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였다. 

잠깐 뒷목을 문지르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었다. 

이걸 정리할 때까지 자고 싶지 않았지만 옆에 있는 그녀가 신경쓰였다. 

내가 일을 마칠 때까지 그녀도 눕지 않겠다고 한다. AGS도 아니고, 잠은 꼭 자야 할텐데 왜 저리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하아……… 슬슬 콘스탄챠 씨가 돌아가주지 않으려나…….”


그런 의미를 담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말싸움으론 상대가 안되니 은근슬쩍 찔러본 것이다. 


“후우~~~  주인님이 슬슬 침소에 들지 않으시려나…….”


이런 맞디스가 돌아왔다. 딱히 디스는 아니지만 마음에 콕 박힌다. 콘스탄챠는 딱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내 옆에 우뚝 서서 컵이 빌 때마다 차를 따라줄 뿐이었다. 


“메이드 씨가 돌아가면 나도 누워서 잘 건데…… 돌아가주지 않으려나…….”

“그렇게 말해놓고 또 밤새서 작전을 짜는 주인님 때문에 메이드는 신경이 쓰이는데…… 먼저 돌아가주지 않으려나…….”


하나부터 열까지 지는 법을 모르는 구나, 이 메이드는.  

안되겠다. 사령관 권한을 발동해야겠다. 


“……… 아 콘스탄챠. 차가 다 떨어졌네.”

“그런가요? 물을 끓일게요.”

“아니… 차말고 커피로.”

“네.”


그녀는 내가 애용하는 커피믹스를 찾아 서랍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어제 저녁에 다 먹었다. 새 걸 채워오려면 사령실을 나가 주방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없어? 그럼 주방 찬장 열어보면 있을 거야.“

그런가요?”


그녀는 못 믿겠다는 듯 사령실 내부의 찬장과 서랍, 옷장을 전부 열어보고 닫았다. 거기서 고양이, 저격수, 닌자, 경호원을 발견했지만 개의치 않고 닫았다. 

콘스탄챠를 내보낸 뒤에도 아직 장애물이 남아있다. 저것들은 어떻게 내보내지….


“어쩔 수 없죠. 비상용으로 준비해둔 이걸 쓰는 수밖에.”


그녀는 옷소매 안으로 손을 넣더니 숨겨놓은 커피믹스 한 봉을 꺼냈다. 

자연스럽게 물을 끓여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너…… 왜 그런 걸 챙겨다니는 거야….”

“만에 하나에요. 주인님이 항상 커피를 좋아하시니까.”


내게는 이런 대책까지 예상해서 준비해놓은 것처럼 보였다.

사령관 권한도 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명령이다. 차나 커피, 간식을 갖다달라는 명령에 메이드들은 철저히 따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만큼은 들어준다. 바닐라나 그 앨리스 마저도 순순히 가져온다. 

내가 전병을 입에 물고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는 게 포상이라나…. 그런 낯간지러운 소리를 금란에게 들었던 것 같다. 


“애초에 지금 누워도 너랑 같이 못한다고. 숨어 있는 애들 봤잖아.”


다른 방향으로 공격해 보았다. 먹히지 않을 줄은 알고 있었지만.


“어머, 무슨 소릴 하시는 거죠? 전 딱히 하지 않아도 돼요. 그저 주인님이 따듯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곤히 잠드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에요.”


커피 한 잔이 책상 위에 놓였다. 따듯한 김이 피어올랐다. 


“자, 디카페인이에요. 하루에 커피를 너무 마시는 거 아닌가요?”

“넌 엄마냐…….”


메이드면 그 답게 주인의 말을 들을 것이지, 사사건건 챙겨주고 걱정하려 한다. 그게 신경 쓰여서 참을 수가 없었다.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그런 방향도 좋아요.”

“아니 됐어….”


이미 그쪽을 원하는 애들은 많다. 나는 엄마만 여러 명이다. 


“지금 배치랑 대형 조사만 마치면 잘게. 진짜야.”

“그게 몇 시간째잖아요. 내일 지휘관 분들과 논의하셔도 될 것을.”

“그럼 작전이 밀리잖아. 오늘 밤안에 정하고 싶어.”

“이미 오늘 밤은 지났어요. 이제 동 트겠어요.”


