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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Day 77. AM 06:43

 

끼룩-끼룩-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 위로 회색빛 날개를 길쭉이 편 채 몇몇 갈매기들이 쉴 곳을 찾아 파도가 일렁이는 푸른 해수면 위를 거닐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갈매기 한 마리의 눈에 망부석과 같이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회색빛의 무언가를 발견해 그 위에 날개를 퍼덕이며 안착해 숨을 골랐다.

 

“아..”

 

 머리 위에 갈매기가 앉은 탓일까, 오르카 1호의 갑판 위에 서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회색빛 머리칼이 인상적인 소녀, 에밀리의 작은 입이 열리며 분홍빛의 멍한 눈동자가 위쪽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를 뒤에서 유심히 지켜보던 이가 에밀리 머리 위에 앉은 갈매기가 놀라지 않게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와 나긋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어머, 에밀리. 그 아이는 새로운 친구니?”

 

 에밀리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한 박자 느린 말투로 대답했다.

 

“..아냐. 갑자기 내 머리 위에 앉았어. 레이븐 언니.”

 

 아담한 에밀리의 체구와 대비되는 훤칠한 여성, 짧은 금발을 양옆으로 가지런히 묶은 단정한 인상과 반대되는 아찔한 노출도를 자랑하는 바디 슈트와 거대한 흉부가 눈에 들어오는 바이오로이드. 레이븐은 에밀리의 짧은 대답을 듣고는 쿡쿡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후훗. 이 아이는 네 머리 위가 마음에 든 것 같은데?”

 

“..그럼 친구야?”

 

“그럴지도?”

 

“..친구. 좋아. 데려갈래.”

 

 에밀리는 말이 끝나는 동시에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갈매기의 몸체를 낚아채려 했으나 망부석인줄로만 알았던 것이 움직인 탓일까, 갈매기는 곧바로 에밀리의 정수리를 차고선 하늘 위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갔다,

 날아오른 갈매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에밀리는 들어 올린 양손으로 갈매기가 차고 간 정수리를 매만졌다.

 

“..친구, 아니었나 봐.”

 

“으음, 그랬을지도. 너무 상심하지 마. 에밀리.”

 

“..응. 레이븐 언니.”

 

 레이븐은 자신보다 한 체급은 작은 에밀리를 살포시 끌어안아 주며 갈매기 떠난 자리를 매만지는 에밀리의 오른손등 위로 자신의 콧등을 가볍게 비볐다.

 따사로운 햇살과 짠 냄새가 매력적인 바닷냄새, 잔잔히 불어오는 순풍, 갈매기의 끼룩대는 소리가 어우러진 갑판 위에서 둘은 행복한 오전의 한때를 만끽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도 잠시, 그녀들의 등 뒤로 거대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며 서로 껴안고 있는 그녀들을 향해 다가왔다.

 

뚜벅-뚜벅-

 

“에밀리? 레이븐 1호? 둘 다 뭐 하고 있는 거죠?”

 

“어머, 부대장. 헤헤, 먼저 올라와서 준비하고 있었지.”

 

 레이븐은 등 뒤로 고개를 돌려 살짝이 분홍빛 눈썹을 치켜세운 부대장에게 에헤헤 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에밀리 역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살짝 눕혀 레이븐의 팔 너머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부대장, 늦어.”

 

 에밀리의 핀잔 아닌 핀잔을 들은 AA캐노니어의 부대장, 비스트헌터의 무뚝뚝한 얼굴이 곤혹스럽게 변하고선 둘에게 어이가 없다는 투로 항변했다. 

 

“아니, 분명 제가 오전 7시까지 집합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오전 6시 45분입니다.”

 

“어머! 우리 부대장님께서 부대원들보다 늦게 올라왔다고 변명이라니!”

 

 과장되게 놀란 어투와 달리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 찬 미소를 짓는 레이븐의 모습에 비스트 헌터는 고개를 가로로 내저으며 곤란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장난기가 가득 찬 레이븐은 무뚝뚝한 자신과는 상성에 가깝다고 여기고 있었던 그녀는 순순히 그녀들의 핀잔을 받아들였다.

 

“하아, 그래요. 늦는 것보다는 이른 게 좋은 거죠.”

 

“..응. 사령관, 매번 남들보다 일찍 움직여. 에밀리도 그렇게 할래.”

 

“어머, 부대장, 부대장. 우리 에밀리, 드디어 사랑에 눈을 뜬 걸까?”

