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아이디어 원전 : https://arca.live/b/lastorigin/9519950 , '사령관이 알고보니 노래 개 잘부르면 어캄'


0화 : https://arca.live/b/lastorigin/21324313



없는 필력 짜낸 졸문으로 일주일 만에 1화를 써 가지고 왔다.


내 궤멸적인 선곡 센스가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글솜씨가 원체 없어서 글이 거칠고 어색할 것 같아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난 0화 프롤로그 때 내 글을 많이들 읽어주고 재미있다고 해 준 게 정말 감동이라서 힘이 되더라. 앞으로도 종종 써서 완결까지 달려볼게.


p.s

그래도 가급적이면 틈나는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생각해놓은 플롯은 있고 이것대로 쓰다 보니 한결 부담감이 덜하긴 한데, 이제껏 쓰다 지우다 쓰다 지우다 하면서 느릿느릿하다가 어제오늘에 걸쳐 갑자기 몰아쓰다 보니 머리에 상당히 부하가 걸리는 느낌이야. 어 근데 분량 조절을 못한 것 같은데...... 다음 화 쓸 때 더 힘들어지는 거 아니려나 모르겠다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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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잠에서 깨었다. 새벽 2시. 사령관 개인실의 침대였다. 한동안은 눈을 뜨기 싫었다. 눈을 떴다가는 꿈에서 보았던 싫은 무언가를 실제로 마주할 것 같은 느낌에, 눈을 떴다가는 자기가 지금 두 발을 딛고 있는 이 세계가 자기가 기억하던 세계로부터 철저히 유리된 세계라는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느낌에 눈을 뜨지 않으려고 했다. 실제로도 막 잠에서 깨서 그런지 눈이 잘 떠지지 않기도 했다.

 

문득 목이 말랐다. 마실 것을 찾아 주변을 손으로 더듬다 반사적으로 눈이 떠졌다. 그래도 오 촉 혹은 십 촉은 되어 보이는 밝기의 은은한 녹색을 비추는 취침등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어둡게 물들어 있어서 눈은 부시지 않았다. 얼마간 취침등 조명이 눈에 익었다 싶었을 때 침대에서 일어나니 자동으로 방의 조명이 켜졌다. 이곳, 오르카 호 잠수함의 선실이라면 이용 인원이 배정되어 등록된 이상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는 퍽 편리한 기능이었다. 바로 옆의 서랍장 위에 유리 뚜껑으로 곱게 덮여 있는, 국그릇만한 대접에 자리끼가 담겨 있었다. 내가 잠에 든 것을 확인하고 콘스탄챠가 가져다 놓은 것이리라.

 

떠올리기 싫은 기억 속에 내던져져 늪 속에 잠겨드는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냉수 한 사발에 불과했지만 갈증이 심했던지라 자리끼를 달게 마신 뒤 느껴진 배뇨감에, 개인실에서 나와 터벅터벅 화장실로 향하는 길은 유독 멀게 느껴졌다. 개인실이 자리한 잠수함 최상층의 중앙 층계까지 한참을 터벅터벅, 그리고 층계에서 화장실을 찾아들어가기까지 또 한참을 터벅터벅……. 콘스탄챠와 그리폰에게 구조된 지 여섯 달이 지났지만 도저히 익숙해질래야 질 수가 없는 밤의 감각이다.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개인실로 향할 때 중앙 층계가 보였다. 층계를 통해 두 층 아래로 내려간 곳에는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라고 하는 부대의 막사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순간 사령관은 식은땀이 나며 지극히 꺼려지는 느낌이 들어, 아까보다도 더욱 빠른 걸음으로 중앙 층계를 지나 사령관 개인실로 들어섰다. 카드 키를 긁어 개인실에 들어선 사령관의 호흡은 상당히 거칠고 가빴지만 점차 안정되어 가라앉아갔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작전지역이 극지이거나 시가지인 곳에 특화된 일종의 특수부대로 자신의 휘하에 있는 부대임에도 사령관은 이 부대를 생각하기만 해도, 정확히 말하면 이 부대의 지휘관 개체인 ‘철혈의 레오나’를 생각하기만 해도 매우 거북한 기분에 꺼림칙한 느낌, 온 몸이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매일매일 군정부관으로써 마주쳐야 한다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고, 내일은 또 어떤 날선 말들을 감내해야 하는지 걱정하면서 어떻게든 다시 침대에 몸은 뉘여야 한다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이 사람이 사령관이라고? 흠……. 뭐, 좋아. 사령관?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반경 3미터 정도까진 허락할게.’