그러니까 이길 수가 없다. 나에게 화술에 대해 알려줄 바이오로이드가 필요하다. 아르망이나 안드바리에게 부탁해볼까. 


“……… 몰라. 그럼 동틀때까지 하지 뭐.”

“저도 같이 있겠어요.”


그러니까… 하루이틀 정돈 밤새도 아무 문제 없다니까. 

메이드들은 걱정이 심하다. 

그러니 나를 따라 본인들도 뜬 눈으로 지새우겠단 것이다. 나는 내 위치가 있으니 하는 일이지만 그녀들은 딱히 그럴 필요가 없는데.


“내 말을 안 듣는구나… 정말.”

“제가 주인님의 말을 거부했던 때가 있나요?”

“지금 하고 있잖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깨 있는 건 단지 부관의 역할일 뿐이라고. 사령관이 깨 있는데 부관이 잠에 드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론을 내밀었다. 


“주인님이 그렇게 하고싶다고 했던 쪽쪽이랑 기저귀 플레이도 웃으며 받아준 저인데… 그런 말을 하시니 섭섭해요.”

“기저귀는 너도 좋아했잖아. 실실대며 채워줬잖아.”

“그거야 아기 주인님이 귀여우니까 보모의 심정으로 채워준 것 뿐이에요. 딱히 성욕은 없었어요.”


유아 플레이 중에도 있는 힘껏 펠라한 주제에. 울며 보채도 놓아주지 않았던 주제에 저렇게 항변한다. 약이 올랐다.


“아기 주인님이요!? 그 얘기 좀 더 자세히 해주세요!”


그 때 옷장문이 벌컥 열렸다. 리리스가 상체부터 튀어나와 바닥에 엎어졌다. 


“어머, 경호원님.”

“아… 안녕하세요. 주인님? 아름다운 밤이에요… 오호호….”


어제 낮 세 시부터 그 안에 잠복했던 건 알고 있었다. 드디어 나왔구나. 


“오늘도 열심히 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얘길 들어서요… 이건 경호원으로서 그냥 넘기면 안되겠다! 싶어서… 오호호….”


안면부터 엎어져서인지 코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지만 리리스는 웃고 있었다. 그냥 계속 숨어 있으면 좋았을텐데…. 


“리리스 님 들어보세요. 주인님이 잠을 안자요. 오늘의 부관이자 비서실장이자 제1 왕비인 저로서는 정말 걱정이랍니다.”

“제 1 왕비요? 열받는 말을 하시네요. 오호호.”


리리스는 이왕 정체를 드러냈으니 당당하게 내 옆에 섰다. 양 옆에 부담스러운 여자들이 있다. 


“그치만 저도 공감이에요. 착한 리리스는 언제나 주인님 걱정뿐이랍니다. 그도 그럴게… 열한 시간째 앉아계시잖아요….”


너는 그만큼 옷장 안에 박혀 있었잖아… 반박을 하려다가 꿀꺽 삼켰다. 

슬슬 작전에 대한 감이 잡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패드 위로 손가락을 뻗어 배치를 바꿔본다. 지형 정보와 철충들의 정보를 면밀히 살펴본다. 


“으…… 음……… 여기서 레오나를 뒤로… 아니 이러면 수급이 안되나.”

“주인님, 제가 한 발 빼드려도 될까요?”


리리스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화면이 보이지 않았다. 

에잇 귀찮아, 저리 가봐. 손을 흔들어 그녀를 밀어냈다. 


“흥… 시원하게 한 발빼면 머리가 맑아져서 좋은 작전이 떠오를지도 모르는데….”


삐진 리리스의 중얼거림. 정말로 그럴까.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리리스는 혀를 길게 쭉 내밀며 검지와 엄지를 붙인 손을 입가로 옮겨 천박하게 흔들어 보였다. 


“베에… 베에…… 이러케…… 어떠세요?”

“으응……….”


아니, 역시 됐어.

리리스의 저 표정을 보아하니 한 발로 끝날 것 같지 않다.


“리리스 님. 본인이 하고 싶은 걸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네? 저도 좋지만 주인님도 이걸 좋아하신단 말이에요. 누이좋고 매부좋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나도 좋고 주인도 좋아 에요.”


