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마츠시타는 와인잔을 집어들었다. 취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반모금씩 마시고 있었지만 벌써 세잔째였다. 식장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좋은 교류의 시간이었지만 마츠시타는 그렇지 못했다 고급 정장이나 드레스를 입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누가봐도 마츠시타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마츠시타는 기자였다. 저들에게 접근해 정보나 기삿거리를 찾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마츠시타는 저 무리 속에서 낯익은 몇몇 기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미 무리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마츠시타는 조용히 와인을 반모금 마셨다. 스파클링 와인의 약한 탄산이 마츠시타의 입과 목을 자극했다.

 결혼식의 시작은 생각보다 늦었다. 이미 예정된 예식 시간에서 1시간 정도 지나 있었다. 하지만 이들중 아무도 그에 대한 불만이 없었다. 어쩌면 이곳의 사람들은 츠즈라누키의 결혼식보다는 온 다른 손님들과의 사교에 더 관심이 있는 것 아니었을까.

 마츠시타는 로비를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 중에는 마츠시타도 알고 있는 유명인들도 많았다. 연예인, 국회의원, 심지어 현지사도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TV에서 몇번 본 것 같은 사회유력인사들도 보였다. 유명인의 결혼식은 이런 법이었을까.

 마츠시타는 다시 와인을 마시며 마침 그녀의 옆에 있던 화환을 바라보았다. ‘중의원 츠즈라누키 양의 결혼을 축하하며’ ‘일본국 총리대신 쿠니키다 쿠니히로’ 예상외의 화환에 마츠시타는 주변을 다시 한번 보았지만 로비 어디에도 총리는 없었다. 아마도 본인은 참석하지 않고 화환만 보낸 것일지도 몰랐다.

 “총리는 오늘 해외귀빈과의 만찬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어요. 하긴, 야당의원의 결혼보다는 덴마크 왕자와의 만찬이 더 중요하겠죠.”

 누군가가 마츠시타의 옆으로 다가왔다. 마츠시타가 돌아보자 고급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서있었다.

 “TV 도쿄 정치부 기자, 시라이시 타다오미라 합니다.”

 그는 마츠시타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낯익은 방송사 로고가 그려져있었다. 기자. 이 남자 역시 저 무리속에 섞여있던 기자중 하나였던 모양이었다.

 “월간 치바 사회부의 마츠시타 쥰이라 합니다. 어, 어라.”

 명함을 받아든 마츠시타는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기 위해 핸드백을 뒤졌지만 명함이 보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명함이 여기 어딘가 있을 것 같은데…”

 “아, 괜찮습니다. 기자님은 이 방 누가 봐도 기자처럼 보이니까요. 이런 장소는 처음이신가봐요?”

 “그런 셈이죠.”

 유명인의 결혼식은커녕 결혼식이라는 것에 가본 적이 없던 마츠시타였다.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기자시면 굳이 온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되겠네요. 이 자리에 있는 기자들은 모두 같은 이유로 온 것이니까요. 츠즈라누키 이치카 중의원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려는 거죠. 지금 가장 이목을 끌고 있는 의원의 결혼이에요. 어느 기자든 그 진실에 대해 알고 싶겠죠.”

 시라이시는 걸려있는 츠즈라누키의 사진을 보았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마츠시타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마츠시타가 원하는 것은 그저 저 행복한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 아니었을까.

 “하지만 츠즈라누키 의원은 이 장소가 기자로 가득해지는 걸 원치 않았는지 비공개 예식으로 진행했죠. 초대장을 받으셨으니 아시는 이야기겠지만요.”

 시라이시는 이번에는 창문에 걸려있는 커튼을 살짝 들추었다. 창밖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플래시를 켜고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바깥을 살짝 본 마츠시타의 얼굴이 찍혔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기에 있는 기자들은 선택된 운좋은 사람들이죠. 어쩌면 츠즈라누키 의원에게 좋은 기사를 써주었거나 키리시마의 스폰을 받는 기자일지도 몰라요.”

 마츠시타는 부정할 수 없었다. 츠즈라누키가 옳다고 생각했던 시절, 그녀를 위한 기획기사를 썼던 그녀였다. 어쩌면 츠즈라누키가 그녀를 친구라 생각한 것은 그녀가 써준 기사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지 않았을까.

 “기자님은요? 어느쪽에게 좋은 걸 써주는 기자시죠?”

 마츠시타는 시라이시의 말에 긍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 그에게 물었다.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시라이시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기도 했다.

 “별 거 없어요. 키리시마 건설의 비리 파헤친다고 별의 별짓 다하다가 회사에서 여러 번 잘릴 뻔했던게 다에요. 처음 키리시마 건설에서 편지를 받았을 때는 고소장이라도 날아온 건가 싶었다니까요. 저 같은 사람을 초대한 건 그냥 공정성이 있게 기자들을 초대한 것럼 보이려 한게 틀림없어요.”

 “결국 기자님도 결혼식 당사자에게 좋지 못한 기사를 쓰려 한 것 아닌가요. 그러면 정말로 그러는지 모르는 것 아닌가요.”

 이 자리에 있는 두명 모두 결혼식 당사자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기자들이었다. 쫓겨나도 이상할 것 없는 기자들이었다. 그렇다는 건 이 자리에 있는 기자들 모두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아뇨. 저기 뷔페에서 새우를 든 기자 보이시나요? 얼마전 키리시마 건설과 사이타마 현과의 유착의혹 있었을 때 그것을 부정하는 기사를 쓴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기 중앙 테이블에서 야스다 참의원과 대화하는 사람 보이시죠?”

