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막장대회] 폭풍의 언덕 -上- - 라스트오리진 채널 (arca.live) 



7.

 “……”

 “……”

 “……응, 됐어.”


 남자는 어거스타의 팔에서 채혈한 피를 키트 몇 개에 뿌려두곤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샌가 노을이 질만큼 시간이 흘러, 불꽃보다 더 찬란한 심홍색으로 물든 응접실에서 레오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 딴에는 수습한다고 수습한 듯했지만, 짝에 맞지 않게 정리된 소파의 쿠션이나 부자연스럽게 구겨진 셔츠의 주름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목이며 귓가에 찍힌 발간 자욱들. 나름 평정을 유지한답시고 앉아 있는 듯했지만, 레오나의 눈에는 훤히 보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한 마디에 두 사람은 와장창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부서질 것처럼 애지중지 하더니, 거하게 치른 것 같네요.”

 “콜록콜록!”

 “어, 엄마?”


 그녀는 빙긋 웃으며 벽난로에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당황해서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어거스타는 내버려둔 채, 사래를 삭히는 남자에게 시선을 던지자, 그는 말 없이 침묵으로 긍정하고야 만 것이었다.


 “책망하는 게 아니랍니다, 도련님. 오히려 이 늙은이가 눈치 좋게 자리를 비운 보람이 있다고 해야겠죠.”

 “엄마아.”

 “좋든?”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능글맞은 질문을 던지자, 어거스타의 얼굴은 안 그래도 벌겋던 게 이젠 숫제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레오나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칠 곳이 없자 그녀는 제 양손 속에 폭하고 얼굴을 묻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아무 일도 없었다면, 엄마가 사령관과 첫 날 밤을 보냈던 이야기까지 해줘야 할까 했단다.”

 “우우……”


 장난 섞인 책망의 눈초리를 손가락 사이로 보내는 어거스타. 하지만 새끼 토끼의 원망이래 봤자 늙은 사자의 한숨 거리도 되지 않는 법이었다.


 한 방에 격침된 그녀를 두고, 레오나는 남자를 향해 입을 뗐다.


 “그래서, 검사 결과는 어떻죠?”

 “……”


 응접실의 온화했던 장난기가 삽시간에 사라졌다.


 심각한 표정으로 키트를 내려다 본 남자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이젠, 정말로 한계 같습니다.”

 “……”


 한계. 혼혈의 한계.


 인간과 바이오로이드의 혼혈은 체내에 오리진 더스트를 품은 채로 태어나게 된다. 기적의 물질과도 같은 오리진 더스트는 유기체의 성능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강력한 효능을 품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장을 마친 인간에게, 그것도 정확한 용량과 명확한 효능 표적을 갖고 활용되었을 때에만 성립되는 이야기이다. 그저 단순히 인간의 아이가 오리진 더스트를 품고 태어난다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품에 안고 있는 것에 진배 없는 것이다.


 오리진 더스트에 의해 극적으로 활성화된 신체 체계를 따라잡지 못하는 근골격계의 성장, 활성화된 감각과는 괴리되는 신경계의 확장성, 인간의 체내외 상호작용률을 아득히 넘는 오리진 더스트의 발현 등은 아이를 언제든지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는 독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 이런 변방에 그런 폭탄을 치료할 방법은 없었다. 그저 그것을 뒤로 미뤄주는 약을 사용해 왔을 뿐.


 “억제제와 성장 촉진제로는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아직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긴 하지만, 곧 조직 괴사 같은 합병증이 일어날 겁니다.”


 무거운 그의 말에 어거스타도 풀이 죽어버렸다. 레오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수도로 가면 됩니다. 위험한 상황이긴 하지만, 시술은 굉장히 간단하니까요. 닥터님이 말끔하게 고쳐줄 겁니다.”


 그는 어거스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그의 열렬한 시선에 레오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되겠죠.”

 “예,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겁니다.”

 “좋아요. 스타, 도련님을 따라가렴.”

 “어, 응? 어, 엄마는?”

 “나는 가지 않는단다.”

 “그럼, 그럼 나도 싫어! 안 갈 거야!”

