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이 충격을 받고 쓰러진 오르카 호.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는 부대 전체가 장기 외부 임무를 맡아 잠수함을 떠났고

무적의 용은 이명에 걸맞지 않게 방에 틀어박혀 세이렌이 호라이즌을 지휘하는 상황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처참한 자원비, 웃으며 하루 23시간을 일하는 하르페이아, 말라가는 고급모듈. 한달 전부터 오르카를 괴롭히던 문제들이었다.

C-33 안드바리는 멸망 전 개체로서 한 물류창고에 다량의 냉동식품과 함께 잠들어 있던 자신을 오르카호에서 깨워 합류한 이후 항상 사령관에게 물자의 소중함에 대해 설명하며 창고를 굳게 지키려 했지만, LRL과 알비스를 보내 주의를 돌린 후 부품을 가져가거나, 직속 AL듀오를 시켜 부품을 가져오게 하는 등 닳고 닳은 사령관의 자원 소모를 막을 수 없었다.

"사령관님... 자원을 아껴써야 해요..."

오르카호에 합류한지 채 세 달도 되지 않았는데 수백번은 말한것 같은 조언을 오늘도 진심을 담아 드려본다.

"미안하지만 다 오르카를 위한 거야! 그럼 이따 보자!"

"특수 제조를 하루에 20번씩 하는건 옳은 선택이 아니에요 사령관님!! 부품 들고 뛰어가시면서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는 표정 짓지 마세요!"

이런 실랑이가 있고 나면 저녁에 항상 주어지는 케이크.

"소완 주방장님이나 아우로라 부주방장님이 만드신 케이크와는 다른데... 사령관님이 어디서 구하신 걸까요...?"

의문을 표하며 한조각 잘라 먹으면 느껴지는 이질감.

단순히 단 것을 먹어서 기분이 풀리는 차원이 아닌,

마치 마약과 같이 강제로 텐션이 올라가는 느낌에 잠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사령관이 직접 준 선물이라는 점과 원래 단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합쳐져 결국 맛있게 먹은 안드바리.

그리고 달이 떠오르는 시간이 되어 잠이 든다.


누구보다도 새하얀 금발의 여성, 새하얀 눈밭.

'눈밭...?'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질문이 날아든다.

"이번 작전은 보급이 중요해. 알고 있지 안드바리?"

그리고 자연스럽게 입이 열리며 나오는 대답.

"네 대장님! 작전기간 14일 대원 7인에 해당하는 식량, 탄약, 구호물품 모두 120%만큼 준비됐어요!"

뒤를 돌아보자 당연하게도 물자 상자가 베이스캠프 천막을 가득 채우고 있다.

"좋아. 그렘린과 안드바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정찰 후 전선을 구축한다. 시베리아에서 우리가 호드에게 질 리가 없지."


여성이 말을 마치자마자 달라지는 풍경.

시뻘건 눈밭과 자비가 꺾여 쓰러진 철혈.

오드아이인지 구분도 되지 않게 찢긴 발키리.

들고 있던 방패만 부서져 꽂혀 있는 알비스.

렌즈가 부서진 드론과 벽에 처박힌 베라.

"이게...무슨...언니들...? 일어나봐요..."

후방인원인 자신이 보기에도 살아남을수 없는 상처임이 눈에 보이지만 믿을수 없는 상황에 질문을 던지자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으...으윽...안드바리..."

"대장님?! 살아계신가요?!"

"...ㅇ..."

"네?"

"왜...어째서..."

"네...?"

"어째서 물자가 없던거지! 탄약만 충분했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세요? 지금도 저렇게 산처럼 쌓여 있... 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있는 것은 다 부서진 아이스박스 하나와 탑돌이와 함께 숨을 거둔 그렘린 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이럴리가 없어...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우릴 죽인거야 안드바리."

"초코바 하나만 있었어도 살았는데..."

"스코프만 정상이었어도 이러지 않았을 겁니다."

"조금만 준비를 했어도 이럴리가 없는데."

"아니에요... 전 정말 보급을 받았는데... 미안해요... 모두 미안해요... 다 제가 잘못했으니 살아나요... 제발..."


소리도 지르지 않고 악몽에서 깨어난 안드바리.

그저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만에 하나 오르카호도 꿈처럼 된다면...'

