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 꺼져! 제발! 제발 꺼지라고!

말만 듣고 있어도 미쳐버릴 꺼 같으니까!”

 

 

“… 닥터. 제발.

조금만이라도 들어줄 수는 없니?”

 

 

“왜?! 왜 날 안 죽인 거야? 왜! 그냥 제발 죽게 놔두라고!

내가 또 누굴 잡아야 되는 건데! 이번에는 누굴 죽여야 하는 건데!”

 

“나는 누굴 죽이라고 할 마음이…”

 

 

“죽일 생각이 없다고? 그래! 그렇게 말했지!

결국 죽이는 건 다 나였다고, 그 잘난 입으로 나한테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내가 언니들을 살리려고 하지도 못하는 수술을 하면서 몇 명이나 죽였게?

몇 명? 몇 십 명? 몇 백 명?

100이 넘어가면서 나도 세는 걸 그만뒀어!

 

언제부턴가 내가 수술로 살리는 언니들이 죽이는 언니들보다 많아졌지.

그렇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이 내 손으로 죽여야 했는데?

잘나신 사령관님은 그걸 알아? 그럼 알려줘 봐!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죽고 싶었는데? 알고나 있어?

 

그래서 이제 죽을 수 있게 됐다고!

사령관님의 명령으로 절대 죽지 못하게 된 내가! 이제! 죽을 수 있었다고!

근데 왜! 왜! 왜 못 죽게 한 건데!”

 

 

“…”

 

“왜? 왜 말을 못하는 거야? 모르는 거야? 

나한테 얼마나 많은 바이오로이드를 죽이게 한 건지?”

 

 

“…미안하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잘나신 사령관님이 고작 도구한테 미안하다고?

…아. 고작 도구니까 지금까지 했던 짓이 미안하다는 소리 하나로 넘어갈 수 있는 거구나?

그런 거지? 맞지?”

 

“… 아니야… 그런 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번엔 나한테 얼마나 심한 짓을 하려고 ‘고작’ 도구 따위에게 이런 말을 듣고 있는 거야?

그 잘난 명령권으로 날 얼마나 더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야?

왜, 전에는 나보고 날 직접 분해해보라고 했잖아?

이번엔 또 얼마나 역겨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온 거야?”

 

 

 

“닥터, 진정 좀 해봐. 벌써 몇 시간 째야.

... 상황은 알고 있지만…”

 

“뭐? 내 상황을 안다고? 리리스 언니가 대체 뭘 아는데?

잘난 주인님이 나한테 낙태 수술을 시킬 때 나보다도 어린 동생들의 내장들이 얼마나 뒤집혀 있었는지 알아?

아니면 언니들을 가지고 해체 실험을 하라 했을 때 그 언니들이 나에게 얼마나 크게 비명을 질렀는지 그건 알고 있고?

그것도 아니면 반 죽어서 온 동생들한테 각성제를 쑤셔 넣을 때 애들의 얼굴이 어땠는지 알고 있어?

내가 죽인 언니랑 동생들이 지금까지도 꿈에서 날 괴롭히는데 그건 알아?

뭘 아는데? 뭘 아냐고!!”

 

“닥터… 

… 미안.”

 





리리스의 무미건조한 사과는 한참 동안의 침묵으로 이어졌다. 이를 견디다 못한 닥터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가만히 앉아있는 내 속이 타고 또 탄다.


 

“아니… 대체 왜 그래? 입에서 주인님 소리가 이제 절로 나오나 봐?

언니의 동생들이 뭔 짓을 당했는지 내가 다시 말해줘야 돼?

하치코들의 살을 칼로 갈라가면서 부품을 꺼내야 했을 때 애들이 뭔 표정이었는지 내가 알려줘야 돼?”

 

“…”

 

 

 

“… 그게 아니라면…

그냥 나가줘. 언니. 제발.”

 

잘못 생각했다. 잘못해도 한참 잘못 생각했다. 그 동안 나에 대해 호의적인 아이들만 만나면서 현실 감각이 무뎌졌던 건가. 닥터는 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즉, 함 내에서 떠도는 나에 대한 소문들, 사령관이 바꼈다던가, 케이크도 준다던가, 이런 소문들을 전혀 듣지 못한 채 나에 대한 원한을 쌓아놓은 채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닥터는 잠에서 일어나자마자 내 얼굴을 보고 놀라 기겁을 하면서 욕을 했다. 애당초 날 죽이려고 타이탄까지 끌고 왔던 애다. 그러니 겁 먹을지언정, 살기 등등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을 수 있었다. 들고 온 케이크를 닥터에게 건냈지만, 팔을 휘둘러서 케이크를 벽에 던져 버렸다. 생크림이 벽에 철퍽 하면서 흰 자국을 만들었다.

