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령관 (모음)



*****



 "하. 정말. 그때 버튼은 왜 그렇게 세게 누른 거야… 여기 밤에 추운데 문도 안 닫히고. 으. 바람 엄청나게 부네. 이러다간 오늘도 밤 세겠어, 진짜."


 이틀 전, 잠깐 환상에 시달린 덕분에 탈출정의 문이 부서져 버렸다. 사실상 앞부분이 훤히 비었기 때문에 밤에는 육지에서 오는 칼바람이, 낮에는 바다에서 오는 모래바람이 사령관을 덮쳤다. 처음 한 달간은 바다에 도착한 게 경치도 좋고 주변에 상점가도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그저 나가고 싶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잠을 자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했기에, 더는 배고픔을 참을 수 없어 하루당 먹는 비상식량의 양도 극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비관적인 전망이 계속되자, 사령관은 어디선가 쑤셔놓았던 술을 찾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렇게 되면 이제 정말 나가야 하는 거 아니냐 짜증 섞인 고민을 하는 그때, 푸른색 빛이 검은 하늘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타이밍 좋게 별똥별이라니… 잠이라도 잘 오게 옆에서 껴안을 수 있는 거라도 달라고 소원이나 빌까나."


 불빛을 보고 두 손을 모으려는 그 찰나,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탈출 포드의 오른쪽에 있는 절벽 뒤에서 빛이 계속해서 점멸하고 있었다. 곧 비슷한 위치에서 미사일이 몇 발 격발하였고, 잠시 뒤 소원을 빌려던 푸른 빛이 폭발하여 해수욕장 멀리 떨어지고 말았다.


 '응? 저거 별이 아니었어? 그리고, 방금, 미사일이라고?'


 곧 본인 주변에서 총성이 울렸다는 걸 자각한 사령관은 깜짝 놀랐다. 총성이 울렸다면 이는 분명 철충 또는 다른 바이오로이드 무리가 주변에 있다는 얘기. 미사일까지 있는 거로 봐서 상당한 병력이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양쪽 모두 현재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리 없었다. 그게 철충이든, 레모네이드의 병력이든, 오르카호의 병력이든.


 '탈출포드도 이대로면 물에 들어갈 수가 없는데. 근데 저 불빛은 왜 격추된 거지?'


 철충들은 인간이면 몰라도 바이오로이드를 먼저 건들지는 않았다. 최소한 자신이 아는 바이오로이드들도 물체를 확인도 채 안 하고 격추 시키진 않는다. 저 푸른 물체가 저렇게 쓸쓸히 격추될 정도면, 어디 출신이던 간에 미움 받았던게 분명했다. 적어도 술에 찌든 사령관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 녀석도 나만큼 짠한 녀석인가 보네. 무리에서 무시당하고 배척받아 혼자가 된.'


 저 불빛이 철충이든 바이오로이드든 뭐든 상관없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의 무시당하던 굴욕의 날들이 떠올라 그 녀석이 더욱더 안타까워졌다.


 '...'


 잠깐의 동정심은 다량의 음주로 이미 흐트러진 사령관의 사고회로를 비틀어 놓았고, 곧 그는 원래의 그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을 하기로 했다.


 "ㅈ-조금만 기다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령관은 멀고도 가까웠던 모래사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



"큭…주변에 매복하고 있었던 철충들이 있을 줄 예상 못했네요. 이거 완전 낭패군요. 이런 꼴로는 분명 사령관을 만날 수도 없을 텐데요."


 티아멧이 잔해 속에서 기어 나오며 내뱉었다. 그녀의 얼굴엔 실망이 가득했다.


"그때와 같아요. 거의 끝났다고 방심하는 바람에…"


 아르망이 전해 준 포트의 좌표를 따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바다 위를 꼬박 하루를 날았다. 기진맥진했었던 그녀를 반겨준 건 모래사장에 박혀있었던 탈출정 이였다. 드디어 사령관을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뻤던 그녀는, 땅 위에서 활동하는 위협들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 채 탈출정으로 돌진했다. 평소엔 미사일 따위 회피하면 되지만, 이번엔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하. 이름만 번지르르할 뿐이지, 저도 속 빈 강정이었네요. 이렇게 방심만 한다면 사령관님을 만났어도 지키지 못했을 거예요."