 

‘뭐, 제법 기생오라비처럼은 생겼네. 그 얼굴, 사령관이란 직책에 걸맞는 값을 하길 바라.’

 

갓 구조되어 오르카 호에 왔을 당시, 최후의 인류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내어 사령관으로 세워야 하는 임무를 맡고 기어이 성공한 21스쿼드와는 별개로 바이오로이드를 탐색하여 추가 병력으로 확보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던 지휘관이었던 레오나와의 첫 대면에서 레오나가 사령관에게 건넨 첫 인사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가히, 도도함을 넘어 악담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듣기 좋은 꽃노래라고 해도 한두 번이고 하루이틀이라는데, 사령관으로서는 전혀 호의가 없어 뵈는 이런 말을 초면부터 인사로 받았으니 레오나를 생각할 때마다 거부감이 들 만도 했다. 그렇지만 당시의 사령관으로서는 초면부터 다짜고짜 성내며 충돌을 빚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었던지라,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조금은 싱긋 웃어보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노력해볼게.’

 

화장실을 다녀오고 다시 몸을 뉘인 개인실 침대 위에서 지난 6개월 간의 과거를 차례차례 반추하던 사령관은 문득 스스로가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역량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대뜸 악담, 독설을 퍼붓고 나간 그 레오나라는 지휘관 개체에게 이상스레 신경이 쓰였다. 단순하게만 본다면 저 도도한 성깔을 눌러버리고 싶다. 싸가지 바가지를 깨버리고 싶다는 종류의 간단한 경쟁심리, 오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미지의 답답함 또한 마음 속에 응어리져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레오나는 물론 왠지 모르게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라는 부대 자체를 대하기가 다른 부대에 비해 유난히 껄끄러웠다.

 

‘나보고 기생오라비 같다고? 얼굴값이나 하라고? 지는 뭐 얼굴값 잘 하는 줄 아나……. 아니. 원래 그런 싸가지인 게 제대로 얼굴값 하는 건가……. 아. 진짜 모르겠다. 답답하네. 누구한테 이야기할 수도 없고. 이런 이야기 함부로 늘어놨다간 사령관씩이나 되어서 부하들 뒷담 까고 돌아다닌다고 구설수를 빚을텐데.’

 

여섯 달 전 처음 구조되어 만났을 때, 그 때 차라리 멋지게 한 방 먹여서 그 도도한 콧대만큼은 꺾어 눌러서 기선제압을 했어야 한다느니 하는 생각으로 이불을 덮었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는 사령관이었다. 결국 ‘이렇게 저렇게 말했어야 하는데’라는 뒤늦은 후회로 애꿎은 이불만 팡팡 발로 차다가 제풀에 지쳤다. 다시 자기 위해 몸을 뉘였건만 머릿속은 첫 만남 당시에 대한 후회, 그리고 레오나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했다. 몸을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다 거진 한 시간이라는 시간을 더 소모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령관은 잠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오전 8시.

 

“주인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어, 으……. 지금, 몇, 시지?”

 

“아침 8시입니다. 다 큰 성인이시면 알아서 좀 일어나실 수 없겠습니까? 뭐, 그 덕분에 제가 깨워드릴 수 있는 거지만요…….

 

바닐라의 말 역시 냉정한 힐난 투성이였지만, 기묘하게도 레오나의 그 악담과는 무게감이나 실려있는 감정선 자체가 달랐다. 배틀메이드 프로젝트의 구성원으로써 프로그램되어 있는 내용일 뿐인지 진심인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적어도 레오나에게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면의 따스함이 바닐라에겐 있었다. 뒷말을 작게 흐리긴 했지만 적어도 사령관에겐 분명히 들렸다. 싱긋 웃으며 오늘의 준비를 한 뒤 바닐라가 가져온 식사를 들었다.

 

“항상 고마워. 바닐라.”

 

아무 말 없이 뒷걸음질로 개인실 한쪽 구석으로 물러나 다소곳한 자세로 대기하고 있는 바닐라는 짐짓 냉랭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얼굴에 옅게 올라온 홍조는 감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고개만 살짝 숙여서 사령관의 시선만 피하면 된다고 여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사령관은 하루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리리스. 오늘도 좋은 아침. 식사는 했니?”

 

“착한 리리스는 주인님을 뵈는 것만으로도 괜찮답니다.”