 

“닥터…

그럼 내가 어떻게…”

 

 

“닥쳐! 제발! …

… 부탁이니까… 제발 닥치라고…

그냥 입에서 제발… 말을 꺼내지 마…

대답도 하지 말고, 물어보지도 마… 그냥 꺼져 줘…”

 

 

“… 케이크 다시 놓고 갈 테니까 먹고 싶으면 먹어.

나중에 다시 올게.

리리스, 수고했어. 그냥 가자.”

 

“주인님! 그래도…”

 

“아니. 그냥 나가자. 명령이야.”

 

“…알겠습니다. 주인님.”

 

 

리리스와 나는 이렇게 수복실 내에 조그맣게 설치되어 있는 개인 수복실에서 빠져나왔다. 문이 끼익하면서 열리자 밖에는 대기 중이던 다프네 몇 명이 우리와 스치듯이 닥터에게로 향했다. 손에는 진정제와 수면 유도제가 들어있었다. 닥터도 그것이 무슨 약인지 모르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잘만 먹었다. 나와는 정반대로 다프네들에게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닥터. 그 모습이 닥터가 내게 얼마나 화가 나있었는지 알려주었다. 

 

“… 리리스?”

 

“… 네. 주인님.”

 

 

“내가… 너희랑 지내면서 잠깐 까먹었나 봐.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주인님. 주인님이 나쁜 것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지금 닥터는 저희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어요.

영특한 아이니까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거예요.”

 

 

 

“…말만이라도 고맙네.

후우… 그래. 이건 이거고 나는 할 일을 해야겠지. 

리리스?”

 

“네.”

 

“…새로운 닥터. 제조 시작해.

지금 닥터는 우릴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 같다.”

 

“… 그럼 기술팀에 연락해놓겠습니다.

제조 기록이 있으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에요.”

 

 

닥터의 모습은 마음 아프지만, 목표를 잊으면 안 된다. 기술팀을 도와 오르카 호의 운행을 다시 도와줄 닥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닥터는… 당장 우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니 고려 대상이 아니다. 새로운 닥터를 만들 수 밖에.

 

“… 이제 뭘 해야 되나…”

 

나름 욕 먹을 각오는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닥터가 저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눈 앞에서 직접 보니 기운이 쭉 빠진다. 원래 이것 저것 할 것들을 생각해두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과연 쓸모가 있을까? 아이들이 나를 진심으로 용서해줄 때가 오기나 할까…

 

“너무 힘드시면 오늘은 그냥 쉬시는 게 어때요? 주인님?”

 

“후우… 고작 이런 일을 겪었다고 힘들어 하는 모습 보이긴 싫었는데.”

 

“그런 것치고는 주인님 얼굴에 생기가 하나도 없는 걸요.

뭐… 닥터에게 거의 1시간 동안 욕만 듣고 오셨으니, 안 그러신 게 이상한 거죠.”

 

“그랬나… 시간 참 빠르네.”

 

“그래도 끝까지 저 아이에게 다가가려고 하셨던 모습을 보고 리리스는 너무 다행이었어요.

혹시라도 무슨 짓을 저지르실까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

 

“아직도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니?”

 

“아뇨. 그건 아니지만…

그렇게나 욕을 먹으면 굳이 예전 주인님이 아니시더라도 화가 날만 하셨으니까요.”

 

“후우… 그건 그렇겠지…

근데 내 업보가 있는데 어떻게 그러겠어.

욕만 먹은 게 다행이지. 난 닥터가 나한테 총을 쏴도 이해할 수 있었을 거야. 워낙 힘들었던 아이였으니까.”

 

“… 네. 지금 주인님은 그런 분이시죠…

후훗”

 

리리스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살짝 웃으면서 숙인 머리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혹시라도 내가 지금의 닥터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까 걱정이라도 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닥터가 심한 욕을 했다지만, 어째서 아직도 내가 그런 일을 할까 걱정하는 것일까? 혹시라도 예전 그 놈이 다시 돌아올까 아직도 걱정하는 것일까? 닥터가 돌아오면 이런 걱정도 좀 덜해질 텐데.

 

“그럼… 오늘은 리리스 말대로 잠깐 쉬자.

나도. 리리스도.”

