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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상에 남은 인간은 나 하나, 따라서 나는 깨어난지 삼십분만에 사령관의 직책을 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사령관의 입장으로 오르카 호에 합류한 라비아타와 마리를 만나고 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령관...님, 라비아타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사령관 각하. 오늘 만남이 역사적인 순간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하..하 안녕! 라비아타, 안녕 마리? 만나서 반가워!”


나는 최대한 친근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라비아타와 마리는 매우 의심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내 머리와 상체에 터번처럼 감긴 휴지와 수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잘 안 굴러가는 머리로 생각해낸 방법, 가리기! 

뭐..그래...조잡하고 이상한 건 알지만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단 말이다. 


결국 참다못한 라비아타가 먼저 입을 열고 말았다.


“저...사령관..각하? 저건 대체..”


최대한 정중하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당황으로 떨리고 있었다.


확실히 휴지랑 수건을 둘둘 감은채로 나타나는건 격식을 차린 복장이라고 하긴 어렵지.

젠장! 미안해...나도 너희들과의 첫 만남이 이런식 이길 바라진 않았다고. 


“아, 저거 내가 예전에 살던 곳의 전통 복장이었어서...하하하”


제발,제발,제발 넘어가라, 물론 변명이랍시고 한건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개소리, 

하지만 실제로 터번은 인도의 전통 복장이니까 멸망 전 개체인 라비아타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더듬거리며 어떻게든 변명하자 라비아타는 겨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얼떨떨해 하던 마리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눈물나게 고맙네.


“흠,흠, 사령관님, 방금 일어나서 정신 없으시겠지만 일단 현  상황에 대해 말씀 드릴게요...:”


복장에 대한 이야기 후에 이어진 것은 철충의 동향과 현 오르카호의 상황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심각했다.


“...AGS들이 전멸했다고..?”


2년의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AGS들의 전멸, 

원레의 스토리대로라면 구조 신호를 듣고 펍헤드를 구했어야 했지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이 없으니 해당 구역의 철충을 소탕할 순 없었겠지. 

바이오로이드들과 협력하지 못한 AGS들은 결국 파괴되거나 뿔뿔히 흩어져 버린 모양이다.

퍽 귀여웠던 펍헤드의 목소리를 떠올리자 마음 한 구석이 쿡쿡 아려온다.


그 외 철충들의 동향에 관한 내용에 관한 간략한 보고가 이어졌다. 


철충들이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심하게 공격적이 되어, 

구조되는 바이오로이드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나,

강력한 연결체들이 무리를 이뤄 바이오로이드들을 습격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안그래도 아픈 머리를 더욱 아프게 했다.


'하아, 어째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냐.'


하이라이트는 얼마전 등장한 ‘별의 아이’라 불리는 괴생명체가 완전히 지상에 올라온 것, 

그 이야기를 듣자 나도 모르게 험한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좆됬네..?”


아차 하는 마음에 슬쩍 그녀들의 눈치를 보자 의외로 그녀들은 인간의 욕설에 익숙한 듯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으며 우물우물 사과했다.


“어..미안해.”


“괜찮습니다. 사령관님.”


라비아타가 쓰게 웃으며 답했다.

하긴 이건 누가 들어도 욕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

생각해 봐라, 연결체와 무적의 용의 함포로 겨우 쫓아낸 괴물딱지가 완전히 물 밖으로 튀어 나왔는데, 

저걸 이 너덜너덜한 오르카 호로 막아내야 한다고? 

철충들이 매일 지랄해서 밥도 제대로 못 처먹는 이 상황에? 

게임으로 치면 완전 익스트림 난이도잖아 이거.


“으…”


알고 있던 기존의 스토리와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래도 스토리를 알고 있으니 어떻게든 비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기존 라스트 오리진의 세계보다 한 1000배 정도는 암울해진 상황에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하아..”


한숨을 푹 내쉬자 멀뚱히 나를 쳐다보는 그녀들, 


그래,그래도 라비아타도 있고, 무적의 용을 깨우는 법도 알고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뭐.


일단 철충화를 막기 위해 닥터부터 찾아야겠네..아니, 혹시 모르니 인간임을 검증하는걸 먼저 해야하나?

...생각이 길어지기전에 그녀들을 보내는게 예의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먼 길 오느라 힘들었을텐데, 어서 들어가서 쉬고 있어...방은 콘스탄챠가 안내해 줄거야."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그럼 저는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머, 고마워요 사랑관님.”