 

문을 열고 나오니 어느 새 컴패니언 소속 경호대장 블랙 리리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닫히는 문 너머로 바닐라가 덜그럭거리며 식기를 치우는 소리를 들으며, 함교로 향하는 발걸음을 떼는 사령관은 명랑하지도, 침잠하지도 않은 그런 백지와도 같은 기분으로 갖은 서적류가 가득 들어 있는 손가방의 무게감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리리스는 그런 사령관의 발걸음에 맞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걷는 소리조차 없애가며 조용히 따라왔다. 과연 초일류 그 이상의 경호 실력을 자랑하는 경호대장다웠다.

 

“그나저나, 주인님. 그 소문 들으셨나요?”

 

“어떤 소문?”

 

“가끔 잠수함 주위로 인어가 맴돌며 노래를 부르고 간다든가, 아니면 바다의 여신 세이렌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간혹 들린다던가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에요.”

 

뜨끔했지만 설마했다. 두 달 전쯤 지상 탐색 임무를 부여해서 출격시킨 세 개의 자원탐색조 중 스카이나이츠 지휘관 슬레이프니르를 필두로 한 1조가 거의 컨테이너 한 개 급으로 챙겨서 가져온 물자 속에, 멸망 전 구인류가 사용했을 법한 구형 가전제품도 몇 섞여 있었을 줄이야. 호기심이 일어, 아예 컨테이너째로 가져온 1조의 실적이 제일 좋아 적잖은 수의 참치캔과 동침권 등의 포상을 수여하여 슬레이프니르 등을 돌려보내는 사이에 그 가전제품을 몰래 가져왔다. 전원이 거의 없어 급한대로 패널 충전용 전선을 연결해 어떻게든 충전한 뒤 그 가전제품을 가동해보았더니 놀랍게도 이런저런 음악, 노래 등이 저장되어 있는 전자장치였다. 스틸라인 부대를 시찰할 때 이프리트 172 병장의 관물대에서 이프리트의 개인물품으로 이것과 비슷한 장비를 본 바 있어, 혹시 예전 시대의 MP3가 아닌가 싶었지만 사령관은 아무래도 좋았다. 전원을 켜고 버튼만 이리저리 조작하면 취향에 맞는 다양한 음악 수만 곡을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전자장비라니.

 

‘혹시, 애들이 들었을라나? 설마……. 각 선실, 격실마다 방음이 모두 철저하게 되어 있다고 하던데. 에이. 아니겠지.’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현장지휘와 더불어 함교에서 군정부관으로도 바쁘게 일하는 레오나에게 전술교습을 받는 나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발산하기 위해 함교에 아무도 없을 때라거나 혹은 사령관 개인실에서 MP3를 틀고 그날그날 기분에 맞는 노래를 듣거나 혹은 작은 소리로 따라 불러보거나 하곤 했었지만, 당초 구조되자마자 이곳에 사령관으로 보임되어 올 때부터 수석 엔지니어 포츈이나 기술자문역 겸 연구원 닥터가 누차 강조했던 바는 방음, 방수, 방폭 등으로 대표되는 잠수함의 견고함이었다. 자기가 목청껏 부른 것도 아니고 작게 속삭이듯이 몇 번 따라 불러본 것이 고작이지만 설마 그 소리가 새어나갔으랴. 그렇다면 이건 십중팔구는 그냥 돌고래를 오인한 것이거나 아니면 새로운 바이오로이드를 탐색할 기회일 것이다. 사령관은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불길한 예감(?)을 달랬다.

 

“오셨나요, 주인님? 함장실 청소는 끝내두었어요.”

 

“안녕. 콘스탄챠. 고생했겠다. 힘들지 않고?”

 

“아니에요. 괜찮아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조금 숙였지만 절로 모르게 싱글거리는 미소를 짓는, 배틀메이드 프로젝트 부대원이자 메이드장 겸 보좌관, 콘스탄챠 S2의 마중을 받으며 함교에 들어선 사령관은 레오나가 출근하기 전에 한 페이지라도 더 읽어두려고 가방 속의 전술교본 서적들을 모두 탁자 위에 꺼내 놓으며, 리리스에게서 들었던 것을 토대로 자신 나름대로 해석해서 지시사항을 내렸다.

 

“콘스탄챠. 기술부 닥터한테 이야기해서, 바이오로이드 중에 수중생물 형태를 한 바이오로이드가 있을 가능성과 그 리스트를 물색해보라고 해 줘. 그리고 포츈한테는……. 잠수함 운항에 있어서 돌고래 등에 대한 적절한 방호체계 구축 방안을 한번 검토해보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렇게 전달하겠어요.”

