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완벽하진 않지만 거의 대부분 뚜렸히 기억하기 때문에 새벽 감성에 취해 여기에 오래된 기억을 남깁니다.




난 어렸을때 아주 산만한 남자애였다.

초등학교 입학 2년 전까지 부모님께서는 

나를 웃음이 끊이질 않는 유쾌하고 활발한 아이로 알고 계셨지만 조금씩 위화감을 느껴 검사를 해보니 ADHD증상이였다.

유치원때부터 ADHD증상이 있어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지속됬다.

덕분에 나는 항상 학교에서 수업시간이든 쉬는시간이든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에게 야단 맞고 혼나는 것이 일상이였고, 자연스럽게 무리와 너무나 동 떨어진 나를 친구들이 놀리기 시작하여 왕따가 됐다.

결국 나는 부모님께 부탁하여 초등학교 3학년때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전학을 갔기 때문에 반에는 나를 모르는 친구들만이 가득했지만, 나는 이미 유치원때부터 당해온 왕따 기질 때문에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반 맨 뒷자리 구석에 앉아서 낮잠을 자거나, 낙서를 하거나, 멍 때리기만을 반복 했었다.

다행히 ADHD증상은 3학년이 되며 많이 호전되어 학급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빈도가 매우 줄었기 때문에 다시금 왕따를 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반에서 고립되어 있는 것 이였다.

그러던 3학년 입학 후 2개월 후쯤의 어느날

어떤 여자애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왜 혼자 있어? 맨날 그림 그리는거 재밌어?"

라고 말하며 내가 그린 낙서를 구경했다.

나는 '아..또 괴롭히는 건가...?'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대답했다.

"...응..."

원래라면 대답도 못 했겠지만, 그나마 기대를 하며 최대한 긍정의 표현을 하려고 노력한 대답이 '응...'인 것이다.

그러자 여자애가 말했다.

"그림 되게 잘 그린다!"

나는 부끄러워서 그저

"응..."

이라고만 대답했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여자애는 다른 친구들이 불렀기 때문에

"안녕~!"

이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그 여자애는 밝고 상냥하고 여자애 답게 귀여웠다.

그래서 인싸였기 때문에 나와 어울릴 시간따위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곧바로 잠깐 생겼던 기대를 없애고 평소처럼 엎드려 낮잠을 자는 척을 했다.

그러나 그 여자애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고, 그 빈도가 점점 늘어났다. 

지금이 되서 생각해 보건데 아마 내가 그림을 잘 그리고, 체육시간에 달리기나 축구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운동신경이 좋았다.)

결국 그 여자애는 나의 굳게 닫히고 부서진 마음을 열어서 고치기 시작했고, 나와 그 여자애의 사이도 가까워졌다.

그 여자애는 인싸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도 같이 어울리며 인싸가 됬다.

그 이후로 나는 원래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 유쾌하고 활발한 성격을 되찾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한 여름날 이였다.

나는 친한 남자애들 2명과 함께 주말에 곤충을 잡으러 가려고 약속을 잡았다. 

그러자 이 얘기를 들은 여자애가

"나도 갈래!"

라고 했기 때문에 결국 나를 포함한 4명이서 가기로 했다.

약속 날인 토요일

나는 기대감에 못 이겨 약속시간 보다 20분정도 빨리 나와서 약속 장소인 큰 나무를 오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이 오면 머리 위에서 뛰어내려 놀래켜 줄 생각이였던 것이다.

나무에 오른채 기다리자 여자애가 왔다.

나는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우워!!!"

그러자 여자에가 진심으로 놀랐는지 내 예상과는 다르게 두려운 표정을 지었지만 나인 것을 확인하고는 금새 웃음을 띄며 말했다.

"깜짝 놀랐잖아! 이씨...!"

나는 장난이 성공함에 기뻐했다.

여자애가 말했다.

"다른 애들은 어디 있어?"

나는

"아직 안왔어."

라고 답하며 둘이서 같이 큰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니 여자애의 장비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분명 곤충을 잡으러 뒷산에 가는 것인데 나처럼 잠자리채와 곤충채집상자가 없는 것이다. 

'뭐지? 가방 안에 접이식으로 더 좋은걸 가지고 있나?'

싶은 생각을 할때쯤 여자애가 시계를 보여주며 말했다.

"약속 시간 많이 지났는데 안와...어떡하지?"

나는 빨리 놀러가고 싶은 마음에 "친구들이 오지 않는구나.'라고 맘대로 생각해버리며 

"그냥 둘이서 가자!"

라고 말하며 여자애와 단 둘이 뒷산으로 출발했다.

뒷산으로 가는 오르막 길에 여자애가 말했다.

