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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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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오르카 호로 돌아온 나는 콘스탄챠와 바닐라에게 이번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 부탁했다. 당연히 그녀들은 반대했고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쉬라이크를 처분하고 위험요소가 가득한 황혼의 저택을 불태워야 한다 주장했지만, 나는 그녀들을 설득하려 시도했다.


'말이 납치지 사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저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아. 그 버틀러는 마치 백토나 골타리온 같은 케이스라 할 수 있지. 무턱대고 없애버리고 비밀을 땅에 묻어버리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게다가 그는 그 저택에 충분한 물자가 있다고도 했고. 설득 여하에 따라 우리가 이용할 수 있을 지도 몰라. 그러니 처벌은 잠깐 유예해줄 수 있을까?'


'주인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대신, 다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땐 주인님께 벌을 받을 각오를 하고 즉결처분을 할 겁니다.'


다행히 내 설득이 먹히긴 했는지 콘스탄챠와 바닐라가 서로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고 나는 그녀들에게 감사를 표한 뒤 닥터와 포츈이 있는 공방으로 향했다. 그곳엔 나와 쉬라이크의 일로 노심초사하던 닥터와 포츈, 그리고 이번 사건에 대해 그녀들에게 묻던 리리스가 있었다.


"주인님! 착한 리리스를 보러 오셨나요?"


"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어머, 기뻐라... 그럼 오늘은 제가 꼭 붙어 다녀도 될까요? 그런 불미스러운 일도 있고 했으니..."


"그래! 용케도 목숨을 보전했구나. 인간! 하지만 두 번째에는 어림도 없을 거다. 휘몰아치는 사린부리, 악의 세계의 미련의 꽃인 쉬라이크가 맹세하니! 그리고 너, 비열한 독사의 계집! 쉬라이크는 이 일을 기억할 것이다. 난 이 굴욕과 비열함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아낼 것이다."


기분 좋게 내 옆에 꼭 붙으려는 리리스와 멋쩍게 서있던 나에게 예의 퉁명스럽고 과장된 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곳엔 나와 리리스를 향해 받침대에서 구르며 소리치는 쉬라이크의 머리가 있었다.


"머리만 남았는데... 말을 할 수 있네?"


"내가 오빠한테 미처 얘길 못했는데 버틀러의 동력은 몸체와 머리, 양쪽에서 공급받을 수 있어. 머리만 있어도 저장된 에너지만 있다면 단시간 동안은 행동할 수 있다는 소리지."


"주인님. 이 예의라곤 없는 멍청한 고철을 오르카 호 선미에 매달아도 되지 않을까요? 아까부터 주인님을 계속 성가시게 했으니 이 고철의 죄를 낱낱이 밝히고 모두가 조롱할 수 있게 본보기로 삼으면 정말 좋을 거 같아요."


"쉬라이크는 네년만큼이나 한 주인을 섬겨왔다. 쿠앤크 쿠키처럼 생겨먹은 계집아!"


리리스의 말에 쩔쩔매던 닥터가 나에게 머리만 남은 쉬라이크가 아직 작동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자 리리스가 나에게 제안을 했고 그 말에 쉬라이크가 분노로 머리를 흔들며 외치자 리리스가 차갑게 받아쳤다.


"닥쳐, 되다만 고철덩어리. 아마 네 주인도 너의 그 괴상한 성질 때문에 견디지 못해 널 버리려고 궁리했을 거야. 철충들도 너보다는 더 지적일 거고."


"거짓말. 거짓말과 비방이야. 쉬라이크의 공포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재앙이 닥치리라! 그는 바람과 모래를 거느리며 하늘을 날았고, 영광만으로 태양조차 울게 하는 자다! 내 무기! 내 무기를 원한다!"


"지금 손도 없는데 어떻게 무기를 쓰려고..."


리리스의 말에 분노로 덜그럭거리며 받침대 위에서 흔들거리는 쉬라이크의 머리를 보고 내가 중얼거리자 쉬라이크가 나를 보며 다시 외쳤다.


"네놈! 다 들었다. 거기 꼼짝 말고 있어라! 청동도 꿰뚫을 수 있는 강철 턱으로 네놈의 힘줄을 물어뜯을테다!"


"지금 네가 처한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면서도 그런 얘기를 하는 걸까? 그것보다 내가 원하는 건 거래야. 조금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봐."


"진정? 감히 나에게 명령하는 거냐?!"


내 말을 들은 쉬라이크가 다시 뭐라고 소리치려 하자 리리스가 더는 못들어주겠는지 총을 겨눠 쉬라이크의 머리 바로 옆을 쏴 받침대에 구멍을 뚫었고 구멍에서 나오는 연기를 보던 쉬라이크가 바로 얌전히 말을 이었다.


