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산타는 일곱 루돌프를 모두 모아 신룡에게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해주는 소원을 빌어 선물을 배달했다.... 이 모든 것이 감동 실화입니다….. 대략 여기까지가 크리스마스에 애들한테 읽어줄 동화인데 어때? 내가 직접 썼어.” 나는 동화책을 덮으며 내 앞에 앉은 지휘관들에게 말했다. 


 “...설마 그거 읽어주려고 지휘관들을 전부 여기로 부른 거야?” 철혈의 레오나가 내게 어이없단 듯이 물었다. 


“그런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내 말을 듣자 레오나는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다. 


“어이없네… 사령관, 나는 사령관의 멍청한 동화나 들으려고 여기 온게 아니야. 나와 어울리고 싶다면 그에 걸맞는 자세를 가지길 바래.” 레오나는 한숨을 푹 쉬고 방을 나갔다. 어울릴 생각 없는데. 


“사령관. 여섯 명이 다섯 명이 되었는데 어떡할 건가?” 로열 아스널이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난 하나의 의지도 존중해. 다만 존중과 내 사소한 보복은 별개의 일이지.” 


“보복?”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책상 위의 수화기를 집어 콘스탄챠에게 연락했다. “콘스탄챠. 앞으로 한 달간 동침 일정표에서 레오나 이름 빼고 발키리로 바꿔넣어.”


 이것이 내가 사적으로 내릴 수 있는 최대의 보복이다. 요컨대 가랑이에 구멍 대신 방망이가 달린 것이 사령관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내가 가진 최대의 권력이란 뜻이다.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몇 없는 수단이지라 종종 사용하지만, 가끔 이 사실을 곱씹어 보면 뭔가 아련히 슬퍼지곤 한다. 멸망 전 인류는 이 방망이-구멍 권력관계가 반대였다고 하던데… 하지만 나는 이런 수단이라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나가실 분 있으면 나가시면 됩니다.” 내가 수화기를 내리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리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이 무엇인가 기뻤다. 이 감정에 신뢰란 이름을 붙여도 되지 않을까? 


“아, 근데 메이 넌 나가도 돼.” 내가 말했다.  


“어?”


“어차피 넌 일정표에 이름이 없어.”  

메이는 내게 욕을 한바가지 퍼붓고 나가버렸다. 나가도 불이익이 없다는 고급 정보를 줬는데 왜 화내는 거지? 이것이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는 것인가 보다.  


“이제 네 명밖에 안 남았군. 그래도 우리의 신뢰는 굳건하겠지?” 나는 씁쓸하여 내리앉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가 잠자리를 가지고 협박하는 한 그러겠지.” 아스널이 답했다. 


“좋아, 우리의 신뢰는 영원할 거야. 자, 그러면 동화책이 망했는데, 아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에 뭘 해줘야 하지?” 


 하지만 그 누구도 쉬이 의견을 내지 못했다. 어쩌면 지휘관들을 불러모은 것은 내 실수였을지도 몰랐다. 나는 이들이 지혜롭다는 것을 알기에 불러모았다만, 결국 이들은 태생적으로 군인으로서 설계되었다. 지휘관은 아이의 마음을 모른다. 하지만 나 또한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런 가망 없는 브레인스토밍이라도 시도해야 한다. 


“...사령관. 결국 아이들이니까. 선물을 주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칸이 의견을 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선물 줬는데?"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단순히 선물을 줬을 뿐이잖나. 올해는 특별한 방식으로 선물을 주는 건 어떤가?" 


 "그렇군! 그러면 상공에서 떨궈버리는 건 어때?" 


 "...사령관이 직접 산타클로스 분장을 하고 몰래 선물을 주고 가란 뜻이다." 

 “옛날 그 때처럼?” 

 “아니, 이번엔 소규모로 하는 것이 좋겠군. 그냥 사령관이 아이들 방에 들어가서, 선물을 주고 나오는 거다.”

 “에이, 그건 너무 흔한 시도 아니야?” 


 “글쎄,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만 사령관이 이전까지 이런 방법을 시도한 적은 없지 않은가? 아이들에겐 충분히 새로울 것 같다.” 


 확실히 지금까지 그런 방법을 시도해본 적은 없다.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를 축하해 줄 땐 흔한 방법은 지양했으니까. 어쩌면 이런 흔한 방법이야말로 검증된 수단인 것일지도 모른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저는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각하. 적어도 작년보단 나을 것 같군요.” 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작년에 뭘 했더라?” 