 

콘스탄챠가 패널을 조작해 각각 기술부의 닥터와 포츈을 수신인으로 하는 공문을 발송하는 동안 사령관은 벌써부터 지끈거려지는 머리를 짚으며 책상 위에 쌓아올려 둔 서적들을 보았다. 전부 레오나가 함내 진중서고에서 골라서 가져온 책들이었다. 《전술의 기초》, 《지휘의 정석》, 《군략 기본》, 《1형 작전 교본》, 《2형 작전 실습》……. 권당 가히 1천 페이지는 넘어 보이는 두꺼운 군사작전 관련 교본 서적들이었다. 처음 펼쳐볼 때만 해도 낯설면서도 익숙한 분위기에 제법 재미있게 느껴져서 무리없이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어느덧, 장교 단위에서 행할 수 있는 지휘를 해설하고 가르치는 오백 페이지 무렵의 파트에서부터는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러고보면, 꿈이 정말 기분 나빴단 말이야.’

 

지난 밤의 꿈처럼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꿈. 조금이라도 뒤처진다 싶으면 가차없이 냉혹한 독설로 사람의 마음을 사정없이 유린하는 레오나에게 전술 교습을 받는 것이 알게 모르게 심신에 스트레스를 줘서 그런지 요 근래에 종종 꾸는 꿈은 사령관에게 있어 비참하기도 했다. 분명 정석대로 지휘를 했음에도 간단한 임기응변을 미처 하지 못해 출격시킨 부대의 부대원 전원이 덧없이 희생되어버렸다든지, 어떤 때에는 지휘의 기초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그로 인해 함장실에서 터벅터벅 쫓겨나올 때면 출격시킨 부대원과 같은 부대 동료들로부터 원망과 비난의 눈초리를 받는다든지, 그녀들로부터 깔아보는 시선을 받는다든지……. 더욱 가혹한 것은, 그 중심에 항상 레오나가 있었다. ‘얼굴값도 제대로 못하는 남자는 사령관으로서도, 내 주인으로서도 불합격이야. 당장 여기서 나가.’라는 조소를 빙글거리는.

 

잠에서 깨고 나면 깨어있는 한동안은 그 선명한 꿈이 가져다주는 괴로움과 압박감에 다소 우울해하곤 했었다. 철충 토벌과 인류 재건의 사명이라니. 너무 무거웠다. 내가 원해서 혼자만 최후의 인류랍시고 살아남은 것도 아니고 내가 철충을 토벌할 운명을 선택한 것도 아닌데, 내가 어디서 온 누구인지도 모르는 지경인데도 느닷없이 이런 환경에 던져진 것 자체가 너무 버거웠다. 거기에 더불어, 혹독하게 몰아치다시피 하는 레오나의 전술 교습이 더해지니, 때로는 무언가가 정말 욱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 와중에 발견한 구인류의 MP3라는 문물이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었지만…….

 

“나, 너무 힘들어. 레오나…….”

 

절로 아이처럼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혼잣말이 나왔다. 사령관 자신도 모르는 사이였다. 그리고 무언가 한 방울이 볼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린다. 훔쳐보니 축축했다. 스스로도 매우 놀라서 얼른 마음을 다잡고 감정을 추슬렀다. 그래도, 명색이 최고지휘자, 사령관인데 아무데서나 헤프게 감정을 내비쳐선, 낭비해선 안 되겠지. 멸망 이전부터 생존해 온 개체부터 지금 이곳에서 새로 제조된 개체에 이르기까지, 부대 지휘관들부터 말단 병사들에 이르기가지 나 하나 믿고 모여들었는데 내가 이러면 이런 나를 누가 어떻게 믿고 군권을 맡기겠어. 적어도, 책은 잡히지 말아야겠지.

 

다행히 사령관의 혼잣말은 누구도 듣지 못한 것 같다. 콘스탄챠는 한창 차를 우리고 있느라 상당히 거리를 떨어뜨려놓고 있었고 리리스는 내 등 뒤에 있긴 했지만 역시 함교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대기 중이었다. 혼잣말 정도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 말마따나 완벽한 사람이 되려면. 최소한 얼굴값을 하려면. 그녀 앞에서 노력해보겠다고 공언한 이상, 다시금 결의를 새로이 했지만 당장 눈 앞에 있는,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서적들은 여전히 기가 질릴 만한 양이었다.

 

“휴…….”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고 있으려니, 콘스탄챠가 ‘괜찮으세요? 주인님? 하며 다가온다. 감정이 없어 보였던 레오나에 비하면 정말 내가 걱정된다는 듯 상냥하고 친절한 아이. 이런 아이 앞에서라면 자꾸만, 나도 모르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진다. 투정을 부리고 싶어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정말 이러면 안 될 텐데…….

