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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에서 나던 형용할 수 없는 고차원의 맛이 점차 사라지며 귀에서 들리던 우주에서 온 색채는 점점 옅어져갔다. 이윽고 그것들이 모두 사라지자 나는 나쁜 빛이 들어올까 눈을 살짝 떴다. 밝은 빛이 눈을 자극했다. 오랫동안 잠수함 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태양의 자연광에 익숙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아직 고차원영역에 있어 그 빛에 내눈이 놀란 것인가.

“오라범! 도착했어!”

닥터의 말을 들은 후에야 그것이 그저 햇빛임을 알고 안도하며 눈을 뜰 수 있었다. 눈앞에는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껏 한번도 본 적 없는 곳이었다.

지금껏 보았던 폐허는 원래 이런 모습이었을까. 높이 솟은 건물들로 가득한 도시가 눈앞에 있었다. 옅은 바다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그것이 유일한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도시를 향해 한걸음 나아갔다. 그때 마치 연출이라도 한 듯, 비행기가 내 머리 위를 지나 도시로 향해 날아갔다. 이것이 평화였다. 계속해서 도망치며 살아남는 것이 목적인 세상이 아닌, 제 자리에 멈추어서서 그곳을 도시로 만들 수 있는 평화.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풍경이었다.

도시는 바닷가에 맞닿아있었다. 바다와 높은 건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어쩌면 내 눈을 간질였던 빛은 해가 아닌 해가 반사된 빛이었던 것일까. 도시에서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나는 이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이었구나.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만들어낸 성과를 이렇게나 빨리 볼 수 있을 줄이야.

“오라범! 여기는 정리 다 끝냈어! 턱빠지게 뭘 보고 있는 거야?”

닥터는 내 옆으로 다가와 내가 보는 풍경을 같이 바라보았다.

“아, 오라범은 이 광경이 처음이지. 예전에 인류는 이것보다 더 엄청나게 번성했어. 어딜가나 도시가 있었고 마천루는 하늘을 찔렀지. 그리고 그 마천루에서는 화려한 광고들이 홀로그램으로 퍼져나갔어. 그야말로 황홀한 황혼이었지.”

“닥터는 이런 세상에서 살았던 거야?”

“글쎄? 나도 책이랑 화면속에서 보기만 했어. 언제나 연구실 안이었으니까. 직접 본 건 처음이야. 도시란 건 기대보단 소박하네.”

닥터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전부 다 아는 척하려는 거겠지.

“그러고보니 그 기계는?”

나는 타차원 뭐시기라는 닥터가 만든 타임머신에 대해 물었다. 그 거대한 기계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숨겨놓았어. 혹시 누가 발견해서 타임 패러독스라도 일으키면 어떡해. 팬텀의 위장막을 대형화한 위장막을 덮어놓은 거야. 미래에 오려면 그정도 대비는 해놔야지.”

닥터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도시로 가 미래의 세상을 보는 것이 중요했다.

“오라범! 저거봐!”

닥터는 도시의 해안가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낯선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낯익은 무언가가 있었다.

“오르카호? 여기에 왜 있는 거지?”

오르카호.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과거의 잠수함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용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오라범, 한번 저기로 가보자.”

나는 닥터의 말에 찬성했다. 어쩌면 미래에 전해지는 우리의 모습이 있을 지도 몰랐다.


‘부흥전쟁 승전 기념관’

오르카호와 그 옆에 딸린 건물은 그런 이름을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소박한 이름이었다. 부흥전쟁. 미래의 후손들은 우리의 싸움을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일까. 나와 닥터는 그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거대한 동상이 우리를 맞았다. 올려다봐야 겨우 얼굴이 보일 그 동상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다.

“오라범 아냐?”

내가 저렇게 생겼었나. 기묘한 생김새의 동상을 보는 나는 거울로 본 내 얼굴을 떠올렸다. 최소한 나는 저렇게 생기진 않았다. 고증 오류였을까, 아니면 내 미래는 정말로 저런 모습이 되는 걸까. 시작부터 내게 혼란이 밀려왔다.

‘인류의 마지막을 건 전쟁으로 인류의 시작을 가져온 사령관을 기리며.’

동상의 발치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사령관. 어째서 내 이름이 남아있지 않은 것인가.

“오라범. 왜 이름이 아닌 사령관이라 적혀있는지는 양심에 손을 올리고 생각해보는게 어떨까.”