"...특별히 듣도록 하지."


"잘 생각했어. 너도 알겠지만 지금은 멸망 전쟁이 철충의 승리로 끝난지 한참 지난 시대야. 더 이상 멀쩡한 인간은 남지 않았고, 나는 이 오르카 호를 지휘하며 철충에 맞서 싸우고 있어. 하지만 우리도 완전히 유리하진 않아. 수도 적고, 거듭된 전투로 누적된 피로와 물자 손실, 그리고 부족한 보급품 등 여러 제약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고."


"그래서 뭘 원한다는 거냐?"


"나를 납치했을 때 네가 그랬지? 황혼의 저택엔 충분한 물자가 남아있다고. 그 물자를 확보하고 싶어. 최소 수십 년간 활동할 수 있는 물자라면 분명 우리에게도 유용할 테니까."


"그렇다면 내가 얻는 이득은 뭐지?"


"물자 확보에 필요한 조건을 네가 먼저 제시하면, 네 의견에 따르도록 하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르카 호의 전력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쓰게 할 거고."


나는 과감한 조건을 걸며 쉬라이크를 설득했고 그런 내 제안에 그녀들은 놀란 눈치였지만, 쉬라이크는 골돌히 생각에 잠긴 듯 덜그럭 거리다가 이내 말했다.


"...네놈이 이 배의 지휘관이라는 건 사실인 거 같군. 나쁘지 않은 판단력과 대담함이었다."


"칭찬 고마워. 긍정적인 대답이라 생각해도 좋지?"


"그래. 그때도 내가 말했지만 황혼의 저택이 한 남자의 시간을 새기기 위한 장소라는 건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꽤 긴 시간을 새기며 살았기도 했고, 멸망 전쟁 때 그의 결단으로 저택의 많은 장소가 굳게 잠겨 봉인되는 것을 택했다. 만약 네놈이 나를 죽였다면 그 봉인을 풀 방법을 찾기 위해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나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고, 쉬라이크는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 조건으로, 먼저 내 몸을 다시 수복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황혼의 저택에 잠든 물자를 얻을 수 있는지 기꺼이 그 비밀을 공유하도록 하지."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네. 그럼 협상 타결로..."


"잠시만요, 주인님."


순순히 제안을 받아들이려는 쉬라이크와 긍정적인 결과로 협상을 끝내려 한 나에게 리리스가 제동을 걸었고 나와 쉬라이크는 동시에 그녀를 봤다.


"왜 그래 리리스?"


"물론, 주인님의 현명한 판단에 반박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저 고철이 주인님을 납치하고, 콘스탄챠와 바닐라에게 명백한 적의를 드러낸 것에 대한 벌은 내리고 나서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그럼 어떻게 할 건데?"


"후훗, 리리스에겐 다 해답이 있답니다? 포츈 씨? 주인님이 켈베로스 양을 찾는다고 말해주세요."


갑자기 켈베로스를 부르라는 말에 포츈은 의아해 하면서도 일단 켈베로스를 불렀고 곧 평소와 다름없이 함내를 산책하고 있었는지 살짝 땀이 맺힌 켈베로스가 경례를 하며 말했다.


"왕! 사령관님이 절 찾으셨다면서요?"


"잘왔어요, 켈베로스 양. 주인님께서 켈베로스 양이 산책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선물을 준비했답니다? 이걸 받으세요."


리리스가 싱긋 웃으며 닥터가 심심해서 만들었다던 끊어지지 않는 밧줄, 일명 뱀순이 Mk-2로 쉬라이크를 머리를 빙빙 감아 묶은 다음 켈베로스에게 던져주자 켈베로스가 엉겹결에 쉬라이크의 머리를 받고 물었다.


"이건 뭔가요?"


"그건 켈베로스 양이 산책을 할때마다 알람을 울리는 장치랍니다. 한 바퀴 돌때마다 알람을 울릴 테니 몇 바퀴를 돌았는지 쉽게 알 수 있겠죠? 이걸 허리에다가 잘 매고 다녀오시면 되요."


"무슨?!"


"와!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그럼 켈베로스는 열심히 함내 순찰을 돌고 오겠습니다!"


뭐라 항의하려던 쉬라이크의 의견은 깔끔히 무시당한 채, 켈베로스는 기뻐하며 다시 순찰을 하러 나섰고 쉬라이크의 머리가 이곳저곳에 부딪치며 나는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사라지자 리리스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충분... 할까?"


"지금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 같거든..."


'일단 수색대를 준비하는 동안만 고생 좀 하라고 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