 

“콘스탄챠.”

 

“네. 주인님.”

 

“정말,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사령관이 갖고 있는 이러한 의문은 단순한 칭얼거림이나 투정이 아니었다. 배워도 배워도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책은 결국 마지막 페이지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돌아보면 어느덧 페이지가 쌓이고 쌓여 끝을 향해 우직하게 전진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철충 토벌은 그 결부터가 달랐다. 쳐죽이고 쳐죽여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몰아닥치는 적의 파상공세에 어쩌면 지쳐가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도대체 얼마나 더 죽이고 얼마나 더 베어넘겨야 적을 완전히 도륙하고 세계를 되찾을 수 있을지. 그리고, 자신의 말과 손짓 하나하나에 구원의 희망을 품고 있는 휘하 병력들의 기대에 온전히 부응할 수 있을지. 오르카 호를 구심점으로 한 저항군이 1개 대대급 규모 정도가 고작이었을 시절부터, 2개 사단급에 이르는 규모로 성장한 지금에 이르러서도 사령관은 여전히 두려웠다. 무겁고 버거웠다. 그럼에도 모르는 체 내치고 저버릴 수도 없었다. 기대에 부응해야 했다. 그리고, 멋지게 해내 보이고 싶었다. 모두에게. 보좌관에게. 경호대장에게. 그리고……. 레오나에게도.

 

“잘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아니, 잘 하시고 있으신 거예요. 주인님. 처음에 저희에게 구조되셨을 때 내린 첫 지휘 명령도 처음치고는 정말 훌륭하셨어요. 그리고 다른 자매들이 속속 합류할 때마다 주인님의 지휘는 계속 일취월장하셨고요. 지금은 어엿한 이곳 오르카의 함장님이시고 수만에 이르는 저항군을 무리없이 통솔고 계시잖아요? 기운 내세요.”

 

“모르겠어. 무언가에 막힌 것 같아. 슬럼프라도 온 걸까? 이런 상황에 그러면 안 될 텐데……. 레오나가 보면 뭐라고 할지…….”

 

“잘 알고 있네. 사령관. 그럴수록 더더욱 교습에 매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예의 그 차가운 목소리. 언제부터인지 레오나가 들어와 있었다. 마치 뒷담을 하다가 들킨 것마냥 사령관은 혼비백산했고, 콘스탄챠는 어머 하고 잠깐 놀랐다가, 지휘관 개체를 마중하는 예의를 표하며 다과를 내오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깔끔한 흰 제복에 장발의 아름다운 금발을 지니고 몸매까지 매우 매력적인 여성이었지만 얼굴은 항상 무표정하고 회색빛 눈동자에 감도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효율밖에 없어 보이는 ‘철혈의 레오나’.

 

“나는 사령관이 멋진 남자가 되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자신 없는 모습이라면, 조금은 실망스러운걸. 5점 감점.”

 

순간 사령관은 자기가 보고 싶다고 맹렬히 욕구했기에 환상을 본 것인지, 아니면 정말이었는지 모를 무언가를 본 느낌이었다. 그토록 감정이 없어 보이는 냉정한 얼굴에 일순간 애틋함이 스쳐지나간 것 같은 기분. 아마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레오나는 평소대로의 표정이었다. 젠장할. 조금은 따뜻한 말씨로 이야기를 건네주면 어디가 덧날까. 자못 섭섭한 사령관이었다.

 

“숙녀의 얼굴을 그렇게 빤히 뜯어보는 시선은 남자로서도 실격이야. 5점 추가 감점.”

 

“미, 미안해. 오늘 배워야 할 건, 사단급 규모의 기초 통솔법 마무리였던가?”

 

그렇게 오전 9시를 기해서 시작된 3시간 가량의 오전 교습 시간은, 지난번까지 배웠던 사단급 규모 기초 통솔법을 초보적으로나마 복습해보는 2시간과, 실사 모형 및 VR 워 게임으로 시뮬레이션을 해 보는 1시간이었고, 역시 방금 전 일순간 보였던 것 같은 레오나의 감정선은 사령관의 환상에 불과했음을 사령관 스스로가 자각하는 데에는 훌륭히 제몫을 다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 시간의 끝에서, 사령관 앞에 주어진 결과물은 그간의 학습으 말미암은 이전까지의 착실한 성장이 무색하게끔 압도적으로 처참한 패배라는 결산서를 받아들어야 했다. VR에서 치른 가상의 철충 군집을 대상으로 한 아군 지휘에서는 혁혁한 성과가 나왔지만, ‘프로그램화된 패턴을 파악해서 임한 것이라면 이 성과도 온전히 믿을 것은 못 된다.’는 레오나의 깐깐한 평가에 욱해서 실사 모형 워 게임으로, 레오나가 이끄는 야전군급 규모의 부대의 총공세에 맞춰 사령관은 단 2개의 사단급 규모 부대로 방어진형을 짜서 거점을 수비하는 시나리오에 임했다. 그리고 여기서 사령관 측의 말은 압도적으로 패전해서 사실상 몰살당했다.