 

 에밀리의 무뚝뚝한 말에 레이븐은 마치 좋은 가십거리를 발견한 시장통의 아주머니와 같이 자신의 품에 꼬옥 안긴 이 소녀가 너무 귀엽다는 듯 이제는 아예 그녀의 정수리에 볼을 비벼대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잘 모르는 에밀리는 그저 레이븐의 행동을 무덤덤이 받아들이고만 있었고 비스트헌터는 주책맞은 레이븐과 항상 무표정한 에밀리를 보고선 피식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그녀들의 뒤로 또다른 이가 갑판 엘리베이터 소리와 함께 활기찬 아침 인사와 함께 등장했다.

 

“모두 좋은 아침! 다들 일찍 나왔네?”

 

“아, 파니!”

 

 마치 구름과 같이 뭉글거리는 장발의 연푸른 곱슬머리와 밝은 미소가 어울리는 상쾌한 느낌의 바이오로이드, 파니는 갑판 위의 그녀들을 향해 윙크를 날리며 가벼운 경례와 함께 갑판에 들어섰다.

 레이븐은 파니의 등장에 반색하며 에밀리를 더욱 끌어안고는 흥분이 가시지 않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방금 에밀리의 대사를 읊어주었다.

 

“방금 요 맹랑한 아이가 뭐라고 했는 줄 알아? 파니?”

 

“오오, 우리 꼬맹이가 뭐라고 했길래 아침 댓바람부터 그렇게나 흥분하는 거야?”

 

“그게 글쎄, 방금 부대장이 왜 이렇게 일찍 나왔냐고 물으니까, 사령관이 남들보다 일찍 다닌다고 자기도 그렇게 할 거래! 꺄아! 너무 귀여워!”

 

“...레이븐 언니, 괴로워.”

 

 말 한마디를 뗄 때마다 점점 강해지는 그녀의 포옹에 에밀리는 무표정한 얼굴에 음영을 드리우며 자신을 끌어안은 그녀의 양팔을 어떻게든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파니는 입가를 씨익 올리고선 오른손으로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에밀리를 향해 연분홍빛 눈동자를 빛내었다.

 

“우리 꼬맹이가 드디어 사랑에 눈을 떴나? 이대로 그냥 우리 사령관한테 보내버릴까?”

 

 장난기가 가득한 파니까지 가세하자 한층 소란스러워진 갑판의 분위기에 비스트헌터는 오른손을 이마에 턱 짚고선 후우하고 한숨을 내쉬며 그녀들의 주책에 끼어들었다.

 

“..아직 저 아이는 호의와 사랑을 구분 못 지을 겁니다. 다들 그만 장난치시고 작전 준비태세를 갖추세요.”

 

“네에~”

 

 비스트헌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이븐은 에밀리를 끌어안던 양팔을 풀고는 배시시 미소리를 지었고 파니 역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머리 위로 양팔을 들어 올렸다.

 간신히 레이븐의 품에서 빠져나온 에밀리는 숨을 색색 내쉬었으나 이내 곧바로 멍한 표정으로 돌아와 비스트헌터 앞에 정렬해 섰다.

 에밀리까지 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스트헌터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그녀들의 임무를 말하기 시작했다.

 

“곧 사령관님의 작전 개시 명령이 떨어질 거예요. 저희는 오늘 상륙 작전의 개막 포격을 담당합니다. 저와 파니는 함 내의 다른 비스트헌터, 그리고 파니들과 링크를 공유해 전투력을 증폭시킵니다.”

 

“아하! 그래서 다른 애들은 안 올라왔구나?”

 

“그래요. 굳이 저 작은 섬 해안가를 초토화하는데 저희 모두가 움직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레이븐 1호, 언제나처럼 포격 포인트를 지정해주세요.”

 

“응! 맡겨만 둬!”

 

“..부대장, 나는?”

 

 각자의 임무를 확인한 파니와 레이븐은 배시시 미소를 지었으나 에밀리만은 멍한 표정으로 비스트헌터를 바라보았다. 비스트헌터는 항상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아이의 머리를 딱딱한 장갑을 찬 손으로 쓰다듬으며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에밀리의 제녹스는 직사포니까 아무래도 오늘처럼 곡사를 해야 하는 타이밍에는 크게 적합하지 않아요. 하지만 연결체급이 나올 시를 대비해 준비하는 게 좋겠죠.”

 

“..응. 에밀리, 열심히 할게.”

