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초,동유럽의 소국 알바니아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해있었다.


천하의 개쌍놈 엔베르 호자
그 이유는 과거 알바니아를 수십년간 통치한 콩사탕 독재자 엔베르 호자가 매우 극단적인 쇄국정책을 했기 때문이었다.호자는 흥선대원군이 울고갈정도로 소련과도 미국과도 척지고 오로지 스탈린주의로 나라를 철권통치할 궁리만했고,결국 그의 재임기간동안 알바니아의 경제는 추락을 거듭했다.


결국 1980년대 후반,알바니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700달러대까지 추락했고 알바니아는 아프리카의 빈국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파탄국가가 되었다.그 결과,1991년에 분노한 알바니아 국민들이 호자의 동상을 무너뜨리면서 민주화와 개혁개방을 요구했고,결국 자유선거가 실시되며 알바니아는 드디어 쇄국에서 벗어나게 되었다.하지만 알바니아는 50년가까이 공산주의 쇄국정책을 펼쳤고,그결과 개방 이후에도 자본주의를 제대로 아는사람이 없어 알바니아 경제는 더 악화되었고, 1인당 국민소득이 240달러까지 추락했다.결국 개방 1년후인 1992년에도 알바니아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했던것이다.


알바니아 민주당의 로고
그래서 당시 집권당이었던 알바니아 민주당은 경제전문가들을 불러오기로 했다.


하이딘 세이디야
민주당은 곧 하이딘 세이디야라는 경제전문가를 불러왔다.알바니아에 온 세이디야는 바로 회사를 설립했다.그리고는 알바니아인들에게 고수익을 보증해준다며 이 회사에 투자해줄것을 요구했고,알바니아 정부에게 곧 부를 안겨주겠다고 큰소리쳤다.
.....뭔가 불길하지 않은가?



그렇다.세이디야는 사실 사기꾼이었다.그는 간크게도 알바니아 정부를 속여 다단계 사기를 치려한것이다.물론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것이 사기라는것을 바로 알아채고 이새끼를 구속하거나 추방했겠지만,


알바니아의 버려진 벙커
이미 쇄국이 반세기정도 지속되어서  자본주의나 다단계사기라는 개념이없는 알바니아 정부는 전문가가 그렇다하면 그런건가보다하고는 다단계 회사 설립을 말리지않았다.
또,이미 끔찍한 빈곤을 겪던 알바니아인들도 세이디야의 고소득 보장이란 말에 현혹되어 그의 다단계회사에 아낌없이 돈을 넣었다.물론 IMF가 이게 사기라고 귀띔해주기는 했지만 너무나순진했던 당시의 알바니아인들은 고소득이란 말에 현혹되어 IMF의 진심어린 충고를 무시했다.


그리고 알바니아 전역이 다단계에 속아넘어가는걸 본 다른 사기꾼들과 범죄자들이 알바니아로 몰려가 똑같이 다단계회사를 차렸고,옆나라 이탈리아의 마피아들까지 가담했다.방송국,식품회사등의 건실한 기업들도 자금을 불리기위해 이 다단계사기에 뛰어들었다.그들이 세운 다단계회사들은 알바니아인들의 종잣돈으로 운영자금을 획득했고,심지어 발칸반도에 무기를 밀수하기도 했다.다단계회사들은 이 운영자금을 써서 민주당에 뇌물을 주며 민주당의 비호를 얻었고,민주당이 다단계회사들을 밀어주는걸 본 알바니아인들은 더더욱 다단계회사들을 믿게되었다.


출처:https://newsis.com/view/?id=NISX20190609_0000675088
다단계사기가 늘 그렇듯,이 다단계회사들은 처음에는 알바니아인들에게 약속한 고수익 배당금을 주었다.그러자 알바니아인들은 정말 약속한 배당금이 돌아오니 열광해 더많은 돈을 투자했고 심지어 정부 고위관료들도 다단계회사에 거액을 투자했다.1997년이 되면 이 다단계회사들에 알바니아인의 3분의2가 투자하고있었을 정도이다.