 

 아스널이 내게 답해주었다. “아이들을 스카이 나이츠에 밧줄로 매달고 상공에서 자이로드롭을 태웠다. 사령관.”


 “그거 재밌지 않았어?” 

 “보는 사람이 재밌는 기획이었지. 올해도 하고 싶다면 이번엔 반대로 사령관이 매달리고 아이들이 지켜보는 걸로 해야 할 것 같군.”  아스널이 말했다. 


 “그럼 칸이 오드리한테 의상 요청 넣어주고, 나는 내일 애들 줄 예정이었던 선물들을 지금 챙길게. 아스널, 너도 준비해. 네가 루돌프야.”

 나는 급히 말을 돌렸다. 칸은 고개를 끄덕이고 사령관실을 나갔다. 마리 또한 ‘제게 시키실 일이 없다면 이만 업무를 보러 가겠습니다’라 말하고 자신의 일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스널은 남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령관. 내가 왜 루돌프인가?” 아스널이 내게 물었다. 

 “갈색이니까?” 내가 답했다.

 “무슨 말인가 사령관. 많이 쓰긴 했지만 아직 선명한 핑크색이다.” 

 “머리카락 색 말하는 거다. 이 색욕의 미구니야.” 

 

아스널은 그러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칸은?” 

 “칸은 24일 밤에 탈론페더를 맨투맨 마크하는 중대한 임무가 있거든. 오늘 밤엔 엘븐 시리즈 세명이랑 약속을 잡아놨다. 내가 선물을 나눠주고 돌아와 다음날 아침 기분좋게 기상하기까지 단 한 기의 도촬카메라도 허용하지 못해.” 


 “그냥 포기하고 찍히는 걸 즐겨보는건 어떤가? 사령관, 솔직히 그대의 도촬 영상은 오르카의 능률 상승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모든 대원들이 원할 때 그대의 손길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야 익숙해졌으니까 괜찮은데, 찍히는 다른 사람이 싫어하니까 그렇지. 저번에 초콜릿 모유 플레이가 유출된 후 삐진 걸 달래주느라 한달 걸렸어.” 

 “초콜릿 모유, 그건 파니와 레이븐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꽤나 인기있는 동영상이었던 것 같군.” 아스널이 흥미있는 주제라는 듯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넌 안 봤어?” 

 “난 흥분하면 바로 그대의 방으로 향하니까, 딱히 동영상으로 해소할 필요는 못 느끼겠더군.” 

 “넌 좀 해소해주면 안되냐? 나도 가끔씩은 한 여자랑 섹스한 후에는 모 갈색머리 여자와 2차전을 뛰어야 하는 밤에서 벗어나고 싶어.”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평소의 일상에 진절머리를 표했다. 


 “사령관, 그대는 아직 젊기에 모르는 것이지만, 철은 가혹하게 두드려지기에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다.” 

 아스널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것은 흡사 청년에게 충고하는 아버지 세대의 투를 닮았다. 그런 말투는 남자에게 반발감을 야기한다. 하지만 남자는 아름다운 여자에게 반발감을 가질 수 없다. 하여 나의 반발감은 두 명제의 결합에 따라 산성과 염기성처럼 중화되어 갔다. 그리고 그 중화의 화학식에 따라 나의 머리에는 열이 남았다. 나는 그 열을 허공에 툭 던지는 듯한 핀잔으로 배출했다. 


 “그런 논리라면 이미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해졌을 것 같은데.” 

 “오, 아직 낮인데 벌써 단단해졌다는 건가? 좋다. 어쩔 수 없으니 침대로 가지.” 

 “이런 젠장. 내가 잘못했어. 선물이나 가지러 가자고.” 나는 아스널을 만류하며 상의의 단추를 풀고 있는 그녀의 손을 막았다. 아스널은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으쓱이곤 단추를 다시 잠갔다. 


 그렇게 선물을 챙기려 사령관실을 나서던 우리는 그제서야 무적의 용이 아직도 자리에 앉아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야기를 읽어줄 때부터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만 그녀의 존재를 까먹어버렸었다.


“아, 미안. 용. 내가 아무 말도 안 했네. 이제 가서 쉬어도 좋아.” 

“아니오, 괜찮소. 그보다 주군. 소관에게 질문 하나만큼의 권리가 있는지 묻고 싶소만…”

“두 개 만큼도 있지. 물어봐.” 


용은 부끄러운 듯이 양 손가락을 서로 맞대며 물었다. 

