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https://arca.live/b/holopro/95688014

2화 : https://arca.live/b/holopro/95780406

3화 : https://arca.live/b/holopro/95862565

이전 화 : https://arca.live/b/holopro/95944840



검은 페도라, 선글라스, 검은 수트, 검은 구두.


그야말로 온 몸을 새까맣게 덮은 두 남녀가 발소리를 숨기며 조심스레 한 식당 앞에 몸을 숨긴다


- 수근 수근


물론 백주 대낮 거리 한 가운데에 척 봐도 수상해 보이는 복장을 한 사람이 척 보기에도 수상한 행동을 하니 이목을 끄는 건 당연한 이치였지만.


"여기는 코드 네임 옐로 치킨. 블루 펭귄, 조사에 진척은 있는지."


"여기는 블루 펭귄. 두 목표 모두 사이좋게 이 식당 안으로 들어간 듯 하다."


"확인했다.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며 잠행 하도록."


바로 옆에서 무전을 주고받는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그저 미행에는 이런 복장이 당연하겠지 여길 뿐.




"긴급 상황! 긴급 상황!"


부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자 느긋하게 커피를 내리던 아오씨가 날 반겨 주었다.


아니, 아오씨만.


"다른 사람들은요? 오뎅쨩이랑 샤쵸선배는!?"


"리리카랑 라덴? 리리카는 풍기위원 일이 있어서 늦는다 했고, 라덴쨩은 볼일이 있다고 먼저 집에 간다던데?"


중요할 때만 쓸모 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나마 똑똑한 두 사람은 없고 부실엔 부실한 머리를 가진 아오씨 뿐이라니!


밀어닥친 시련에 혼자 머리를 쥐어 뜯고 있으니 아오씨가 커피 잔을 내밀었다.


"괜찮아? 커피 마실래?"


"지금 커피나 마실 때가 아니라고요!"


향이 좋다.


저번에 아오씨가 직접 공수 해왔다던 안티구아 커피를 내린 모양이었다.


한 모금 입 안에 머금으니 부드럽고 무거운 바디감에 끝 맛은 살짝 스파이시함이 도는 게 확실히 고급 커피라는 느낌이 들었다.


저번에 가져왔던 예가체프도 좋았지만 이런 풀 바디... 아니 잠깐...


내가 왜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음미하고 있는거지?


"난츄콧타;"


아오씨가 나를 보고 싱긋 웃더니 읽던 잡지 페이지를 접어 덮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급하게 뛰어와?"


급한 일?


아!


"하지메가! 하지메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하지메가 다른 남자랑 데이트 하는 모습을!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지메가 다른 사람이랑 결혼해 버린 다거나 하면!"


"하지메쨩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니겠어?"


이래서 머릿속이 파란 사람이랑은 대화가 안 된다니까!


"제 눈앞의 행복도 놓치게 생겼는데 남의 행복을 보면서 안주 해서야 되겠어요!?"


"하지만 타인의 행복을 빌어 주는 게 친구잖아?"


으으. 평소에는 머릿속 꽃밭에서 뒹구는 주제에 이럴 때만 정론으로.


포기해야 하는 걸까.


하지메의 행복을 위해. 나의 행복을?


아니, 난 쟁취 하겠다. 하지메의 행복을 빼앗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고 나의 행복으로 그 빈자리를 가득 채워 주겠다.


나는 이 순간 부로 NTR물의 주인공이 된다.


"아오씨."


"응?"


다행히도 이런 부류의 전문가 같아 보이는 사람이 바로 눈 앞에 서 있었다.


얼굴 하나 만으로도 여자 여럿 울렸을 법한 아오씨다. 분명 방법이 있을거야.


분명 정답을 알려 줄거야. 아오씨는 사실 보이는만큼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까.


"하지메의 마음을 저한테 돌린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물음에 아오씨는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만지작 거렸다.


그러다 눈을 감고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더니


"미행하는 수밖에."


역시 아오씨는 이상한 사람이 맞다.


"자. 카나데쨩도 이거 입어."


하지만 거절 하기에는 너무 멋진 옷이었다.




하지메와 그 남자친구를 따라 들어간 곳은 모든 것이 굉장한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특히 어떤 점이 대단했냐고 하면.


"히에에! 고작 고기덩어리 구워둔게  8만원이라고!"


가격이 대단했다.


20.1세 카나데에겐 그나마 지불할 수 있을 정도의 가격이었지만 홀로 고교의 카나데에게는 달랐다.


"쉿. 들키겠다 조용히."


그래. 지금은 이런 거 하나 하나에 놀랄 때가 아니니까.


