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사령관의 하루 

 

 

 

 

 

경박한 사람은 싫어해. 하지만 말이지, 그 사람은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다고.

 

- 철혈의 레오나

 

 

 

 

 

1.

 

아마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게 생활하는 인간을 찾으라고 한다면

 

저희 주인님일 겁니다. 그것만은 확신하고 또 확신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살아남은 인간은 주인님 한 분뿐이지만요…….

 

“저……주인님?”

 

“콘스탄챠 S2,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벌써 새벽 3시가 넘었지만 주인님의 방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잘 정돈된 침실 구석에 있는 책상에 앉아, 눈이 빠져라 화면을 들여다보며

 

미친 사람처럼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이 남자가 바로 저의, 저희들의 주인님이자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인간- 사령관님입니다.

 

그런 타이틀과 별개로 몰골이 말이 아니지만…….

 

“벌써 오전 3시를 넘었어요, 지금이라도 조금 눈을 붙이시는 게…….”


“괜찮습니다. 모처럼 컨디션이 좋으니 유용하게 써먹어야죠.”


“그보다 존댓말 할 필요는 없다고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제 의지로 존댓말을 하는 겁니다. 그보다 용건은 그제 전부입니까?”


주인님이 의자를 돌려 저를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이전부터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만.”


“네?”


“상의에 있는 그 구멍은 대체 무슨 용도입니까? 통풍용?”


읏. 저는 반사적으로 제 가슴 밑으로 난 구멍을 가렸습니다.

 

“이건 그……원래부터 이런 디자인으로 나온 거예요.”


“당신뿐만 아니라 모두들 비효율적인 디자인의 의상을 입더군요. 대체 왜?”


또 나왔습니다. 주인님은 뭔가 하나에 의문을 품으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야 직성이 풀리십니다. 그것만은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콘스탄챠 S2, 저는 지금부터 취침하겠습니다.”


“네? 아, 그럼 저는 나가볼게요.”


“내일부터 또 할 일이 많아지겠군요.”


이번엔 또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벌써부터 불안합니다만…….

 

저는 방문을 나서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

 

매일 오전 9시마다 하는 정기회의.

 

참석하는 인원들은 각 부대의 지휘관들과, 평소 시중을 드는 저 콘스탄챠 S2뿐입니다.

 

보통 각 부대 하루 일정에 대한 간단한 공지와 생활에 불편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휘관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입니다만…….

 

“음? 오드리, 너는 왜 여기 참석했어?”

 

앉아서 한가로이 손톱을 정리하던 레오나 대장이 말했습니다.


“저도 오늘 갑자기 호출 받은 거라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오드리 드림위버가 해줘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님이 들어오시자 각 지휘관들이 자리에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했습니다.

 

“앉으시죠. 오늘 정기회의에선 부대원들의 의복에 대해 의논하겠습니다.”


“의복……말씀이십니까?”


주인님의 말에 모두가 서로의 옷을 보았습니다. 

 

“저희 옷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첫 번째, 의복의 효율성이 의심됩니다. 상당히 많은 인원들이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의복을 입고 전투에 참가하는데 이는 사령관으로서 상당히 우려되는

 

일입니다. 두 번째, 노출이 심합니다. 쓸모없는 노출로 인한 방어력 저하와 풍기 질서를

 

해하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세 번째, 의복이 통일되지 않기에 의상 수복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원이 낭비됩니다. 그렇기에 의복의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 사령관은 판단했습니다.”

 

주인님이 리모컨을 누르자, 회의실 벽에 있는 모니터에 웬 옷 사진이 나타났습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정말이지 멋이나 디자인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실용성만을

 

강조한 옷처럼 보였습니다. 먼 옛날 중국의 인간들이 입던 인민복 같기도 했습니다.

 

“대체 이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옷은 뭐죠? 뷰티라곤 전혀 없는 이런……!”