닥터는 내 속마음을 눈치챘다는 듯 말했다. 윽.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정한 내 이름으로 미래의 후손들이 듣는다면 자괴감에 빠질지도 몰랐다. 인류의 구원자의 이름이 그것이라니. 이름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한 나는 오르카호로 향했다. 아니, 이제는 부흥전쟁 기념관 1관이라 불러야 할까.

-전쟁중에는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사령관님과 그를 따르던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은 목숨을 걸고 위기를 해쳐나갔습니다!

오르카호의 안은 나와 닥터가 기억하던 것과 많이 달랐다. 기억보다 훨씬 넓어졌고 각종 자료와 사진, 영상들이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나와 오르카호의 모두가 했던 일들의 상세한 자료들이었다.

“닥터. 만일 내가 이걸 알고 과거로 돌아가서 죽어라 이걸 피한다면 그건 시간 역설에 해당될까?”

“그건 걱정하지마. 내가 전부 기억해서 오라범이 헛짓거리 안하도록 멱살을 끌고 갈 거니까.”

닥터는 그렇게 말하며 전시관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나는 그런 닥터의 뒤를 따라가며 이것저것을 훑어보았다. 우리에게는 당연시되던 것들이 전시된 것을 보니 새삼스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사진중 하나는 내 눈을 끌어당겼다. 예전에 다같이 찍었던 사진이었다. 색이 바랜 그 사진은 오래전처럼 느껴졌다.

“오라범, 너무 추억에 빠져들지마. 여기서는 150년 전의 이야기지만 오라범에게는 15분전의 일이니까.”

닥터의 말대로였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나를 150년 뒤의 나로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주변을 보던 나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토모?”

그것은 토모였다. 이곳에서 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얼굴이었다. 이곳을 지키는 것이었을까, 토모는 기념관직원 복장을 하고 있었다.

“토모, 너지?”

토모라면 나를 알아볼 것이었다. 그리고 토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을 수 있을 것이었다.

“네? 저요? 아… 그게…”

토모는 지적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살짝 위화감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제가 토모님을 많이 닮았다고요. 그도 그럴 것이 제 조상이신걸요. 제가 그렇게 닮았나요?”

“아, 죄송합니다.”

나는 지적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사과를 했다. 말을 들으니 절대 토모는 아니었다. 다행히 토모의 지능은 유전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토모는 어떻게 되었나요? 아니, 다른 오르카호의 바이오로이들도요.”

나는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글쎄요. 워낙에 전설적인 분들이라 그 결말도 전설로 남았거든요. 한가지 확실한 건 유일의 인류셨던 사령관님은 오래전 돌아가셨어요.”

죽었다고? 내가?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죽은 것인가. 노환? 복상사? 아니면 전사?

“병이었어요. 아무리 강화된 몸이라 해도 병은 이길 수 없었죠. 지금의 발달된 의학이라면 나을 수도 있었지만 부흥 초기에는 그럴 여력이 부족했던 거죠… 안타까운 일이에요. 영웅이 그렇게 죽다니요.”

허무해졌다. 내 이야기의 결말을 이렇게 알게 될 줄이야. 이 광경을 보지 못한채 죽을 줄이야. 아니, 오히려 봤으니 미련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었던 걸까. 나는 죽지만 미래의 인류는 어떻게 될지 알았으니 행복하게 죽을 수 있었던 걸까.

착잡해졌다. 닥터는 내 등을 토닥여주었지만 큰 위로는 되지 않았다. 나는 오르카호를 빠져나왔다. 매일을 보냈던 그 잠수함의 실내가 너무 답답했다. 바깥 공기를 쐬고 싶었다. 오르카호를 빠져나온 나는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었다. 심호흡을 했지만 나는 견딜 수 없었다.

“오라범, 미안해.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어. 내가 괜한 일을 했나봐…”

닥터가 미안하다고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녀의 축 쳐진 말을 나는 들을 수 없었다. 닥터는 언제나 쾌활해야했다.

“괜찮아. 사람은 모두 죽잖아. 오히려 그 날이 언제 찾아올지 아는 건 좋은 것일지도 몰라.”

나는 말도 안되는 말을 하며 닥터를 위안했고 나를 위안했다.

“그만둬!”

어디선가 고함이 들려왔다. 나는 들은 적이 거의 없는 남성의 고함이었다. 소리가 들려온 것은 나의 동상이 있는 곳이었다. 나와 닥터는 부흥의 과정이라 적힌 건물을 지나쳐 동상을 향해갔다.

“이 세상은 잘못되었다! 이 세상은 다시 철충에 의해 망할 것이다!”

