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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사령관..”


에밀리는 조심스럽게 사령관을 부르며 비밀의 방 문을 열었다. 슬쩍 열린 문 틈으로 열기가 흘러나와 에밀리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어..어? 누구..아, 에밀리구나??어쩐일이야?”


사령관은 황급히 이불로 자신의 몸과 침대위에 있던 누군가를 가리며 에밀리를 반겼다. 에밀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침대보가 들썩거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 에밀리인가..이리와서 같이...읍!읍!”


에밀리는 이불을 꾹 내리누르는 사령관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잠이 덜 깨서 그런 것일까.


“응..사령관..잠이 안와서.”


에밀리는 그렇게 대답하곤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평소였다면 침대속으로 파고들어 사령관과 같이 잠들었겠지만 오늘은 그 목적으로 온게 아니었다.


에밀리는 유심히 사령관의 손을 바라보았다. 대경한 다프네가 나노머신을 과하게 들이부은 탓에, 칼에 베인 상처는 작은 흉터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미안해..사령관..”


역시 꿈이였구나, 사령관의 손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에밀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웅얼거렸다.


“응?”


사령관은 어리둥절해하며 에밀리의 얼굴을 보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아 하고 짧게 탄식했다. 이 작은 아이는 아직까지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것이다. 


사령관은 에밀리가 개처럼 헐떡거리는 아스널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이불자락으로 아스널의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에밀리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요 녀석!"


딱콩, 머리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통증에 에밀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아파..사령관."


에밀리는 사령관에게 꿀밤을 맞은 곳을 손으로 슥슥 문질렀다. 역시 그때 일로 사령관이 화가 났던 것 일까.. 에밀리가 다시 우울해지려는 찰나 사령관이 꿀밤을 놓은 손을 그대로 들어 에밀리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 괜찮다고 했으니까, 또 사과할 필요는 없어 에밀리.”


“그렇지만..사령관이..”


“..나도 매일 사과를 하는 걸 에밀리.”


다쳤어,라는 뒷말은 이어진 사령관의 말에 막혔다.

지구에 남은 마지막 인간, 전장에서 단 한명의 사상자조차 내지 않는 무패전설의 사령관, 

그 사령관이 인간에게 충성하는 것을 지복으로 여기는 바이오로이드들로 가득한 오르카호에서 매일 사과를 한다는 것은 질 나쁜 농담과도 같았다. 


에밀리는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표정으로 조용히 사령관을 올려다보았다. 


그 말이 에밀리를 달래주기 위한 거짓말이라면 아무리 감정표현이 서툰 에밀리라도 상처를 입을 것이다.그렇기에 사령관은 조심스럽게, 에밀리가 상처받지 않도록 단어를 골라냈다.


“..어젠 브라우니 6128호가 크게 다쳤어.”


“그리고 작전을 수행하던 켈베로스 12호의 발도 크게 다쳤어, 산책을 정말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말이야.”


“...”


에밀리는 천천히 눈을 깜빡거리며 괴로운 듯 중얼거리는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사망자는 제로였지만 철충과의 격렬한 전투는 늘 부상자들을 만들어냈다.

부상자들이 가장 많이 실려오는 후방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에밀리 역시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것일까, 의아해하는 에밀리의 시선을 받아낸 사령관은 쓰게 웃었다.


“항상..나는 그 아이들에게 사과를 해, 내 지휘로 인해 다친 아이들이니까..”


그것은 사령관의 고해성사였다. 마음속에 담아두던 응어리, 왜일까, 사령관은 아자젤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것을 눈 앞에 앉아있는 작은 아이에게 토해냈다.


“아무리 뛰어난 지휘를 한다고 해도….부상자까지 없을수는 없어, 에밀리.”


자연스럽게, 첫 부상자가 생겼던 전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쏟아지는 포화속 노움의 방벽 뒤에서 뼈까지 드러난 상처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내뱉는 레드후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은 항상 괜찮다고 웃으며 말해주지만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지.”