 

“정말, 모르겠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이기라는 건지…….”

 

조금은 넋을 놓은 것일까. 레오나 측 말의 진군에 뒤집혀져 ‘사망’이나 ‘포로’ 등으로 표시되어 있는 말들을 애틋하게 어루만지는 사령관의 눈가에 다시금 이슬이 맺혔다. 레오나 앞에서 눈물까지 보이긴 싫다는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금세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표정을 굳혔지만 레오나의 시선은 사령관의 방어진형에 쏠려 있어 다행히 눈치채이지는 않았다.

 

‘사령관, 정말 많이 발전했네. 처음 같았으면 무작정 맞공격으로만 나와서 초반에 전멸했을텐데.’

 

중요한 요소요소마다 절묘하게 배치, 매복하여 같은 무기로도 화력을 몇 배나 더 증강시킬 수 있는 화망을 구축한 사령관의 공격 말과 두텁게 형성된 방어선. 이 점으로 인해 레오나 측의 병력도 대다수가 희생된 상황. 비록 사령관이 방어하고 있던 목표 지점을 제끼는 데 성공함으로써 승리한 것은 레오나 측이었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살아서 목표 지점에 닿은 것은 채 수십여 말 남짓이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사령관의 지휘 역량이 성장한 것이 눈에 보여 정말 기뻤지만 레오나는 왠지 심기가 불편했다.

 

“뭐 하고 있어 사령관? 어서 복기해봐야지.”

 

따스한 격려를 해 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에 이만큼이나 괄목한 사령관의 역량이라면, 조금 더 재촉해서라도 능히 군단, 야전군 이상을 통솔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레오나에게는 그러한 목적의식이 강했다. 그렇지만, 그 강한 의식 때문에 사령관의 마음이 매순간 짓눌려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어쩌면, 자기에게는 터놓지 않는 흉금을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손쉽게 내보이는 사령관에 대한 사소한 심술이나, 질투에 기반한 독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레오나의 냉정함에 사령관의 언성이 높아진 건 함교에 배석하고 있는 모두의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복기해서, 뭘 어쩌라는 건데.”

 

“사령관. 어쨌건 사령관은 패했어. VR 워 게임 시뮬레이션에서 전과를 올린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야. 복기하면서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향후 대응 전략을 구상해봐야…….”

 

“그렇게 해 봤자 백날 천날 다치고 죽고 지기만 하는데 여기서 뭘 더 어쩌라는 건데!”

 

고함친 것도 아니었다. 조금 목소리가 높아졌을 뿐인데, 공기가 얼어붙은 것 같다. 자기에게 이렇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레오나도 일순간 굳었고, 콘스탄챠나 리리스도 처음 보는 사령관의 모습에 긴장했다.

 

“아무리 워 게임 상의 장기말이라고 해도 병력 희생이 너무 심해. 계속 이런 시나리오를 고집하는 이유가 대체 뭐야?”

 

“지금 사령관 태도를 보면 더 알 것 같은데. 지금 우린 전쟁에 임하는 군인이야. 그렇게 감정에 끓어선 올바른 지휘를 할 수 없는 거, 사령관도 잘 알텐데?”

 

“레오나. 너…….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내 눈에는 자꾸만 저 말들이 우리 부대 대원들로 보이는 거 알아? 여기는 마리가 이끄는 스틸라인, 저기는 로열 아스널이 전두지휘하는 AA캐노니어, 또 저기는 신속의 칸이 치고 나가는 앵거 오브 호드, 그리고 저기는……. 여하튼, 나 하나 믿고 따라주는 애들을 그렇게 덧없이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자꾸만 이런 식으로 희생만을 전제하는 시나리오만 상정해서 가르치려는 의도도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이렇게 희생만 시키는 것 역시 올바른 지휘라고 할 수 없다는 거, 레오나 너 역시 잘 알잖아?!”

 

감정 싸움으로 치달을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콘스탄챠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어떻게든 둘 사이를 중재하려 했고, 혹여 모를 돌발사태에 대비해 리리스는 AP2090 Mamba 피스톨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레오나를 주시했다.

