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웬일로 부르셨습니까?"


 귄터 프린이 되니츠 앞에 섰다. 그는 유보트 U-47의 함장이었다. 또한 되니츠가 가장 신임하는 잠수함 에이스이기도 했다. 되니츠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하겠네. 프린, 스캐퍼플로우를 공격하게."


 이게 웬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가. 귄터가 망치로 한 대 맞은 표정을 지었다. 양쪽 모두 당황했다. 귄터는 상사에게서 ‘하늘의 별을 따 오라’는 명령을 들은 기분이었고, 되니츠는 부하에게 ‘하늘의 별을 따 오라’고 명령한 기분이었다. 되니츠가 항상 당당하던 그답지 않게 약간 우물쭈물하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그대도 알겠지만 우리 해군은 상황이 매우 심각하네. 총통 각하께 우리 해군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괴링의 방해를 물리치려면 더 큰 전공이 필요해.“


 독재자들은 늘상 그렇다. 눈에 보이는 것, 그것도 아주 크고 멋진 것을 좋아한다. 어쩌면 조용히 물속에서 돌아다니는 유보트가 히틀러에게 그닥 매력적이지 못한 건함 사업인 이유가 그것일 수도 있겠다. 귄터가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내며 물었다.


 "루프트바페의 잘나신 대원수께서 또 그 뚱뚱한 입을 시끄럽게 놀려댔답니까?"


 되니츠가 잠시 생각하다가 요약해서 대답했다.


 "유보트가 세운 전공은 잘 모르겠고, 공군은 아직 항공모함을 격침시킨 적은 없지만 아무튼 항공모함을 잘 잡는 것은 공군이므로 유보트가 아니라 공군에 투자해야 한다."


 귄터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내뱉었다.


 "하여튼 뚱땡이는 입이나 닥치고 있어야 합니다."


 크릭스마리네뿐 아니라 독일군 전체 병사며 장교들까지 모두의 사이에서 암암리에 도는 농담이었다. ‘뚱땡이는 입이나 닥치고 있어야 한다’. 그런 귄터에게 되니츠가 애원하듯이 말했다.


 "지금은 그대밖에 이 일을 해 줄 사람이 없네. 스캐퍼플로우를 기습해주게. 지난 전쟁에서 우리 독일의 대양함대가 처참하게 가라앉은 바로 그곳에서 영국 해군에게 한 방 먹인다면, 틀림없이 총통 각하께서도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실 걸세."


 "하지만..."


 귄터가 생각에 잠겼다. 되니츠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귄터, 지금은 상사로서 그대에게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 대 남자로서 말하는 것일세. 왜냐하면 이건 죽으러 가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으니까.”


 더 할 말이 없었다. 거절해도 강요할 수 없었다. 귄터는 되니츠의 모든 부하 중에서 가장 영리한 사나이였다. 어쩌면 되니츠 본인보다도 영리한 사람일 수 있었다. 그런 자가 못 한다는데, 실전을 경험한 지 20년도 더 된 늙고 병든 책상물림 따위가 그걸 계속 강요할 권리는 없었다. 적어도 되니츠는 그렇게 생각했다.


 “할 수 있겠는가?”


 귄터가 잠시 생각했다. 스캐퍼플로우를 공격한다! 그야말로 정신 나간 바보들이나 할 짓이 아닌가? 영국 본토, 영국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해군 기지를 공격해서 파괴하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 되는 명령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뭐, 1차 대전부터 참여했던 해군 준장께서 원하시니까 인심 썼다. 귄터는 조금 더 머뭇거린 뒤 이렇게 대답했다.


 "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48시간을 주십시오."


 “48시간?”


 그거 가지고 되겠어? 나도 48시간이 아니라 48일은 고민하고 부른 건데? 잠시 생각하던 되니츠가 땅 꺼져라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필요하다면 그보다 더 오래라도 주겠네.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잘 생각해 보고 오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