절도 있는 몸동작으로 일어선 그녀들이 문을 열려는 순간, 한발 빠르게 문이 열리며 거대한 쟁반을 든 브라우니가 나타났다.


“필승! 브라우니 2794호, 포티아님의 심부름으로 커피를 가져왔지 말임다!”


힘차게 관등성명을 댄 브라우니는 씩씩한 걸음으로 임시 사령관실에 마련된 테이블로 걸어왔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재앙의 시작이었다.


“하하..포티아님이 타주신검다, 맛있게 드..어어?”


거대한 쟁반 탓에 미처 아래를 보지 못한 그녀의 발이 툭 튀어나온 모서리에 걸렸고,


“와아악!!”


중심을 잃은 브라우니는 쟁반을 놓치고 앞으로 넘어져 버렸으며,


"끄아앗!!! 뜨거워!!!!"


쟁반 위에 있던 커피잔은 그 내용물을 성대하게 흩뿌리며 내 고간 위에 안착했다.


"끅...그아악...으악!!"


아프다, 아파, x추가 타오르는것 같아아아!!!!

바지에 뜨거운 커피를 뒤집어쓴 채 경련하는 나를 본 브라우니의 얼굴이 이상한 색으로 변했다.


“으악! 사령관님! 죄..죄송하지 말임다. 으..어디 닦을게....”


패닉에 빠진 얼굴로 주위를 마구 두리번 거리던 브라우니의 시선이 내 머리에 감긴 휴지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내 얼굴에 감겨있던 휴지의 끝부분을 잡아챈 브라우니가 그것을 휙 당겨버렸다. 


'이런 ...망할….'


“제가 금방 닦아 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함다! 사령관님!”


슥슥슥 하고 브라우니가 바지에 묻은 커피를 닦는 소리만이 조용한 사령관실에 울려 퍼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라비아타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보고야 말았다. 

보지 말아야 하는것을 본 것처럼 창백하게 질린 라비아타의 표정을.


"하..하..놀랐지..? 서프라이즈..우왁!!"


-스릉-


으아! 서프라이즈는 개뿔이, 마리가 당황하던 말던, 

순식간에 자기 몸만큼이나 거대한 칼을 뽑아든 라비아타를 본 내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봤구나!! 조졋다, 조졋다, 좆됬다! 

머릿속에서 비상등이 마구마구 울리며 위험신호가 울린다.


"더러운 철충 주제에….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부웅하고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2m에 육박하는 거대한 칼날이 내 앞에 있던 책상을 부수고 목 바로 앞까지 파고들었다. 

185cm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생각보다 어마무시했다.

솔직히 존나 쪽팔리지만...살짝 지린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히익!!"


“!! 라비아타 통령! 사령관에게 갑자기 이 무슨!”


당황한 마리의 몸에서 파지직하고 푸른 번개가 튀었다. 

급전개되는 상황에 당황한 브라우니와 콘스탄챠도 허둥거리다 손에 든 총을 움켜쥐고 라비아타를 겨눴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서로에게 무기를 겨눈 일촉즉발의 상황.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젠장, 다음부터는 사령관실 앞에 무기 반입 금지라는 푯말을 꼭 걸어두어야겠군…’


물론 다음이 있다면 말이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내 목 끝에 칼날을 바짝 댄 라비아타는 마리에게 쏘아 붙이듯 말했다.


“당신...저 괴물이 안보여? 저게 정말 ‘인간’으로 보여?”


“언니..그게 무슨!”


“으..으아..이게 무슨일인지 모르겠지 말임다...제가 커피를 쏟아서 화나신 검까..?”


라비아타의 말을 들은 콘스탄챠와 브라우니가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마리만이 푸른 번개를 튀기며 반박했다. 


“외모가 무슨 상관인거지? 라비아타 통령! 저렇게 생겼어도, 사령관은 완벽한 인간이다!”


그녀 역시 인간을 접했던 멸망전의 개체였기에 인간의 모습과 뇌파를 알고 있겠지, 

...그나저나 ‘저렇게’ 생겼다는건 무슨 뜻일까.


“아무리 인간을 뇌파로 인식한다지만...이 모습을 보았더라면 한번쯤은 의심을 했었어야죠!”


그래.라비아타가 겨눈 칼 끝에는 머리의 절반이 기괴한 금속에 뒤덮혀 있는 내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아 물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지만.


내 얼굴을 확인한 마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음! 물론 사령관의 얼굴이 통상의 인간과 다르긴 하지만… 멸망 전에는 저런 수술도 유행했었다네, 뭐..확실히 특이한 취향이긴 하지만..."