 그녀는 더 일어날 힘도 없었다. 그 사건 이후로 제대로 수복을 못 했단 건 둘째치고, 사방에서 간헐적으로 몰려오는 철충들과 꼬박 한 달 넘게 전투를 벌인 부하가 몸에 고스란히 축적되었다. 바위 뒤에 숨어있어도, 하늘 위에 날아다니고 있어도, 심지어 바다 위에서 활강하고 있어도, 철충들이 쫓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럴 것 같았다.


부스럭


'!'


 낌새를 알아채고 몸을 숨기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특히 왼쪽 팔에는 아예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주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커질수록 그녀의 긴장감도 같이 커졌다.


'빨리! 말을 들어요, 제발! 저기 검도 들어야 하는데!'


"흐억!"


 비명과 함께 자신의 몸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 티아멧이 자신의 검을 향해 발을 떼려고 했지만, 곧 발목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큭!"


'아무래도 추락할 때 발목이 삔 거 같네요. 어쩌면 팔목도 그래서 느껴지지 않는 걸까요?'


 뭐가 됐든 간에 자신이 어둠 속 침입자에게 죽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더욱더 커지자,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하고 눈을 감았다.


'사령관…제가 옆에서 지켜줘야 하는데…'


"마! 너 므어 하고 이써?"


'잠깐이라도 봐야 하는데… '


"이-여기가 얼마나, 어, 추운 줄 알아? 엉? 가뜩이나, 어, 오늘 바람이, 어, 더 부는 거 같은뒈! 추워 죽을 거 같은뒈!"


'너무 힘들어요… 잠깐 옆에 기대고 싶습니다….'


"아 진짜 그니까 탈출 포트 그거는 왜 부숴서 진짜. 거기 문도 안 닫기고. 장난하는 것도-"


"사령관 옆에 기대… 사령관?"


"사령관? 어? 나보고 말하는 거야?"


"사령과아아아아안!!!!"


"엉?"



*****



 잠시 후, 사령관은 쓰러진 티아멧을 등에 업고 탈출정으로 되돌아 왔다. 티아멧을 잠시 매트에 눕히고, 그녀가 엉엉 울면서 하소연하던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하고 있었다.


 '자. 잠시 정리를 해 보자. 에릭이 포상을 빌미로 티아멧을 연결체 여럿이 있는 위험지역으로 보냈고, 지원을 보냈다더니 오는 건 아르망과 미나 둘뿐. 거기서 미나가… 그 후 아르망과 잠시 떨어져 주변을 탐색했더니 바리오로이드들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보았다던 깨진 바이저, 찢어진 완장, 산산조각난 총기와 장비들. 분명 매우 큰 전투가 일어났었다는 증거였다. 지금 오르카호의 상황으론 철충과의 전면전은 불가능한 수준이였으며, 피해가 막심했을거다. 모든 정황들이 사상자는 필연적이라고 가르키고 있다. 그런데…


 사망자 0명 부상자 0명.


 분명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오르카호의 운명을 바꾼 번호.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그 기록이 거짓말이다? 시뮬레이션을 해킹하는 건 스카디와 시라유리 정도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실전 결과도 시뮬레이션과 다를 바가 없었던 건 설명하기 어려웠다. 에릭이 전투권을 잡은 이후론 분명 사상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작위적인 숫자가 아닌가? 자신도 지휘해 보았지만, 사상자를 한 명도 안 낸다는 건 인원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제어 할 수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이 숫자가 조작된 통계라고? 하지만 어떻게? 무슨 수로 그 많은 인원을 속인 걸까? 자신보다 뛰어난 머리를 가진 바이오로이드들은 오르카호에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만약 자신을 속일지라도, 그들을 속이기엔 정말 마법이 아닌 이상 불가능…


 "마법?"


 갑자기 어떤 소설가의 말이 떠올랐다.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 할 수 없다."


