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나는 훈련장에 가기엔 매우 늦었다.




그래서 꾸중을 들을까 봐 몹시 겁이 났다.




레딘 선생님께서 이중반격에 대해




물어보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럴 만도 했다.




더욱이 나는 반격딜에 대해선 깜깜절벽이었던 것이다.




호위와 반격 수업 시간을 까먹고




들판이나 어정거릴까 하는 생각도 문득 났다.




날씨는 얼마나 따뜻하고 맑았던가!




오래된 무덤들이 도처에 열린 채 나를 유혹해왔고,




저 멀리선 창병계열의 영웅들이 제각기




공격기를 훈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모든 것이 호위와 반격 수업보다는 훨씬 나를 유혹했다.




하지만 나는 그 꼬드김을 억지로 물리치고 훈련장을 향해 줄달음쳤다.










그러던즈음 나는 초시공 게시판 앞을 지나다가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60렙 이후부터 초시공 출전 명단이며,




순위등을 알게 된 것도 바로 이 게시판 앞에서였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도 않은 채 생각해 보았다.




‘또 무슨 일이 벌어졌나?’




그런 생각을 하며 달음발직을 치는데,




거기서 게시판을 들여다보던 레온아저씨가 내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애야, 그렇게 서들 건 없단다. 훈련장엔 언제 가더라도 늦지 않을 테니까!”




나는 레온아저씨가 나를 놀리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더욱 걸음을 재촉해 레딘 선생님의 훈련장으로 뛰어갔다.










여느 때 같으면 수업이 시작될 무렵에는 길에서도 들릴 만한




'쇼멘돗파!'와 같은 왁자지껄한 소리가 일어나는 법이었다.




호위를 켜는 소리, 레딘 선생님의 카론의 모자가 발동되는 소리,




기병이 반격딜에 터져나가는는 소리 따위가.




이런 북새통을 틈타서 나는 내 자리로 들키지 않게 가서 앉을 셈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날은 모든 것이 조용하기만 했다. 흡사 일요일 아침처럼.




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 벌써 제자리에 앉은 친구들과




호위를 켠 채 서성거리는 레딘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별 수 없이 문을 열고 이 고요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얼마나 얼굴이 뜨거웠으며 또 얼마나 겁이 났던지! 그런데 뜻밖이었다.




레딘 선생님은 화도 내지 않고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무척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레니어야, 얼른 네 자리에 가 앉으렴, 하마터면 너 없이 시작할 뻔했구나.”




나는 걸상을 뛰어 넘어 곧 내 자리에 가 앉았다.




공포가 약간 가신 뒤에야 비로소 나는 우리 선생님이




평소와는 달리 머리위에 카론의 모자대신 체인투구를,




손에 정의의 선서대신 서약의 검을 쥐고 계시다는것을 알았다.




이러한 것들은 잠시 누군가 선생님들 대신하여




고된 일을 하는 날에만 선생님께서 착용하시는 것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실은 온통 이상하고도 엄숙한 분위기로 꽉 차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교실 뒤쪽,




여느 때는 언제나 텅 비어 있던 걸상 위에 빛의 군단 사람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앉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빛의 티아라를 쓴 엘윈 아저씨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도 와 있었다.




모두들 슬픈 표정이었다. 엘윈 아저씨는 무릎에 자신의 애병인




방랑하는 기사를 올려놓고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내가 이런 모든 광경에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레딘 선생님은 단상위로 올라가셨다.




그러고는 아까 나를 훈련장으로 맞아 주실 때와 같은




그 부드럽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애들아, 이 시간은 내가 너희들을 가르치는 마지막 수업 시간이다.




초시공 던전을 비롯한 여타 PVE와 PVP에서는 이제 전설진영 탱커를




기용하라는 명령이 계정주로부터 왔다. 내일부터는 새 탱커 선생님이 오실거야.




따라서 오늘 이 시간이 내 마지막 호위와 이중반격수업 시간이다.




열심히 따라 주기를 바란다.”




이 몇 마디 말이 내 마음을 깡그리 흔들어 놓았다.




게시판에 쓰여있던 것이 바로 그거였구나.




나의 마지막 호위와 이중반격 수업...!




그런데 나는 호위스킬을 제대로 쓸 줄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영영 못 배우고 말게 되었구나! 그럼 여기서 그치고 말아야 하나...!




평소 제국진영을 기웃거리며 전력찌르기나 배우러 다니고




보물을 찾겠다며 오래된 무덤들을 쏘다니느라 빼먹은 수업,




잃어버린 시간을 이제야 얼마나 뉘우쳤던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따분하고 가지고 다니기가 무겁게만 느껴지던




탱커전용 몇몇 방어구들, 투구, 장신구 등이




이제는 몹시 헤어지기 어려운 오랜 친구들처럼 여겨졌다.