"...!!"


미쳐 그것까진 생각 못했다는듯, 라비아타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잘한다 마리! 바로 그거야! 첫 서약의 주인공은 너로 정했다!! 


"하지만…!"


라비아타는 이제 삿대질까지 하며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나 그래도 오분전까진 나름 사령관이었는데…너무한 거 아냐?


갑지기 느껴지는 서러움에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씨잉...나 인간 맞는데."


물기 어린 목소리로 훌쩍거리자 그녀들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사령관으로서의 위엄? 바로 어제만 해도 난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철제 책상을 깔끔하게 두동강 낸 거대한 칼날이 목에 들이대어져 있는 상황에서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지.


"...아주 작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 울먹임에도 라비아타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아무레도 라비아타는 내가 완전한 철충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내 경우엔 진짜로 철충에 감염된 거지만, 나도 생각해둔게 다 있다는 말씀.


"...그렇게 못 믿겠으면 닥터한테 검사 해보라고 하면 되는 거잖아."


우리 오르카호 최고의 천재이자, 도×에몽에서나 나올법한 엄청난 발명품들을 마구 만들어내는 닥터! 그런 닥터라면 내 무죄도 증명해 줄수 있겠지. 


“...!”


“음,  확실히 닥터 양이라면..”


“닥터에게 검사를 맡긴다면..신뢰할 수 있겠군요.”


이런 내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라비아타를 포함한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한시름 놓았구만. 나는 라비아타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급히 지휘콘솔을 들어 닥터를 호출했다.







4.




검사 결과는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건강검진도 1주일은 걸리는데 3시간이라니, 미래 기술 만세다.


"흠,흠, 그럼 다 모인거지?"


라비아타와 콘스탄챠, 그리고 마리가 함께 참관하는 가운데, 몇번 헛기침을 한 닥터가 검사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일단, 라비아타 언니의 말대로 약간의 철충 반응이 있긴 했어…”


“!!!”


나를 껴안은 마리의 팔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아악! 바이오로이드의 악력으로 눌리니 팔이 부서질것 같다. 

일단 이라잖아!  말 좀 끝까지 들어! 


"...하지만 그건 철충이 인간인 오빠의 몸의 기생하고 있는 형태야! 검사 결과는 오빠는 완전히,100% 인간이라고! 아이참, 이런 당연한 거에 낭비할 시간은 없었는데!" 


닥터의 선언에 긴장됬던 분위기가 풀리는게 느껴진다. 아아, 드디어 누명을 벗었다.

적어도 라비아타의 손에 반갈죽 당하는 엔딩만은 면했군.


라비아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들고 있는 칼을 정중히 내려 놓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었다.

인간의 명을 따를 필요가 없는 유일한 바이오로이드가 복종의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본 콘스탄챠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죄송해? 죄송하면 군생활 끝나냐 새끼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라비아타는 엎드린 자세를 유지한채 가련할 정도로 떨고 있었다. 


"언니…."


"정말..죄송..흡..죄송합니다.."


주인을 공격한 바이오로이드는 엄청난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 증거로 라비아타의 몸에서 땀이 비처럼 흘러내려 옷이 젖어드는 것이 보인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모르겠지만 눈물도 흘리고 있겠지.


“....”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아무말도 하고 있지 않자 라비아타는 무언가 결심한 듯 떨어트린 칼을 들어올렸다.


"주인님에게 칼을 들이댄 죄는 그 어떤 것으로도 갚을 수 없겠지요.”


뭐! 용서받지 못할바엔 날 죽일 셈 이냐! 하지만 그녀의 칼날은 내가 아닌, 그녀 자신의 목으로 향했다. 


“저의 죽음이 충분한 사죄가 되지는 않을 거에요, 하지만..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걸요.”


“잠깐 잠깐 잠깐!!!! 너무 극단적이잖아!”


젠장, 내가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라비아타가 죽는다고 마음이 후련해 질리가 없다. 

그리고 난 좆간이 아니니까 바이오로이드들의 모습이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고.

눈 앞에서 사람 목이 잘리는 꼴을 보면 없던 휩노스 병도 걸리겠다. 


“라비아타, 난 네 몸이 꼭 필요하다고!”


라비아타는 대체할 수 없는 강력하고 소중한 전력이다. 설정상으로 근접공격을 하는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선 최강이었던가? 

그런 엄청난 전력을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잃을수는 없지. 하지만 라비아타는 그 말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모양이다.