 라비아타와 같은 인조인간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드는 이 세상엔, 거대한 잠수함 안의 많은 인원을 동시다발적으로 홀려버리는 기술이 존재한다는 건 아주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녔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기술이 뒷받침 되어 있어야만 했다. 그 녀석에겐 추가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그냥 능력도 아닌, 이세계물의 주인공의 것 처럼 아주 강한 능력. 그러한 능력없인 이 의문들을 충분히 해소할 수 없었다.


 사건의 전말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았다.



*****



"자, 그래서 아르망은 어디에 처리했지?"


"음. 사령관. 항상 이용하던 곳을 사용하였다. 그렇게 지시하지 않았는가?"


"아르망 개체는 단서를 조금이라도 주면 안 돼. 지금이라도 독방에 넣지 않았다면 거기에 넣어둬."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에릭은 오르카호의 보안카메라를 확인하면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이제 가둬야 할 녀석들은 없는 건가?"


"아직 넘어오지 않은 지휘관 개체들이 여럿 있지. 하지만 그 녀석들은 아르망 저 년과는 달리 순수 무력도 무시 못 해서 말이야. 레이스 너 혼자 잡긴 힘들지 않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 마지막으로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남았는지 확인해줘. 아르망을 잡을 때 보이는 건 다 처리하기는 했지만, 조금의 파편이라도 남아선 안 돼."


"알겠다. 그럼."


 레이스와의 통화를 종료하고, 에릭은 사령관실 방 한쪽에 위치한 침대를 바라보았다.


"오, 불굴의 마리. 오늘은 입은 옷이 조금 다른데?"


"ㅅ-사령관 각하께서… 원하시는 의상이 아닙니까…"


불굴의 마리가 속이 이미 다 비치는 연보라색 네글리제를 걸친 체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하하하하하!!! 그래 이거지. 색돌들은 이렇게 써먹어야지. 안 그래?"


"각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불굴의 마리의 동공은 이미 하트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



"정리된 것 같군. 이제 숙소로 조용히 돌아가면 되겠어."


레이스가 에릭의 지시대로 갑판 바닥을 체크하면서 중얼거렸다.


"후. 생각보다 힘들군. 아주 작은 잔해들까지 체크하기 위해서 돋보기까지 사용했다."


"음? 레이스? 둠 브링어의 레이스 맞지?"


"어?"


언제 나타났는지 흰색 와이셔츠에 회색 재킷을 허리에 두른 바이오로이드가 서 있었다.


"당신은…"


"리엔! 자비로운 리엔이야. 반가워. 우리 처음 보는 사이지?"


"그래. 내가 여기 들어온 이후로 넌 항상 바빴으니까."


"어휴. 초 천재 소녀 탐정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근데 넌 여기서 뭐 하고 있어?"


"그건 나야말로 물어봐야 한다. 넌 여기에 무엇을 하고 있나."


"나? 나 오늘 불침번인 거 몰라? 지지난번 주 오르카호 게시판에 불침번 스케줄 올라왔잖아?"


"그랬었나? 난 몰랐다."


"그거 확인 안 하면, 동침 순서 뺏길 수도 있어… 헤헤. 너도 알지?"


"윽. 그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건 꼭 확인을-"


"그럼 그럼.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넌 여기서 뭐 하고 있었던 거야?"


 곤란한 질문을 다른 이야기로 돌려보려 했으나, 상대는 자비로운 리엔이다. 키리시마 스캔들을 파헤친 주인공 중 하나, 즐거운 토모를 베이스로 제작된 고급 바이오로이드. 단서를 다 치웠다곤 하나, 숨겨야하는 비밀이 있는 지금시점에서 그녀의 존재는 여전히 위험했다. 레이스는 어서 빨리 이곳에 올 만한 이유를 생각해 내어야 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떠한 행동이든 조심해야 한다. 단서를 주어선 안 된다.


"ㄱ-그...어...사-산책을…나왔다."


 떨리는 목소리.


"그러니까… 요즘 고민이…조금 있다."


