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은 여기서 - https://arca.live/b/lastorigin/20183340




4



“대장님!! 칸 대장님!! 정신 차려보세요!!”


“으아..으아....어쩌지.”


카멜과 탈론페더는 안절부절 못해 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들도 어렴풋하게나마 대장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칸이 평소에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들은 칸의 뜻을 존중해 그녀의 이상 행동을 모른 척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고통스러워하는 칸을 처음으로 마주한 그녀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탈론페더였다. 퍼뜩 고개를 든 페더가 카멜을 돌아보았다.


“....카멜! 어서 다프네랑 사령관님을 불러줘!”


“으..응!!!”


탈론페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퀵 카멜은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가고 있었다.

카멜이 자신의 이름답게 빠른 속도로 달려나간 것을 확인한 페더는 칸을 살펴 보았다.


“아...어쩌지..칸 대장님…”


“도망..가야..아냐..싸워야..”


계속해서 얼굴을 긁어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칸은 누가 보기에도 불안정해 보였다. 

어쩌지,어쩌지, 패닉에 빠져 같은 말만을 반복하던 페더가 낮게 비명을 질렀다.


“꺅!”


칸의 손톱이 지나간 자리의 피부가 벗겨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페더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뜯어내는 칸의 손을 잡아챘다.

물론, 칸의 환각속에서 비취지는 자신의 모습이 철충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페더는 결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탈론페더가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 칸이 늘 가지고 다니던 리볼버 캐논을 꺼내들어 페더를 겨눈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탕]


“어?”


페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와 그녀의 가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동그랗게 뜷린 구멍에서 아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한 박자 늦게 떨어진 핏물이 후두둑하며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비릿한 피냄새가 좁은 방을 가득 채운것은 순간이었다.


“헉..헉..”


“...아악..!”


페더의 비명소리에 환상에서 깨어난 칸의 눈에 희미한 빛이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페더의 상처를 본 칸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페더! 젠장..페더!”


“헤헤...와..대장..이런 얼굴..처음..봐요...”


탈론페더는 힘없이 웃으며 칸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칸의 얼굴을 감상하는 것이 취미인 그녀로서도 이런 대장의 얼굴은 처음이였다.

멀쩡한 상태였으면 당장 이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컬렉션에 추가했을텐데....

하지만 어째서인지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말!! 말하지 말아라!!”


칸은 다급히 자신의 팔에 감긴 붕대를 잡아뜯어 그것을 페더의 가슴에 되감았다.

하지만 그녀가 붕대를 매듭 짓기도 전에 솟아오른 핏물이 칸의 손을 흥건히 적셨다.

탈론페더가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그녀에게서 흐르는 피의 양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많았다.


“이렇게….윽..이렇게...가까이서 대장 얼굴 보는 건...잘 때 훔쳐본거 뺴고 처음이네요....”


“말하지 말라니까!!”


제발,제발 칸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웃옷을 찢어 기능을 잃은 붕대 위로 덧대 묶었다.

수많은 전쟁과 죽음을 겪어온 그녀였지만 이런식의 허무한 죽음은 용납할 수 없었다.

자책으로 일그러진 칸의 눈에서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헤헤,,대장..의외로..케멜..보다..울보..:”


말할 때마다 페더의 입과 가슴에서 피가 울컥울컥 올라왔다. 

하지만 그녀는 기꺼이 칸을 안심시키기 위해 농담을 던지며 맑게 웃었다.

페더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저는..윽...괜찮아요….”


“거짓말 하지 마라!! 이게 괜찮을 리가 없지 않나!”


거짓말이라, 그러고 보니 그녀는 늘 칸에게 거짓말을 해왔었다.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는 영상 편집이라고 대답하기도 했었고, 

주말에는 주로 뭘 하냐는 말에는 자기 개발을 한다고 얼버무리기도 했었지.


뭐, 남의 사진이나 영상 따위를 보며 검은 욕망을 채우는 것을 당사자에게 당당히 말하는게 더 이상하긴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죄송…해요.”


그래서 탈론페더는 칸에게 사과하며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울고 있는 칸의 얼굴이, 철충의 칼날을 막아 주며 괜찮느냐고 물었던 칸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어짜피 칸으로 인해 살아난 목숨 이었다. 

그러니 그것이 다시 칸으로 인해 거둬진다고 해서 아까울 것은 없었다.

다만, 이제 다시는 칸의 멋진 얼굴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것만은 조금 아쉬웠다.


뜻 모를 페더의 사과를 들은 칸이 아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죄송이라니.. 그 무슨 ..아아..내 잘못..나 때문에 이런 일이....”


이상하게도, 지금 페더의 눈에 비친 칸은 평소와 다르게 너무나 연악하고 여려서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았다. 

탈론페더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손을 겨우 움직여 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아니..에요..대장 잘못...약속...꼭..행복…해야.”


그것은 단순한 사고였다. 칸은 몰라도 적어도 페더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혹시라도 칸이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환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페더!! 젠장...페더!!”