 

“그래요. 잘하면 또 사령관님께 사탕 받으러 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사령관이라는 단어에 에밀리의 진분홍빛 눈동자에 생기가 돌자 비스트헌터와 다른 이들은 미소를 머금었다. 항상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막내였지만 유독 사령관만은 잘 따른다고 그녀들은 생각했다.

 에밀리는 딱딱한 비스트헌터의 장갑의 감촉을 느끼며 두 눈을 감고는 무뚝뚝한 사령관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사령관, 따뜻해. 가까이 가면 기분 좋아.”

 

“사령관님이 따뜻한 인간이라..그 말은 좀 틀리지 않아?”

 

 파니는 오른손으로 볼을 긁적이며 무뚝뚝한 인상이 유독 머릿속에 남는 사령관의 얼굴을 기억 속에서 떠올렸다.

 

“나야 뭐, 오르카 1호 생산 개체니까. 다른 인간님들은 못 만나봐서 잘은 모르겠는데, 사령관님을 보고 따뜻하다는 건 난 잘 모르겠어.”

 

 파니의 가벼운 반박에 에밀리는 감았던 두 눈을 번쩍 뜨고는 지긋이 파니를 노려보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레이븐과 비스트헌터의 미소는 더욱 커졌으며 파니는 당혹스런 얼굴로 에밀리와 시선을 맞대었다.

 

“아, 아니. 에밀리, 그 얼굴 사령관이랑 닮았다?”

 

“..사령관, 따뜻해. 내 말이 맞아.”

 

“으..으응, 맞아! 사령관은 따뜻한 인간님이지. 응.”

 

“이 아이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사령관의 일면을 바라볼 수 있나 보죠. 에밀리처럼 순수한 아이는 몇 없으니 이 아이가 그렇다면 어지간해서는 맞는 평가일 겁니다.”

 

“맞아. 요게 맹해 보이긴 해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구별은 잘하는 아이잖아. 그리고 너 아직 그 사진들 못 봤구나?”

 

“사진? 무슨 사진?”

 

 파니는 고개를 살짝 올려 곁에 서 있던 레이븐을 올려다보았고 레이븐은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의 단말기를 들어 홀로그램 이미지를 띄워 파니의 코앞까지 옮겨주었다.

 

“자, 이거. 그 앵거 오브 호드의 부관님 있지? 그분이 요새 사령관님 사진을 공유해주기 시작했거든? 자자, 이거 봐.”

 

 레이븐이 보여주는 이미지 속의 사령관의 얼굴은 파니가 생각했던 사령관의 얼굴과 판박이었지만 이미지 속 행동은 평소와 사뭇 달랐다.

 LRL과 더치걸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는 사령관의 사진에 파니는 연분홍빛 눈동자를 반짝였다.

 

“..오, 우리 철혈의 사령관님. 아이들은 무척이나 챙기네.”

 

“철혈의 사령관? 철혈은 발할라 대장님 이명이지 않아?”

 

“아, 그게 매번 사령관님 부관하는 것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두 분 모두 닮았잖아. 그래서 애들이 사령관님 이명을 철혈이라 붙였나 봐.”

 

“헤에..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네. 쳇, 나도 이명 같은 거 갖고 싶다.”

 

“큭큭, 그건 무리야! 우리 부대 지휘관급 개체도 못 가진 이명을 어떻게 아래 대원이 받아?”

 

“컴페니언의 하치코는 성벽이란 이명이 있잖아. 언니 개체인 블랙 리리스는 없는데.”

 

짝-짝-

 

 점점 길어지는 잡담에 비스트헌터는 미간을 살짝 구기며 다시 그녀들의 주의를 돌렸다. 그녀들의 말소리가 끊긴 것을 확인한 그녀는 후하고 숨을 한 번 내쉬고는 오른손목에 착용한 단말기에 대고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작전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아아, 여기는 AA캐노니어 제1분대, 현재 갑판에서 대기 중입니다.”

 

 비스트헌터의 말소리가 단말기의 스피커를 통해 그 너머로 가자 단말기에서 회신이 들려왔다.

 

-여기는 함교 메인 프레임. 에이다 Type-G입니다. 소속 확인. 작전 개요 확인. 무장 승인.

 

지-이잉

 

 단말기 너머에서 기계적인 여성의 어조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갑판의 구석이 열리며 길쭉한 회색빛 케이스 세 개가 아래에서 올라왔고 그걸 본 비스트헌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단말기에 대고 말을 이어갔다.

 

“작전 개시까지 앞으로 얼마나 남았습니까?”