이 국가단위 다단계사기덕에(?) 알바니아는 1993년부터 96년까지는 연 8%이상의 고성장을 이루었다.(다단계회사들이 이때까지는 배당금을 주었기 때문에)
게다가 이때 옆나라 유고슬라비아에서 내전이 벌어져서 다단계회사들은 유고에 무기를 밀매해 큰 이득을 보았고,무기밀매자금으로 97년까지는 다단계회사들이 유지될수 있었다.그 결과,알바니아인들은 97년 1월까지는 고수익 배당금을 받을수 있었고,국민소득이 240달러에서 1000달러까지 상승했다.알바니아인들은 이때까지만해도 미래가 희망스러웠을것이다.하지만 평화로운 성장을 하던것처럼 보이던 알바니아에 차디찬 폭풍이 찾아오고있었다.


1997년이 되자,유고내전이 종식되며 다단계회사들의 주 자금원이던 무기밀매가 불가능해졌다.그러자 다단계회사들의 수뇌부들은 곧바로 그동안 모아온 자금들을 가지고 도망쳤고,곧바로 알바니아의 다단계회사들은 연쇄도산했다.순식간에 알바니아 국민 과반수가 알거지가 되었고,공장과 은행도 다단계회사에 투자했다 파산하며 수십만명이 실업자가 되었다. 1997년 1월 말이 되자,알바니아 경제는 사실상 파산했다.


당시 MBC에서 방영한 알바니아 위기.
https://imnews.imbc.com/replay/1997/nwdesk/article/1764697_30717.html 여기서 볼수있다.

그리고 순식간에 알거지가 되어 분노한 알바니아 국민들은 폭동을 일으켜 알바니아 민주당 심판을 주장했다.1월 24일에는 내무부를 제외한 정부청사가 시위대에게 점령당했을 정도로 큰 폭동이었다.이 폭동은 특히 피해가 큰 남알바니아에서 가장 심했는데,2월 말엔 시위대가 공무원과 민간인을 살해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파사 리만 기지
3월에는 사태가 더욱 심각해졌고,남부는 사실상 유럽판 북두의권이 되고말았다.심지어 파사 리만 군사기지가 시위대들에게 점령당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정도이다.


이런 사태를 초래했으니 수습해야할 의무가 있는 알바니아 민주당은 아몰랑을 외치고 시위대에게 무차별폭격을 할것을 지시했고,이에 경악한 조종사들은 전투기를 타고 탈주해 이 미친 지시를 폭로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한 알바니아 국민들은 북부에서도 폭동을 일으켰고,알바니아 전역은 군벌과 마피아,시위대가 지배하는 상황이 되었다.이때 알바니아 군기지들이 대거 함락당했고,수백만정의 총기와 지뢰가 탈취당했다.무기들을 탈취한 시위대는 공산당 복귀,민주정 유지등을 주장하며 분열해 서로 내전수준의 전투를 벌였고,심지어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시위대도 있었을 정도이다.


결국 알바니아 정부는 무너졌고,살리 베리샤 대통령이 조기총선과 군대철수를 할테니 제발 폭동을 멈추라 호소했다.때마침 미군과 터키,독일,프랑스 등이 상황을 보다못해 군사개입을 하며 치안을 유지시켰고,알바니아 위기는 간신히 진정되었다.


1월부터 4~5월까지 벌어진 알바니아 위기로 알바니아는 38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2억달러의 재산피해가 발생했으며 1997년 경제성장률이 -10%대를 찍었다.게다가 정부에 대한 불신풍조가 생겨났고,치안이 악화되었다.다행히 이후 알바니아에는 이사건같은 유혈사태나 대형폭동은 없었으나,이사건은 한동안 알바니아의 발목을 잡으며 알바니아의 위신을 크게 떨어트렸다.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민주당은 조기총선에서 당연히 대참패했고 한동안 알바니아에서 위세를 잃었다.2000년대에 다시 권력을 잡았으나,2013년에 사회당에게 패배하며 다시 권력에서 내려와야했다.


하이딘 세이디야는1997년에 알바니아인들의 전재산을들고 해외로 튀어버렸고, 아직까지도 사업가행세를 하며 떵떵거리면서 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