 

“사령관.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이것보다 더 잘해야 해. 그래야 사령관이 지키고 싶어 한다는 우리들을 지킬 수 있는 거야. 지금 사령관은 지휘관 개체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 몰라? 이것도 못 해내면 사령관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는데?”

 

끝까지 자기를 고압적으로 가르치려 드는 레오나의 태도에 그간 쌓여왔던 울분이 터진 걸까, 아니면 억 하는 심경이 터진 걸까. 사령관으로 보임하고 나서 그간 꾹꾹 눌러왔던 감정선이 기어코 터진 사령관의 말문 역시 지칠 줄도 몰랐다. 욱 하는 심경에 되는대로 말하다 보니 사령관 자신도 자기가 무슨 말을 늘어놓는지조차 몰랐다. 그간 쌓여왔던 힘듦을 그냥 토해낸다는 느낌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래. 솔직히, 전술적 식견이니 전략 입안이니 하는 거, 너희들에 비하면 나는 부족할지도 몰라. 아니, 확실히 부족해. 난 이런 쪽에선 사실상 백지였으니까. 그렇다고 앞으로 이걸 무책임하게 내버릴 생각은 없어. 나도 끝까지 같이 갈 거니까. 그리고, 나도 할 줄 아는 거 있어!”

 

 

생각해보면 아마 이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6개월 전 그 날, 함교 지휘통제실에서 레오나와 치렀던 그 실사 모형 워 게임. 이 때 결국 폭발해서 레오나와 말싸움하는 와중에, ‘사령관은 이것도 못하면 앞으로 할 줄 아는 게 뭐가 남느냐’는 식의 힐책에 욱하고 치밀어오르는 것이 있어 ‘나라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줄 아느냐’라며 맞받아쳤던 것. 그리고 그대로 시연해버린 노래 한 곡. 그리고 그 때 그 노래가 지금 이 콘서트 무대에서 부르는 곡이 되기까지. 사령관이 부르는 노래에 맞춰 현란하게 빛나던 배경 스크린의 전광판이 다시금 잠잠해졌고 무대가 다시금 암전된 가운데 사령관에게 맞춰진 포커스는 다시 사회자 스프리건과 총괄PD 탈론페더에게 맞춰졌다.

 

“네. 벌써. 몇 곡 지나가면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는데요. 사령관님이 화끈하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터프하고 야성적인 면모가 있었을 줄은 미처 몰랐던 무대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령관님께 또다른 면모가 있다고 하네요. 탈론페더 소령님? 말씀해주시겠어요?”

 

“한편으로는 정말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그런 달콤한 면모도 있으시답니다. 정말, 그분의 품에서 얼마나 녹아들고 싶던지이이이……. 사령관님의 품 속에선 저도 모르게 한 명의 처녀 아가씨가 되어버리는 것 같더라니까요.”

 

“어우. 소령님. 발언이 너무 사심 가득하신 거 아닌가요. 하하하. 네. 한편으론 기대가 되는 사령관님의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선곡이 기대되는데요. 이런 가을날에 너무 걸맞는 가곡을 하나 선곡해주셨네요. 야성미 넘치는 터프가이에서 로맨틱한 가을녘 문학청년으로 돌아오실 우리 사령관님을, 열렬한 박수와 함께 맞이해보자구요!”

 

스프리건과 탈론페더의 만담과 암전된 무대로 시선이 분산된 가운데 사령관은 그새 분위기에 맞춘 또다른 공연 복장으로 환복하고 다시금 무대에 올랐다. 배경과 천장에 도배된 LED 스크린에 다시금 불이 들어오며 이번엔 가을 단풍이 아름답게 수놓아졌고, 무대에 오른 사령관은 관중석을 시선으로 훑었다. 아. 있었다. 이 계기를 만들어 준 인물이. 그 인물이 확실히 볼 수 있게끔 작게 싱긋 미소지어보였고, 그 방향에 앉아있던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은 서로 자기에게 미소를 지어준 것인마냥 꺄악거리는 함성을 가득 내질렀다. 그 위로 제법 진중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의 전주가 드리우며 분위기는 일순간에 다시 바뀌어 가을로 물들어갔다.

 



1.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 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2.

가끔 두려워져.

지난 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 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후)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경호 임무 교대를 위해 CS 페로가 블랙 리리스로부터 업무 인수인계차 사령관실에 들어와 있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아차 싶었다. 문득 정신차려 보니 페로, 블랙 리리스, 콘스탄챠, 그리고 레오나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경악한 표정으로, 아니면 뜨악한 표정으로 일순간 온 몸이 굳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사령관 자신은……. 그녀들 앞에서 노래를 한 곡 시연해보인 참이었다.

