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님?”




오랜만에 정비실에 방문한 사령관이 발견한 것은 전보다 초췌해진 얼굴로 기계 정비에 매달린 포츈이었다. 옷 곳곳에는 기름때가 묻고 움직이던 이번 상륙 때 파손된 AGS들의 개체수가 꽤 많다보니 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수고 많아. 기체들의 복구는 잘 돼가?”


“사령관님은 누나만 믿고 푹 쉬면 되거든? 이젠 마무리 단계거든, 조정만 완료되면 오늘 중으로 다시 내보낼 수 있거든?”


“바이오로이드 들의 수복은?”


“그쪽도 거의 다 완료 됐거든. 그래도 필요 부품이 부족해서 … 장비 수리는 아직이거든?”




사령관은 뒤에 덧붙인 말에 골치가 아픈지 낮게 신음했다. 운용이 어려울 정도로 파손된 기체들은 전부 철혈의 레오나와 함께 나갔던 선발대 들이었다. 상륙 직후, 갑자기 깨어난 철충들의 맹렬한 반격으로부터 두 시간, 레오나가 이끄는 중대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진입로를 확보하고 지원 중대와의 양동작전까지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털끝하나 상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부대는 한명도 빠짐없이 반파 이상의 처참한 상태였다.




사령관은 그때의 레오나를 험악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마리를 회상했다. 단순히 병력 손실을 질타하는 눈이 아니었다며, 사령관은 나직히 한숨을 내뱉었다.




“저기, 포츈.”


“사령관님, 누나 듣고 있거든?”


“마리가 왜 저럴까?”


“?”




포츈은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 한 건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사령관은 그 반응에 손에 든 지도를 가볍게 휘적거렸다.




“…… 됐어. 그냥 한 말이야.”


“사령관님, 누나 김빠지거든….”




스스로가 예민한 것인가를 자문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 않았다. 평소에 그녀가 보이던, 타인에게는 관대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군인 그 자체인 그녀가 기껏 개인적인 감정으로 레오나와 반목하는 거라 보기엔 평소의 이미지와 꽤나 거리감이 있어보였다. 그렇다고 과거의 실패를 의식한다고 보기에는 내세우는 주장이 너무 감정적이고 완고하다.




“뭔가 … 이 요새의 전투기록에 대해서 나오는 데이터가 있으면 내게 줄 수 있을까?”


“후후, 그런 건 누나 전문이거든. 맡겨줘도 되거든?”


“기다리고 있을게.”




분명 어딘가에는 이 위화감의 실마리가 있을 것이다. 사령관은 그녀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내며 함장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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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이 되자 사령관을 위시한 지휘관들이 변경된 지침을 온 부대에 전파했다. 오르카호는 섬에서 멀리 떨어진 심해에 몸을 숨겨 철충을 자극하는 것을 최대한 피하고 높은 절벽 위에 위치한 자원들을 회수하는 동시에 주변의 철충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병력의 운용은 마리가 아닌 레오나가 주축이 되어 지휘했으며, 마리는 수복 실에서 전투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휴식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소한의 병력만을 배치한 경계태세는 첫날엔 아직 전투의 잔향이 다 씻겨나가기 전이라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불만을 표시했지만, 이튿날부터는 예상보다 더 적은 근무시간과 더 많은 휴식 시간, 그리고 충분한 수복 시간 보장으로 바이오로이드 들이 입었던 전투의 상흔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


“수고했어, 불굴의 마리. 통상운용에는 문제 없을거야.”


“이렇게 빠르다니, 과연 닥터군요.”


AGS의 복구 및 전투 장비의 정비를 담당하는 정비소,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지능을 자랑하는 바이오로이드가 있다. 여럿이 머리를 뭉치면 기술적 특이점도 이뤄낼 수 있다고 여겨지는 최고의 두뇌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순한 인상의 그녀. 닥터라고 불린 소녀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당연하지. 하지만 조심해, 당장 쓸 수 있는 만큼만 고쳤을 뿐이야. 별 문제는 없겠지만, 강력한 전자기파가 발생하는 곳에서는 운용을 중지해야 한다는 거 잊지 마.”


“예를 들면 어떤 곳입니까?”


“뭐……. 오르카호 함내가 가속할 때나, 수복실 유닛 내부 정도겠지. 육지에서는 평범하게 쓸 수 있어.”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마리가 웃으며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자, 닥터 역시 웃으면서 화답했다.




“나도 충분히 즐겼으니까 괜찮아.”


“…?”


“비홀더 아이도 직접 분해 해볼 수 있어서 좋았거든.”


“그런 것이라면 후에도 언제 한번 들러서 마음껏 만지실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정말? 그래도 돼?”