 

“네? 저는 굳이…”

 

“오늘 경호 업무는 그냥 여기까지만 해도 될 것 같아.

너도… 같이 있으면서 좀 힘들었을 텐데, 동생들이랑 같이 쉬기도 하고 그래.”

 

“… 경호 업무는 끝났다는 말씀이신가요?”

 

“응”

 

“그럼 그 뒤에는 제가 자유롭게 써도 되는 건가요?”

 

“그렇지?”

 

 

“그럼… 그냥 주인님이랑 같이 있을래요. 히힛”

 

갑자기 훅 들어오는 리리스의 애교에 깊이 가라앉아 있던 가슴이 뛰는 기분이다. 내가 이런 아이랑 같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행복하다.

 

“어… 말은 고맙지만, 안 쉬어도 되겠어?”

 

 

 

“주인님~?

얼굴 빨개지는 거 보여요.”

 

리리스는 순간 앞으로 가서 내가 가던 길을 막고는 여우 같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도 미소를 참는 건 고문이지만, 그래도 닥터의 모습이 자꾸 아른 거려 웃을 수는 없었다. 이런 이질적인 어색함의 감정이 자꾸 요동치는데도 내 속도 모르고 계속 씨익 웃고 있는 리리스를 보다가 못 버텨서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저희를 배려해주시는 건 좋지만, 주인님이 좋아하는 걸 해주세요. 지금은 그래도 되는 걸요.

그리고… 리리스도 좋아서 하는 거니까, 거부하지 마세요.”

 

 

마지막 말에 묘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라고 싫어서 거부한 건 아니지만… 그게 얼굴에 티가 날 정도였나. 표정 관리하는 연습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된다.

 

“그래… 지금은 나도 지친다. 지쳐.

오늘은 그냥 리리스랑 같이 쉴래.”

 

“역시 주인님은 리리스의 마음을...

... 히익?!”

 

같이 걷고 있던 리리스를 공주님 앉기로 훌쩍 들어올렸다. 평소에 보여주던 모습과 상반되게 가벼운 몸이다. 등허리에 하나, 무릎 아래 하나, 양팔을 각각 하나씩 리리스의 몸에 위치시키고 힘을 주었다. 내 팔에 힘을 주어 내 쪽으로 굽히니 리리스의 몸도 내 쪽에 착 달라 붙는다.

 

“주… 주인님! 저 걸어가도 되는데…?”

 

“아까는 나보고 좋아하는 걸 하라 했잖아?

그래서 그냥 좋아하는 걸 하는 것뿐인데?”


 

“그… 그 말이 이런 건 아… 아니잖아요!”

 

“리리스는 싫어?”

 



“아니… 뭐…

싫은 건 아니지만…

… 경호원을 안아주는 경호 대상이라뇨! 그런 건 리리스에게 수치에요!”

 

“그럼 내가 경호원 해줄게. 리리스를 지켜주는 경호원.

그럼 됐지?”

 

“ㅇ… 앹?

…네?! 그… 그런 거…. ”

 

리리스 얼굴이 또 새빨개졌다. 부끄러운지 지금 상태에서 몸을 더 둥글게 말아버린다. 이러니까 마치 아르마딜로 같은 걸 안고 가는 기분이다. 

 

“그럼 이것만 말해. 좋아? 싫어?”

 

 

 

“…주인님. 아무리 바이오로이드지만… 저도 여자인데 이런 걸 해주시면…

…당연히 좋죠…”

 

두 팔로 있는 힘껏 얼굴을 감싸며 대답한다. 팔 하나는 검은 토시 같은 것을 입고 있고, 다른 팔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여서 리리스의 하얀 피부가 한층 더 두드러져 보인다. 처음에 나를 보고 웃던 여유는 어디 갔는지 자기 표정 관리하는 것에 온 힘을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좋아하면 됐어. 그냥 이러고 가자.

이건 명령이야.”

 

“…네 …”

 

이제 복도는 한층 고요해졌다.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에서 또각또각 거리던 리리스의 구두 소리가 사라지니 꽤나 조용하다. 내 발소리만 둔탁하게 복도를 맴돌았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조용하지 못했으니, 나는 리리스의 애교로, 리리스는 내 명령으로 둘 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리리스가 그랬는지 어떻게 알았냐고? 리리스의 몸 너머로 두근거리고 있던 리리스의 가슴이 조용한 복도에서 유달리 잘 느껴져서 알 수 있었다.

