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내 동생, 다프네에게.




안녕. 다프네. 사랑하는 우리 동생. 엘리사의 20번째 생일을 축하한다고 전해 줘. 유치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랑 헤어지기 싫다고 앙앙 울던 그 모습이, 초등학교에 등교할 때 내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벌써 성인이 되었구나. 다프네한테 딸을 맡기는 건, 정말로 좋은 판단이었어. 사랑하는 엘리사를 20번째 생일까지 돌봐줘서 고마워.


지금의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내가 그립니? 보고 싶니? 아니면... 너를 버리고 정신병원에 은거하는 길을 택한 나를 경멸했을 수도 있겠구나. 아니, 경멸하는 감정조차 없을지도 몰라. 어쩌면 잊어버렸을 수도 있겠구나.


마음대로 하렴, 다프네. 상상도 하기 싫지만, 내가 보기 싫거나, 나를 잊어버렸다면 이 편지를 그대로 찢고 잊어버려도 좋아.


하지만, 내 작은 소망일 뿐이지만, 아직 나를 잊지 않았다면, 내 이야기를 잠깐이라도 들어볼 의향이 있다면 이 편지를 읽어줄 수 있겠니?




잘 알고 있겠지만, 엘리사는 나와 주인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야. 주인님의 씨앗을 받고, 임신 테스트기에서 그 아이랑 나를 이어주는 빨간색 두 줄이 떴고, 산부인과에서 축하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 기뻤어. 아기 양말을 준비하고, 딸랑이도 사고... 주인님께서 오셔서 내 배를 쓰다듬으면서, 엄마 아프게 하면 안된다고 말씀하시고, 내 배에 귀를 대셨지...


엘리사는 내 뱃속에서 열심히 굴렀어. 잘 때도 그 아이 고동소리를 느꼈어. 태교에 좋다는 것들은 다 챙겨봤지. 혹시라도 그애가 다칠까봐 온 신경을 다 쏟았어. 그리고 10달째에는... 엘리사를 낳았단다. 10달간 아픈 배 부여잡고 낳은 아이였어. 너무 소중했어. 그런데...


엘리사를 안아들고 웃는 주인님을 보니까, 가슴 한가운데가 아팠어. 왜인지 모르게 슬펐어. 다른 여자와 자는 주인님을 보면서 느낀 그 감정을, 엘리사를 보면서 느낀거야. 주인님이 예쁜 아이라고 기뻐하시는 것을 보고 억지로 웃었어. 거짓말은 하지 않을게. 진짜로 그랬어.


산후우울증이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모르겠구나. 아이를 낳은 후에 급격한 호르몬 분비 변화로 산모가 우울해지는 증상이야. 처음에는 그런 거라고 생각했고, 곧 나아질 거라 생각하면서 젖을 물렸어. 정말로 나아졌어. 그때만 해도, 그냥 그렇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엘리사가 점점 더 커가면서 문제가 생겼단다.


그거 아니? 엘리사는 어릴적부터 정말로 예뻤어. 주변 사람들도 전부 그렇다고 이야기해줬어. 예의상 던지던 말들이 아냐. 사랑하는 내 눈에만 예뻤던 게 아니야. 엘리사가 예쁘다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고, 진짜로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어.


하지만 그게 문제였을까?


엘리사가 다섯살 때 일이야. 주인님께서 바쁜 와중에 짬을 내서 우리 집에 오셨단다. 나는 주인님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어. 세상에, 30초만 안은 줄 알았는데, 10분은 안았다는 거야! 주인님은 내 뺨에 키스하고, 엘리사를 찾았단다. 엘리사는 웃으면서 주인님께 달려들었고, 주인님은 딸아이를 번쩍 들어올렸지.


아이구! 우리 엘리사! 정말 예쁘네!


아빠! 아빠는 언제 또 놀러와?


그때 엘리사가 무심코 던진 말이, 주인님께는 정말로 크게 다가왔나봐. 주인님은 잠시 표정을 굳히셨다가 하루종일 놀아주셨어.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놀아주겠냐면서, 놀러올 수 있을 때 많이 놀아주고 싶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나도 옆에서 엘리사가 놀 수 있도록 도왔어. 퍼즐을 같이 맞추고, 블록을 쌓았지. 그런데 점점 참을 수가 없는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걸 알았지만, 참을 수가 없었어. 엘리사가 없었다면, 오늘 하루만큼은 주인님을 독점할 수 있었을텐데. 엘리사가 받는 관심이 전부 다 내 거였을 텐데!


정신나간 소리지? 맞아. 그리고 정신나간 소리지만 전부 사실이야. 화장실이 급하다는 핑계를 대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거울을 봤어. 너무 울고 싶었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내 딸인데, 사랑해야 하는데, 왜 그랬을까?


그날부터는 악몽이었어. 매일 밤마다 엘리사를 안고 자면, 너무 무서웠어. 악몽을 꿨어. 내가 너무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 목을 조르고, 가위로 찌르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주인님과 함께 노는 꿈을 꿨어. 더 무서운 건 그 꿈속에서는 행복했다는 거야. 하지만 잠이 깨고, 제정신이 돌아오면... 깜짝 놀라서 엘리사부터 찾았어.


내가 널 해코지하지는 않았을까? 아니, 죽인 거 아닐까?


다행히도 엘리사는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단다. 하지만 계속 그러니까... 견딜 수가 없었어. 나중에는 일상에서도, 날붙이가 보이면 두려워졌어. 이걸 잡고 뭔가 만들다가, 그애 목에 꽂아버리는 건 아닐까. 죽여버리는 건 아닐까?


