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냐, 아쿠아."

"......!"


긴 새벽이 지나, 점심이 되었을 무렵. 회복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밀짚년이 화들짝 놀라 일어선다.

......아니, 오늘은 밀짚모자 쓴 시골 아가씨 모습이 아니었다.


"뭐냐?"

"아, 저, 그......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의료용 모델로도 제조된 적 있어서......"

"그래서 양쪽 모두 겸한 짬뽕이라고? 잘 됐구만. 앞으로 네가 양쪽 다 커버해라."

"......네에."


밀짚년이 너스가 되었을 뿐이다. 나는 다시 아쿠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외관은 꽤나 멀쩡해졌군. 마이크로봇이 겉멋은 아닌 모양이야."

"헤헷, 인간님. 걱정되어서 찾아온 거야?"

"자살지원자를 걱정하는 얼간이가 된 기억은 없는데."


너스가 의자를 끌고 온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은근 눈치가 좋다.

너스가 침상 바로 옆에 놓아둔 의자에 앉아 묻는다.


"예의 포상 건이다. 난 약속은 칼 같이 지키는 편이지."


훌륭한 사육주는 당근과 채찍을 잘 활용하는 법.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하면 주인 못 알아보고 대들게 된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개는 주인 따라 닮아가는 법이니. 


유능한 주인이면 똑똑한 개가 되고, 무능한 주인이면 멍청한 개새끼가 될 뿐.


"생각해 둔 게 있는데, 지금 말해도 돼?"

"이상한 거다 싶으면 바로 취소."

"에에, 쪼잔해!"


공을 세웠으니 이런 어리광도 받아주는 거다. 무능한 녀석이 쪼잔하다느니 뭐니 타령했으면 바로 해체.


"그럼......모두를 이름으로 불러줘! 어차피 남자는 인간님 하나 뿐이고, 나머지는 여자들 뿐인데. 솔직히 년년 타령하는 거, 기분 나쁘거든?"

"여자? 네가?"

"우쒸, 오리진 더스트 때려박으면 나도 다프네 언니처럼 쭉빵한 어른 여자가 된다구!"

"......아, 아쿠아!?" ////


나는 너스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시골 아가씨 풍일 때보다 가슴이 커 보인다. 그 이전에 노브라다.

전체적으로 풍만한 몸매의 20대 여성이라고 볼 수 있는 용모다.


"그 커진 몸에 걸맞는 금속 골격의 비용은?"

"......"

"나중에 공적 세우면 못해줄 것도 없다만."

"진짜!?"


시선을 피하던 아쿠아가 다시 눈을 반짝인다. 정신연령은 용모 그대로 따라가는가.


"여하튼, 앞선 포상은 없던 걸로. 내가 이름으로 부른다는 건, '내 개새끼'로 인정했다는 증거다.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똥개가 되고 싶은 거냐?"

"그치만......다들 말만 안 할 뿐이지, 은근 상처받았다는 게 눈에 보여서......"

"네 녀석처럼 공을 세우면 되는 거다. 내가 먼저 다가와 줄 거란 환상은 버리는 게 좋아. 빌빌거리기만 하는 녀석 따위,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으니까."


그리고, 상처 받든 말든,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을 배신할 수 없다.


"나중에 너처럼 상처받았다는 걸 토로하는 것들이 나와도, 상관없어. 원래 짐승들이란 게 살 좀 부벼주면은 좋아하거든, 말도 잘 듣고."

"응?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겠다는 거야?"

"......넌 성인 여성 되려면 100년도 부족하겠군."

"뭐야뭐야! 다프네 언니만 눈치챈 것 같고, 나한테도 좀 알려줘!"


시선을 돌려보니, 너스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얌전한 고양이가 먼저 부뚜막에 올라간다더니.


"그럼 난 간다. 빨리 회복해서 일어나기나 해. 한 번 선택한 이상, 뽕은 제대로 뽑을 수 있도록 잔뜩 굴릴 예정이니까."

"오우! 기대하고 있으라구, 인간님!"


***


"구조 신호?"


함교로 돌아와 보니 방금 전 구조 신호가 들어왔다고 한다.


"아직 남아있는 바이오로이드가 있었나."

"바이오로이드가 아닐 수도 있거든. 아직 감염되지 않은 AGS라거나."

"혹은......감염이 진행 중인 AGS일 수도 있겠죠."


공순이와 메이드 년이 말한다.


"그럼 구할 필요 없잖아."

"아뇨아뇨, 그렇지 않아요!"


갑자기 대화에 안경 쓴 보라색 머리가 끼어들었다. 어제 내가 했던 말 이후, 적극적으로 나서는 녀석들이 늘어났는데, 그 중 하나다.


"뭐냐, 공순이 2."

"제가 포츈 언니보다 뒤떨어지는 건 맞지만, 공순이 2는 좀 그렇지 않나요!?"

"그럼 기계박이라고 불러줄까?"

"그건 어폐가 맞지 않네요. 저는 달려있지 않으니까요!"

"저기, 그렘린 씨? 일단 진정하시고......"


