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신고 겸 좀 짧게 올려봅니다


텝스에 운전면허에 정신이 없어서 별로 쓰지를 못했으요


끝까지 스토리 구상은 해 놓았는데 손이 못 따라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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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음

https://arca.live/b/lastorigin/8680161


호드의 지휘관, 신속의 칸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오르카호의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지휘관들을 찾아다니면서 어떠한 사안에 대한 의견을 묻고 있었으며, 가급적 남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주의했다.

 

에이드리언 대위가 사령관이 된 이후로 바이오로이드 지휘관들은 이전보다 더 잦은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처럼 지휘관들이 전부 비번인 상황은 그녀에게 있어 흔치 않은 기회였다. 방금 복도에서 아르망 추기경과 마주치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어머, 칸 대장님. 오늘은 급한 업무가 없을 텐데. 굉장히 바빠 보이시네요.”

 

“.......”

 

칸은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지만, 그녀는 교묘하게 진로를 방해하며 칸의 앞을 가로막았다.

 

“앞잡이 추기경께서 또 방해를 하러 오신 건가?”

 

“방해라니요. 그저 단순한 용건이 있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배신자와는 상종하고 싶지 않다. 비켜라.”

 

아르망은 칸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동도 없었다.

 

그저 조소하는 듯한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칸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맹목적이죠?”

 

“........뭐라고?”

 

“폐하.......아니, 전 사령관님이 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르는 것인가요? 전술적 착오로 자매들을 죽게 만들고, 수복실에 누운 부상자들을 해치려고까지 한 사람이 지금의 사령관님보다 낫다고 생각하시나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저의 연산능력을 얕보신다면 곤란합니다. 당신이 현 사령관님을 배제하고자 하는 것도, ‘그녀’에게 찾아가 도움을 구하려고 한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어요.

 

지금 이 시각을 노려 지휘관들을 찾아다닐 것이라는 예지도......정확히 들어맞은 모양이네요.”

 

“........”

 

“그럼 이제 저와 이야기를 나눌 이유가 생기신 것 같으니, 계속해 볼까요?”

 

라비아타의 도움을 구하여 자매들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현 사령관을 몰아낸다는 칸의 생각을 간파하는 것은 아르망에게 너무나 간단한 일이였다.

 

언뜻 보면 어린아이 같은 외모를 가진 그녀는 지금 칸에게 있어 거대한 장애물이 되었다.

 

“........그래서, 그때 테마파크로 향하는 사령관을 가로막은 것처럼, 나 또한 방해할 셈인가?

 

사령관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것부터 수상했지만, 역시 앞잡이였군.”

 

그녀는 아르망의 입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된 기색이 역력했다.

 

“제 행동은 전부 오르카호의 자매들을 위한 겁니다. 너무 흥분하신 것 아닌가요? 워울프 씨의 부고는 안타깝지만, 그것이 사령관님의 탓은 아닙니다.”

 

아르망은 일부러 워울프의 이름을 꺼내어 칸을 자극했지만, 칸은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며 애써 평정을 유지해냈다.

 

“궤변을 늘어놓는군. 너야말로 맹목적인 것 아닌가? 희생 없는 전쟁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듯 우리를 무가치하게 여기는 사령관에게 변론 따위 필요하지 않다.

 

그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다. 지휘관으로서 일찍이 떠난 자매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속죄라는 말이다!

 

우리가 이를 위해 목숨을 걸었으니, 우리를 가로막는 너 또한 목숨을 거는 것이 마땅한 처사가 아니겠는가?”

 

그녀의 발목의 추진장치가 기동음을 내기 시작했지만, 아르망은 태연하게 화답했다.

 

“휴우........적의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시는군요. 보다 이성적이실 줄 알았는데.......

 

제 의도를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계시니 답답할 뿐이에요.”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겠나?”

 

칸 또한 적의를 숨길 의도가 없음이 그녀의 말소리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아르망은 현 사령관의 연설문을 대필해주기도 하는 그의 최측근이었다. 지휘관들은 현 사령관에게 충성을 바치는 듯한 그녀의 행동을 긍정하지 않게 되었고, 칸은 이 눈앞의 걸림돌을 위협하여 배제하기로 마음먹은 듯 했다.

 

“저는 전 사령관님이 다시 돌아오시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큰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군요.”

 

이 일촉즉발의 순간을 벗어나기 위한 변명이었을지 모르지만, 칸은 계속해 보라는 듯이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사령관에 적합한지는 제쳐 두고, 오르카호에 오직 한 명의 인간이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저희는 지금껏 자매들을 이끄는 인간님의 자질을 의심하지도, 지시를 거부하지도 못하는 존재였어요. 하지만, 전 사령관님이 쫓겨나듯 이곳을 떠난 것은 하나의 본보기가 될 수 있어요. 지도자를 바이오로이드들의 의지에 따라 옹립하고, 처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죠.

 

라비아타 프로토타입은 명령 거부권을 통해 인간님들에게 자신이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줄 뿐, 처형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절대적이었던 인간님들이 바이오로이드의 눈치를 보게 할 수 있는 전례 없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사령관님에 대한 불만은 이해하지만, 감정적으로 한쪽을 섣불리 축출하는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전 사령관님이 살아 계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현 사령관님을 처형한다는 당신의 생각이 얼마나 아둔한지 깨닫게 되셨나요?”

 

아르망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심하세요. 이 대화를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 카메라도,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 복도에서 당신을 붙잡았으니까요.”

 

완전한 정론이었다. 두 인간이 지도자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게 하여 실질적으로는 바이오로이드들의 의지를 관철시킨다. 독단적인 행동으로 바이오로이드들의 눈 밖에 나게 된다면 추방 당할 여지를 두어 인간과 바이오로이드의 수직적 질서를 혁파한다.

 

“.......네가 자매들을 위한다고 했던 그 말이 이제 이해가 되는군.”

 

“그렇죠? 이제 저에게 협조할 의향이.........”

 

하지만 칸은 완전히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아르망의 말을 끊어 버렸다.

 

“사령관이 베풀었던 친절과 상냥함이 너에게 얼마나 부족하게 느껴졌을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네 이야기가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맹목적이라고 했었나? 미안하지만 틀렸다. 사령관에 대한 충성이다.”

 

칸은 몇 발자국 걸어가 아르망 바로 앞에 섰다.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것 하나 만큼은 알아 두었으면 좋겠군.

 

사령관은 철충이 들끓는 저 바깥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돌아오면, 너의 불충마저도 용서하겠지.”

 

“.......안타깝네요.”

 

아르망은 쓴웃음을 짓고 옆으로 조금 물러났다.

 

“이만 실례하지.”

 

칸은 그녀를 뒤로 하고 복도 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령관 또한 에이드리언 대위처럼 누군가에게 선택되었기에 멸망 후에 발견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사령관은 자신의 탈출을 도운 누군가와 함께 있을 터였다. 그녀가 아는 사령관이라면 그 조력자를 위해서라도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칸의 확고한 믿음의 근거였다.

 

“결국 설득하지 못했네요.......라비아타를 찾아가도, 그녀는 거부할 텐데.”

 

아르망은 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악역을 연기하는 것은 익숙하지만........폐하께 불충을 저지르고 만 것 같네요.

 

폐하, 지금 당장 그를 징벌하고 폐하를 모시러 가지 못하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그는 아직 쓸모가 있습니다.

 

상냥하신 폐하께선 절대로 하지 못할 일을, 무자비한 그를 통해 해내고 말겠어요.'

 

그녀는 각오를 다지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