한 여성이 동상에 오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세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데 그 희생에 대고 다시 멸망해야 할 세계라니. 수많은 죄없는자들의 희생을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이 세상은 수많은 피 위에 세워진 거에요! 기념관을 돌아봐요! 얼마나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영웅이었다고요? 네! 이 세상은 피로 이뤄졌어요!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의 희생으로요! 사람들은 웃으며 그 바이오로이드들을 짓밟았어요!”

여자는 내 말을 끊으며 외쳤다. 무슨 말인가. 지금은 멸망전이 아니었다. 인류는 과거의 죄악을 잊고 새로운 시작을 했을 터였다. 차별과 전쟁과 빈부격차를 없애고 진정한 낙원을 건설했을 터였다.

“기업가들은 말하죠! 이곳은 지상낙원이라고, 이상향이라고, 유토피아라고! 한번 모두 돌아봐요! 여기가 그런 곳인가요? 거기 당신! 당신이 데리고 있는 그 바이오로이드는 당신에게 무엇인가요? 그저 짐을 들어줄 뿐인 가구인가요? 하나의 인격체인가요? 전장에 나선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물으세요! 그들이 이 전장에 선택해서 온 것이냐고! 이 세상은 잘못만들어졌어요! 세상을 옳게 만들기 위해서는 다시 망하고 다시 세워져야 합니다!”

“헛소리하지 마라! 꺼져라!”

사람들이 외쳤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여성이 말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데리고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 알았다. 멸망전의 세상을 그린 기록에 나타날법한 얼굴이었다. 학대를 받는, 차별을 받는, 고통을 받는 얼굴이었다. 내가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랬던 얼굴이었다. 이 아이들은 절대로 짓지 않기를 바랬던 얼굴이었다.

“닥터. 이 세상은 내가 원했던 낙원이었을까?”

나는 여성을 올려다보았다. 여성은 내 동상에 붉은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었다.

‘거짓된 영웅.’

나는 그런 사람인가. 그저 내가 옳다고 믿으며 과거를 다시 재현하도록 한 사람인 걸까. 내가 한 모든 일이 의미가 있는 걸까.

나는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길을 돌아다녔다. 정처없이 떠돌며 나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제야 나는 이 세상을 알 수 있었다. 길거리를 청소하는 바이오로이드는 슬퍼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길에 주저앉아 구걸하는 바이오로이드의 얼굴에는 생기가 없었다. 뒷골목에서는 몸을 파는 바이오로이드가 남자들에게 얻어맞고 있었다.

이것이 미래의 현실이었다. 내 목숨을 다 바쳐 만들어낸 세상은 과거의 인류와 다를 것이 없었다. 인류는 바뀌지 않았다. 바뀐 것은 인류에 대한 내 희망적인 생각뿐이었다.

“오라범…”

닥터는 길가에 주저앉은 나의 등을 토닥였다.

“닥터…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 걸까? 나는 내가 멋진 미래를 기대하며 죽었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미래의 나는 이 세상을 막기위해 고군분투하다 결국 죽고만건 아니었을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나봐야겠어. 바이오로이드들은 오래살잖아. 분명 이 시대까지 살아있고 내가 아는 아이들이 어딘가에는 있을 거야. 나는 만나봐야겠어.”

“방법은?”

“사람들에게 물어봐야지. 전쟁 영웅이면 인기인일 거 아냐? 누구나 아는 좋은 곳에서 살고 있을 거야. 이 도시에서 가장 집값이 높은 곳에 살 거야. 고층 건물의 꼭대기에 가면 분명 있을 거야. 그 많은 아이들중 하나라도 만나겠지.”

닥터는 대답 대신에 한 팜플렛을 내게 건내주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들이었지만 그들은 인류의 부흥과 함께 어디론가로 사라졌습니다. 혹시 알까요. 그들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울지도요? 하지만 공식적으로 우리는 그 영웅들을 다시는 볼 수 없습니다.’

“오라범, 아무래도 이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 다른 거 같아.”

그 글을 읽은 나는 더욱 더 허탈해졌다. 내가 아는 세계가 아니었다. 내가 만든 세계였지만 나의 세계가 아니었다.

“물론 이 닥터가 아무도 못찾을 정도로 무능하진 않아.”

닥터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지금부터 메이언니를 찾을 거야. 오라범도 협력해줘.”

메이? 하지만 어떻게? 나는 알 수 없었지만 닥터는 좋은 방법이 있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