 “도련님이 한 말 못 들었니?”

 “그러니까, 그러니까 같이 가! 나도, 죽는 건 싫은 걸. 그치만 엄마 없인 싫단 말이야. 그러니까 같이 가줘……”

 “……”


 더는 대답 없이 다시 눈을 감아버린 레오나. 어거스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바라보다 결국 응접실에서 뛰쳐나가버리고 말았다. 남자는 화들짝 놀라 그녀를 쫓으려다, 다시 레오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함께 가지 않으십니까?”

 “마음에 변함은 없습니다.”

 “저렇게 말해도 말입니까? 낯선 곳에 가게 되는데, 레오나님이 없다면 기댈 곳이 부족할 겁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도련님께서 있어주시면 됩니다. 이제 저처럼 다 늙은 바이오로이드에게서 독립할 때가 된 게지요.”


 그녀는 남자를 돌아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검푸른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태양을 응시할 따름. 노을이 수평선을 타고 너울지는 모습은 마치 불길이 치솟는 것만 같았다. 열기 없이 그저 타고 또 타기만 할 뿐인, 그래, 마치 연옥처럼.


 한숨이 흩어졌다.

 


8.

 “주인마님.”

 “……응.”


 그 날로부터도 벌써 한 달여가 지났다. 수일 간의 실랑이가 있었고, 레오나가 마치 소싯적 이명을 떠오르게 할 만큼 차갑게 둘을 쫓아내듯 보내버린 날로부터 말이다. 그 날 이래로 기계적으로 저택을 배회하기만 할 뿐이었던 레오나를 기억하는 콘스탄차로서는, 그녀가 오랜만에 가만히 서재에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었다.


 오늘도 비가 오고 있었다. 저릿저릿할 정도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를 등지고, 레오나는 편지를 읽고 있었다. 가만히, 흐릿한 스탠드 아래서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죽은 사람처럼 느껴져 콘스탄차는 잠시 섬뜩했지만 이내 그녀가 편지를 넘기는 것을 보며 작게 안도할 따름이었다.


 “아가씨께서 보내신 건가요?”

 “그래. 중간 기항지에서 보낸 거라 아마 꽤 예전 이야기겠지만.”

 “그렇군요. 무슨 내용인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대부분은 처음 보는 것들 이야기야. 뭘 봤고, 뭘 먹었고, 뭘 했고. 정말이지, 편지인데도 종이 너머로 조잘조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을 정도야.”

 “후후, 아가씨는 그런 점이 참 귀엽죠.”

 “그래. 그리고 또…… 아이가, 생겼다네.”

 “어머? 어머?”


 레오나는 편지의 맨 뒷장을 너무도 담담하게 읽었지만, 콘스탄차는 그 내용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요? 아가씨께서? 어머, 어떡해!”


 마치 제 일처럼 기뻐하는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는 잿빛 눈. 활짝 웃던 그녀는 그 눈과 마주하자 저도 모르게 놀라고 말았다. 도저히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 열리지도 않은 창이 활짝 열려 서슬 퍼런 바람이 그녀를 할퀴고 지나간 것 같았다.


 “주, 주인마님은 기쁘지 않으세요?”

 “응? 당연히 기쁘지.”


 입술은 웃음짓는다. 싱긋 웃는 그 모습은 미소 그 자체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눈은 아직도 서리처럼……


 쾅!


 얼어 있던 콘스탄차는 저택을 크게 울리는 소리에 흠칫 몸을 떨며 자세를 고쳤다.


 그것은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이런 시간에 누가……?”

 “가보렴. 손님인 것 같으니까.”

 “예? 주인마님과 약속이 되신 건가요?”

 “글쎄.”


 레오나의 입가에선 여전히 미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 섬뜩한 웃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콘스탄차는 저 소리가 손님이든 아니든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메이드가 떠나가는 소리가 서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아직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9.


 웃음


 가득 메우고 있던 것은 웃음이었다.


 찢어지게 울리는 천둥소리도 웃음, 서재로 짓쳐든 빗줄기도 웃음,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발코니의 난간에 기대어 있던 그녀도 웃음.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코트를 갈무리도 않은 채 달려 올라온 게오르그는 그 광소 한가운데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아하하하하하!”