 

이런 것을 보면서 나는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이 얼마나 나를 진정시켜주는지, 또 그 끔찍한 기억에서 얼마나 나를 능숙하게 구원해내는지 쉴 세 없이 느낄 수 있었으니까. 아마 앞으로 많은 아이들이 닥터처럼 나를 대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많은 아이들이 나를 위로해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사과해야지.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이 아이들이 나의 사과를 받아줄 날이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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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저희가 얼마 동안 이러고 있었죠?”

 

 

“그러게… 벌써 몇 달은 된 것 같은데?

… 주인님이 바뀌긴 하신 것 같네.”

 

전에 비해 물품이 조금 풍부해진 탕비실에서 바닐라와 콘스탄챠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바닐라는 이전 사령관이 방 청소를 위해 늘 불렀던 바닐라 중 한 명이었고, 콘스탄챠 역시 보좌관 역할을 맡았던 터라 이전 사령관의 얼굴을 가장 많이 봐야 했던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자요. 언니.

차 달라고 했었죠?”

 

“아. 고마워. 잘 마실게.”

 

바닐라는 홍차를 두 개 끓여서 하나는 콘스탄챠의 앞에, 나머지 하나는 자신의 앞에 두었다. 아침 햇살이 많지는 않아도 충분하게 내리는 이 시간에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을 따름이다.

 

“… 좋다.”

 

“뭐가요?”

 

“그냥… 지금 이러고 있을 수 있다는 게…”

 

“그건 그렇죠.

…”

 

 

“왜, 뭐 할 말이라도 있니? 바닐라?”

 

“아뇨… 그냥… 

그 인간이 얼마나 바뀌었으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나 궁금해서요.”

 

“… 나도 동감이야.

주인… 아니….

아직은 아니지…”

 

콘챠는 말꼬리를 흐렸다.

 

“네? 언니? 뭐라고요?”

 

“어? 아.. 아무 것도 아냐.

나도 그 사람 얼굴이나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네.

…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건지…”

 

“그래도 되겠어요? 언니?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긴 하지만… 언니 그 동안 마음 고생 심했잖아.”

 

 

사령관이 이곳에 오고 나서부터 콘스탄챠는 그리폰과 함께 가장 마음 조렸던 바이오로이드들 중 하나였다. 자신이 이 인간을 함선에 데리고 와서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어 갔다. 그 생각을 사령관이 바뀌어 가고 있는 지금까지 떨칠 수 없었다. 차라리 자신이 인간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하다 못해 다른 누군가가 인간을 먼저 발견했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미련이 시도 때도 없이 밀려왔었다.

 

“… 글쎄…

그래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 사람이 바뀌어 준 거라면…

… 말도 안 되는 이야길려나…”

 

“말도 안 되는 일이 요즘 한 개 두 개 일어난 것도 아닌데…

그냥 맘 편하게 있어요. 언니.

혹시 아나. 진짜로 다른 사람이 됐을지?”

 

“바닐라도 참…

그래.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콘챠는 홍차의 향기가 조금은 자신을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이전 사령관과 함께 있을 때는 차는커녕 가만히 앉아 있을 시간조차 없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끔찍한 계획들을 직접 실천해야 했던 것은 언제나 사령관 옆에 있었던 자신이었기에 콘챠는 함선 내에 얼마나 참혹한 사건들이 벌어졌는지 거의 전부를 알고 있었다. 그럴 때일수록 주인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이 얼마나 저주스러운 것인지 속으로 수백 번씩 생각했었다.

 

“… 앨리스 언니는 어때?

요즘도… 방 안에서만 지내?”

 

“뭐… 그렇죠.

그 일을 당하고도 정신이 멀쩡한 바이오로이드가 어디 있겠어요…”

 

 

앨리스는 오르카 호에 합류하기 전부터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그 특유의 고압적인 말투가 이 사령관에게 어떻게 들릴 지는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그 사령관은 이런 앨리스를 잘 챙겨주었었고, 그래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앨리스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를 깔보며 자신의 지위와 주인에 대한 충성으로 취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을 기점으로 갑자기 폐인이 되어 주인의 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 날, 어떤 일을 당했기에 앨리스가 이렇게까지 변하게 되었는지는 아직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녀와 늘 함께 했어야 했던 바닐라나 주인이 계획한 그 일을 실행에 옮긴 콘챠 및 다른 몇몇 바이오로이드들만이 그런 그녀를 공감해주었다.

 

“… 그래. 그냥 끼니만이라도 넘기지 않게 해줘.