“그, 주군. 아까 읽어준 동화는… ‘감동 실화’라고 했으니까… 실제 있었던 이야기인 것이 맞소?” 


“...어, 뭐 그렇지!” 나는 그냥 그런 것으로 했다. 용의 그 눈은 내게 ‘진짜로 저 멀리 우주에는 나메크성이 있느냐’ 라고 묻던 네리의 눈과 닮았었다. 내가 어찌 감히 그 맑은 창에 돌을 던질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 산타는…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것이 있소, 주군?” 용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 눈은 무언가 가치의 측면에서 시골의 밤 하늘마냥 빛나는 것을 내포하기에, 나는 그것에 쉬이 답할 수 없었다.하여  나는 그 질문에 공을 들여 가장 이성적인 대답을 해 주었다. 


“죽었어. 휩노스병으로.” 


“무, 무슨…” 용의 목소리가 떨렸다. 


“향년 88세였지. 용도 부디 산타를 추모해 줘.” 무적의 용은 숙연함에 싸여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저런 지휘관이라도 있으니 이 오르카의 가혹한 관계적 피라미드에서 내가 최하층이 아닐 수 있는 것일 테지. 그렇게 생각하며 용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나갔다. 


 선물을 다 챙기고 의상까지 전달받고 나니 어느새 늦은 밤이었다. 혹여나 아이들이 깨버릴까 그들의 저녁에 수면제를 섞어놨으므로 우리의 안전은 완벽했다. 나는 루돌프 의상을 입은 (사실 그것의 천 면적은 상당히 적어, 루돌프 의상이라기 보단 순록 모피 비키니에 가까웠다) 아스널에게 물었다. “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닷속에 있는 오르카도 겨울이 되면 공기가 차게 얼어붙는다. 차게 식어 무거워진 공기가 발소리를 흡수해 주었다. 점성이라도 있는 양 피부에 달라붙는 대기를 헤치며 아이들이 모인 방으로 향하자니, 이런 짓을 야외에서 해야 하는 프로 산타란 여간 중노동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긴 그렇기에 21세기의 산타들은 자신의 대부분의 업무를 각 가정의 아버지들에게 이월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마스터키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넓은 방 안에는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를 둘러싸고 아이들이 잠자고 있었다. 소완이 식사에 약을 얼마나 넣었는진 모르겠다만, ‘안전한 양으로’, ‘내일 아침 일어나게끔’, ‘그러면서도 자는 동안은 잘 안 깨게끔’의 3원칙을 준수하게 했으니 쉬이 아이들이 깨진 않을 터였다(그런 불합리한 요구를 쉽게 수용하고 실현해준단 점에서 애정이 무거운 여자는 좋다). 하지만 세상 일이 늘 그렇듯 완벽이란 없다. 


 “뭐야, 너 왜 안 자. 저녁 안 먹었어?” 방 안에 아직 깨있던 유일한 아이에게 내가 물었다.


 “저녁은 굶는 게 익숙해서 그냥 안 먹었고… 안 자는건 그냥 잠이 안 와서 책이나 좀 읽고 있었어.” 흔들의자에 앉아 있던 더치걸이 책을 덮으며 말했다. 


 “야, 그럼 안 되지. 잘 먹고 잘 자야 가슴이 큰 미녀로 자랄 수 있는거야.” 

 “하하, 그렇게 생각하면 난 영양공급이 제대로 된 기간보다 그렇지 않은 기간이 훨씬 기니까 이미 글렀는걸.” 더치걸이 웃으며 말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마. 나이트 앤젤도 아직 놓지 않고 있어.” 

 “내 미래에 대한 희망에 가슴이 언제부터 그렇게 큰 비중이었지? 모르겠는데.” 더치걸은 그렇게 피식 웃으며 독서용 램프를 껐다. 


 “그래도 내일 늦게 일어나는 건 싫으니까 슬슬 잘게. 그런데 사령관, 그 복장은 산타 코스프레야?” 더치걸이 물었다.


 “...난 사령관이 아니라 산타다.” 나는 일단 그렇게 말해 보았으나, 그녀가 그 말에서 신뢰의 근거를 발견했는지는 모를 노릇이었다. 


 “그럼 저 쪽이 루돌프야?” 더치걸이 아스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내가 이 루돌프에 올라타고 전 세계에 선물을 뿌리지.”

 “사ㄹ…. 산타. 통계적으론 내가 그대에게 더 많이 올라타지 않나?” 아스널이 의아하단 듯이 내게 물었다.  