 “레오나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정말, 정말 물에 빠진 생쥐 꼴이네.”

 “뭐가, 뭐가 그리 즐거우십니까!”

 “당연히 즐겁지. 사실을 알자마자 발바닥에 불 나도록 뛰어왔을 걸 생각하면, 언제나 오려나 잠도 못 들 정도로 즐거웠어.”


 이젠 숨이 찰 정도로 웃으며, 그녀는 한쪽 밖에 남지 않은 탁한 눈으로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비에 젖어, 밤에 젖어 어둡게 물든 와중에도 잿빛 눈동자 안의 광기만은 황황히 번들거리는 모습에 게오르그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뒷걸음질 칠 뻔했다.


 “그렇다는 건, 정말로, 정말로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럼, 알다 마다. 애초에 그 아이를 ‘데려온 게’ 나였는 걸.”

 “……!”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리자 그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그, 말은, 실종됐던 것도, 당신이 거두었던 것도 아니었단 말입니까?”

 “아아, 그때 그런 상황을 만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내가 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였으니까. 그 정도까지 하지 않았다면, 네 어미도 사령관도 믿지 않았을 거야.”


 벼락이 내리쳤다. 새까만 하늘을 찢고 희게 불을 뿜는 섬광 속에서 웃음 짓는 그녀. 빗줄기만이 눈가를 타고 흘러 방울 졌다.


 “어째서 그런…… 그녀에게, 제 누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다고!”

 “하하, 잘못한 건 없지. 네 어미 딸이란 것만 제외한다면.”

 “고작 그런 걸로!”

 “고작, 그래, 고작 그런 일이지. 하지만 꼬마야, 겨우 조막만한 행복조차 갖지 못한다는 게 더 비참하고 지옥 같다는 건 아니?”

 “무슨……?”


 웃음 소리가 그쳤다.


 빗줄기는 끝도 없이 턱밑을 타고 흐르며 서재를 좀먹었다. 주단이 검붉게 젖어 드는 한가운데서 그녀의 그림자가 너무도 덧없이 부서질 것처럼 일렁였다.


 “내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이제 더는 갖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데. 그 전부를 가진 그 애를 미워하는 게 그렇게 이상할까?”

 “……”

 “추해. 추악해. 이런 짓을 저지른다는 걸 후회할 때도 있었어. 하지만, 하지만, 그보다 더 기뻐하는 내가 있었어. 그래, 차라리 전부 망가져버리면 되는 거야.”


 즐겁다고 되뇌는 입과는 다르게 빗줄기는 한없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마지막 잿불 한 톨마저 꺼진 듯한 시선에 온기는 없었고.


 “전부 끝났어. 마침표만 찍으면, 정말로 끝이야.”

 “무슨……! 기다리십시오!”


 등뒤로 계속 감추고 있던 손에 들고 있던 것은 한 자루 권총. 세월이 느껴지는 둔한 금속의 광택이 스쳐간 뇌광에 빛났고.


 타앙!


 붉게 막을 내리는 커튼이 떨어졌다.

 


10.

 흔들림.

흔들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야 할 먼 기억의 원풍경.


 그 기억의 지평선 너머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녀는 지축이 울리는 포화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타오르는 불꽃과 코를 찌르는 매캐한 화약 냄새. 그 사이에서 정말이지 기적적으로 그녀는 타박상만을 입은 채로 잔해 틈에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잿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히끅.


 그 눈동자는 너무도 서늘했고, 증오로 가득했다. 그 사람이 다가오는 것이 어찌나 두려웠는지. 땅이라도 팔 수 있었다면 파고들었을 테지만, 두려움에 몸이 굳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그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차라리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린아이에게 하기엔 너무도 차가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씹어 뱉으면서도 그 사람은 어린 그녀를 품에 안아 들었다.


 “아니면 이쪽이 더 좋을까? 그렇다면 그것도 운명이겠지, 안 그러니?”


 서늘했다.


 찌르듯 차가운 서리바람 같은 그 말.