 

오드리가 부들부들 떨며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눈을 가리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이 옷은 생활에 있어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갖춘 의복입니다. 또한 구하기 쉬운

 

재질로 제작되어 수복이 쉽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으로 생산성 또한 우수합니다.

 

앞으로 전 인원의 생활 복장을 이것으로 교체할 생각입니다.”


“어…….”


“으음…….”


다들 할 말을 잃고 서로 눈치만 보았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걸 입으라니 차라리 알몸으로 사는 게 나을 거예요…….


심지어 그 마리 대장조차 윽, 저게 옷이라고? 라고 말하는 듯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이의가 없다면 바로 오드리 드림위버가 제작을 진행-”
 
“안 돼요! 저건 옷이 아니라 감자포대 아니에요!? 이거 혹시 몰래 카메라인가요?  제발 그렇다고 누가 말해주세요 제발!!”

 

“지, 진정하세요!”


제가 눈을 뒤집고 발작하는 오드리 씨를 억누르는 동안, 메이 대장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그, 그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실용적인 건 좋다지만 그래도 좀 아니잖아?”

 

“좋습니다. 그럼 정확히 어떤 이유로 안 되는지,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에 대해

 

듣겠습니다. 멸망의 메이, 제 의견에 반대할 이유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윽.”

 

메이 대장이 천천히 도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야, 주인님은 다른 사람과 설전을 해서 져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목조목 팩트를 쏟아 부어 상대방이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그 말발을 이길 사람은

 

이 오르카 호에 아무도 없습니다.

 

“이견이 없다면 계획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 외에 변경 사항이나 공지 사항은

 

없으니 다들 오늘 하루 일과,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주인님이 자리를 떠났습니다.

 

“……할 말이 없군.”


“각하께서 또 꽂히셨나보군…….”

 

“미치겠네, 진짜.”

 

다들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보통 주인님이 뭔가 시작하시면, 저희로선 그걸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차라리 나쁜 짓이라면 다행일 텐데 보통 저희를 위해서 하는 일인지라 대놓고

 

싫다고 거부할 수도 없기에, 그저 운명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어쩌면 좋겠소? 저런 옷을 입으라고 부대원들에게 어찌 말하란 건지…….”

 

“우리 애들이 저걸 입고 돌아다니는 꼴을 보고 싶진 않은데…….”


“난 여자로서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만, 그래도 최저한의 선이라는 건

 

존재한다. 저걸 입었다간 여자로서 끝장이다. 완전히 나락이란 말이다.”

 

다들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주인님의 마음을 돌려야한다.

 

“그래요! 저도 그런 걸 만들고 싶진 않다고요! 뭔데요 그 감자포대는!?”


“좋아. 그럼 누가 가서 우리 의견을 전달할래? 할 사람 손.”


메이 대장이 말하자 모두가 귀신 같이 고개를 돌렸습니다.

 

“너희 다 알고 있겠지만 사령관은 진짜 쇠고집이거든? 적어도 난 설득 못 해.”


“적어도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만…….”

 

칸 대장이 리리스 씨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주인님이 누구랑 친하게 지내는 거 본 적 있어요? 절 그렇게 봐도 소용없어요.”


“아니, 그래도 호위니까…….”


“단 둘이 12시간 동안 같이 있었는데 딱 세 번 말씀하셨어요. 물을 갖다 주시길 

 

바랍니다, 블랙 리리스. 호위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일정은 추후에 공지하겠습니다.

 

주인님은 정말정말 멋진 분이시지만……사실상 일하는 기계나 다름없다고요.”


“하기야 그 하치코조차 친해지지 못한 사람이니까…….”

 

다들 한숨만 내쉬던 그 때, 왠지 모르게 시선이 제 쪽으로 모였습니다.

 

“여기서 그나마 각하와 친하게 지내는 건 너뿐이다, 콘스탄챠.”


“그래도 부관이 하는 말이면 좀 듣지 않으려나?”


