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정리했다 싶을 때, 공순이가 다가왔다.


"저기, 인간님. 부탁이 좀 있거든?"

"안해."

"주, 중요한 거라서 그렇거든!? 알다시피, 우리의 메인 베이스가 습격당했거든? 요컨대, 흩어진 바이오로이드들이 많을 거거든? 그래서...걔네들이 다치기 전에 얼른 다시 여기로 합류했으면 좋겠거든?"

"여기 야전이 익숙한 녀석들 있냐?"


꼬맹이의 안대 벗기면 라이트가 새어나온다 했던가. 그걸로 야간 수색을 하면 빛을 보고 찾아온 철충들에게 바로 찍히겠군.


정말로 그 꼬맹이는 등대지기용으로 밖에 쓸 수가 없나.


다시는 돌아올 일 없겠지만, 다음에 돌아올 때까지 밤마다 빛을 반짝이며 기다리라고 냅두고 가면 되겠군.


"아니아니, 꼭 싸워야 한다는 것 아니거든? 다른 자매들과 다시 합류하려면 일단 통신이 원활해야 하니까. 위쪽의 등대에 통신기를 좀 설치해 주었으면 좋겠거든? 아무래도 대형 신호 발신기를 설치할 높은 데가 많진 않으니까."


흩어진 녀석들을 모아야 하는 건 사실이다. 최소한의 전투원은 필요 하니까.

요안나 같은 강자만이 아니라, 집단 간의 싸움에서 시간벌이를 해줄 1회성 탄알들. 총알받이들.


"철충 놈들은 밤눈이 어둡나?"

"아마도? 우리는 전파로 철충들이 주변에 있으면 대충 감지가 가능하지만."


그러고보니 아직 해 떠 있을 때 금발 년과 메이드 년도 철충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의아해 했다.


이상하게 인간의 위치는 금방 찾아낸다고.


그리고 인간의 지시가 있으면 제대로 싸워, 이길 수 있다고도.


"......좋아. 안전을 위해, 주변을 좀 정리해 볼까. 어이, 금발 년. 꼬맹이랑 같이 등대에 통신기 달고 와. 공순이, 여기 홀로그램 지도 같은 거 펼쳐봐."

"뭘 하려고? 설마 싸울 생각인 거야?"

"하급 전투원이라는 녀석들만 잘라낸다. 통신 닿는 년들은 전부 내 목소리 듣게 해."


내 지시에 바이오로이드들이 서둘러 움직인다.


대군을 지휘해, 야전......같은 건 해본 적 없지만.


적이 눈 뜬 장님이고, 이쪽은 명령만 내려오면 뭐든 할 수 있는 녀석들이라면.

의외로 해볼 만할 것이다.


"아쿠아. 특명이다. 받들어라."

"응! 뭐든 시켜만 줘!"


사전에 지시해 둔 걸, 메이드 년이 아쿠아에게 건넨다.

건네준 건 발신기다.


"이건?"

"지금부터 네가 이 작전의 핵심이다. 네년이 죽으면 거기서 끝. 네년의 동료인, 자매란 것들이 개죽음 당한다. 어때, 해보겠나?"

"......"


아쿠아는 대답하지 않은 채, 발신기를 내려다본다.


"왜, 갑자기 무거운 임무가 내려와 버겁나?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나? 그럼 거부해도 좋다. 단, 그 경우 앞서 했던 약속은 파기. 네가 활약할 무대 따위는 없다."


이게 마지막 시험이다. 그 향상심이 거짓이 아니라면──.


"......할게. 내가 해야 하는 걸 가르쳐줘."


아쿠아는 고개를 들고 말한다.


나는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묻는다.


"불안감에 등 떠밀리듯 막 내뱉는 건 아니겠지? 그 경우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처벌이 떨어질 거다?"

"우리는 지금 전쟁을 하고 있어! 그 전쟁터에서 활약하겠다고 말한 거야! 목숨을......걸지 않으면, 내 꼴이 너무 우습잖아?"

"......"


아쿠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 말한다.


"명령을 내려줘, 인간님. 내가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줘."


다리가 떨리고 있다. 동공도 미세하게 요동치고 있다. 얼굴 근육이 떨리지 않게 꽉 다잡고 있다.

누가 봐도 허세. 겁쟁이의 허장성세. 하지만......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하지. 충견보다 지 영역에 터치하면 대들 줄 아는 번견이 더 마음에 들어. 손을 물면 바로 보신탕 행이지만. 잘했다, 아쿠아. 넌 지금부터 '내 개새끼'다. 언젠가, 쓸모가 다해 잡아먹어야 할 때가 오기 전까지, 언제나 제일 중요한 전선에서 활약케 해주지."

"......인간님, 취향 엄청 까다롭네."

"'선'을 지키라는 거다. 그거 하나 못 지키는 똥개는 필요 없어."


나는 요안나에게 턱짓했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녀석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기분 나쁠 정도로 생글생글 웃었다.


***


"......이게 정말 될까요?"

"뭐, 되게 해야 하지 않겠나. 적어도 인간 공은 마음 크게 먹었어. 설마, 가지고 있는 산성 용액 전부를 쓰자고 할 줄이야."


아쿠아는 제 앞에 서 있는 요안나의 등을 지켜보았다. 언제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 몰라도 사령관은 요안나를 호위로 붙였다는 모양이다.


그건 즉, 이번 작전이 어떻게 끝나든, 지금 당장은 아쿠아를 죽게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라고......해석해도 되겠지.