"먼저 간 언니들도, 지금 언니들도 볼 낯이 없어."

조용하게 내뱉는 말에는 광기가 서려있었다.


오후가 되자 오늘도 사령관은 부품을 챙겨 제조실로 향했다.

"바리야 오늘은 엄청 조용하네. 무슨 일 있니?"

"아니에요 사령관님. 아껴 쓰실 거죠?"

"...그래. 혹시 무슨 일이 있거나 하면 꼭 말해주렴."

"사령관님이 지금 가져가시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거든요?"

웃으며 답해본다. 

'나, 제대로 웃고 있는거 맞지? 평소랑 다르다는걸 눈치채시면 안돼.'

사령관이 떠나자, 창고를 카드키로 잠근 안드바리는 발할라 숙소 안쪽 레오나의 책상 서랍에 넣고, 사령관이 자원을 대량으로 가져가던 첫날에 보답이라며 준 마스터키를 들고 어디론가 향한다.


한편 제조실의 사령관은 기술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제 오늘로 특수 제조는 그만하련다. 이터니티를 제조하는데 성공한다면 전력 보강에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안드바리의 안색이 정말 안 좋아보였어."

"잘 생각한거거든? 사령관이 매일 부품 3박스씩 쓸때마다 정말 걱정되는거였거든?"

"맞아 오빠. 하르페이아 언니도 반쯤 이성을 잃은거 같더라. 우리가 아무리 바이오로이드라지만 계속 저렇게 탐색하면 쓰러질거야."

"...그래. 오늘은 스카이 나이츠 숙소에 들린 다음 발할라 숙소에 가는 걸로 하자. 미리 지휘관들한테 얘기해둬 바닐라."

"이제야 정신을 차리신 겁니까? 그래도 기본은 있으신 분이라 마음이 놓이는군요."

"너무 그러지 마라~ 나도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다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밤은 바닐라랑 술을 마셔볼까?"

"무슨..! 항상 그런것밖에 머리에 든게 없으신 겁니까?!"

"어허. 바닐라, 예쁜말. 그리고 저번에 너도 좋아했잖아? 묶여서 하니까 평소와는 ㄷ"

"알겠습니다! 그러니 조용히 해 주세요..."

"그래~ 10시쯤 비밀의 방으로 와~ 소완한테 야식이라도 준비해 달라고 해야 하나..."


한편 오르카 2층 복도에선 접점 없는 두...아니 세 바이오로이드가 만났다.

"엇? 안드바리 행보관님 아니심까? 안녕하심까!"

"후후...제가 무슨 행보관이에요, 브라우니 씨. 이런 구석에는 어쩐 일로 계시다 나오시는 건가요?"

"이프리트 병장님이 저녁도 안 드시고 생활관에도 안 계시길래 평소에 주무시는 곳으로 데리러 왔슴다!"

"아아...그래서 주무시는 채로 업어서 데려가시는 거군요?"

"그렇슴다. 이렇게 잠이 많으신 것도 자기 임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니 어쩔수 없는것 아니겠슴까?"

"자기 임무..."

"네? 못들었슴다?"

"아니에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수고하시지 말임다!"

"...그래.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지."

복도 끝 구석에 굳게 닫혀 사령관이 탑승한 이후로 한번도 열리지 않았던 문에 마스터키를 가져다 대자, 철컥 하는 쇳소리만 나며 문이 열렸고, 작은 인영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불이 켜진 후 요란한 구동음과 작은 비명은 방음벽에 먹혀 사라졌으며, 아무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불이 꺼졌다.


--스카이 나이츠 숙소

"그동안 고생했지 하르페이아? 일주일, 아니 2주간 부대 전체 휴가를 줄게. 미안해."

"감사...감사합니다! 진짜 쓰러지는줄 알았어요!"

"그럼 한주는 푹 쉬고 그 다음주는 아이돌 활동 준비하자! 어때? 그리폰 왜 그렇게 보는거야?"

"전대장... 내가 그거 안! 한! 댔! 지!"

"어...아마 해야 할걸?"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인간."

"저번에 네가 작전 중일때 아이돌 투표를 했거든? 프로젝트 오르카라고. 그런데 스카이나이츠가 1등했어! 잘됐지?"

"..."

"그럼 난 간다~"

그리폰의 침묵은 5분간 더 이어졌다.