 

‘어……. 어?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그러한 의문이 뇌리에 떠오르기도 전에, 사령관은 함교 지휘통제실에 출입, 배석해있던 바이오로이드들이 터뜨리는 감탄과 환호에 먼저 정신이 쏙 빠져버렸다.

 

“우와아……. 주, 주인님. 방금, 무슨 노래 하신 거예요?”

 

“주인님?! 노래 너무 잘 부르세요. 우와……. 예전에 가수 아니셨어요?”

 

“주인님이 혹시……? 그 인어……? 세이렌?”

 

얼굴을 다소 붉히며 소녀틱하게 꺄아 거리기까지 하는 이들의 모습에 사령관은 적잖이 놀란 것도 것이지만, 순간 이게 무슨 일인지 깨닫고 말았다. 그래도 혹여나 마지막 남은 가능성을 저버리고 싶지 않아, 마침 수신음이 들리는 지휘 패널을 켜 보았지만, 오전에 콘스탄챠에게 지시해서 닥터와 포츈에게 하달한 공문의 회신으로 결과보고서가 그새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기재된 내용들은, 사령관이 앞서 ‘살짝’ 걱정했던 바의 다른 가능성들을 멋지게 차단해주는 결과들이었다. 요약하자면…….

 

[닥터 - 수중생물형 바이오로이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리스트를 상정할 수 없음.]

 

[포츈 - 돌고래에 의한 음파 통신 교란에 대비한 방호체계는 이미 구축되어 있음.]

 

‘그, 인어니, 세이렌이니 뭐니 하는 거. 결국 나를 가리키는 소문이었던거야?!??!!?!’

 

‘그보다,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

 

말싸움을 하다가 어울리지도 않게 노래를, 그것도 제법 분위기 있고 무게감 있는 가곡을 불러버렸다. 다행히 콘스탄챠나 리리스, 페로는 넘어가 준 것 같지만, 레오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대체 이 상황에서 뜬금없이 왠 노래냐는 듯이 차갑게 쳐다보는 듯한 저 시선. 어떻게든 무마해야 했다.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다. 싸울 분위기, 감정은 팍 식었지만 여기서 수습 잘못하면 이거 평생 흑역사감이다. 밤이면 밤마다 이불이 남아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속으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레오나에게 기가 죽긴 싫어서 일부러 강한 어조로 역설했다.

 

“무조건 전투 속으로 병력들의 휘몰아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기를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도 지휘 통솔의 큰 부분이라고 생각해. 내가 비록 지휘는 우리 레오나 같이 똑부러지게 못하지만, 그래도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것에 이 목, 이 목소리로도 그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모두가 좋아한다면 아낌없이 내주겠어!”

 

레오나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은 채 찬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몸을 휙 돌려서 함교를 빠져나갔다. “좋을대로 해. 사령관. 오늘 교습은 여기서 끝이야.”라는 마지막 말을 뒤로 하고 나왔지만, 의외로 레오나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붉어져 있었다. 자기와 말싸움하던 도중에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다니. 정말 엉망진창이라니까. 그런데……. 왜 일순간 사령관이 멋져 보인 걸까? 사령관의 목소리가 저렇게 아름다웠던가?

 

그보다도, 레오나의 뇌리 속에 명멸하는 사령관의 말들……. ‘우리 레오나 같이 똑부러지게 못하지만’, ‘우리 레오나 같이 똑부러지게 못하지만’, ‘우리 레오나 같이’, ‘우리 레오나 같이’, ‘우리 레오나’, ‘우리 레오나’, ‘우리 레오나’…….

 

“정말, 쓸데없이, 노래는 잘 불러가지고선……!”

 

짐짓 성났다는 듯이 ‘흥!’ 하며 함내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레오나였지만 하필 그 순간 레프리콘 1477과 브라우니 2056이 함교 지휘통제실 출입문 밖에서 역시 얼음같이 굳은 자세로 서 있었던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다행히 그녀들 역시 온 신경이 귀에 몰려 있던지라 레오나를 미처 못 본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 To be continued


대충 보니까 1만 5천 자 전후로 쓴 것 같네.


프롤로그의 거의 두 배 격인데, 앞으로 이만한 분량으로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벌써부터 엄습해 오고 있다......!


이제사 노파심에 이야기하는 거지만, 라스트 오리진 원작에 비해 설정붕괴, 고증오류인 부분도 왕왕 나올 것 같아. 그 점은 미리 양해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