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타구치 렌야  牟田口廉也 1888.10.07~1966.08.02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제 15군 사령관

희대의 팀킬러


전쟁광도 빨아제끼는 일본 극우익 세력들도 극혐하는 일본의 삼대 오물[三大汚物]중 하나


막대한 전공에도 불구하고 현충원이 아닌, 일본의 명사들이 묻힌 고급 묘지인  타마레이엔(多磨霊園)에 묻혔다


무다구치 렌야를 보면 리더가 무능하면 아래의 병사들만 개고생을 한다는것을 똑똑히 알수 있다



엄청난양의 팀킬 및 만행들을 모두 다 적을수는 없겠지만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무다구치 렌야는 삼대 오물로 대 일본 제국의 패망을 불러온 삼간사우를 능가하는 존재중 하나였다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더 무섭다라는 말이 이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임이 분명하다


사실 이런 무능한 인간이 중장까지 올라가게 된것은

실력이 아닌 순 빽이었기에 [심지어 1급 전범인 도죠 히데키도 빽으로 두고있었다]

말도안되는 작전들을 실행에 옮길수 있게 되었다


무다구치는 1888년 10월 7일에 태어났고 22세이던 해인 1910년 육군사관학교를, 1917년 29세의 나이로 육군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시베리아 침공에 참전했고 이후 프랑스에

 주재무관으로 갔다 소좌 계급일 때 캄차카 반도에 잠입하여 홀로 정탐 활동을 벌였다고 한다 여기까지 보면 그냥 평범한 고급장교 A처럼 보이지만;;



[중일전쟁]


중일전쟁에서도 무다구치 렌야의 공적은 엄청났다

루거우차오 사건, 통칭 노구교 사건때 렌야는 중일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렌야의 휘하 병사 하나가 밤중에 똥싸러 화장실에 가서 인원수가 안 맞자 병사를 찾던 도중

렌야는 이것을 중국의 소행으로 간주하고 독단으로 중국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그리고 이걸 빌미로 나중에 정말 중일전쟁이 일어났다


심지어 그 당시 렌야는 전쟁을 일으킬 권한조차 없는 단순한 일개 부대장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노구교 작전에 참여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직 후의 작전 회의에서는 멀쩡한 팔에 붕대를 감고 나와 다친척을 하기까지 했다

츠지 마사노부는 직접 전투에 뛰기라도 했지...

이새끼는 띵가띵가 놀다가 다친척;;

[내 조국 대한을 위해 아직 죽을수는 없당께?..]


이 사건 뒤 무다구치 렌야는 소대장으로 진급했고

제 4군 참모창에 있다가 1939년에는 육군 유년학교의 교장까지 되었다


역시 빽의 힘은 대단해







자,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보자

무다구치는 중일전쟁이 아닌 태평양 전쟁에서의 활약이 더욱히 컸다

아니, 엄청났다


그가 우리나라의 독립을 앞당겼다


지금부터 그의 명언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보급이란 본래 적에게서 취하하는 것이다"


20세기 군대는 정밀화된 부품을 사용한 무기를 사용하기에

민가에서 약탈한 도구를 사용하기에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독립투사 렌야는 끝까지 적에게서 보급 취하 전술을 끝까지 밀어붙혔다


참고로 현재 이 전술을 사용하는 유일한 곳은 조선 인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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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다카히토 대위가 15군 사령부에 시찰을 왔다
다카히토 대위: 무타구치 공의 부대는 보급은 어떻게 하기로 했나?
무타구치 중장: 전하, 보급이 뭐 걱정 있겠습니까? 보급이란 원래 적에게서 취하는 법 입니다
다카히토 대위:(황당한 듯) 그런가? 그래, 다 말이 된다고 하겠네만... 만약 적군도 같은 생각이면 어쩌려는가?
이렇게 말하자 무타구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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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 부족이 패배의 원인이 될수는 없다"


문장 자체는 오히려 진짜 명언에 가깝다

하지만 이 문장의 전체를 한번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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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그놈은 군명을 어기고 코히마를 버렸다. 식량이 없다며 전쟁을 할 수 없다고 제멋대로 퇴각했다. 이것이 황군인가 황군은 먹을 것이 없어도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병기가 없어, 탄환이 없어, 먹을 것이 없어 싸움을 포기한다는 것은 이유가 안 된다 탄환이 없으면 총검이 있다 총검이 없으면 맨손이 있다 맨손이 없으면 발로 차라. 발도 없으면 물어뜯어라. 일본 남아에게 야마토 정신이 있다는 것을 잊었는가? 일본은 신이 지켜주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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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바로 반자이 돌격, 대전차 총검술

[http://blog.naver.com/kimdh9193/220209148441]

참조


참고로 렌야가 시키는대로 총검으로 찌르고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물어뜯은 일본군들은
전멸하였다





"포탄은 자동차 대신 소나 말에 싣고 가다가 포탄이 다 떨어지면 필요 없어진 소나 말을 잡아먹어라"


일명 징기스칸 작전


근데 부려먹으려면 잘좀 부려먹을것이지

필요없어지면 식량으로 쓰겠다는 소나 말들에게 먹이도 잘 주지 않아서

잡아먹을 소나 말보다 굶어서 객사한 소나 말이 훨씬 더 많았음

ㅋㅋㅋㅋㅋㅋㅋ


일부는 강을 건너다 지쳐서 떠내려가거나

산을 등반하다 낭떠러지에서 운지하는 불쌍한 운명을 피하지 못하였다


결국 우마의 수송으로 도착한 보급은 절반도 안되었다



물자 부족으로 대다무와 폭죽으로 만든 일본군의 대공무기





"정글에서 비행기를 어디에 쓰냐?"