 “앞으로 삼각목마에만 올라타고 싶다면 그 입 다무시오.” 


 “...사령관, 애초에 루돌프는 썰매를 끄는 거지, 산타가 루돌프한테 올라타진 않아.” 더치걸이 말했다. 


 “...너 알았냐?” 나는 아스널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알리가 없지 않은가.” 

 산타클로스는 <세크리테리엇>이 아니라 <벤허>였던 것인가. 오르카엔 산타 관련 시각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나는 이런 우를 범하고 말핬다. 


 “굉장히 똑똑하구나, 더치.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난 옛날에 TV를 본 적이 있으니까. 그때 크리스마스 영화를 본 적이 있어.”


 “크리스마스 영화라, 그건 나도 한번 보고 싶네. 어떤 내용이었어?” 

 “평범한 내용이야. 어릴 적 아버지랑 우연히 떨어져서 산타랑 요정들한테 자란 남자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내용이었을걸?” 

 “출생의 비밀이 들어간 시점부터 평범한 내용은 아닌 것 같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좋은 영화야. 결국 주인공이 부모님한테 자식으로 인정받고, 이복동생과도 사이좋게 지내게 되거든.” 

 “좋은 영화군. 해피 엔딩은 중요하지. 그래서 끝에 주인공은 자식을 낳나?” 아스널이 더치에게 물었다. 

 “어? 아니. 자식은 안 나오는데. 그래도 여주인공이랑 잘 되긴 해.” 

 

 “불행 중에 다행이군. 자손을 번영시킨다는 건 행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지. 그러니까 주인공이 자식을 낳아야 진정한 해피엔딩 아니겠나.” 


 “그건 네 독자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해, 루돌프.” 내가 아스널에게 말했다. 

 “호오, 그럼 산타의 기준은 무엇인가?” 

 “주인공이 목적을 이룬 거 아니겠어?”  

 “너무 포괄적이군. 그건 그냥 해피엔딩이지 진정한 해피엔딩이라 하긴 힘들지 않은가?” 

 “거 참 까다롭구만.” 

 “나에게 먼저 핀잔을 준 것은 그대다.” 


 나는 선물 자루에서 선물을 꺼냈다. 그리고 각각 알맞은 아이들의 머리맡에 놓으며 말했다. 

 “그러면 주인공한테 집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돈 없는 주인공들에겐 너무 가혹한 조건이군.” 아스널이 말했다.


 “아니, 굳이 내집을 마련한단 뜻이 아니라, 돌아갈 곳이 있단 뜻이지. 전세든, 월세든, 어딘가의 심리적인 안식처든.” 


 사람에겐 돌아갈 곳이 필요하다. 시골의 농가든 도시의 고층빌딩이든 잠수함의 작은 침대든. 그 곳에 돌아가기만 하면 편히 잘 수 있단 사실은 사람에게 살아갈 활력의 약속으로 남는다. 설령 그 활력이 개척하며 살아가기보단 버티며 살아가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돌아갈 곳… 저승 말하는 거야?” 더치걸이 나한테 물었다. 

 “뭐?” 

 “옛날에 작업현장에 투입된 인간 중 하나가 우리한테 죽으면 다 저승으로 돌아간다고 말했거든.” 


 “신박한 견해긴 한데, 난 살아서 갈 수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주인공이 죽으면 해피엔딩이 다 무슨 의미야.” 나는 손사래를 치며 부인했다. 


 “살아서 갈 수 있는 곳이라… 난 그런 조건은 좀 내키지가 않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지 않냐? 요즘 코헤이 교단한테 빠졌어?”

 “그, 나는 광부 바이오로이드고. 내 지금까지의 시간의 대부분을 그 광산에서 보냈으니까. 내가 살아서 돌아갈 곳은 거기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씩 들어.” 


 더치걸은 그렇게 말하며 씁쓸히 웃었다. 언젠가 그녀가 자주 광산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그것은 그저 무의식적인 불안의 반영일 뿐이라며 그녀를 달래고, 담배 한 갑을 쥐어주어 돌려보낸 적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 지금껏 담배 서른 갑을 뜯겼다. 


 “사령관, 이제 그녀에게 ‘네가 돌아갈 곳은 오르카다’라고 말해줄 셈인가?” 아스널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설마. 내가 왜 그런 뻔한 말을 해줘? 어차피 이미 오르카에 있잖아.” 


