들었다. 전에 날 설득한답시고 했던 그 노래였지?"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요."

"수틀리면 끌고 오려고 계속 모니터링하는 중이었어. ……가끔은 와서 공연도 좀 하고 그래라. 일터 녀석들도 네 귀향을 기대하니까."

"………."

"힘든 일 있으면 앓지만 말고 언제든지 와. 네 원래 있을 곳이잖냐."


칼리는 잠자코 있었지만, 고개를 슬쩍 돌리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는 걸 마스터는 확실히 봤다.


"칼리, 좋은 상사를 뒀었구나."

"뭐래요."


마스터의 덕담에 칼리는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입가는 확실히 올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