 그럼에도 어째서일까, 그녀는 그 사람의 품이 따뜻하다고 느꼈다.


 

11.

 “그 전쟁에서 레오나는 크게 다쳤었어. 눈을 다친 것도 굉장히 큰 부상이었지만, 그보다 더 컸던 건 복부를 관통했던 플라즈마 탄환이었지.”

 “그건, 설마……?

 “그래. 그때, 그녀는 아이를 잃었어.”


 총사령관실, 그 큰 방안에는 단 세 사람뿐이었지만, 비통함으로 가득해 밝은 조명이 무색할 따름이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철충 전쟁에서 그녀의 몸은 이미 한계에 가까울 정도로 혹사 당했고, 단순한 나노 바이오 수복 절차로는 수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지. 마지막 남은 건 새로운 레오나 모델을 생산하고 거기에 그녀의 의식 데이터를 옮겨 담는 것뿐이었지만……”


 “대장님은 그걸 거절했었죠.”


 슬픔으로 가득한 얼굴을 고개 숙여 가리고 있던 여성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갈색 머리, 서로 다른 눈동자의 색, 날카로운 듯 어딘지 모르게 작은 동물을 떠오르게 하는 이목구비. 남자는 어째서 자신의 누이에게서 진한 기시감을 받았는지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발키리는 가슴에 달린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부대 표장을 꼭 쥐었다.


 “과연 모든 부품을 갈아 끼운 배는 그 이전의 배와 같은 배일까? 레오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테세우스의 배였나. 그는 먼 옛날 인간들의 고사를 떠올렸다. 사람의 기억은 육체에도, 정신에도 쌓인다. 그 어느 한쪽이라도 결손 된다면, 과연 그것은 동일인일까?


 “대장님이 왜 떠났는지,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지, 전부 이해합니다. 제가 그랬대도 질투하지 않았을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대장님이었다면, 더 참을 수 없었겠죠.”


 그렇대도 용서할 순 없지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흘렀다.


 사령관은 가만히 그녀의 옆에 다가서 어깨를 도닥여 주었다.


 “죄를 범한 건 그녀지만, 어쩌면 거기까지 등을 떠민 건 나였는지도 몰라. 그녀의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 헤아리지 못한 건 분명한 내 잘못이니까.”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전선은 과열되었고, 사령관으로서의 업무 부하도 가중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것도 그는 알았다. 분명히 사랑을 약속했고, 서로에게 충실할 것을 서약한 사이. 아이까지 가질 정도로 깊은 관계가 되었던 이들은 그때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만큼 깊은 사이였기에, 레오나는 더더욱 그를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서라도 전선에 나섰던 것이다.


 상실감. 그리고 그 자리를 치고 들어온 발키리의 아이.


 그녀의 가슴에 뚫린 구멍이 얼마나 크고 깊었을지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리라.


 “스타는 어떠니?”

 “괜찮습니다. 아이를 가진 상태로 신체를 재건해야 한다는 걸 듣고, 닥터님이 저를 마구 혼내긴 하셨지만 결국 도전정신이 불타오른다면서 사흘 밤을 새고는 성공적으로 마치셨습니다. 지금은 아주 건강합니다.”

 “다행이네. 이 일은 모르는 거지?”

 “네. 제가 사실 친동생인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닥터가 그런 점에선 눈치가 아주 빠르니까.”


 사령관은 거기에 닥터로부터 어거스타를 진단한 각종 소견서까지도 받아본 바였다. 그녀가 발키리의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아내자 마자 닥터는 그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면밀히 검사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그녀는 애정 속에서 자랐음을 알게 되었다. 바이오로이드 혼혈이 가지는 태생적인 문제와 발키리 모델의 2세들에게서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개조 안구의 시력 문제를 제외한 그 어디에서도 학대나 방치의 흔적이 없었다. 어릴 적, 아마 유괴 당시의 기억이 흐릿한 것조차 흔한 큰 충격에 의한 기억 상실이리라.


 “그렇다면…… 이 사실은, 그래, 우리들만 아는 걸로 해두도록 하자. 괜찮을까, 발키리?”