 “그러네. 어차피 이미 오르카에 있긴 해.” 더치걸은 아까와 같은 웃음을 유지하며 말했다. 


 나는 준비한 선물을 하나 빼고 전부 나눠주었다. 이제 자루에 남은 것은 더치걸의 선물뿐이었다. 다만 선물은 다 나눠주었으나 아직 선물을 받지 못한 실루엣이 하나 보였다. 나는 그것이 누군가 하여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봤다.레아였다. 


 “어우씨, 얜 왜 여깄어.” 

 “자기도 우리랑 동년배니까 같이 자고 싶다길래 그냥 그러라고 했어.” 


 “방에 아무나 들이지 마. 안 그래도 얜 수면제도 안 먹었을거 아니야… 나이들면 잠귀가 밝아진다는데 지금 깨있는거 아니겠지?” 

 “그 말을 한 이상 필사적으로 자는 척 하지 않을까 싶다. 사령관.” 아스널이 말했다.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나는 레아에게 말했다. “자고 있으면 그냥 자고, 깨 있으면 오늘 밤은 산타가 온 걸로 알고 있어라. 알겠지? 괜히 애들한테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자. 더치, 네 선물이야. 열어보는 건 내일 아침에 해.” 나는 더치걸에게 마지막 선물상자를 건넸다. 

 “고마워, 사령관. ...근데 수면제란 건 무슨 소리야?”


 “...요즘 오르카엔 불면증에 걸린 대원들이 많지. 의무실에서 최근 자주 처방해주고 있어.” 나는 가장 그럴듯하다 생각하는 거짓말을 했다. 

 “우와, 그건 정말 몰랐어. 나도 좀 처방받아야겠는데.” 더치걸이 말했다.


더치걸이 이어 말했다. “그런데 사령관, 더치걸이 무슨 말의 약자인 줄 알아?”

“뭔데?”


“바로 ‘더 거짓말을 하는 사령관은 치아를 다 뽑아버릴지도 모르겠는걸’의 약자야.” 더치걸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 너네 밥에 수면제 탔어.” 나는 순순히 진실을 고했다. 더치걸의 무기는 드릴이기에 저런 협박이 더욱 두렵게 다가온다. 

“...사령관. 음식에 그렇게 함부로 약을 타면 안 돼.” 

“그래, 그래. 미안. 산타는 들키면 안 되니까 그랬어. 내년부턴 안 그럴게.” 


 더치 걸은 손을 위로 올려 내 얼굴로 향했다. 그러곤 손을 딱밤을 때리는 것 같이 만들었다. 나는 순순히 무릎을 꿇고 그 손에 이마를 들이밀었다. 딱 소리가 작게 났다. 그리 아프지는 않았다. 


“그렇게 산타가 되고 싶었어?” 더치걸이 내게 물었다.

“칸의 아이디어야. 이런 걸 한 번 시도해 보자 하더라고.”


“우리는 산타보다 사령관이 선물을 주는 편이 더 기뻐.” 더치걸이 그렇게 말했다. 역시 지휘관들은 아이의 마음을 모르나 보다.

“그 말 고맙네. 그런데 올해는 산타가 선물을 주고 갔으니까 사령관은 선물 안 줘. 대신 내년 크리스마스를 기대해.” 


“내년이 올까?” 더치걸이 물었다. 

“그야 오겠지. 올해도 꾸역꾸역 잘 살았는데 내년이라고 못 살겠어?” 

“자고 깨면 다시 광산일지도 모르잖아. 내년 크리스마스가 없을지도 몰라. 하하.” 


 더치걸은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도 스스로의 말이 어이없단 듯이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연약한 웃음을 만드는 얼굴근육과 성대의 너머, 몸의 가장 깊은 곳에 흔적마냥 물들어있을 희미한 공포를 나는 대략이나마 알았다. 나는 그것을 똑같이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날 네 꿈의 등장인물이라고 의심한다면야 거기에 딱히 내가 제시해줄 수 있는 믿음의 근거는 없는데.”

 나는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내가 정말로 더치걸의 꿈의 등장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꿈에서 깰 시간이 되면 하늘이 유리조각이 되어 무너져버리고, 나도 모래가 되어 흩어져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더치 걸은 아침 노동을 시작하는 기상종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의심 없이 보장할 순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공포는 보편적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에게 뻔한 말을 해 주었다.


 “그래도 원래 삶은 근거 없는 믿음으로 사는 거야. 더치.” 나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일어났다. 


