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설마. 발가스 장군님이라해도 처음부터 대머리인 건 아니시지 않은가."




동료의 말에 남자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적룡군단의 군단장, 발가스가 대머리란 건 제국군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나.




그 또한 젊었을 적엔 꽤나 멋드러진 금발을 기르고 있었고, 부친을 닮았는지 그의 영애 또한 아름다운 금발을 지닌 소녀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꽤나 나이가 찬 것이 앳된 소녀 티를 벗어나 서서히 숙녀의 태가 도드라지기 시작하는, 명실상부한 제국 사교계의 유명인사.






'장군의 딸이 대머리인지 확인하기 전까진 죽을 수 없다!'




이런 말이 일종의 구호처럼 떠돌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도 옛적에 빛의 후예들과 전쟁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제국이 대륙을 통일하고 적잖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선, 그냥 가끔 가다 언급되는 농담일 뿐.




그마저도 이제는 식상함이 느껴지는 철지난 농거리에 불과했다.






"자네들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그 때, 그들의 옆에 다가온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광룡군단의 군단장 엘윈.




평소 인자하기로 알려졌지만, 어딘가 음흉한 구석이 있어 한 번 눈밖에 나면 그대로 군생활이 끝장 날 수도 있다는 소문도 맴도는 장군이었다.




말하자면 찍히면 안 되는 상관이라는 뜻.






"그, 근무 중 추태를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그렇기에 두 병사가 바짝 긴장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하지만 엘윈은 빙긋이 웃으며 두 병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니야. 한가할 땐 느슨하게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지. 너무 꽉 조이면 끊어지는 것 아니겠나?"




"가, 감사합니다!"




엘윈의 말에 병사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적어도 군생활이 끝나진 않을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얘기를 하길래 그렇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나?"




"아, 발가스 가의 영애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왜, 있잖습니까. 영애님의 털에 관한 이야기 말입니다."




"아하."






두 병사의 말에 엘윈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하하. 안 그래도 예전에 레온 경과 그에 대해서 내기를 한 적이 있었지."




"레온 장군과 말입니까?"




"그래. 과연 있을지 없을지 말이야. 내가 먼저 확인하고 그에게 말해줬었다네."




병사의 말에 엘윈은 좋은 추억을 떠올리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근데 도통 내 말을 믿지 않아서 말이지.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나? 결국 직접 확인하기 전까진 돈을 안 주지 뭔가."




"허어. 레온 장군께 그런 면이 있는 지는 몰랐습니다."




"그럼 장군께선 어느 쪽에 거셨었습니까?"






병사의 질문에 엘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는 '없다'에 걸었었다네."




"어? 그럼 레온 장군께서 이기신 것 아닙니까?"




"음? 아니, 내가 이겼었는데?"




병사는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고, 엘윈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소 당황한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영애께선 분명...?"




병사는 갑작스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서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그런 느낌.




순간, 그를 바라보는 광룡 군단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갑작스레 심기가 불편해진 듯한 반응이다.




왜일까. 순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 땀에 병사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 아하! 두 장군께선 영애님이 갓난 아기였던 시절 내기를 하신 모양이군요?"




그 때, 옆에 있던 그의 동료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도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긴장했으면서도 애써 가벼운 척하는 애매한 목소리.




그러자 싸늘해져 있던 광룡 군단장의 얼굴에 다시금 온화한 미소가 돌아왔다.




"그렇지. 그 때는 아직 '머리털'이 나지 않으셨으니 말이야."






그럼 수고하게.




광룡 군단장은 그 말을 남기고 가던 길을 마저 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의 일이다.




갑작스레 수도에서 경비병 몇 명이 북부의 혹한지대로 착출되었고, 그 행렬은 이동 중에 산적들에게 습격을 당했다.




이 평화의 시대에 제국군이 일개 산적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중대한 사건.




이에 이례적으로 광룡 군단장이 스스로 토벌군의 선봉에 나섰고.




손수 산적들의 소굴을 토벌하고 모든 것을 불태워 주변에 본보기를 보였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