 

-현재 32분 남았습니다.

 

“알겠습니다. 무장 확인 작업에 착수하겠습니다.”

 

철-컹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케이스의 덮개가 올라온 공간으로 다시 내려가며 케이스의 내용물들이 아침 햇살 속에서 반짝거리는 철제 바디를 빛내었다.

 케이스의 안에는 제각기 다른 크기와 색상의 바주카포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파니는 반색하며 흰색의 바디를 빛내는 바주카포로 달려가 그것을 꺼내 들었다.

 

“꺄아! 보고 싶었어! 내 바주카!”

 

철-컥

 

 파니가 상체 부분의 손잡이를 쥐자 그녀의 바주카포가 그녀를 반기듯 여러 파츠가 살짝이 개방되며 한층 더 커진 몸체를 뽐내었다. 에밀리와 비스트헌터 역시 각자의 바주카포를 철제 케이스에서 꺼내 들었고 물건이 사라진 케이스들은 다시 갑판 아래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럼 나는 출격 포트로 가볼게. 스카이나이츠 애들이 기다릴 테니까.”

 

“응! 있다 봐!”

 

 레이븐은 갑판 아래로 이어지는 난간 계단을 타고 내려가며 그녀들을 향해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고 그녀가 모습을 감추자 이번에는 갑판 아래에서 우웅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웅-

 

“오, 스카이나이츠 애들도 오는 건가?”

 

기-잉

 

 파니의 중얼거림에 호응하듯 갑판과 살짝 떨어진 오르카 1호의 양옆으로 거대한 덮개 구조물이 열리며 기다란 회색빛의 항공 레일이 쭉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에밀리는 그 소리에 반응해 갑판 난간으로 달려가 아래쪽의 레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기-이잉

 

찰칵-

 

 회색빛의 레일 양 끝으로 노란색의 점멸등이 깜박이고 안내선을 따라 흰색의 조명이 안쪽부터 순서대로 켜지기 시작하자 선체에 가려진 레일의 안쪽에서 방금 비스트헌터의 단말기에서 들려온 기계적인 여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스카이나이츠 슬레이프니르. 출격 승인. 건투를 빕니다.

 

“오케이!”

 

찰칵-

 

 레일의 그림자 속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노란색 점멸등이 붉은색으로 재빠르게 변하며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공기를 가로지르며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

 

“이얏-호!”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 검은색 제비, 같다고 에밀리는 생각했다. 은빛의 제트 부스터를 장착해 빠른 속도로 오르카 1호의 선체 위를 빙글빙글 돌던 제비는 이윽고 갑판 위에 서 자기를 빤히 바라보는 에밀리 앞으로 속도를 줄이며 내려왔다.

 

“안녕! 에밀리!”

 

“..제비다.”

 

 에밀리는 갑판 위에서 살짝 붕-뜬 채 공중에서 자길 향해 윙크를 날리는 슬레이프니르는 향해 손가락을 올렸다. 에밀리의 중얼거림을 들은 슬레이프니르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난 제비야! 우리 애들은 맨날 펭귄이라고 놀리던데, 역시 에밀리는 뭘 좀 아는구나?”

 

“..펭귄? 펭귄은 못 날아.”

 

“..그게 중요한 건 아닌데.”

 

 에밀리의 무덤덤한 지적에 슬레이프니르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이마를 짚었다. 그때 그녀의 곁으로 거대한 회색빛의 바주카포와 함께 비스트헌터가 다가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슬레이프니르 전대장. 좋은 아침입니다.”

 

“응! 좋은 아침이야.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날씨 하나는 화창하네! 날아다니기 딱 좋아.”

 

“그러고 보니 어제도 출격하셨다면서요.”

 

“헤헤, 사령관이 정찰을 부탁해서. 섬을 한 번 쭉 둘러보고 왔지.”

 

 슬레이프니르는 고개를 돌려 푸른 바다 너머 보이는 작은 섬을 흘겨보았다. 비스트헌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자신의 바주카포를 갑판 위로 쿵-하고 내려놓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철충이 있다고 하던데, 얼마나 있는지 보셨습니까?”

 

“음~가까이 가보기는 했는데, 그렇게 많은 것 같진 않았어. 아마 우리 전력으로는 하루면 전부 쓸어버릴걸?”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네요.”

 

기-이잉

 

 둘의 대화가 이어지던 중 다시 한번 레일 위의 불빛이 노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며 진동음을 내기 시작하자 갑판 위에 있던 이들이 시선이 갑판 아래 레일들로 향했다.