"헉...헉...나 힘들어..."

나는

"이게 왜 힘들어ㅋㅋㅋㅋ너 너무 느려ㅋㅋㅋ"

그러자 여자애가

"나 손 좀 잡아서 끌어줘..."

나는 여자애와 손을 잡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긴장했지만 빨리 놀러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기에 긴장감은 금새 집어 치우고 여자애의 손을 잡고 뛰면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자애가

"허억...허억...우리 뛰지 말고 천천히 가면 안되?!"

라고 말하자 나는 할 수 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손을 잡은채 뒷산으로 걸어가며 숨이 가다듬어지자 여자애가 말했다.

"우리 이렇게 손 잡으니까 꼭 연인사이 같다..."

그 말을 듣자 나는 순간 멍 해졌다.

연인사이라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이 연인사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느껴보는 정체 불명의 묘한 기분을 느꼈다.

여자애가 수줍게 웃자 나는 부끄러움이 생겨나서 손을 놓고 싶어졌지만, 손에 힘을 조금 빼자 여자애가 더 단단히 잡았기 때문에 손 놓기를 주저했고, 보는 눈도 없겠다, 그대로 손을 잡은채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렇네..."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지만, 서로가 쾌활했던 우리는 다시금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뒷산에 마저 올랐다.

여자애는 역시나 가방에 곤충채집도구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곤충을 잡기 위해 특기인 빠른 달리기로 뛰어다니면, 여자애게 허겁지겁 따라와서 내가 잡은 곤충을 구경하는 것이 반복 되었다.

그리고 서로 지쳤을 즘 저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참을 뛰어다니고 나니 배고파진 내가 배고프다 말하자 여자애가 가방을 주섬주섬 열기 시작했다.

가방에는 돗자리와 과자들이 들어 있던 것 이였다.

그렇다.

여자애는 처음부터 곤충잡기에는 관심이 없었고, 뒷산에서 소풍을 즐기고 싶었던 것이다.

돗자리는 좁아서 둘이서 겨우 앉을 수 있는 크기였기에 우리는 다시 거리가 좁혀졌다.

나는 배고픈 나머지 남의 과자라는 것도 생각치 않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잡은 곤충들을 보여주며 자랑하고, 여자애를 곤충으로 겁주기도 하며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애는 소풍이 만족스러운 것인지,

내가 허겁지겁 입에 과자를 욱여 넣는 것이 웃긴 것인지 

얼굴에 웃음을 띄며 그동안 힘들게 나를 따라다니기만 한 것을 잊은채 과자를 조신하게 먹고 있었다.

여자애가 말했다.

"아~~~"

여자애가 내 입 앞에 과자를 가져다 주었다.

나는 부모님이 나한테 해주는 그 '아~~~'와 같은 것이라 생각해서 아무런 위화감 없이 과자를 덥석 물어 먹었다.

여자애의 손가락에 묻은 땀과 과자가루 맛이 느껴졌다.

여자애는 조금 놀란 듯 보였지만 나는 나는 그 작은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과자를 먹느라 여자애에게 과자를 먹여주지 못 했고, 여자애만 나에게 몇번인가 과자를 손으로 먹여 주었다.

그렇게 과자를 다 먹고 뒷산에서 내려와 우리는 담백하게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도 그 여자애와 같이 자전거 경주를 하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거나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를 하며 즐겁게 3학년을 보냈다.

그리고 4학년이 되어 나와 그 여자애와 반이 갈라져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 여자애와 멀어지게 된 것은 아쉬웠지만,

나는 3학년때의 경험을 살려 4학년이 되어서도 인싸였기에 매일같이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노느라 바빴고, 그래서 그 여자애와 만날 일은 적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5학년도 다른 반이 되어 그 여자애와의 거리가 더욱 멀어져서 새 친구들과의 즐거움에 그 여자애가 잊혀질 때 쯤.

6학년이 되었다.

6학년이 되며 나는 그 여자애를 거의 완전히 잊었다. 

그러던 중 다른 여자애들이 수다 떠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 여자애가 서울로 이사를 갔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이별에 나는 조금 놀랐지만, 철 없고 단순한 나는 금새 흥미가 식어 즐거운 학교생활을 다시 이어 나갔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이 되고 어떤 수업을 통해 과거에 좋았던 기억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어서 예전에 있었던 그 여자애와의 추억에 대해 다시 자세히 생각하게 되었고, 

그때 그 여자애와 손을 잡으며 느꼈던 그 묘한 기분이 사랑이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 여자애도 나처럼 그 감정을 느꼈을까?'

'그 여자애도 그 감정을 느꼈다면 그게 사랑이였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그때 좀 더 걔한테 잘해줄걸...항상 나만 생각하면서 그 여자애가 나한테 질질 끌려 다녔었는데...과연 그 여자애도 즐겁긴 했을까?'