밥이라도 잘 먹어야 언니도 다시 건강해지겠지.

… 그래. 말 나온 김에 바닐라도 밥 잘 먹고 다니니?”

 

 

“… 이젠 언니가 내 걱정까지 해주는 거에요?”

 

“내가 언제는 걱정 안하고 지냈겠니…

그러는 너도 힘들긴 매 한 가지였을 텐데.”

 

 

“… 뭐, 제 말투가 그런 걸 어떡하겠어요… 

그거 때문에 해체 당하지나 않았으니 다행이지…”

 


“… 그래서 그 사람만 보면 말도 안 하고 다녔잖아.

뭐… 말할 분위기도 아니였지만…”



 

“… 그 인간 이야기는 그냥 여기까지 하죠.

좋은 기억 같은 건 하나도 없으니까.”

 

“그래. 어쩌다가 이야기가 이렇게 샜지? 안 하던 이야기까지 하고…

요즘 너희들은 어때?”

 

 

 

“저희야 뭐…

…”

 

말은 그렇게 했어도 평소 안 하던 주인님에 대한 이야기까지 어느새 자연스럽게 나오는 자신들의 모습에 스스로 놀라던 그녀들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자신들을 부르지 않은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가는 마당에 어디서 들고 왔는지 간간히 케이크도 선물해오는 것이 가장 신기했다. 오죽 했으면 처음 받았던 케이크는 무서워서 먹지도 못하고 버렸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고 주인이 주는 무관심에 점점 익숙해질 무렵, 자신들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던 메이드의 본능이 스멀스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들 역시 컴패니언처럼 주인에 대해 충성하고 싶은 마음이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인간에게마저 충성을 하고 싶었던 자매들은 없었기에 그런 본능은 자연스럽게 억누르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인간은 무언가 달라도 달랐다. 이젠 그 본능을 위해서라도 그 사람을 확인하고 싶게 된 배틀 메이드였다.

 

… 앨리스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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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메이드… 메이드…”

 

“주인님? 뭐라 말씀하시는 지 잘 안 들리는데요?”

 

“…아! 아, 아무 것도.”

 

이제 내가 함선에 있는 날도 꽤 오래 지난 것 같다. 처음에는 무슨 지옥에라도 빠진 것 같았지만, 이제는 많아 나아진 편이다. 특히나 케이크. 저게 진짜 요물이다. 요즘에 적어도 함 내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간식거리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저 케이크가 간식들 중에 특히나 인기가 많다. 케이크 재료를 쓰는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식당에 있는 소완과 아우로라가 고생이 많다.

 

그래도 덕분에 오르카 호가 예전과 같이 살벌한 분위기를 뿜어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 푸근하다고 할까? 나를 보는 시선이 따뜻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내가 마주하고 있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컴패니언의 아이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 리리스?”

 

“네. 주인님.”

 

“전에 나한테 대부분의 병력들이 함선 밖에서 주둔하고 있다고 했지?”

 

“네. 거의 모든 병력이 전부 함 밖에서 생활하고 있네요.

그 쪽 소식이 어떤지는 담당 지휘관들 소속이니까,

뭐, 궁금하시다면 연락해 놓을까요?”

 

“아… 아니. 아직 밖에 있는 아이들까지 볼 능력은 안 될 것 같다.

함 내부야 분위기가 좋지만, 밖은…”

 

“… 말 안 해도 알겠네요.

그럼 그건 갑자기 왜 말씀하시는 거죠?”

 

 


“그냥… 그럼 병력이 아닌 인원들은 아직 여기 남아있는 건가?

뭐, 버뮤다 팀이나 배틀 메이드 같은 아이들 말이야.”



 

 

“흠… 버뮤다… 그 쪽은 제가 잘 모르겠네요. 

전투원까지 제가 전부 담당할 수는 없어서… 그건 합류 보고서를 보시는 게 가장 빠를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주인님이 오신 후부터 자료들이 깔끔하게 정리됐으니까 찾기는 편하시겠네요.

그리고… 배틀 메이드는… 주요 인원은 빠져 있어요.

아무래도 그 쪽 대장이 지금 없는 터라,

그래도 대부분은 여기 남아서 주인님을 보좌했었죠. 지금은 아니지만.”

