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나치 독일의 해군인 전쟁해군 - 이른바 크릭스마리네 - 의 지휘관이었던 에리히 레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크릭스마리네는 대독일국과 국가 노동자당(나치당)으로부터 소외당하여온 사생아이다."


 그리고 그는 이후 지휘관 자리를 넘겨줄 두 후임자를 추천하고 물러남과 동시에, 히틀러에게 이하와 같이 애걸했다고 한다.


 "우리 해군을 루프트바페(공군) 대원수 헤르만 괴링으로부터 지켜주십시오."


 이는 헤르만 괴링이 크릭스마리네를 미치도록 괴롭혀 댔던 것에 기인한다. 크릭스마리네는 열심히 건함 계획을 세워왔다. 세계 최고의 항공모함 기술을 가진 일본으로부터 항공모함 기술을 엎드려 고개 처박고 빌어 받아와서 기어이 있는 힘을 다해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 한 척을 거의 완공했는데, 괴링은 당연히 해군 항공대 소속이어야 할 항공모함의 전투기들을 자기 공군에게 지휘하게 해 달라고 우겨 대서 지휘계통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끝끝내 거의 완공된 그라프 체펠린의 건조를 중단시키고 전투기로 그 예산을 돌리도록 했다.


 레더가 올린 보고서를 읽어 보던 히틀러가 잠시 헛기침을 하고 옆에 놓여 있던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크릭스마리네를 루프트바페에게서 지켜달라?"


 그가 보고서를 한 페이지 넘겼다.


 "후임자로는 롤프 칼스와 카를 되니츠라..."


 히틀러가 잠시 생각하다가 펜을 들어 카를 되니츠라는 이름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가 옆을 보며 물었다.


 "되니츠가 아마 잠수함을 좋아하는 친구였던가?"


 옆에 서 있던 장교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주야장천 잠수함대 건설을 요구하던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 수상함대가 딱히 없으니까, 잠수함에 걸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가 콧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카를 되니츠의 이름에 친 동그라미를 쓰다듬었다. 앞으로 카를 되니츠를 주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보다 열악했다. 나치 독일의 잠수함대는 고작 25척의 유보트밖에 없었으며, 그조차도 한 척은 전투가 불가능한 프로토타입에 불과했다.


 이제까지 카를 되니츠는 항상 이렇게 말해왔다.


 "300척의 유보트가 있다면 이 전쟁에 승리할 수 있다. 100척은 나가서 영국의 해안을 봉쇄하고, 100척은 해안에서 전투 준비를 위한 계획 수립과 훈련을 진행하며, 100척은 돌아와서 항구에 정박하여 승조원들은 휴식하고 어뢰와 식량을 보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나 영국의 해안 주변에는 100척의 유보트가 떠다니게 되며, 이로써 영국을 철저하게 말려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이른바 300척 이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10퍼센트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25척, 아니 사실은 24척의 유보트일 뿐이었다. 유보

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전함 2척(비스마르크급 전함 비스마르크, 티르피츠), 순양전함 2척(샤른호르스트급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 그나이제나우), 항공모함은 있지도 않았고 순양함과 구축함을 다 합쳐봐야 30척도 안 되었다.


 같은 시기, 세계 최강의 해군을 가진 영국은 전함만 23척, 순양전함이 3척, 항공모함 14척, 순양함과 구축함을 다 합치면 500척도 넘었다. 세계 3위의 해군을 가진 미국은 전함 9척, 순양전함 2척, 항공모함은 7척, 순양함과 구축함을 다 합치면 250척에 이르렀다. 당시 2위였던 독일의 동맹국,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을 파기하고 마구 군비를 증강했던 일본 제국은 전함이 8척에 1척을 건조 중이었고, 순양전함은 4척, 항공모함 12척, 순양함과 구축함을 다 합치면 300척을 상회했다.