“아, 아뇨……저도 그, 딱히 친하진 않으니까요.”

 

“제발 부탁드려요! 저는 절대로, 죽어도, 차라리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그런 옷을

 

만들고 싶진 않아요! 네? 제발 부탁할게요. 제발…….”

 

오드리 씨가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끄응…….

 

“아무래도 제가 해야겠네요.”


“부탁하오, 그대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오!”


“우리 모두 이렇게 부탁할게. 제발 그 멍청이 좀 말려줘…….”

 

결국 이렇게 됐네요.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지만 역시 자신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볼게요. 최선만으론 부족하겠지만…….”


아아.

 

가끔은 차라리 좀 덜 성실한 분을 모셨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주인님, 오늘 일과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콘스탄챠 S2. 오늘도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과가 끝난 오후 6시, 저는 일하는 내내 눈치만 보았습니다.

 

조금도 한 눈 팔지 않고 집중하시는 주인님께 말을 거는 것은 저도 못할 짓이었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엄청난 용기를 지녔거나 눈치 따윈 보지 않으시는 분뿐이겠죠.

 

“먼저 식당에 가셔도 좋습니다. 전 의복 건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그, 그 일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아, 혹시 더 효율적인 디자인을 떠올리셨습니까?”

 

아뇨 절대 그런 생각은 아니에요……저는 심호흡을 했습니다.

 

“다들 그 의복 건은 조금 보류하길 바라시는 것 같아서요.”


“……이해가 안 됩니다. 제 아이디어의 어떤 부분이 문제입니까?”


“그건-”
 
“아뇨, 말씀하지 말아주십시오. 역시 제가 놓친 게 있는 모양입니다.”

 

주인님이 손톱을 입으로 깨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원 부족? 아냐, 그건 아니야……자원은 필요한 양의 325% 이상을 확보했어.

 

효율 부족도 아니야. 그보다 더 효율적인 디자인은 없을 터. 아니면 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여 반발하는 것인가……?”

 

“주인님?”

 

“죄송합니다. 잠깐 생각하느라. 하지만 역시 보류하는 건 무리입니다.”

 

주인님이 제게 타블렛 노트를 건네주었습니다.

 

거기엔 벌써 언제부터 언제까지 얼마나 되는 양의 자원을 투자하여 의복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상세한 계획이 적혀있었습니다.

 

“이미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는 중입니다. 벌써 내일부터 생산 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으니 서둘러 일을 진행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그나저나 왜 제 아이디어에

 

반발하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정확히 어떤 부분이 문제인 겁니까?”

 

“그게……다들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고…….”


“전 모두를 위해 생각한 겁니다. 어째서 다들 다른 옷을 입어야 합니까?

 

왜 다들 효율이 떨어지는 옷을 입어야 하는 겁니까? 디자인은……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군요. 참 심플하고 잘 설계된 디자인 아닙니까?”

 

아아, 역시 안 되겠네요.

 

주인님께선 미(美)에 대한 감각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미 저희랑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져서, 효율적이기만 하면 옷이야 어쨌든

 

입을 수 있는 것이면 상관없는 겁니다. 개인의 기호나 그런 문제는 애초부터

 

고려 대상조차 아니기에, 뭐가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아무튼 제 의견엔 변화가 없습니다. 콘스탄챠 S2, 의복 생산은 내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다른 분들껜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면 그에 맞는 양식으로 제안서를 작성해서

 

제출해달라고 말씀을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글씨체는 고딕, 글자는 12포인트로.”

 

“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피곤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제 상사이고, 더할 나위 없이 유능하면 말도 못하게 피곤합니다.

 

아…….

 

“조금만 덜 성실하시면 참 좋을 텐데…….”
 
“뭔가 말씀하셨습니까?”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희 주인님은 참으로 좋은 분입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제발, 제발 조금만 덜 진지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소설 쓰네

하도 쓸 게 없어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