 야스다 참의원이 누군지는 몰라도 시라이시가 가리킨 사람이 누군지는 알 것 같았다.

 “아사히 신문의 정치부 기자에요. 국회 출입 기자인데 평화일본당에게 뒷돈을 받는다는 소문이 있어요. 전부다 이런 식이죠. 정치는 전혀 깨끗하지 못한 곳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고요.”

 시라이시는 마침 지나가던 웨이터가 들고 있던 쟁반에서 와인잔을 집어들었다.

 “기자님은 어떠신가요?”

 마츠시타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 츠즈라누키가 하는 일이 옳다고 믿고 그녀를 도와주던 사람이었다. 츠즈라누키의 보좌관과 사귀던 사람이었다. 츠즈라누키라 친구라 부르는 사람이었다.

 “제가 너무 프라이버시한 질문을 했나보네요.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여기서 물러나죠. 부디 기자님도 원하는 특종을 얻으시길.”

 시라이시는 자신의 잔을 마츠시타가 들고 있던 잔에 가볍게 부딛히고는 어디론가로 걸어갔다. 마츠시타는 그와 더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를 부르고 싶었지만 자신의 마음조차 정리하지 못한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손에 든 와인잔을 마실 뿐이었다.

 그때 로비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며 붉은 레드카펫이 로비 중앙으로 굴러오며 길을 깔았다. 결혼식은 별도의 방이 아닌 로비에서 바로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로비에 단상을 만들었다.

 “오늘 키리시마 코우타와 츠즈라누키 이치카의 결혼식에 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단상에 올라온 남자가 말했다. 로비에서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이야기를 멈추고 단상을 바라보았다.

 “저는 오늘 결혼식의 사회를 맡은…”

 결혼식은 지루했다. 결혼 당사자들을 위한 축가, 축연, 축하, 소개, 다양한 순서가 있었지만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는 마츠시타는 얼른 이 결혼식이 끝나길 바랄 뿐이었다. 20분이 넘는 시간동안 츠즈라누키 이치카 본인은 보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 신랑을 불러보겠습니다. 키리시마 코우타군을 소개합니다.”

 문이 열리며 흰 턱시도를 입은 훤칠한 남자가 자신있는 걸음으로 단상으로 나아왔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무수한 박수를 쳐주었다. 마츠시타는 조용히 와인을 반모금 마셨다. 츠즈라누키에만 관심을 가지던 마츠시타는 그제야 키리시마 코우타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미남이었다. 어째서 츠즈라누키가 빠른 시간에 결혼을 결심했는지 알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이번에는 신부를 불러볼까요? 츠즈라누키 이치카 중의원, 단상으로 나오시죠.”

 사회자의 말에 결혼행진곡이 울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고 흰 백무구를 입은 츠즈라누키가 천천히 걸어왔다.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긴 기모노를 입은 그녀는 이 자리의 주인공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향해 이쁘다, 부럽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츠시타는 다시 한번 와인을 마셨다.

 “키리시마 코우타군, 츠즈라누키 이치카양.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이었지만 이 자리에 하나가 되기 위해 나아왔습니다…”

 주례가 시작되었다. 길고 지루한 말들이 이어졌다. 상투적이었다. 어느 결혼식을 간들 저와 비슷한 말을 할 것임에 틀림없었다.

 “키리시마 코우타군, 츠즈라누키 이치카양을 언제까지라도 사랑해줄 것을 약속합니까?”

 “그렇습니다.”

 키리시마는 자신감 있다는 얼굴로 당당하게 대답을 했다.

 “츠즈라누키 이치카양, 키리시마 코우타군을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사랑해줄 것을 약속합니까?”

 “네.”

 츠즈라누키는 부끄러움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선포합니다. 여러분의 축복 속에서 키리시마 코우타군과 츠즈라누키 이치카양은 더 이상 서로 남이 아닌 하나의 가족으로서 키리시마 코우타씨와 키리시마 이치카씨로 이루어진 하나의 몸이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키리시마 이치카. 언제부터 생겼을지 모를 일본의 결혼이었다. 결혼을 한 부부는 하나의 성을 사용한다. 주로 여성이 남성의 성을 따라갔다. 물론 여성의 성에 남성이 따라가는 경우도 있었다. 마츠시타는 당연히 후자일 것이라 생각했다. 정치인에게 있어서 이름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갑자기 하루 아침에 성이 바뀐 정치인을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안그래도 성에 대해 민감한 분이야. 자신의 성 때문에 항상 선거 때만 되면 예민하다니까.’

 마츠시타는 먼 옛날, 토오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츠즈라누키(葛貫). 한자로 쓰기 힘들고 외우기도 힘든 성이었다. 그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는 의원이라면 그런 단점을 안고서라도 성을 바꿀지도 몰랐다. 키리시마(切島)). 초등학생이라도 쓸 수 있는 단순한 성이었다.

 “그럼 두분, 서로 입을 맞춰주세요.”

 마츠시타가 잠시 생각을 하는 동안 두 키리시마는 서로 키스를 했다. 진한 입맞춤이었다. 사람들의 박수속에서 마츠시타의 머릿속에 토오노와의 키스가 떠올랐다. 달콤했던 그 키스는 진득한 꿀이 되어 마츠시타의 뇌를 뒤집어놓았다.

 잊고 싶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마츠시타는 반쯤 남은 와인을 한모금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바라보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키리시마 이치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반지를 약지에 끼고 손을 흔드는 키리시마 이치카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