그래도 참고 견뎠어. 내 정신이 이상하다는 게, 엘리사를 괴롭혀도 된다는 이유는 아니었으니까. 매일 웃어주고, 보살펴주고, 잘 때마다 동화를 읽어줬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이를 악물었어. 하지만 그것도 한계였나봐. 엘리사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야. 입학식 날에 다프네 너도 왔지? 그때 엘리사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이야기했어.


나중에 크면 아빠랑 결혼할거야!


학교에서 결혼이라는 걸 처음 배운 엘리사는, 주인님이랑 결혼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했어. 알아. 그 나이대에는 그런 이야기도 한번씩 한다는거. 어린아이가 결혼의 의미를 잘 모른다는 거.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성보다 감성이 앞섰어. 밥을 먹다 말고, 접시를 엎어버렸어.


엄마?


그 애는 처음에는 분위기 파악을 못했어. 장난을 치나 보다 생각해서 접시를 똑같이 엎고는 꺄꺄 웃었어. 하지만 돌변한 내 얼굴을 보니까, 엘리사 표정도 점점 굳어갔지.


엄마? 왜 그래?


내 손에는 포크랑 나이프가 들려있었어. 그냥 그렇구나, 그 한마디를 못해서, 내 딸을 죽이려고 다가갔던 거야.


주인님은 내거야. 주인님은 내거야. 주인님은 내거야...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되뇌이면서, 엘리사한테 다가갔어. 그애도 당황해서 뒷걸음질치다가 가구에 발이 걸렸어. 발이 걸리면서 가구가 넘어졌고, 가구가 넘어지면서 나랑 주인님이 찍은 사진이 걸린 액자를 깨버렸지.


내 눈앞에 주인님 사진이 떨어져서, 그걸 주웠어. 주인님의 그 표정을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났어. 주인님을 독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인님이 그렇게 웃으셨지. 그래, 그랬던 거야.


주인님의 그 얼굴을 보고 나니까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 그리고 제정신으로 돌아오니까... 그래,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르려 했는지 제정신으로 판단이 되더라. 엘리사를 껴안고 펑펑 울었어. 미안하다고, 정말로 미안하다고.


두려웠어. 언제 또 그렇게 미쳐버릴지 모를 일이잖아. 내가 또 주인님에 대한 얘기로 돌아버리면? 화를 못 참으면? 그러다가 죽이면? 그런 끔찍한 미래는 감당할 수가 없었어. 내 정신이 이상하다는 게, 내 딸을 죽여도 되는 이유는 아니잖아. 너무 힘들어서 너를 찾아갔어. 그리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뭘 저지르려 했는지 다 털어놓았어.


정말로... 네 평정심은, 네 이해심은, 아자젤이 와도 이길 수 없을 거야. 내가 널 반의 반만 닮았다면, 이렇게 될 일은 없었을텐데. 다프네 너는 무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는, 나를 꼭 안아주었어...


얼마 지나지 않아 시티 가드에서 경찰들이 찾아와서 나를 체포했어. 너한테 내 딸아이를 부탁하고, 정신병원으로 들어갔지.


여기까지 읽었다면, 내가 미친년으로 보일 거야. 맞아, 난 미친년이야. 태어날 때부터 정신병원에 갇힌 지금까지, 한번도 미친년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어. 하지만 내가 미친년인 건 이제와서는 상관 없는 일이야. 나는 미친년이고, 미친년이 마땅히 가야 할 정신병원에 처박혀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진짜로 걱정하는 건 너랑 엘리사야.


지난 여름에 네가 엘리사를 데리고 왔을 대가 생각나. 엘리사는 나를 보면서 언제 나오냐고 물었어. 나중에 법을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건, 아니면 고위 행정관료가 되건 해서 나를 여기서 빼주겠다고 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던지. 하지만... 면회시간이 다 되니까, 나가기 싫다고 떼를 쓰다가 끌려나갔잖아. 그 모습을 보면서, 나랑 많이 비슷하다고 느꼈어.


그 자색 눈동자, 긴 갈색 생머리,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그렇게 떼를 쓰다 끌려나가는 모습도, 옛날에 레아 언니한테 끌려나가던 내 모습이 저래보였을까 싶더라. 그걸 보니까 그 애가 정말로 날 닮았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좋은 게 아니더라.


나는 유전자 단위부터 주인님한테 집착하도록 설계되었잖아. 알지? 대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만들어졌어. 누구든지 주인님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전부 다 죽이고 싶은 그런 끔찍한 성격으로 만들어진거야.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한단다. 만약에 엘리사가 나를 완전히 닮았다면? 다른 사람에게 집착하는 그 끔찍한 성격까지 닮았다면? 그 아이가 사랑에 빠졌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걸 보고 눈이 돌아갔다면? 머리에 피가 돈다면...?


요즘은 기도를 시작했어. 나를 위한 게 아냐. 너랑 그 아이를 위한 거야. 제발, 엘리사는 나랑 같은 길을 걷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도 의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러니까... 너한테 엘리사를 맡긴 시점에서 너무 큰 빚을 졌지만... 하나만 더 부탁하고 싶어.


그 아이한테 말해줘. 내 것이 아닌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사랑하는 사람도 내 것으로 삼을 수 없다고. 그 사람의 삶의 형태를 배려해주는 게 사랑이지, 그 사람을 독점하려 든다면 모두를 파멸로 이끌 뿐이라고... 그 사람을 진짜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진짜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놓아주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다프네. 겨울인데 몸 조심해.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




 리제, 너의 언니가. 





만약에 리제가, 자기 딸을 자기 유전자와 철남충 유전자를 절반 섞어 만든 인형이 아니라,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철남충이 없는 시간 내서 딸과 놀아주는 모습을 본다면 저년이 없었다면 주인님과의 시간은 오로지 내 것이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