나는 테이블 위에 최대한 납작 엎드려 하지메 쪽을 염탐했다.


테이블 위에 첫 코스의 요리가 놓였다.


그걸 본 하지메가 신이 나선 포크랑 나이프를 집는데.


"크읏! 그게 아냐! 제일 바깥쪽 샐러드 포크부터 집어야지!"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훈수를 하고 싶었다. 마치 어디를 긁어도 시원해 지지 않는 뒤꿈치 어딘가가 가려운 느낌이었다.


"자 하지메. 식기는 바깥 쪽부터 사용하는거야. 이건 샐러드용. 이 스푼은 전채 수프용이고."


그렇지! 잘 한다 그거야!


남자 친구 쪽의 훈수에 없던 가려움증까지 싹 풀린 느낌이었다.


"으응. 쟐 모드곘는뎨."


그러나 여전히 모르겠다는 하지메.


"자 봐봐."


남자의 커다란 손이 조그마한 하지메의 손을 잡아 리드하기 시작했다.


"저 녀석!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카나데쨩 쉿! 쉿!"


저렇게나 간단히 보디 터치를 이끌어 낸다니. 아무래도 내 상상 이상의 고단수인 모양이었다.


과연 내가 무사히 하지메를 NTR해올 수 있을까?


그렇게 한참 손을 맞대다 요리를 한입 집어먹은 하지메.

요리가 꽤 입에 맞았는지 볼을 발갛게 띄우며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하고 끊어졌다.


- 쿠당탕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가자 그 반발력에 앉아있던 의자가 튕겨 바닥을 굴렀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주변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메와 남자 쪽도 나를 바라봤다.


"하지메. 할 말이 있어."


"어... 가치 스파이 뇰이 하댜고?"


"아니."


막상 하지메의 앞에 서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멋진 고백 멘트로 단번에 함락 시키려 했는데.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번졌다.


이 때를 위해 구상해둔 멋진 말이 한 가득 있었는데. 머릿속이 아오씨처럼 텅 비어버렸다.


그래도 말해야만 했다. 


"좋아해."


그래서 말했다. 쏟아냈다. 


"으, 응...?"


"좋아해. 네 모든 점이 다 좋아."


빈 머릿속을 대신해 가슴속에 담겨있던 걸 꺼내 보였다.


"네 혀 짧은 발음이 좋아. 단발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게 좋아. 나보다 키가 커서 좋아. 눈동자가 예뻐서 좋아. 재채기 하고 머쓱해 하는 모습이 좋아. 맘에 안드는 게 있을 때 살짝 찡그리는 얼굴이 좋아. 펑퍼짐하게 입는 옷 스타일이 좋아. 가방을 멜 때 어깨끈을 양 손에 꼭 쥐는 모습이 좋아. 목젖이 보일 정도로 크게 하품하는 모습이 좋아. 노래 할 때..."


계속해서 속에 있는 말을 게워냈다.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말에 하지메의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터질 듯 새빨개졌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 했는데. 하지메의 좋아하는 점은 산 만큼이나 남아있으니까


"그, 그만! 알겠으니까..."


내 마음이 제대로 전해졌는진 모르겠다. 하지메에게도. 저 남자에게도.


그래도 당황한 듯 몸을 빼는 남자의 모습을 보니 어느 정도 속이 시원해졌다. 아니면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해서 그런걸지도.


남자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팔을 세워 반격할 자세를 취했다.


자기 여자친구에게 대놓고 추파를 던졌으니 곧바로 덤벼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좋아 덤벼 보라고. 이 쪽엔 아오씨가 있으니까.


"미안 하지메. 내가 눈치 없이 끼어든 모양이네. 공부는 다음번에 마저 하자. 그럼!"


"엥."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도망치듯 레스토랑에서 뛰쳐 나갔다.


이긴... 건가...?


"남자 친구... 아니야...?"


하지메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냐고 물어본 말에 고개를 저었으니 부정의 부정으로 남자 친구가 맞다는 얘기겠지?


"샤촌 오빠야. 가죡 행사가 이써서 예졀교유글 해야 한댜고..."


난츄콧타;


- 띠링!


그와 동시에 익숙한 알림창이 눈 앞에 떠올랐다.


리글로스 전원을 함락 시켜라!

리글로스 멤버 전원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 하셨군요!

모든 임무를 달성한 당신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허리춤에 무언가 감겨 들어왔다.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하지메가 붉어진 얼굴을 부비며 이쪽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러케까지 말햐니 바, 바댜쥴게..."


리글로스 멤버 전원에게 원래 세계로 돌아가겠다 얘기 하세요!

그리고 모두를 설득해 동의를 얻어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