메이드 년이 진정시킨 공순이 2가 말하길, AGS의 스펙은 바이오로이드보다 높으며, 기존의 회로를 전부 뜯어내고 생체회로로 바꾸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최근, 바이오로이드용의 생체회로의 여분이 하나 생겼으니까요! 그걸 제가 포츈 언니와 만지작거려서 AGS에게 이식하면......어쩌면, 철충의 감염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부탁드려요, 인간님! 도전하게 해주세요! 실험하게 해주세요! 성공한다면 장래에 큰 도움이 될 거에요!"


도전, 실험. 마음에 드는 단어다.


"실패할 경우, 어떻게 할 거지? 함내에서 그놈이 날뛰어, 여기저기 바람구멍이 새기라도 하면?"

"함내 밖에서 할게요!"

"그럼 잠수함이 여기를 떠나지 못하는데?"

"......최,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성공할게요, 아니 할 겁니다!"


나는 공순이를 돌아보았다.


"얼마나 걸리지?"

"후후후, 인간님. 너무 우리의 실력을 얕보면 곤란한데. 하루면 충분해."


공순이도 자존심에 불이 붙었는지 거창하게 나온다.


나는 메이드 년을 돌아보았다.


"어이, 공순이와 2. 둘 중 어느 쪽이 더 비싸지?"

"어...그게...그렘린 씨는 발할라의 공병이고, 포츈 언니는 산업 관리용 바이오로이드 출신이시니까..."

"공순이 2가 더 싸다는 거로군."


나는 공순이 2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기개를 높이 사, 기회를 주지. 하루, 해낼 수 있겠나?"

"넷!"

"실패의 대가는, 네 목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 할 수 있겠나?"

"죽기 싫어서라도 해내겠슴다!"


악을 지르듯, 공순이 2는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좋아. 구출을 허가하지. 그럼 공순이 2와 동행할 인원은......둘 정도 더 붙이면 되겠지. 누가 나갈 거냐."


눈치싸움 시작. 그렇게 될 터였다.


"거기서 한 가지 더, 제안할 게 있는데, 인간 공."

"뭐냐, 요안나."

"모든 AGS들이 철충에 감염된 건 아니네. 소극적이나마 저항해, 파괴된 AGS들도 적지 않지. 철충 역시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요안나는 씨익 웃으며 말한다.


"무기의 부품, 회로의 잔재, 등. 잔뜩 수거해 오지 않겠나. 스카이나이츠 인원들이 쏠 미사일의 제조를 위해서라도, 자원은 많을수록 좋네."

"......"


그러면 많은 인원이 필요하겠지. 눈치싸움을 시킬 이유가 없어진다.


"메이드 년."

"아, 네. 요안나 씨의 말대로에요. 식량이나 에너지는 바다 속에서도 어떻게든 구할 수 있지만, 부품은 재활용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메이드 년이 눈치 빠르게 대답한다.


......흐음, 뭐, 나쁘진 않으려나.


해체한 잠자리 년의 회로도 재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고.


"좋아. 허가하지. 참여하고 싶은 녀석들 있으면 전부 자원수집조로 돌린다. 대신, 공순이 2와 동행하는 인원은 내가 정한다."


나는 메이드 년과 금발 년을 불렀다.


"너희 둘은 언제나 붙어다니는 2인조였지? 날 찾아냈을 때와 마찬가지다. 감염 진행 중인 AGS라면 다리와 무기를 망가뜨려서라도 끌고와."

"! ......네!"

"알았어, 내가 둘 다 끌어안고 후다닥 날아갔다 올게!"


쓸모없는 녀석들도 쓸만하게 다룰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


요안나의 손바닥 위에서 노는 것 같아 불쾌하지만.


"어이, 마이티R. 넌 나 따라와. 슬슬 이 쓰레기 같은 몸을 조금이라도 쓸만하게 만들어야겠어."

"텅 빈 함내를 달리는 것부터 시작할까요? 단거리 달리기는 유연하고 강한 다리 근육을 만드는 데 효과적이니까요."

"마치 도주를 염두에 둔 훈련 같은데?"


마이티R은 야구모자를 고쳐 쓰며 말한다.


"언제나 최악의 상황은 가정해야 하니까요. 저희 모두, 고기방패가 되어 인간님을 지켜야 할 때라든가. 저희야 언제든 복원 가능하다지만, 인간님의 목숨은 하나 뿐이잖아요?"

"......혓바닥에 기름칠만 덜 되어 있었어도, 허세만 가득한 홍보용 모델 따위, 버렸을 텐데 말이야."

"하하핫, 홍보용 모델이니까 더더욱 입담이 능숙해야죠! 그리고 트레이너로서는 홍보용 모델이 아니라 진짜배기니, 믿고 맡겨주세요!"


마이티R은 쓸데없이 훌륭한 건치를 보이며 말했다.

때려주고 싶은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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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내 비중이 적은 녀석들을 주로 활약시킨다.


다만 총화기 계열은 활약이 두드러지진 않을 거임.


난 투박하게 치고받는 스타일의 액션을 쓰는 게 익숙해서.

화려한 포격전이나 엄폐물 뒤에서 총질하는 건 한두 줄로 땡 치는 것 밖에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