“..아, 그렇게 라도 주인님의 마음이 풀리신다면 얼마든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칼을 내려놓고 능숙한 솜씨로 옷을 벗기 시작하는 라비아타, 

오...저게 바로 그 스킨에 나왔던 알몸 도게자...아냐! 이거도 아냐! 

나는 가까스로 라비아타의 흉기 같은 가슴이 드러나기 전에 그녀를 저지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헉,헉, 수명이 5년 정도 줄어든것 같아. 


“좀 더 네 몸을 소중히 여기라고!”


젠장, 여기까지 왔는데도 도무지 벌을 줄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일어나시오, 라비아타 전 통령."


흠흠, 나는 이제라도 사령관의 품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근엄한 태도로 라비아타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 주었다.

갑자기 바뀐 태도에 라비아타는 고개를 들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하, 사람..아니 바이오로이드라면 누구나 한순간의 실수는 할수 있는 법이지."


사람 좋은 미소를 짓자 라비아타는 더욱 의문스러워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마주보았다. 

뭐 한순간의 실수치곤 크긴 하지만 결국 다친 사람도 없고,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벌을 내리지 않는다는건 아냐!“


그녀를 쉽게 용서할 수는 없었다, 쉽게 떨어진 권위는 오래 유지되지 못할게 뻔하니,

어떤 벌을 줘야 합당할까, 오르카 호 전체 치약미싱이라도 시켜야 하나? 마침 겨울이니까 갑판 제설작업이라도 시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나는 뭔가 묘수를 떠올리곤 말을 이었다.


“흠,흠, 자기 잘못을 반성하기 위해서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네,사령관님.”


“그리고...아무리 낮은 사람 밑에서도 배울게 있다고 생각하고.”


“....”


“그러니까 오르카호의 모든 부대에서 두달간 막내 생활을 해보는 것으로 하자, 어때? 물론 본 업무도 진행하면서 말이야.”


음, 역시 재입대만한 벌칙은 없지, 내 최악의 악몽이 이병때로 돌아가 재입대하는 것이였거든. 후후후..역시 난 정말 사악한 것 같군.

마리 역시 탁월한 선택이라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음..과연, 높은 자리에 오래 있다보면 남의 말을 흘려듣기 쉬워지는 법이니, 현명한 방법입니다.”


“사령관 님의 뜻대로, 감사해요.”


라비아타가 미묘한 표정을 짓는 것이 보인다. 음, 역시 적절한 벌칙이었구만. 


“자..그럼 인간인거도 증명되었고, 난 조금 쉬고 싶은데….”


안 그래도 잔뜩 약해져 있는 몸으로 이레저레 시달렸더니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슬쩍 눈치를 주자 그녀들은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 주었다.


“으아...힘들다.”


한명이 쓰기엔 꽤 넓은 침대에 풀썩 누워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별의 아이, 레모네이드, 강력한 철충들… 내가 그 모든 것을 물리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돌아가기는 커녕 살아남을수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점점 졸려온다. 나는 눈이 스르르 감기는 것을 느꼈다.

오르카호에서의 첫날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6



사람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나면 성격이 변한다고 한다.

그럼 나는 오늘 열번도 넘게 성격이 바뀌었어야 했다. 

낮에는 생명의 위협에 이어 밤에는 정조의 위협이라니!

나는 내 몸위에 밀착해 있는 아스널에게 애원하듯 말했지만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은 냉정했다.


“저..저기..아스널..첫 만남부터 이런건....”


“후후, 분명 뭐든지 들어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거미줄에 걸린 가련한 날파리의 심정으로 날개를 파닥거려 봤지만 집요한 그녀의 거미줄은 나를 더더욱 옭아맬 뿐이었다. 흑흑,


“후후..”


잔뜩 흥분한 채로 나를 온몸으로 짓누르는 아스널, 그리고 칠흑같이 캄캄한 사령관실, 누가 날 좀 구해줘!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정확히 2시간 전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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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사령관은 좀 쫌생이에 약간 소심한 소시민 타입이야.

그리고 바이오로이드를 인간이랑 거의 같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다른 세계관에온 주인공이 사람처럼 생겼고, 조금 이상하지만 사람처럼 행동하고, 

사람처럼 움직이는 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긴 어려워할 것 같아서 그렇게 설정해봤어,

항상 그런거처럼 이 글도 옴니버스 식으로 가거나 짧게 끝낼거같아.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호다닥 다음편 짜왔다.  

늘 재미있게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