 “……네. 비록 이렇게 됐을지언정, 제 대장님이니까요. 저희 부대원들도 이런 아픈 이야기는 알고 싶지 않을 겁니다.”

 “고마워.”


 가타부타 말하기보다, 그는 가만히 발키리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을 아낄 뿐이었다. 지금 누구보다 슬플 사람도, 분노할 사람도 그녀란 것을 알기에. 그럼에도 그 모든 독을 삼키기로 결정한 깊은 사랑에 보이는 존경이었다.


 “게오르, 너는 어쩔 거니?”

 “예?”

 “아무리 몰랐다 한들, 네 누이다. 꺼려진다면 내가 손을 써주마. 어쩌면 그쪽이 너와 그 아이 둘 모두에게 좋을지도 모른……”

 “아니요, 아버지. 몰랐다고 해도, 친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해도, 사랑하게 된 건 사실입니다. 그 결과에는 책임을 지고 싶습니다.”

 “이번 일이 끝까지 너를 물고 붙들게 될 수 있어도 말이냐?”

 “예. 그녀에게는 어떤 죄도 없지 않습니까? 저 마저 그녀를 버리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냐.”

 “예. 후회하지 않을 자신, 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후회마저 제 선택이라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알겠다. 닥터에게는 내가 잘 말해두마. 너는 그 아이에게 가보렴.”

 “감사합니다.”


 남자가 방을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발키리는 사령관의 품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12.

 그곳에서는 일 년에 몇 없을 화창한 날씨였다.


 옥상의 화단은 솜씨 좋은 정원사의 손길을 한껏 뽐내는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했다. 그 사이를 거닐며, 어거스타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잘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몹시 그리운 꿈을 꾸다가 일어난 탓이었다. 몸이 편해져서 그런 걸까, 그녀는 발걸음을 가벼이 하며 꽃내음을 만끽했다.


 문득 그녀가 발걸음을 멈춘 곳, 거기에는 붉고 가녀린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가만히 그 꽃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경쾌한 날갯짓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다가왔다.


 “꽃이 예쁘죠?”

 “네? 아, 네! 정말 예쁘네요. 특히 이 꽃, 어딘지 모르게 저희 엄마가 생각나네요.”

 “그러시군요.”

 “네. 예쁘지만, 어딘지 모르게 항상 부서질 것처럼 여린 모습이 보여서.”

 “그 꽃의 이름은 상사화랍니다.”


 가만히 꽃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옆에 조심스럽게 선 다프네는 작은 정원 가위를 꺼내더니 한 송이를 살짝 꺾어선 그녀의 머리에 장식해주었다.


 “언니가 알면 조금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아가씨께 이렇게 해드리고 싶네요.”


 붉은 꽃잎이 바람결에 살며시 흔들렸다.


 “스타, 여기 있었구나.”

 “어머, 게오르그님.”

 “안녕하세요.”


 발할라의 부관이자 사령관의 아들이 등장하자 다프네는 깜짝 놀라며 목례를 한 후 황급히 자리를 떴다.


 “찾았잖아. 몸도 안 좋을 텐데.”

 “아냐, 지금 요 몇 년 생각해봐도 더 없을 만큼 팔팔한 걸. 그리고 닥터님한테 산책 정돈 해도 괜찮다고 허락까지 받았어.”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바람결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매만져주려 손을 뻗은 그는, 손을 귀 뒤로 가볍게 쓸어 넘기다 꽃을 건드리고 말았다.


 바람.


 하늘 위로 붉게 꽃잎이 흐드러졌다.


 “아, 날아가버렸네.”

 “미안해.”

 “아냐, 어쩌면…… 그것도 운명이겠지.”


 그녀는 웃으며 그를 끌어안았다.



 그의 품은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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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의 원작과는 전혀 관계 없는 글쪼가리


 노래 듣다가 그만 삘이 와서 쓴 건데 몇 날 몇 일을 폭풍 속에서 웃는 게 떠올라서 안 쓸 수가 없었던 거


 혐성밈... 막상 쓰니까 정말 별로네 다시는 안 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