레딘 선생님께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이 떠나려 한다.




이제는 다시 뵙지 못할 거야 하는 생각에 벌받던 일,




선서로 머리통을 깡, 하고 맞던 일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가엾은 분!




이 마지막 수업을 위하여 선생님은 장비를 갈아입으신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빛의 군단 인원들이 왜 훈련장 뒤쪽에 와 앉아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훈련장에 보다 자주 오지 못한 것을 마치 후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우리 선생님의 지난 계정렙 렙업기간 동안의 훌륭한 봉사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며 선생님께서 사라지는것에 대해




그들만의 경의를 표하는 방법인 것 같았다.










여기까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호위할 차례였다. 적의 공세로부터 완전하게 호위 및 반격을 통해




상대의 딜을 남김없이 흡수 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는 첫 호위부터 디버프로 엉망이 되어




지켜야 할 요인을 지켜내지 못하여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으며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때 레딘 선생님께서 나에게 말을 거시는 소리가 들렸다.




“ 얘, 그레니어야, 난 너를 나무라지 않겠다. 넌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거야...




그래서 이 꼴이 된 거란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지.




‘젠장’! 시간은 얼마던지 있는 걸 뭐! 내일 배우면 될 텐데’라고.




그런데 이 꼴이 되고 말았구나...아! 언제나 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것이




우리 빛의 군단의 커다란 불행이었다.




이제 전설진영측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테지.




‘뭐라고! 룬스톤까지 먹어놓고 제대로 출전할만한 곳조차 없는주제에




스스로를 쓸모있다고 우기다니! 이 모든 것이 일어난 것은, 그레니어야.




네가 가장 나빴던 탓은 아니란다.




우리 모두가 저마다 비난 받을 점을 지니고 있단다.




그렇게 레딘 선생님께서는 이것 저것 말씀하시더니




이내 호위전략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설령 본인이 스러질지언정, 내 호위범위 안에 있는 인물은




반드시 지켜내야 하며 이같은 행위는




탱커라는 책임을 진 자의 소명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얼마나 잘 이해가 되는지 깜짝 놀랐다.




선생님의 말씀은 모두가 쉽게 느껴졌다.




아니 정말 쉬웠다.




여태껏 내가 이렇게도 열심히 귀를 기울여 들은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으며,




선생님 역시 이렇게도 꼼꼼하게 설명하신 적이 없었다고 느꼈다.




가엾은 선생님께서는 떠나시기 전에




당신의 모든 지식을 우리에게 전해 주시려는 모양이었다.




한꺼번에 우리 머리 속에 들어가게 하실 모양이었다.










이따금 창에서 손을 놓고 눈을 돌려보니 레딘 선생님께서는




단상위에서 꼼짝도 않으시며 주위의 물건들을 눈 여겨 보고 계시는것이 보였다.




이 조그만 훈련장의 모습들을 당신의 눈 속에 집어 넣어 가져 가시고 싶은 듯이.




생각해 보시라! 1레벨부터 선생님은 바로 저 자리에 계셨던 것이다.




이제 계정의 재화들이 비로소 풍족해지기 시작하고




C랭크, B랭크, A랭크를 전전하던 초시공도




이제 가볍게 SSS를 달성하는 시기가 와서




더이상 계정주가 선생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달라졌을 뿐이다.




모두와 헤어져야 하다니 가엾은 선생님으로서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끝까지 수업을 끌고 나가실 용기를 가지셨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울음으로 떨고 있었다.




울먹이는 그가 호위할 적마다 억지로 크게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너무도 이상해서 우리는 모두가 울고 싶었다.




아! 난 이 마지막 수업 시간을 영원히 가심 속에 간직하련다




문득 부유성의 시계가 정오를 쳤다.




이윽고 루시리스 여신께 기도를 올려야함 알리는 종 소리.




바로 이 시각에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전설진영 탱커의




다그닥거리는 말발굽소리가 우리들의 훈련장밖에서 시끄럽게 들려 왔다.




레딘 선생님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교단에서 일어나셨다.




선생님이 그렇게 커 보인 적은 여태 없었다.




“애들아.”




산생님께서 말씀 하셨다.




“ 나는... 나는...”




무엇인가가 선생님의 목을 메이게 했다. 말을 끝맺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마침내 칠판을 향하여 돌아서시더니




분필 한 조각을 집어 드시고 온 힘을 다하여 되도록 크게 쓰시는 것이었다.


























































































































‘빛의 군단 만세!’










그러고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한참 계시다가 말없이 우리에게 손짓으로 알렸다.




“끝났어...다들 돌아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