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노루꼬리만큼 남은 어느 추운 겨울날. 무인도에서 바이오로이드끼리 고기를 구워먹으며 송년회를 보내고 있었다. 사령관이 자리를 슬쩍 피한건 그녀들끼리 잘 놀라는 배려이겠지.

"흐에엥 올해 너무 힘들었어요"

하르페이아가 맥주를 쭉 들이키고는 잔을 탕 내려놓는다. 에이다가 냅킨을 집어 건낸다. 왜인지 에이다의 뺨의 푸른 회로가 눈물같아 보인다.

"그러게요.. 하루종일 출전하느라 제 기상용 드론이 방전될 정도라니까요"

레아도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눈을 꿈뻑인다.

"염병들 하네"

푸념하는 거지런 조 테이블을 보며 더치걸이 혀를 쯧쯧 찬다. 그렘린, 어썰트, 린티, 발키리,더치걸, 페로가 앉은 구)거지런 조 테이블었다.

"요즘 애들은 말이야 편하게 광역기로 확 휩쓸어버리면서 죽는 소리만 잘해요.."

"저기 그건 더치도.."

"아가리"

린티는 끼어들려다가 더치걸의 서슬퍼런 눈매에 입을 다물었다.

"맞아요.. 우리 때는 반격os끼고 한대씩 맞거나..아니면 피하면서 반격했었는데.. 솔직히 요즘 애들은 너무 편하죠"

울분이 쌓인듯 그렘린이 더치를 거들었다.

"씨발 예쁜 드레스 사주길래 예뻐서 준 줄 알았는데 이거 입으면 더 빨리 스킬 쓴대서 준거래 "

더치가 담배 한 대를 꼬나물려는 차, 페로의 단분자 클로가 꽁초를 갈랐다.

"식탁에서 흡연은 비매너입니다. 흡연실에서 해주세요."

"하..거 좆냥이 새끼 선비질 오지네"

"하하, 좋은 날 싸우지들 말고 한잔 씩 하시죠"

페로와 더치의 신경전이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발키리가 둘을 말리며 분위기를 풀었다.

한편 마법소녀 테이블. 취기가 잔뜩 올라서 가장 화기애애했다. 흐레스벨그가 몇 번 난입했지만 그 때마다 스카이나이츠 동료들에게 끌려나갔다. 모모는 아직 덜 취한 뽀끄루 옆구리를 쿡 찌르며 외딴 곳으로 갔다.

"카메라도 도청기도 없고..주변 바이오로이드나 사령관님도 없고.."

주위를 조심히 살피던 모모는 아무도 없다는 걸 확신하고 담배를 물었다.

"하 씨발..혼모노새끼 좆같네 진짜"

누구를 말하는지 굳이 말 안해도 아는 바, 뽀끄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이들 팬은 귀엽기라도 하지 나이는 나이대로 쳐먹은 년이 저러니까 씨발"

어린아이 수준이라면 기껏해야 모모를 보고 좋아하거나 모모 스티커를 받으면 기쁜듯이 뛰어다니는 정도다. 어린이 팬은 오히려 모모도 좋아했다.

하지만 어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린아이 시절 순수함이 사라지고 음침한 욕망으로만 가득하고, 또 세세한 설정가지고 맞니 틀리니 하는게 여간 피곤하기 그지없었다.

가장 최악인 것은 사생에 근접한 팬과 오르카호라는 같은 공간을 쓰는 것이다. 모모는 그래도 이미지 관리를 위해 아이들 앞에서는 마법소녀 이미지를 지키는데 혼모노가 합류한 이후는 방 문 밖을 나서는 순간 언제 혼모노가 카메라를 들이댈 지 몰라 상시 긴장할 수밖에 없다.

어느새 거의 다 타들어간 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벼끈 모모는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뽀끄루의 팔짱을 꼈다.

"이제 돌아가죠 매지컬 마법소녀가 자리를 오래 비우면 안되잖아요?"

한편 또 다른 테이블. 미호, 에밀리, 티아멧이 맥주잔을 쓰게 들이켰다.

"하...예전엔 수정구랑 정찰os 있었으면 내가 최강이었는데..."
"에밀리..영전..등반.."
"아아 진짜 짜증나"

티아맷이 입을 삐죽였다.

"그래도 넌 ss승급 하고 나면 반격팟이라도 쓰지 나는 썅.."

"어? 미호씨, 티아맷씨 여기 있었네요!"

분위기가 더 어두워지려는 차, 미나가 손을 흔들며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어쩐지 3인방의 표정은 썩 밝지는 않았지만 미나는 눈치채지 못 한 듯 하다.