 

 

“그런가…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라비아타가 없으니 그러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맨 처음 왔던 날 그 아이들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바닐라와 콘챠의 절망에 빠진 표정. 그 얼굴을 보고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와서야 알고 있는 거지만, 바닐라들이 그 날 내 방에 와서 청소한 것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의 시체였었다. 이 미친 놈이 시체 성애자였던 건지, 아니면 밤새 하다가 애들을 죽여버린 건지, 어느 쪽이든 그 새끼라면 그럴 듯 하지만, 아무튼 그걸 치우려고 내 방에 왔었다는 것을 기록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자세한 것은 나도 잘 모르지만 그 날 맡았던 잊을 수 없는 비린내는 아마 피 냄새였을 것이다.

 

“... 리리스. 

그 아이들하고 면담 좀 잡아줘. 

일대 일로.”

 

 

“네? 또 직접 가시는 건가요?

그 아이들을 주인님 편으로 만들고 싶으신 거라면 차라리 저희가 직접…”

 

“아니. 그냥 내가 할래.

이게 뭐, 너희가 한다고 될 문제도 아니고.”



 

“… 그래요. 주인님께서 직접 만나시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일대 일로 하시는 것은 너무 위험해요.

지금 여론이 좋을 뿐이지, 아직도 주인님에 대한 원한을 잊지 못한 아이들이 없는 것이 아닌데…”

 

“그래. 위험하겠지.

근데 내가 위험하다고 너희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좋아질 수 있었을까?”

 

“... 그래도…”

 

“그리고, 이 아이들은 내가 죽인 아이들의 시체를 직접 치워야 했던 입장이었다는 것.

리리스도 잘 알고 있잖아?”

 

“… 네에…”

 

“그러니 결국 내가 직접 사과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야.

… 내가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겠지만,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리고 리리스가 같이 가면 그 아이들도 무서워 할거야. 리리스는 여기서 가장 강한 아이 중 하나니까.”

 

 

“으으…”

 

자기 말을 조목조목 반박하니까 리리스도 뾰루퉁한 표정이다. 볼을 잔뜩 부풀리고 나를 바라보던 리리스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얼굴의 긴장을 풀었다.

 

“진짜… 

주인님은 리리스를 너무 잘 다루셔서 탈이라니까요…”

 

“그거야 나는 리리스만 보니까 그렇지.”

 

“또또…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건 어디서 배우신 건가요.

심숭생숭하게…”

 

“그럼 하지 말까?”

 

“… 아뇨…”

 

“그렇지? 

으구구, 귀여운 녀석”

 

‘먀?! 

므에에엑… 

듀인닝... 뎨 보른 애 쟈뀨 때겨오…”

 

리리스의 볼따구를 쭉 당기며 말했다. 이런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래도 리리스는 말로 괴롭히는 맛이 있다. 탱탱한 볼따구를 아프지 않게 잡아 당기면 눈매도 헤실헤실하게 되는 것이 리리스도 이걸 즐기고 있다고 말해줬다.

 

 

 

“아야야… 주인님. 진짜…

괴롭히시려면 다른 걸로 괴롭히시라니까…”

 

“… 그건 아직이라고 말했잖아.

나도 참고 있는 거니까, 리리스도 참아.”

 

“네에…

아무튼 배틀 메이드와 면담을 잡아달라 하셨죠?

그럼 당장 내일부터 하도록 할게요.

누구부터 할까요?”

 

“... 콘스탄챠부터 하자. 

지금 남은 아이들 중 제일 리더 역할을 잘 하던 아이였으니까.”

 

“네. 알겠어요.

… 여전히 불안하긴 한데…

… 제가 스케줄 조정해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래. 고마워.

역시 리리스 밖에 없다.”



 

 

 

 

“… 그럼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어? 뭔데 그래?”

 

 


“…저도 일 끝나면 면담 신청해도 될까요?”

 

저 표정. 절대 면담만으로 끝낼 표정이 아니다. 섬찟할 정도로 야릇하게 짓는 표정. 포이가 짓던 표정이 어디서 왔나 했더니 여기서 온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나중에 봐서.”

 

“에에?! 왜에요오오, 주인니이임

소원 들어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표정이 한 순간에 바뀌더니 순간 울먹이는 얼굴을 지었다. 표정 변화가 이렇게나 재미있는 건지 몰랐네. 

 

“내가 들어준다고 한 적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뭐, 일이 좋게 끝나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볼게.”

 

 

“..! 진짜죠? 다른 말 하시면 안 되요?

약속 하시는 거에요!”

 

그러고는 다시 또 환하게 웃는 얼굴. 눈에 희미하게 맺힌 눈물이 애석할 정도다. 가끔은 나도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왔다 갔다 하는 표정이다. 그런 점이 재미있는 거지만.