 “그런 건가?” 더치걸은 이번엔 공포감보단 허탈함이 강한 미소를 띄었다.

 “그런 거지.” 나는 그녀에게 답해주곤 문을 향해 걸어갔다.


 “아, 맞다. 그런데 사령관.” 더치걸이 나를 불러세웠다.

 “뭔데?”

 “어차피 애들을 약으로 재운 후 몰래 올 거면 굳이 분장까지 할 필요가 있었어?” 


더치걸의 날카로운 지적에 나와 아스널은 둘 다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네?”


 “ ‘그러네’라니.” 더치걸은 어이 없단 듯이 미소지었다.


“역시 넌 굉장히 똑똑하구나, 더치! 분명 크면 엄청난 사람이 될 거야. 가슴도 엄청난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잠은 충분히 자둬!” 


“아니, 그러니까 사령관은 왜 그렇게 가슴에 집착하는 거야?” 더치걸이 소리쳤다. 나는 피식 웃으며 아스널과 문 밖으로 나갔다. 


 문 밖으로 나가자 자동문이 다시 스르르 소리를 내며 닫히기 시작했다. 더치걸의 모습이 서서히 문에 가렸다. 문이 완전히 닫히면 그녀는 이제 자야 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에 잠자리가 있으며, 베개맡 위에 선물을 두고 잔단 사실이 그녀를 편히 잘 수 있게 한다면 그곳이 그녀의 집일 터였다. 


“잘 자, 더치. 내일 보자.” 

“응. 잘 자, 사령관. 내일 봐.” 문이 완전히 닫혔다. 



옷을 놔둔 사령관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스널이 내게 팔짱을 끼고 내 팔에 가슴을 들이밀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작전은 성공했군. 그렇지 않나?” 

 아스널이 내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긍정했다.

“그렇지.” 


“그런데 그대, 고생한 루돌프를 위한 특별수당은 없나?” 아스널이 내게 물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찌그러진 담배갑을 꺼냈다. 내용물은 담배가 아니긴 했으나 그걸 아스널에게 던져주었다. “피는 놈한테 던져주면 비싸게 쳐줄걸.” 


“그대, 아직도 대마초 피나?” 아스널이 걱정스런 얼굴로 내게 물었다. 


“대마초라니, 이건 산타할아버지가 요정 플랜테이션 농법으로 키운 나비풀이야. 피우면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난지 모르겠는 듯한 기분이 들지."


“역시 대마초가 맞는 것 같은데?” 아스널이 갑 안에 남은 몇 개비의 나비풀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풀네임은 카나비스라고 해.” 


“대마초 맞잖나.”


 아스널은 내게 담배갑을 돌려주었다. 그러곤 자기 몸을 더욱 가까이 밀착했다. 


 “이건 거절하지. 그 대신 다른 선물을 받고 싶군.” 


 “뭔데? 작년처럼 ‘사령관의 아기’, ‘사령관의 태아’, ‘사령관의 후손’ 이 셋중 하나면 바로 거절한다."


“사령관, 멸망 전 인류의 문물 중 씨몽키라고 아는가? 아르테미아라고도 불리지.”

“대충은?” 


“루돌프를 위한 선물은 그것과 비슷한 걸 받고 싶군. 사령관의 씨몽키를 뱃속에서 키우는 종류로 받아보도록 할까.” 


“...아까 선택지랑 뭐가 다른 거지?” 

“교육적으로 쓸만할지도 모르지. 오늘 밤은 엘븐 시리즈가 온다고 했나? 오늘은 넷이 아니라 다섯이서 끝까지 달려보도록 하자 사령관.” 


“아니 잠까악”

 아스널은 나에게 헤드락을 걸곤 내 침실까지 나를 질질 끌고 갔다. 어쩌면 내일 아침 선물을 받아 좋아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보내기에 가장 좋은 날이다. 산타 할아버지가 내년도 올 것이라거나, 선물 상자 안에는 원하는 선물이 들어있을 것이라거나, 내년의 크리스마스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 등. 하지만 근거 없는 믿음이 있어야 사람은 집에서 편히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근거 없는 믿음도 마냥 나쁘게 볼 만한 것은 아니다.


 진짜 루돌프는 헤엄을 칠 수 없기에 올해의 산타클로스는 내가 대행했다. 내년은 진짜 산타클로스에게 선물 배달을 맡길 수 있을 것이란 근거 없는 믿음을 가져본다. 루돌프에게 질질 끌려가며 크리스마스 전날의 밤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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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왜이렇게 길어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