"티아맷씨 저도 이번에 승급 받아서 티아맷씨랑 같은 ss등급이 됐다구요!"

"어.응.그래.축하해."

떨떠름한 티아맷을 뒤로 하고는 이번엔 미호의 손을 덥썩 잡았다. 미호는 순간 표정을 찌푸렸으나 이번에도 미나는 눈치를 못 챘다.

"이번에 미호씨랑 같이 장기 임무 뛰었는데 미호씨 정말 대단해요! 반격 부여라니 정말!"

"헤헤, 아무것도 아니야"

미호는 언제 찌푸렸냐는 듯 표정을 거두고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 속으로는 냉큼 꺼져주길 바라며

"아 맞다. 미호씨,  홍련씨가 밥버거 만드신다는거 왜 안알려주셨어요? 맛있을 거 같은 -"

콰앙
미나의 말은 미호가 맥주잔을 거칠게 내려놓는 소리에 이어지지 못 했다.

"아이 씻팔 맥주가 좆같이 맛없네"

"미..미호씨..?"

정색한 표정에서 미호는 바로 생글생글 웃었다.

"응? 아 미안 맥주가 써서 그러네. 미나한테 화난거 아니야~"

"그..그런가요? 그러면 제가 음료수라도 갖다드릴까요?"

이번에는 티아맷이 다리를 테이블 위에 거칠게 올려놓았다.

"아 눈치도 존나 없는 좆병신년이 존나 나대네. 아 물론 저기 있는 에밀리 얘기야 킬킬"

"내가 뭐. 그리고 족발 치워"

순간 에밀리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내 드르륵 거렸다.

"에..에밀리씨..? 칼은 위험하니까.."

"친한척 하지마 찐따년아"

에밀리가 무표정하게 미나를 노려보자 그제서야 미나도 당황했다.

"미나야 미안~ 우리 에밀리가 좀 취했나봐~ 우리 화장실 좀 갈테니 잠깐 여기서 기다릴래?"

미호가 에밀리와 티아맷을 데리고 자리를 피했고, 미나는 빈 테이블에 덩그러니 앉았다. 멀어지면서 병신년 눈치 존나 없어, 꼴받게 친한 척 하네 따위의 대화가 들린 거 같지만 미나는 자기 얘기가 아닌 거 같아서 신경 끄기로 했다.

"늦네에..다들 배탈이라도 난걸까.."

시간이 한참 지나도 혼자 남은 미나는 테이블을 지키고 있었다.



한편 오르카 호. 지휘관급 개체들은 사령관과 뜨거운 밤을 지내고 있었는데..

"대장. 저 보고 이 상황을 납득 하라는 겁니까."

오늘은 기분이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며 모든 지휘관을 소집해 광란의 밤을 지내자는 사령관의 발언에 모든 지휘관들이 환호했다. 단 한 명만 빼고.

"미쳤어 사령관? 한 해의 마무리를 그렇게 음탕하게 보내자고? 제 정신이야?"

머리만큼이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메이는 부끄러워하며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

"1.사령관님이 모든 지휘관과 밤을 보내기로 했다. 2. 메이 대장은 지휘관이다. 3.그러므로 메이 대장은 오늘 사령관과 잔다. 삼단논법으로 보면 메이 대장은 오늘 드디어 첫날 밤을 가지게 되는데, 어디서부터 왜,잘못됐길래 오늘 혼자 이러고 있습니까."

나이트 앤젤의 차분한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긴 분노가 뚝 뚝 묻어나왔다.

"그..그치만... 남들 알몸 보는게 보기 흉하잖아..그리고 처음인만큼 무드도 있어야 하는데.."

"딱딱하고 공과 사 칼같이 지키기로 유명한 무적의 용도, 그 거만하고 자존심 센 레오나도, 부하들한테 먼저 양보한 신속의 칸도 아무 말 없는데 왜!! 대장만!!
그 거추장스러운 가슴에 달린 흉물 들이대며 유혹해도 모자랄 판에..."

"히잉...그치마안..."

나이트 앤젤이 답답해서 가슴을 팡팡 치는데 평평한 그 소리가 구슬프게 울려퍼졌다.

"무슨 소리 들리지 안슴까?

바깥 테이블에서 고기를 굽던 브라우니가 귀를 쫑긋했다.

"제야의 종이라고 한 해가 넘어갈 때 치는 종이에요 브라우니. 오르카호에서 들리는게 사령관님의 깜짝 이벤트인가 봐요."

그렇게 나앤의 종은 팡팡 울며 오르카호를 벗어나 무인도까지 울려퍼졌고, 바이오로이드는 저무는 해와
곧 다가올 새해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