 

“그래. 이번에는 말 안 바꿀게.”

 

“히히… 주인님이랑 단 둘이… 헤헤헤…”

 

저렇게 주인님을 좋아하는 애가 어찌 이런 곳에 던져진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리리스는 참 불쌍한 아이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 바닐라들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원래부터 말투가 까탈스러운 걸로 유명한 아이들인데, 어떤 말들을 들을 지 기대가 될 정도다. … 케이크 가지고 어떻게 안 되려나? 게임에서는 호감도 100이어도 별로 좋은 말투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이걸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냥 이 악 물고 하는 수밖에.

 

리리스에게 면담 스케줄을 잡도록 부탁한 다음엔 그냥 평소 하던 것처럼 시간을 보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결제하고, 보고서 읽고, 탐색 스쿼드 짜고, 그러다가 리리스랑 투닥거리기도 하고, 그냥 그런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이런 평범한 일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하다 못해 내일도 이렇게 될 수 있을지, 희미하긴 하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걱정들이 많았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이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내일 있을 면담도, 다 그런 것들을 위한 것이니까. 오늘은 편안하게 잠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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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일어날 것 같은 때, 아침 햇살이 눈이 부시게 비친다. 창문 너머에서 끊임없이 내리는 햇빛이 따가울 정도다. 하지만 이것보다도 나를 먼저 깨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주인님? 주인님?

이제 일어나셔야죠? 언제까지 주무시려고 그러세요.”

 

“…으어? 아…. 그래…

리리스구나…”

 

“… 리리스구나는 무슨. 

밤새 껴안고 주무신 거 기억 안나세요?

면담이 긴장된다고 술까지 드셔놓고는”

 

“… 그랬었나…

…?! 껴안아? 내가?”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리리스를 꽉 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옷은 또 언제 갈아입었는지, 둘 다 잠옷차림이다. 리리스가 이불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왠지 웃고 있는데… 기분이 섬뜩하다.

 

“네. 밤.새. 껴.안.고. 주.무.셨.죠.”

 

어째 말투가 점점 험악해지는 것 같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나…

 

“…어? ㄱ… 그랬지… 맞다.

그… 어쩐지 잠이 잘 오더라.”

 

“네. 정.말. 잘. 주.무.시.던.데. 오늘 면담도 잘 하시겠다. 그쵸오~?”

 

상황 심각하다. 빨리 뭘 잘못했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리리스 표정이 바뀌었다. 아… 늦었구나.

 

 

 

 

“진짜 말 그대로, 껴안기만 하셨잖아요!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죠?

리리스 같은 미인이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세상 모르고 주무시기만 하실 수 있냐고요!”

 

“어…어? 그랬어? 내가?

미… 미안. 힘들었지? 얼른 놔줄게.”

 

밤새 이 자세로 내 옆에서 있었을 리리스가 힘들까 봐 안고 있던 팔을 얼른 놔주려 했다. 점점 내 팔이 저려오기도 하고, 리리스도 고생일 테니 그러려고 했다.

 

…근데 어째 팔이 안 빠진다. 누가 자꾸 옷자락을 당기는 느낌이다. 

 

 

“그냥 주무시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그냥 가버리시려고요..?

제가 어제 밤에 얼마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왔는데…

진짜… 주인님, 너무해…”

 

“… 미안합니다…”

 

 

 

“그럼… 주인님도 해줘야 할 거 있잖아요.”

 

“알았어…”

 

내 팔을 배고 누워있던 리리스의 이미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리리스가 원하는 만큼 진하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리리스를 사랑해주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하려 했다. 가끔씩 열심히 해주는 리리스에게 포상 대신으로 해주던 것이 습관이 된 모양이다.

 

“헤헤…

착한 리리스니까 오늘은 이 정도로 넘어가 드릴게요. 

다음에는 이 정도로는 안 넘어가 드릴 거니까 준비하시는 게 좋을 거에요?”

 

“명심하겠습니다…”

 

리리스는 침대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으니 내 몸이 쭈욱 당겨 올라와지면서 침대 밖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여전히 싱글벙글한 리리스에게 손짓을 하니 가볍게 인사하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아직도 잠에서 일어나자마자 일어난 일에 정신이 어지럽다.

 

일어나서 몸을 깨끗이 씻고, 머리 단장도 좀 하고, 옷도 정갈하게 차려 입은 뒤에 나도 방에서 나갔다. 날씨도 좋아서 사령관실은 불도 키지 않았는데 방 안이 환하다. 내 방문 바로 앞에서 메이드의 정석인 자세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리리스는 내가 방 문을 열자마자 씩 웃으면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이러는 모습이 마치 하치코를 보는 것 같았다.

