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천천히 이동해 간다. 아직 쌀쌀한 아침의 바람이 유리창 열린 틈으로 흘러들어와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선생님이 돌아보고 설명했다.


"여러분은 내년부터 사회로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아, 그래.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내가 설명하지 않은 모양이다. 슈퍼스타지오에는 대학교가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곧바로 사회에 투입된다. 그렇기에 나는 내년이면 사회인이 된다. 선생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디라고 했죠? 수영아, 설명해 볼까?"


하필이면 내가 걸렸다.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대 슈퍼스타지오 공화국의 위대하고 존엄한 세계수도 하이퍼폴리스입니다."

하이퍼폴리스! 젠더 전쟁 이후 전 세계를 장악한 슈퍼스타지오의 명실상부한 최대 도시이자 가장 발달한 곳이다. 원래 여성당은 정책으로 그곳의 땅값을 잡으려고 했지만, '남성들 때문에', 사실 남성들은 노예라서 경제력도 없고, 평생 3D업종에 강제로 투입되어 안전장비나 봉급도 없이 일하다가 소모되는 존재라서 부동산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전혀 없지만 아무튼 여성당이 주장하기로는 '남성들 때문에' 땅값이 올랐다.


그래서 여성당은 그냥 개인의 부동산 소유를 금지해 버리고 부동산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일부 부동산 부자들이 저항하자 여성당은 그들을 '부의 재분배를 막는 적폐 세력'으로 몰아 모조리 체포해서 태평양에 처박아 버렸다. 땅이 없던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속 시원하다고 박수를 쳤다. 후폭풍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른다. 알려진 게 없으니까.


그 때 선생님이 잠시 휴대전화를 잡고 통화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돌아서서 우리에게 말했다.


"자, 여러분, 모두 창문을 닫아 주세요.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중국발 미세먼지. 베이징에서부터 홍콩에 이르기까지 중국 해안선 전체에 전 지구의 어떤 산업 단지보다도 더 큰 규모의 메가 인더스트리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먼지와 매연은 하와이까지 뻗는다. 지구에 존재하는 물건과 기구의 70%가 그곳에서 만들어지니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미세먼지와 매연의 70%가 그곳에서 나오는 꼴이다.


우리는 모두 창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새카맣게, 마치 전등 아래의 모기 떼거지처럼 우르르 몰려오는 미세먼지들이 하늘을 덮기 시작했다. 저건 미세먼지가 아니야. 스모그다.

별 생각을 하지 않고 싶었다. 이미 생각은 충분히 머릿속에 꽉 차 있었으니까.


더 복잡한 것을 보고 싶지 않아 눈꺼풀을 내리고 자물쇠 잠그듯 잠에 빠져들었다.




[오고 있는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묻고 있었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야? 여기가 어디야?"


[오고 있는가?]


"당신 누구야?"


[질문했노라. 오고 있는가?]


뭘 오고 있느냐는 건지 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꿈이라는 게 원래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어딜 가야 하는데?"


[오고 있는가?]


잠깐, 생각해 보자. 나는 버스에 타고 있고, 하이퍼폴리스로 가고 있다. 아무튼 어디로 가고 있는 건 맞잖아. 저 사람이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는 내가 알 바가 아니다. 어디로 오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잖아?


"그래. 가고 있다."


[오고 있도다.]


갑자기 주변에 얼어붙는 듯한 냉기가 깔렸다. 내가 공포에 질려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만이 존재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오고 있도다!]


냉기가 순식간에 내 몸 전체를 휘감았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문어의 다리처럼 나를 움켜잡았다. 결빙하는 기운이 내 피부를 뚫고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내가 비명을 지르려고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버스가 정차하는 느낌이 내 눈꺼풀을 끌어올렸다. 내가 눈을 뜨고 흐리멍텅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냉기는 없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2시간이 지나 있었다. 인류에게는 타임 리프 스킬인 '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술력의 한계인지 아니면 우주의 법칙에 거스르는 건지 과거로는 가지 못하고 미래로만 갈 수 있다. 타임리프를 타고 2시간 뒤에 도착해 있어서 어리둥절해 있는 나를 포함, 모든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외쳤다.


"자,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화장실 다녀올 친구는 화장실을 다녀 오고, 매점에 들를 친구는 들러 주세요! 우리는 앞으로 20분 뒤에 출발합니다!"


출발하기 전에 다들 화장실은 들렀다 나왔으니 별로 급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그닥 마렵지 않았고 말이다. 귀찮아질까 봐 어제부터 물을 좀 덜 마셨으니까.


입이 심심한데. 초콜릿이 좀 당긴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셌다. 20일 동안 써야 하니까 마구 낭비하면 안 되는데. 다른 아이들도 초콜릿이 당기는 건지 일제히 지갑을 열어 돈을 꺼내더니, 남학생에게 주면서 말했다.


"야, 나 다크초콜릿으로 하나. 나 먹는 거 알지?"


"나도 다크로 해줘."


"난 밀크로 해줘."


"나도 해줘."


우리 반의 한 명뿐인 남학생 유현이에게 아이들이 하는 명령이었다.


노예로서의 삶을 실습하라는 명목으로 동갑내기들의 노예로 던져진, 슈퍼스타지오의 제도가 낳은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조유현. 뭐, 지구상 모든 학교의 모든 학급에는 또 다른 조유현이 존재할 테니 그다지 특출날 것도 없다. 사실 오히려 유현이는 복받은 인생을 사는 편이다. 대개 숫자, 사칙연산, 읽고 쓰기만 마무리하면 남성들은 게토(Ghetto)의 노예교육소로 가서 노예로서의 삶과 태도만을 주입받는다.


반면 이렇게 여학생들의 노예로 던져진 남학생들은 고등 교육의 혜택까지 받고 나서 사회에 나가며, 통상적인 노예들보다는 그나마 나은 환경에 배속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유현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뭐야?"


"주... 주인님도 뭔가 드시고 싶으신 게 있는 거 아니에요?"


그제서야 나는 내가 지갑을 열고 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자각했다. 내가 고개를 젓고 일어나서 직접 지갑을 쥐고 걸었다. 유현이가 내 뒤로 쪼르르 달려왔다. 내가 말했다.


"내가 언제 너한테 그런 거 시킨 적 있어? 왜 내가 먹을 걸 너한테 시켜?"


"하지만 전 노예잖아요. 그런 걸 시키라고 존재하는 거잖아요."


내가 잠시 그 불쌍하게도 세뇌된 남학생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슈퍼스타지오의 캐치프라이즈가 뭐지? 사회 시간에 배웠잖아."


"여, 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Girls can do anything)."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뭐하러 다른 사람한테 시켜?"


유현이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잠시 생각하다가 정정했다.


"방금 건 못 들은 걸로 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뭐하러 노예한테 시켜?"


"감사합니다. 주인님."


유현이가 공손하게 인사하고 매점으로 쪼르르 뛰어갔다.


내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화장실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왕 나온 김에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들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