“물론이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끝맺은 마리는 다시 닥터에게 인사를 건내고 돌아갔다. 하지만 시끄러운 오르카 함내의 진동음 때문인지, 뒤에서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닥터를 보지는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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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 많으심다~”




레프리콘은 수복실 유닛 옆으로 웬 브라우니 한 기가 아는 척을 하면서 다가오자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인식번호를 보고 아는 척 하는 브라우니라면 역시 2056호 말고는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56호?”


“넷슴다. 분대장은 무슨 문제로 오신검까?”


“별 거 아니예요. 회로 내 인식 기능이 고장나서…….”


“어? 그럼 저인 건 어떻게 알아보셨슴까.”


“저를 인식하고 이렇게 오는 게 당신 말고 더 있나요.”




레프리콘은 이 아수라장에도 여전한 이 바이오로이드의 성격에 조금은 안심 했다. 평소 동중국해 연안 근처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오르카호의 이번 원정에 적잖이 불안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사실 3114호임다.”


“거짓말이죠?”


“사실 4782호임다.”


“그것도 거짓말이잖아요.”


“헤헤, 들켰슴까.”




레프리콘은 비일상 같은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기종이었다. 소심하지만 성실한 성격의 레프리콘은 제한된 임무는 철저하게 해내지만, 계획 외의 상황에서 자신의 권한 밖의 일에는 임하기 어려워하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얄밉게 느껴질 이 능글맞은 얼굴이 반갑게 느껴지는 자신의 처지에 레프리콘은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 그러고보니 저 방금 대단한 거 보고 왔슴다.”


“어떤 건데요?”


“저, 지금 밖에서 자원 회수를 맡고 있슴다. 이게 말 그대로 자원만 아니라 과거 파손된 건물이랑 바이오로이드들의 잔해도 들어오는데…….”


“으.”




의기양양한 브라우니의 표정에 레프리콘은 벌써부터 질릴 것 같았다. 무슨 무서운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지 입가를 다물지 못 하는 그녀와 자신 사이에 수복 유닛만 없다면 당장 입을 막았을 것이다. 적어도 후기에 제조된 동종 기종이라면 말로 그만두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2000번 대 라는 상당히 초기 유닛인데다 경험도 많아 좀처럼 말을 들어먹지 않는 2056호는 그녀의 기대와는 다르게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게, 여기 지휘관기의 시험기가 투입됐었던 것 같슴다.”


“어? 누군데요. 마리 대장? 아니면 레오나 대장?”


“그게 말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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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섬 위의 진지. 마리는 이틀간의 수복을 마치고 레오나와 일을 나누었고, 드디어 지휘관급도 제대로 된 휴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일은 [더 캐슬]이 지하에 보관하고 있던 것들을 옮기는 수송업이었는데, 거기에 배치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러니까 이 탄두 하나만 발사하면 뚫릴 걸 왜 밍기적거리고 있냐는 거야!”




전투에 나가지 못 해서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인 둠브링어의 불멸의 메이 때문이었다.




“이대로 활약 하나 없이 전선에서 물러나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해!?”


“메이 대장, 쓸데없는 건 그 흉부로 끝내주세요. 떼까지 쓰시면 본보기가 안 됩니다.”




옆에서 긁어대는 나이트엔젤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았다.




“시끄러워! 사령관도 내 진가를 몰라보다니, 너무 피곤해서 이상해진 거 아니야!?”




그것은 그녀가 작전 회의 내내 전지역 폭격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




마리는 스스로 뿌린 씨앗을 거두느라 작전 내내 찬밥신세인 그녀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고민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전용기 ‘심판의 왕좌’ 우측에 위치한 붉은 버튼을 한참 노려보다 자리를 떠났다.




“인수인계는…….”


“보고 안 받았어?”


“특이사항은 없습니까?”


“저 녀석이 알아서 하니까 냅두면 돼!”




씩씩거리며 떠난 메이가 말한 저 녀석이란…….




“모험 …… 떠…나자…. 히히…….”




저 먼 바다 속에서 자원과 보물 채집을 하고 있던 트리아이나였다.




[더 캐슬]의 지하 저장고의 격벽은 생각보다 단단한데다 그 격벽마저 한 겹이 아니어서 뚫는데 상당히 애를 먹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마지막에 봤을 때 보다 이상해진 웃음소리와 어딘가 홀린 것 같은 초점은 마리가 불안함을 느끼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수복실에 통신을 보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뭔가 …… 몸이 힘들면 나아질 것 같다고 자원했다 들었슴다.”


“…… 알겠다.”


“넷슴다. 그럼 수고하십쇼~”




분명 처음 봤을 때는 활기차고 밝은 타입인 줄로만 알았는데. 마리는 첫인상과 완전히 달라진 그녀에게, 바이오로이드도 역시 다양성을 띄기 마련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뒤돌아섰다.




자세한 건 묻지 않기로 하자는 다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