"발포 콘크리트......많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스틸라인의 '노움'이란 바이오로이드가 사용하는 발포 콘크리트를 순간반응 시킬 수 있는 수류탄도 잔뜩 사용했다.


요안나와 아쿠아가 서 있는 곳만 뻥 뚫려 있는 길목이자, 벽을 생성했다.


                     요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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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쿠아


순간적으로 구조를 생성하는 발포 콘크리트는 가볍지만 우수한 강도와 내구성을 지니고 있어, 멸망 전쟁 때도 애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벽의 양 옆으로는 산성 용액이 잔뜩 뿌려져, 밟으면 바로 녹아내려 주저앉을 진창이 만들어져 있다.


"......오는군."


사박사박, 발소리. 아쿠아가 들고 있는 발신기를 따라, 철충들을 유인해 오고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의 발소리다.


"자, 짐의 등 뒤의 길로 빠져 나가게, 어서!"


바이오로이드들이 요안나와 아쿠아를 뒤로 한 채 먼저 달려간다. 이윽고, 유인당한 철충들이 몰려온다.


요안나는 에너지 실드를 전개하며 서서히 뒤로 물러난다.


오직 돌진 밖에 모르는 하급 철충들은 바다가 가깝다는 것도 모른 채 무작정 총과 미사일을 발사하며 다가온다.


콘크리트 벽이 터져나가고, 뿌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가뜩이나 어둑어둑한 밤에 더더욱 시계가 흐려지지만, 철충들은 그런 걸 개의치 않고.


철퍽, 하고 산성 용액이 뿌려진 땅을 밟았다.


치이이익......뿌연 연기 피워올리며 주저앉는 철충들. 물론, 그건 선두의 철충들 뿐.

주저 앉은 철충들을 짓밟고 넘어간다. 그 철충들도 넓게 뿌려진 산성 용액을 밟는다.


굉장히 많은 철충들이 있는 만큼, 동료를 발판 삼아 넘어가면 된다.

하지만, 그렇기에 다들 밍기적 거리게 되었다.


뒤뚱뒤뚱 거리며, 몰려든 철충들이 앞다퉈 나아가려다 넘어지고, 밟히고, 구른다.


그 순간을──하늘에서 내려다보던 스카이나이츠의 P/A-8 블랙 하운드는 놓치지 않는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 달리, 기동력 면에서 자유로운 스카이나이츠의 바이오로이드는 금방 복귀했었기에, 사령관의 지시를 받을 수 있었다.


"EMP 미사일, 갑니다~!"


철충이 가진 전자기파에 대한 방호력도 완전하지는 않다. 전자 신경계를 잠깐이라도 교란할 수 있다면──.


"자아, 폭격이다!"


한데 뭉쳐, 잠깐 정지한 철충들 위로, 그리폰의 네이팜 폭격이 떨어져 내렸다.


***


"더러운 불꽃놀이로구만......"


영상 속, 어둠을 밝히는 네이팜의 불꽃과 피어오르는 연기.


바이오로이드들의 귀환은 속속 보고가 들어오고 있다. 남은 건 요안나와 아쿠아.


"인간님......두 분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요?"

"그 녀석 방패는 딴딴해. 폭발 그 자체로는 죽지 않아."


폭발의 열기로 구워지거나, 숨을 쉬지 못해 질식사 한다면 끝장이겠지만.


바이오로이드는 어지간한 인간보다 강인하고 튼튼하다.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겠지.


그리고, 영상 너머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두 그림자가 보인다.


여기저기 새까맣게, 숯검댕이가 된 아쿠아를 옷이 그을리고 타들어 간 요안나가 옆구리에 끼고서 돌아온다.


[이보게, 인간 공. 짐의 에너지 실드가 폭발, 폭압까지는 막아내도 실드 안쪽의 공기가 가열되는 것까지는 막지 못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데.]

"안 죽었으면 됐잖아. 그게 내가 너에게 내린 '명령'이고. 내가 죽이기 전까지는, 죽지 말라고."

[정말로......바이오로이드 다루는 게 험한 인간 공이라니까.]


요안나의 옆구리에 낀 아쿠아가, 통신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는지,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린다.


아쿠아의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몰골에 다프네가 헉 소리를 낸다.


[이, 인간...님...나, 잘, 했지?]

"오냐. 좋은 근성이구만. 잘했다. 칭찬해주지."


꼭 필요한 바이오로이드들과 멍충한 하급 철충들. 둘 중 하나라도 빠졌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무식한 작전에 희생당할 뻔해 놓고도, 아쿠아는 애써 입꼬리를 말아올려, 웃었다.


[헤, 헤헷......포상은, 뭘로, 해달라고, 할......까나......]


콘스탄챠는 슬쩍 사령관을 돌아보았다. 사령관은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들과 있을 때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진 않았다.


'나도......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아니, 그러다가 선을 넘으면?'


사령관이 직접 말한, '선'만 잘 지키면 된다는 말.


그것만 잘 지키면 누구든 활약할 기회가 주어지고, 그에 따른 포상도 확실히 약속한다.


과도한 충성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튕기는 것도 안 되는, 그냥 자신의 변덕에 대한 변명이 아닐까 싶은 '선'의 준수.


바이오로이드들의 고민이 깊어져 가는 새벽.


"날아댕기는 철충은 없었다? 똑똑한 건지, 아니면 지휘 개체가 근처에 있는 건지......"


그런 사령관의 중얼거림을 듣고 있는 건 LRL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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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에 나오는 도구와 스킬의 성능은 캐릭터 설정과 스킬 문구에 명시된 그대로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