유언처럼 내뱉는 페더의 말을 들은 칸은 비명을 질렀다.

칸은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열심히 상처를 치료했다. 

하지만 상처가 너무 깊었다. 

칸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많은 피를 흘린 페더의 몸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명령이다..페더! 살아라, 젠장.. 살란 말이다!!”


“헤헤..죄송..”


탈론 페더는 주어진 명령을 척척 수행 해내는 엘리트 참모였지만,

이번 임무는 그녀에게 너무 어려웠다. 

몸에 주먹만한 구멍을 뚫고 살아나는 것은 강한 의지만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 우리 대장님 멋진 얼굴이 이렇게 망가지면 안되는데…’


페더는 마지막 까지도 그녀 자신의 죽음보다 칸을 먼저 생각하며 칸의 얼굴에 난 상처를 더듬었다. 

그 몸짓에는 단 한 톨의 원망도 담겨있지 않았다.


“...장..웃..어”


‘대장님, 마지막 가는 길인데 웃는 얼굴을 보여주면 안될까요?’


이제는 말을 뱉는 것 조차 버거웠기에, 탈론페더는 미쳐 하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아, 저 말은 꼭 해주고 싶었는데…'


페더는 그렇게 생각하며 흐려지는 시야에 칸의 얼굴을 담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점점 눈이 감겨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페더..페더?!??”


페더의 숨이 점점 잦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멈춘 것을 깨달은 칸은 페더를 끌어안고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으흑..흑...흐아아악!!”


황급히 달려온 사령관과 다프네가 칸을 페더에게서 때어놓을 때까지 그녀는 그렇게 탈론페더를 안고 울고 있었다.


















5






결론부터 말하자면, 탈론페더는 죽지 않았다.

그것이 바이오로이드의 끈질긴 생명력 때문인지, 다프네의 뛰어난 응급처치 실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찌 되었든 탈론페더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끼익..]


칸은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수복실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탓에 녹슬었던 문이 삐걱거리며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오늘도 날이 좋더군.”


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꽃병에 담긴 시든 꽃을 버리고 새 꽃을 꽂아넣었다. 


“...자네와 함께 즐길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쓴웃음을 지은 칸은 탈론페더가 누워있는 침대 위를 바라보았다.


[삑...삑...삑…]


닥터가 만든 갖은 기계와 관들 속에 파묻혀 있는 탈론페더의 모습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을 연상시켰다. 


그 사건 이후, 탈론페더가 쓰러진지도 벌써 두달이 지났다. 

구멍 뚫린 상처는 작은 흉터만을 남긴 채 깨끗하게 사라졌다.

여러 번 정밀검사를 거친 닥터도 그녀가 완벽하게 나았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워 울프가 새로운 맥주를 만들었다며 자랑하더군…”


칸은 그렇게 말하며 꽃과 함께 가져온 작은 병을 내려놓았다.


처음에 칸은 자신이 벌인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했다.

기습적으로 찾아오는 가려움은 피 흘리고 있는 탈론페더의 얼굴로 바뀌어 그녀를 괴롭혔다.


하지만 항상 웃어달라는 페더의 마지막 말을 떠올린 칸은 절망에 빠져 우는 것 대신

매일 페더를 찾아와 자신의 시시한 일상을 이야기 해주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또….”


칸은 병상의 머리맡에 걸터 앉아 두서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샐러맨더가 운영하던 불법 카지노를 사령관이 발견한 일, 

퀵 카멜이 ‘그 바보가 없으니까 심심해 죽겠어’ 라고 투덜거리며 그녀를 걱정한 일,

페더의 침대 밑에서 발견된 콜렉션이 사령관이 당황시킨 것 같은 사소한 일들을 이야기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럼..내일 또 오도록 하겠네.”


여전히 일어나지 않는 탈론페더를 보며 칸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헝클어진 페더의 머리와 이불을 정리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탈론페더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뭐?”

 

물론 칸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손을 움직인 것에 이어, 탈론페더의 눈이 깜빡이는 것을 본 칸은 버튼을 눌러 급하게 사령관과 다프네를 호출했다. 


“페더? 정신이 든 건가?”


느리지만, 확실하게 탈론페더는 의식을 회복하고 있었다. 

탈론페더는 이제 손가락 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바짝 마른 입술이 열리고 잔뜩 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대장..그거..버려..줘....안ㄷ..”


탈론페더는 뜻 모를 말을 웅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약해진 근육이 몸을 버티지 못하고 휘청거려, 칸은 페더가 넘어지지 않도록 그녀를 잡아줘야만 했다.

칸의 손길을 느낀 페더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희미하게 웃는 탈론페더의 얼굴을 보며, 칸은 문득 그녀의 악몽이 완전히 끝나버린 것을 직감했다.

서로를 마주 본 칸과 페더의 입가에 점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작게 난 창 사이로 비치는 저녁 노을이 그런 그녀들을 모습을 따듯한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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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오래 고민하면서 쓴 단편인듯. 

매번 글 잘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네..

늘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