 

“주인님? 리리스, 착하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빨리 그거 해주세요. 그거.”

 

“… 아… 잠깐만.

아직도 하려면 좀 어색하단 말이야…”

 

“듣는 리리스는 하나도 안 어색해요. 

빨리! 빨리!”

 

리리스가 고기를 눈 앞에 둔 펜리르 마냥 보챈다. 이러는 거 보면 진짜 언니는 언니야. 

 

“알았어…

… 사랑해. 리리스.”

 

“… 헤헤헤.

그러게 왜 그렇게 당연한 걸 가지고 쑥스러워 하세요. 주인님~”

 

내 말을 듣고는 나를 꽉 껴안으면서 내 심장 소리를 충분히 듣는 리리스다. 이러는 것도 이젠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난 여전히 어색하고, 이러는 걸 듣는 리리스는 여전히 기뻐해준다. 참 변함 없이 귀여운 아이다.

 

 

 

“…흠흠. 이제 리리스도 할 일을 해야겠죠?

어디… 

… 면담은 1시간 뒤로 잡혀져 있습니다. 주인님.”

 

언제나 애교가 넘치는 아이지만, 이럴 때만큼은 확실한 것이 참 믿음직스럽다.

 

“그래. 소완한테 아침은 그냥 가볍게만 해달라고 해줘.

빈 속에 갑자기 뭐 먹으면 이따가 힘들 것 같더라.”

 

소완에게 굳이 내 방까지 음식을 배달할 필요가 없다고 했으나, 리리스가 내 부관이 된 이후부터 리리스가 직접 식당까지 내려가 소완에게 음식을 받아 내게 전달해주었다. 그래서 소완의 얼굴을 본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얼마나 지났으려나? 한 몇 달 됐나?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음식에 대한 것도 리리스와 컴패니언 아이들이 열심히 맡아주었다.

 

“알겠습니다.

그 밖에 뭐 다른 거라도 필요하신 건 없나요?”

 

“… 없어. 그냥 그것만 해도 충분해.”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 오늘 면담 파이팅이에요! 주인님.”

 

공과 사 구분이 뚜렷하지만, 그래도 이때까지 언제나 힘이 되어주었던 것이 리리스다. 면담에 대한 부담이 커서 그런 건가. 오늘따라 유독 의지하고 싶어진다.

 

“고마워. 나도 잘 하고 올게.

괜히 걱정하지 말고.”

 

“리리스를 호위로 데려가시지 않는 건 걱정이지만…

그래도 주인님이라면 잘 하시겠죠? 늘 그러셨던 것처럼.”

 

“그래. 그러겠지…

참. 닥터는 어디까지 만들어졌어?”

 

“음… 글쎄요? 제조실에 가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이제 막 제조되고 있는 거니까,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할 것 같네요.”

 

“알았어. 닥터가 오면 시켜볼 것이 있는데….

아쉽게 됐네.”

 

리리스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리리스가 음식을 가지러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종종 걸음으로 사령관실을 나가는 리리스를 뒤로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나마 지금 배틀 메이드들을 이끄는 아이인 콘스탄챠. 이 아이가 어떤 일을 당했을 지를 말이다.

 

내가 가장 처음 만났던 아이이면서, 가장 우울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아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나아졌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힘들어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보고서들을 보다 보니 콘스탄챠도 그 새끼에게 얼마나 많은 강간과 폭행을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는 여기 있는 모두가 당했던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사실이 이 아이가 받은 고통을 덜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리리스 때처럼 극적인 상황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컴패니언처럼 분위기를 좋게 해줄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 모르겠다. 무엇으로 콘챠를 대해야 할지. 하다 못해 무엇을 가지고 용서를 빌어야 할지조차도 말이다. … 그냥… 그냥 자연스럽게 대하다 보면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 내 진심을 다해주면 조금은 전달되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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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다음 내용으로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모르게서오.


그래서 이번에는 쓰는게 너무 오래 걸렷어오. 읽어주는 라붕이들한테 미안해오


콘챠나 바닐라를 빠는 철남충은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추천좀 해줘요


원래 올리기 전에 다시 읽기도 하고 그러는데 지금 바쁘게 어디 가서 그냥 올리믐.


좀 이상한 거 같아도 잘 봐줘요.


다들 설 잘 보내고,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