 불안한 눈빛.


"조금 사적인 고민이어서 말할 수는 없다."


 턱에 손을 대고 그걸 지켜보는 리엔.


"산책? 고민? 아, 그래. 요즘 같은 심란한 시기엔 산책이 최고이긴 하지. 바닷바람 불면 고민이 시원하게 날아가는 거 같아. 그치?"


 이거다.


"그-그렇다! 그게 정말 좋다. 난 고민이 있을 땐 항상 여기를 찾는다."


당분간 이곳을 자주 돌아다닐 레이스로썬 오밤중 갑판에 있어도 의심 사지 않을 명분이 필요했다.


"그리고 달을 보면…또 누군가 생각나."


"ㄴ-누구 말인가?"


"왓슨. 왓슨이 생각나."


"흠. 그런가."


"이렇게 달이 떠 있던 밤이었는데. 그땐 정말 풀지 못한 마음속 응어리는 다 푼 거 같아. 그 녀석. 남 말은 정말 잘 들어주거든. 알잖아. 고민이 있을 땐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마음이 한층 놓인단 걸."


"그렇다고 들었다."


"아마 그래서 여기 있으면 마음이 시원해지는 거 같아. 왓슨이 내 얘길 들어준 그 밤이 생각나서. 오랜만에 그런 사람을 만났거든.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불안감을 같이 느껴주고. 그때까지 익숙했던 취조가 아닌, 진짜 대화를 해봤어. 정말 진솔한 대화를. 여러모로 상대방에게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형사 입장에선 그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


"..."


"너도 그럴 친구가 있는 거야?"


"아니. 없는 거 같다."


"흠...그거 안타깝네. 그런 사람이 있으면 확실히 기분이 놓여. 그게 남자면 더 좋을까...나? 아하핫."


 리엔이 잠시 얼굴을 붉혔다.


"어...그런가."


 다행히 리엔이 알아서 대화의 주제를 틀어버린 덕분에, 레이스는 한층 마음이 풀렸다. 그 자비로운 리엔이 맞는지. 참 허술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생각해도 수상한 자신을 몰아붙이지는 못할지언정, 의미 없는 회상에 빠져있으니. 오히려 레이스가 리엔이 에릭에게 마음이 없다는 걸 알아내었다.


"너 근데 요즘 팬텀은 자주 보니?"


"팬텀? AL 팬텀 선배 말인가?"


"저번에 팬텀이랑 조금…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둘이 더 친해졌다고 하던데…으흠."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 그녀가 나와 접점이 있는가? 아직 오르카호에서 그 녀석의 실물을 본 적도 없다."


"그래? 내가 잘못 들었나 보네. 미안해. 여긴 워낙에 뜬구름 잡는 소문들이 많아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난 이제 돌아가 봐야겠다. 너랑 이야기하니 무슨 고민이 있었는지도 잊었던 거 같다."


"그래, 그래. 내일 보자."


 레이스는 손을 잠시 흔들고 쏜살같이 오르카호 내부로 들어갔다.



*****



"...그래서."


"레이스가 그렇다는데? '아무 접점'도 없다고."


리엔이 둥글게 뜬 달을 보며 말하였다.


"이제 모습을 드러내도 돼. 여기 있는 새로 생긴 카메라들, 다 처리했어."


"그리고 그 인간, 지금 불굴의 마리랑 한바탕하고 있던데. 아하핫. 분명 거기에 정신이 팔려 있겠지."


 마치 누군가와 이야기하듯이, 리엔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었다.


"이제 상황이 조금 이해가 돼? 내 말이 조금은 믿겨?"


"우린 이미 호랑이 뱃속에 있다고? 아하하…"


리엔 바로 옆의 난간이 아지랑이가 일듯이 일렁이고 있었다.



*****


외로운 사령관 (모음)


늦어서 미안! 요즘 너무 바쁘다. ㅋ

항상 그랬듯 혹시 의문이 드는거나 여기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댓글로 올려줘. 최대한 할 수 있는데 까진 답 해줄께.

항상 부족한 문학 봐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