힘없이 수복실로 들어간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괜찮아요 사령관님’ 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계속 미안해 한다고 해도, 나아지는건 없으니까.”


결국 레드후드는 치료되었지만, 전투를 하기에는 무리인 몸이 되어 전투모듈을 반납하고 요안나 아일랜드로 떠나야 했다. 

사령관은 절망하고 두려워하는 대신 미친듯이 전술을 공부했다. 

작전을 나서기 전에 밤을 새 가며 모의전투를 되풀이하며 다치는 이가 나오지 않게 힘썼다.

다시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사과를 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해 웃어준 레드후드를 위해서.


“그래서 나는 에밀리가 계속 미안해 하지 않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더 많은 걸 배웠으면 좋겠어.”


사령관은 여전히 멍한 표정을 하고 있는 작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인간의 욕심으로 태어났으며 인간으로 인해 온전한 감정을 갖지 못하게 된 아이. 

그 아이의 감정을 일깨워 주는 것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인간인 그의 몫일 터였다.

에밀리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나 노력할게.”


“에밀리라면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사령관은 씨익하고 개구진 웃음을 지으며 부스스한 에밀리의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었다.

꿀밤을 때린 자리가 약하게 부어올라 봉긋한 혹이 만져졌다. 이것도 언젠가 알렉산드라가 말했던 ‘사랑의 매’ 에 포함되는 것이려나, 물론 아스널과의 짜릿한 시간을 방해한 것에 대한 치졸한 복수심이 없었다고 말하진 못하겠지만. 


“고마워, 사령관.”


에밀리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악몽으로 인해 생긴 불안감과 죄책감은 이미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사령관 역시 그런 에밀리의 미소에 화답하듯 편안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읍..읍읍!!”


“그래, 그런데 말이야 에밀리, 혹시 같이 자려고 온거라면...”


사령관은 슬슬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듯 꿈틀거리는 아스널을 느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라면 이런 대화끝에 에밀리를 꼭 껴안고 같이 잠을 청했겠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이불 밑에서 꿈틀거리는 아스널을 의식한 에밀리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사령관, 지금 대장이랑 아이 만들기 중이지?”


“뭐?”


에밀리의 입에서 튀어나온 파격적인 단어에 사령관의 입이 떡 벌어졌다. 에밀리의 신체 나이가 그렇게 어린 것은 아니지만 연구실에서 주로 생활한 에밀리는 성적 지식같은 것이 전혀 없어, 순수한 아이와도 같은 상태였다.


….분명 그랬을 텐데. 


“어..에밀리...어떻게?”


사령관은 당황한 말투로 되물었다, 에밀리는 그 특유의 멍한 말투로 덤덤하게 대답할 뿐이였다.


"응, 그거, 대장이 알려줬어. 방해해서 미안해, 사령관."


‘끼이익 - 탁’


에밀리는 일어나 꾸벅 고개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손을 뻗은 자세 그대로 얼어붙은 사령관과, 기나긴 ‘기다려’로 한계에 달한 아스널을 뒤로 한 채 비밀의 방 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닫힌 문 넘어로 당황한 사령관의 얼빠진 신음소리와 굶주린 야수같은 아스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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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허리야…”


사령관은 찌릿찌릿 거리는 허리를 부여잡고 투덜거렸다. 아무리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한 몸이라지만 이렇게 자주 쥐여 짜이다가는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남은 업무가 더 있었나?”


사령관은 허리를 삐끗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아 남은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음?”


철충들의 동향에 대한 보고서부터 브라우니들의 사소한 요구사항들까지, 한참 서류를 읽어내려가던 사령관의 눈에 낡은 편지 한장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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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편지라.."


그는 서류 봉투 사이에 끼워진 익숙한 스티커가 붙은 편지를 집어들었다. 

편지를 열어 읽어내리는 사령관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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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항상 엔딩내는게 제일 어려운 듯....

착한 라붕이들은 에밀리 애껴줄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