내가 말을 안 들으니 두 번째 작전으로 넘어간 걸까. 둘이서 시시콜콜 잡담하며 방해하기로.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찬장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 안에 검은 머리칼로 뒤덮인 사람의 머리가 날 지켜보고 있었다. 


“히익……!  ……… 아니……… 카엔 너.”


찬장 안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리 없다. 천장 위에 잠입 해 찬장과 연결 된 부분에 머리를 들이밀어 나를 지켜보는 것이다. 이 닌자는.


“주공……… 할 거야?”

“뭘.”

“3P.”

“안 해.”

“할 거면 나도 끼워달라 하려고….”


지금 이 방엔 몇 명이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사람이 전부였으면 좋겠지만. 


“카엔은 안 자?”

“응…….”

“왜?”

“주공… 지켜보는 거… 재밌어.”

“내가 애완견이냐.”


메이드들도 내게 먹여주며 반응을 보는 걸 좋아했는데, 설마 이게 그걸까. 작게 소름이 끼쳤다. 


“하아……….”


나 때문에 몇 명이 여기 있는 거냐고. 

도무지 혼자 있을 수가 없다. 이런 게 사령관의 무게일까.  


“주인님. 폼은 그만 재시고 얼른 누우세요.”

“너 이 자식 진짜. 좌천 시켜 버린다. 브라우니랑 같이 연병장 돌게 해버릴 거야.”

“그러면 주인님의 차는 누가 타드리죠? 곤란하네요.”


바닐라도 있고 금란도 있어! 앨리스도 있고 블랙웜도 있어! 

그들보다 콘스탄챠가 끓인 게 제일 내 입맛에 맞지만. 

바닐라는 너무 진하고 금란은 너무 밍밍한 맛. 앨리스는 케바케에 블랙웜은 애매하다. 


“너 밖에 없네….”

“그렇죠? 저는 스틸라인에 소속되도 상관 없어요.”


차를 끓일 줄 아는 정도의 능력으로 그녀는 퍽이나 우쭐거렸다. 열 받지만 할 말이 없다. 

사삭 하고 고양이가 내려앉듯이, 카엔은 소리없이 바닥에 착지해 내 앞에 섰다. 


“뭐야 또.”

“있잖아, 주공. 나 어제…… 주공이 시킨대로 나들이를 갔는데……….”

“아, 그랬지.”

“거기서, 작은 여자아이가. 그………… 투엉 드래곤…… 이란 걸 알려, 줬어.”

“LRL?”


그 책은 나도 읽어준 적이 있어서 알고 있다. 왜 이 이야기를 지금 들어야하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래서………… 그게 있으면… 철충들… 전부 무찌를 수 있대. 무적.”

“허어… 용보다?”

“응. 그거, 있으면, 주공이 잠 안잘 이유도…… 없어져.”

“…………….”


카엔은 매우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내일부터. 그거 찾아. 작전, 필요 없어.”

“거 참….”


대단한 발견이네. 

언뜻 시선을 돌리니 새벽 네 시였다. 한 시간이나 날리고 말았다. 


“미안한데 카엔. 이만 돌아가줄래? 시간이 많이….”

“투명, 드래곤… 무적…!”


그녀는 내 말을 끊으며 외쳤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저기…….”

“무, 적……!”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와 카엔은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가 푹 숙이고 말았다. 


“알았어…….”

“그, 럼… 찾으러, 갈 거야?”

“아…… 응.”


나중에. 

뒷말을 덧붙였다. 

당장 귀찮아서 카엔을 내다보낸 일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그럼…… 주공… 이제 피곤해하지 않아도 돼.”


카엔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밤새 끙끙… 하면서…… 걱정, 안해도 돼.”

“아니……….”


LRL은 나중에 꿀밤을 먹여줘야 겠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게요. 주인님 이제 이런 일은 안해도 되겠어요.”


뒤에서 날아온 콘스탄챠의 손이 패드를 가져갔다. 리리스는 내게 팔짱을 끼며 일으켜 세웠다. 


“어서 침소로 드셔요. 주인님.”

“하…… 하하….”


북풍과 태양… 밀어서 안되면 당겨보기… 그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어쨌거나 넘어간 건 나였다. 

그녀들이 등을 떠민다. 오늘은 예상치도 못하게 넷이서 한 침대를 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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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엔과 나들이 - 1


카엔과 나들이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