--같은 시각, 스틸라인 생활관

"이프리트 병장님 제가 저녁은 드시라고 했잖슴까 이러다 임펫 상사님한테 걸리면..."

"아 내가 그것도 생각 안했겠어? 내일까지 휴가야 그 여자. 아... 제대하고 싶다. 그보다 나 옮기느라 고생했다 야. PX가서 냉동이라도 하나 사먹어라 스티커 줄게."

"감사함다! 그러고보니 아까 안드바리 양을 만났지 말임다."

"나 데려올때...?"

"그렇지 말임다? 거기 오는 사람은 저랑 병장님밖에 없었는데 신기해서 기억에 남지 말임다."

"이런 씨발... 제발 아니어라... 야 너 나 따라와! 아니 들고 뛰어!"

"갑자기 왜 일어나심까?! 어디로 가야 함까?"

"당장 발할라 숙소로! 안드바리 있나 확인해야겠어!"

"알겠슴다! 근데 뛰고는 있는데 왜 그리 급하신 검까?"

"거기 왜 아무도 안 오겠냐. 쓸 일이 없다는 소리지."

"오르카에 쓸모없는 방도 있었슴까?"

"쓸모가 없다기보다는 사령관이 착해서 쓸 일이 없는 곳이지."

"대체 거기 뭐였던 검까?"

"분해실. 바이오로이드 분해실. 제발 허튼짓하지 말았기를..."

"바이오로이드 분해실이라면 아자즈씨? 그 금빛으로 번쩍번쩍한 분이 매일 일하고 계신 곳 아님까? 거긴 1층으로 알지 말임다."

"아냐... 엄밀히 따지면 거긴 바이오로이드 전투모듈 분해실이고... 2층에 있는건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해해서 자원으로 바꾸는 장소라고..."

"그런게 왜 있는검까?!?!?"

"사령관이 특별한 거라니까? 인간들은 대부분 그랬어... 아무튼 빨리 뛰어!"

"저 훈련때보다 빨리 뛰고 있지 말임다!!"


--발할라 숙소

"그게 무슨 소리야 레오나? 안드바리가 없다니?"

"말 그대로야. 늦어도 8시에는 들어오는 아이고, 말도 없이 이렇게 사라질 아이가 아닌데... 자매들이 지금 찾고 있어. 창고 카드키까지 두고 어딜 간건지... 잘때도 태블릿이랑 같이 머리맡에 두고 자는 건데."

"사령관님!!!! 헉... 헉... 무지 힘들지 말임다!"

"브라우니? 이프리트? 이 밤에 발할라 숙소는 무슨 일이니?"

"아까 안드바리 양을 봤지 말임다! 이프리트 병장 말로는 거기가 분해실 앞이었다고 함다!"

"뭐...?"

"레오나, 진정해. 리리스? 당장 나 들고 뛰어."

"리리스 님이 어디 계시다는... 히익!"

소리도 내지 않고 천장에서 착지한 리리스는 즉각 사령관을 들고 뛰어간다.

"지금은 나쁜 리리스가 나올 타이밍이 아닌것 같네요, 주인님. 아까는 바닐라 양을 부르신다길래 조금 슬펐지만요."

"...우선 상황을 확인하자. 별 일 없을거야..."


--2층 분해실 문 앞

"최고 보안 등급... 주인님, 부술 순 있지만 마스터키를 빌려주시겠어요?"

"...여기. 안드바리한테는 주지 말았어야 했나...? 아니야...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지금..."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주인님."

천년같은 몇 초가 지난 뒤,

"들어오셔도 됩니다, 만..."

문을 벌컥 열며 들어간 사령관 앞에는, 여기저기 튄 혈흔과 자원 한 상자, 그리고 분홍색 태블릿이 있었다.

"뭐야 이거...? 하하... 장난이지? 나 이런 장난 안 좋아해. 자원 모으느라 수고했어~ 바리야? 어디 숨었니? 바리야? 안드바리?"

"주인님, 죄송하지만 바닥의 혈흔과 태블릿은 안드바리 양의"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그럴리가 그럴리 C-33 안드바리! 어디 있나!"

"주인님..."

"그럴...리가..."

"주인님?! 어서 다프네 양을 불러! 당장 주인님을 수복실로!"








뭐 이런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고 해.

그러니 다들 자원을 아껴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