'혹시 그래서 아무 말도 없이 서울로 떠나버린 건가?'

나는 학교 발표를 위해 계속해서 내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나는 그 여자애 덕분에 왕따 기질을 고치고 인싸가 될 수 있었으며,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법과 

자전거 타는 법도 배웠으며,

내가 놀자고 하는대로 따라와 주었고,

나의 첫번째 이성간 교제 상대가 되어 주었고,

나에게 항상 웃음을 보여 주었다.

나는 학교에서 발표를 마치고 다시 그 여자애를 잊었다.

질풍노도의 시기였고, 공부, 학원, 축구, 그림, 게임 등에 신경이 다 팔려 있었기 때문에 너무하게도 다시 빠르게 그 여자애를 잊은 것이다.

그렇게 고등학생3학년이 되며 다들 진로가 어느정도 정해진 어느 가을날에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가 첫사랑 이야기를 하게 되어 다시 그 여자애를 떠올리게 된다.

집에 침대에 누워 과거를 다시 생각해 보니 난 정말 쓰레기였다.

그때 그 여자애가 말을 걸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어준 그 여자애에 대한 김사를 잊은 채 무려 9년이 지났다.

심지어 나의 첫사랑이였고,

감사 인사도 못했으며,

작별 인사도 못했다.

그런 주제에 그 여자애와 어울리면서 짖굳은 장난이나 치며 웃었댔던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눈물이 흘렀다.

그 여자애에 대한 감사함과 그리움과 미안함에 한밤중에 이불을 부여잡고 움크려서 1시간 정도 울었다.

그 여자애에게 다시 연락 하려고 해도 

나는 남중 남고였고, 초등학교 때 인싸였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남자들과 놀았기 때문에 여자 인맥이 없다.

페이스 북으로 검색을 해봐도 그 여자애가 페이스 북을 하지 않았는지 검색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페이스 북에 언젠가 검색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끔씩 그 여자애를 검색 해보는 날을 보내며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페이스 북에 그 여자애가 검색이 되었다.

얼굴이 꽤 변해서 순간 다른 사람인가 싶었지만 어렸을때의 그 얼굴이 확실히 보여서 동명이인이 아님을 느꼈다.

연락처를 알게 됬지만,

그 여자애가 체육 관련 학과인 남자친구와 함께 있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나는 내 연인도 아닌데 여자친구를 빼았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바로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놈임을 알고 그 감정을 억눌렀다.

남자친구와 행복해 보인다.

초등학교때부터 머리가 좋더니 대학교도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는 좋은 곳에 들어간 듯 했다.

이쯤 되니 내가 연락을 굳이 해야 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나는 대학교도 솔직히 그리 좋지 못한 곳에 다니고 있고,

얼굴도 못생기진 않았지만 잘생긴 편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 여자애 남친보단 확실히 내가 잘 생긴듯?ㅎㅎ)

초등학교때 반이 갈라지고 만날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쪽에서 그 여자애를 찾지 않았으며,

이미 10년이나 지났으니 그 여자애도 나를 잊을 만 하다.

게다가 애초에 그 여자애가 나와는 달리 사랑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라면 정말이지 웃긴 이야기가 되는게 아닌가?

그리고 이제와서 갑자기 10년 간 연락 없던 친구가 갑자기 연락해서 감사 인사와 그리움을 전한다는게 흔한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스토커라고 기분나빠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비겁하게 나 자신과 타협하며 그녀에게 감사와 사죄를 전하지 못 한채 지금까지 살고 있다.



부모님께 말씀 드리면 니가 무슨 그 나이에 사랑을 느끼냐며 비웃으시고, 친구들도 너무 이야기가 드라마틱 하다며 구라까지 말라고 하니 

여기에서라도 내 따뜻했고, 비열한 과거를 풀어 놓는다.


믿든 말든 당신들 자유지만, 이렇게 전부 풀어 놓으니 눈시울이 뜨거워 지고, 마음이 개운하다.


어두웠던 내 마음에 빛을 비춰 주고, 차가운 내 마음이 다시 따뜻해 질 수 있음을 알려 준 내 첫사랑 이야기이다.

이곳에 그 여자애의 이름을 적는 것도 주제 넘는다.

부디 잘 지내라.




마음에 남는 것이 있다면

그 여자애의 남자친구의 스타일이 어렸을적 그때의 나와 비슷한 스타일이였던 것이다.

말랐지만 어느정도 보이는 근육, 짙은 눈썹, 주황색의 조금 긴 반곱슬 머리, 날카로운 눈매의 운동신경이 좋은 남자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