렌야의 무식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발언

심지어 이 발언이 일본군 중장까지 올라간 사령관에게서 나왔다


영국군은 비행기를 이용하여 아군 위치에 보급물자를 쏟아부었는데

그중 극소수가 일본군 기지에 떨어지면

일본군들은 그걸 "처칠 급여"라 부르며 생명줄로 여겼다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이하 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의 학력 수준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이쯤되면 그의 부하가 우리 민족을 학살한 적임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가엾다고 여겨진다


사실 이 발언이 그가 독립투사임을 증명하는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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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칸 교외에서 연합군에 투항해온 일본군의 영양실조는 놀라울 만큼 심했다 개중에는 문자 그대로 굶어 죽기 직전인 자도 있었다 먹을 것을 던져주자 몹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그것을 받아 먹었는데, 10일이고 1개월이고 아무 것도 못 먹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나무 뿌리나 벌레를 잡아 먹으며 연명했다고 한다"

 - 장인중(張仁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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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식의 결과]


간혹 공포 관련 포스팅을 보면 일본군이 아군 시체에도 손을 대었다는 내용이 보이기도 하는데

그거 다 여기서 나온 말이다





[임팔 작전, - 무다구치 렌야 장군의 인생 최고의 전공]


임팔 작전은

버마[지금의 미얀마]에서 아라칸 산맥을 지나 인도의 북부인 아삼을 기습하여

직접 압박한다는 내용의 작전이었다





당시 일본군이 넘어야만 했던 아라칸 정글[헬게이트]


지형이고 적군상태고 다 무시하고

개인이 휴대 가능한 최대한의 물자만 지니고 시작하라는

15일짜리 작전이라 휘하 부대에 지시한 무다구치 렌야 장군...


그리고 실제 작전 기간은 3달이 넘어갔다


[당시 작전에 반대한 일본의 정상 장군들]


후방부터 보급이 곤란하지 않도록 3개 사단을 배치하여야 한다

-버마 방면군 나카 에이타로 참모장


보급 계획을 도외시한 이 작전 구상은 실패할 위험성이 너무나도높다

-남방군 이나다 마사즈미 참모장


엉망 진창인 작전 구상이다

-대본영 사나다 죠이치로 작전과장



X까

-무다구치 렌야



그리고 마지막 보고를 받은 히로히토 천황의 한마디



"이런게 정말 가능하기는 한건가?"


"네"





[그렇게 시작된 임팔 작전의 결과] 



당시 일본군의 진격 도로는 전부 다 저렇게 엄청나게 구불구불한데다

정글이라 돌아다니기도 힘들었다


영국군들과 마주칠 때에도 일본군은 너무나 피로하여 도망치기 바빴으며

이후 보급마저 끊겨 병사들은 렌야의 지시대로 풀을 뜯어먹고

급기야 뱀을 잡아먹기까지 이르게 된다


베어그릴스? 좆까 시발






[구루카 전사들의 모습]


심지어 당시 이곳에는

영국군들에게 고용된 지상 최강의 전투민족 구르카 전사단 까지 있었기에

일본군은 썰려나가기 시작하였다



결국 이러한 전투를 참고 참고 견디던 일본군들은 전멸할 위기에 처해있었다

결국 부하들의 죽음을 보다못한 휘하 31사단 사토 고쿠로 중장이 임무 실패를 알리고 독단으로 후퇴를 결정하였다


일본군 육군 항명 1호 사건이다




그렇게 오만꼴 다 당하고 퇴각하여

살아 돌아온 병사들에게

렌야는 마음대로 퇴각하다니 반역이라면서

병사들을 곧바로 연병장에 줄세워 호통을 쳤다


이때 영양실조 등등으로 고생하던 일본군들이 피로와 열사병으로 엄청나게 죽게 되었다


또한 사토 중장이 돌아오자마자

렌야는 사토에게 자결해 버리라며 칼과 편지를 두고 숨어버리는 추태를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사토는 이 칼로 렌야를 죽여버리겠다며 칼을 가지고 갔다





[임팔 작전의 결과]


렌야가 주도한 임팔 작전의 결과는 대한 독립을 앞당기는데 큰 공을 기여했다


초기 군대 9만 2천명 이었던 일본 군대를 1만 3천으로 줄여버리고


일본군 15군단은 무다구치의 지휘 아래 살아남은 80% 이상이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나마 남은 20%는 사토 중장의 지휘 아래 지옥을 탈출한 군대들이다


이 임팔 작전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무다구치 렌야가 "아 죄책감 느낀다.. 그냥 확 자살해버릴까?" 라는 상투적인 말을 내뱉었는데


수석부관이 그 말을 듣고

"아무도 없는데서 하십시오 누구도 방해하지 않을겁니다 이번 패전의 책임은 장군님이 할복하고도 남습니다"

라고 말하며 권총을 내밀었다


그러자 렌야의 반응



X까


그리고 그냥 살았다



마침내 15군이 철수를 결정하였을때

렌야는 사찰을 핑계로 도망갔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패망하고 난 후

일본군의 여러 장성들이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무다구치 렌야는 연합군의 승리에 큰 기여를 한 이유 

사형을 피하고 석방되었다

아니, 진짜로



이후 그는 정말 잘 먹고 잘 살다가

1966년에 사망하였는데


그의 마지막 유언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 잘못이 아니야! 다 내 부하 잘못이지!"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