 처음부터 독일이 이따위 껍데기뿐인 해군으로 전쟁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크릭스마리네 수뇌부에서는 Z계획이라는 해군 재건 계획을 수립시켜 뒀었고, 이 계획이 완료되면 영국의 절반 가까이 되는, 적어도 북해에서 한바탕 벌일 만한 해군력은 가지고 전쟁에 뛰어들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계획이 시작되고 3달 만에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보트가 좀 깔짝거리기 시작하자 영국은 대영제국 해군이 자랑하는 항공모함들을 북해에 잔뜩 깔았다. 만약 물 위에서 공기를 채울 때 전투기가 덤벼들면 유보트는 제대로 저항도 못 해 보고 기관총을 맞게 되는데, 보통 군함이라면 기관총 구멍 따위는 진드기에게 물린 것 같지도 않겠으나 잠수함은 이야기가 다르다. 잠수함은 아주 작은 상처라도 입으면 잠수할 수가 없다.


 보통 해군 제독이라면 여기서 “어떻게 하면 잠수함이 전투기에 안 들키게 할까?”라는 고민부터 할 것이다. 하지만 되니츠는 달랐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잠수함이 전투기에 안 들키게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전투기가 못 뜨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결론은 간단했다. 항공모함을 격침시켜 버리면 그만 아닌가.


 카를 되니츠는 유보트를 띄워 운 좋게 영국 해군의 커레이저스급 항공모함의 1번 함인 커레이저스 호에 어뢰 4발을 찔러넣었다. 그리고 커레이저스는 복구 불가능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어떻게 해서든지 항구까지만이라도 가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결국 영국 해안가 근처에도 못 가 보고 가라앉았다.


 물론 이 공격은 상당한 행운이 따른 도박이었다. 영국에는 아직 4척의 항공모함이 더 있었다. 그러나 되니츠는 항공모함 딱 한 척만 격파해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되니츠의 예상대로, 유보트에 의해 커레이저스를 잃자 경악한 나머지, 영국은 항공모함으로도 유보트를 상대하지 못한다고 오판한다. 그리고 곧 영국 해군은 이대로 두면 항공모함들이 다 유보트에 가라앉을 거라고 제멋대로 넘겨짚고는 있는 항공모함을 다 몰아서 대서양으로 빼 버렸다. 북해가 빈 것이다.


 700톤짜리 잠수함으로 30,000톤에 이르는 항공모함을 격파! 이것은 아주 엄청난 전공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들이밀며 되니츠가 히틀러에게 "이 정도면 충분히 잠수함의 위력이 증명되지 않았는가, 제발 크릭스마리네의 잠수함 전력을 증강하고, 연료를 많이 쓰더라도 한꺼번에 잠수함 여러 척을 내보내는 선단 전술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하자 또 괴링이 중간에 잘라 버렸다. 이 때 괴링이 한 말이 참으로 가관이다.


 "항공모함을 잠수함이 잡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이번의 일은 만 년에 한 번 나올 이변일 뿐이다. 반면 항공모함의 전투기만 다 떨어뜨리면 항공모함은 무력화된다. 이는 항공모함을 잡으려면 반드시 적 전투기를 잡을 우수한 우리 대 루프트바페의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며, 고로 항공모함을 견제하려면 잠수함대가 아닌 공군에 투자해야 한다."


 그러니까 짧게 말해서 "유보트가 세운 전공은 잘 모르겠고, 공군은 아직 항공모함을 격침시킨 적은 없지만, 아무튼 항공모함을 잘 잡는 것은 공군이므로 유보트가 아니라 공군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말을 들은 히틀러는 되니츠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유보트의 증산과 대량 투입 작전을 허가하지 않았다. 독재자의 아이러니였다. 되니츠는 몇 차례나 히트를 쳐도 히틀러에게 소외당하는데, 괴링은 사고만 치고 다니면서 히틀러에게 인정받는다.


 되니츠는 다시 한 건 크게 건져야 한다고 인식,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