 이번에는 양 레일에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인영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콰-아

 

“오, 저건..”

 

“둠 브링어 나이트 앤젤이랑 그 맹랑한 대장님이네.”

 

 레일의 추진기를 통해 날아오른 것은 슬레이프니르의 등에 장착된 제트 부스터만큼이나 커다란 스텔스 부스터를 장착한 진분홍빛의 머리칼을 휘날리는 나이트 앤젤과 거대한 옥좌와 같은 생김새의 제트 부스터 위에 앉은 붉은 머리칼의 소녀였다.

 둘은 모두 레일의 추진력을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 갑판 위로 내려오지 않고 오르카 1호의 상공에 머물렀다. 그녀들을 올려다보던 에밀리의 멍한 눈동자가 반짝였다.

 

“나도..날 수 있을까?”

 

 그녀의 황당한 질문에 곁에 서 있던 비스트헌터와 슬레이프니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파니 역시 그녀들에게 다가와 에밀리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장난기가 넘치는 미소와 함께 그녀를 부추겼다.

 

“사령관한테 부탁해 봐. 혹시 몰라, 제녹스를 개조해줄지!”

 

“..그래도 될까?”

 

“파니, 이 아이는 진담과 농담을 구분하지 못해요. 장난은 그쯤 해두도록 하세요.”

 

“에밀리는 언제봐도 귀엽네. 다음에 나랑 하늘 위를 날아볼래? 그 정도는 가능해.”

 

“응. 나도 갈매기처럼 날아보고 싶어.”

 

 슬레이프니르의 권유에 에밀리의 두 눈이 반짝이자 갑판에 있던 이들 모두가 하하 호호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런 그녀들을 오르카 1호 선체 상공에서 내려다보던 멸망의 메이는 부루퉁한 얼굴을 턱으로 짚은 채 퉁명스럽게 말을 꺼냈다.

 

“작전 시작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빠져 있기는 다들.”

 

슈-웅

 

“그만큼 전황을 밝게 본다는 소리겠죠. 대장.”

 

 나이트 앤젤은 제트팩의 추진력을 조절하며 멸망의 메이의 옥좌 곁에 서 항상 부루퉁한 얼굴만을 짓는 자신의 대장을 내려다보았다.

 멸망의 메이 역시 자기 곁으로 바짝 붙은 그녀를 눈으로만 쫓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하긴, 저런 섬 하나쯤이야. 스카이나이츠까지 나올 필요도 없지. AA 캐노니어의 개막 포격도 그렇고.”

 

“결국 대장의 건의는 무산되었네요. 그렇다고 너무 삐지지 마요.”

 

“..됐어. 사령관이 그렇다고 한 거면 그런 거지.”

 

 말은 됐다는 듯 하는 그녀였지만 아직 얼굴에 불만을 감추지 못하는 자신의 대장에 나이트 앤젤은 입꼬리를 올렸다. 어제보다는 낫다고 그녀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때 멸망의 메이의 옥좌의 여러 스크린 하나가 깜박거리다 이내 한 인물이 스크린 너머로 비쳤다.

 

-멸망의 메이, 출격했나?

 

“..?!”

 

 낮게 깔린 음성, 차가운 눈매가 돋보이는 남성이 스크린 너머에서 그녀를 바라보자 멸망의 메이의 어깨가 작게 떨렸다. 멸망의 메이는 그 남자, 사령관과 멀찍이 떨어지려는 듯 스크린의 반대편으로 몸을 슬며시 더 뉘며 퉁명스러운 어조로 답했다.

 

“그래. 뭐, 불만 있어?”

 

-..아니다. 작전 계획서는 확인했다. 개막 폭격, 잘 부탁한다.

 

 사령관은 그녀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별 반응 없이 그대로 화상을 끊었다. 그가 화상을 끊자 그가 있던 스크린을 멸망의 메이는 한 번 흘낏 훔쳐보고는 그의 얼굴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곤 입술을 삐죽였다.

 나이트 앤젤은 그런 대장을 지켜보고는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혹시 싶은 마음으로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대장, 설마설마 싶어서 묻는 건데요. 설마 오전 작전 회의, 참가 안 하시고 오신 겁니까?”

 

“..왜? 그래도 문제없잖아.”

 

 멸망의 메이는 나이트 앤젤의 질문에 무덤덤하게 답하면서도 스스로 내심 찔리는 듯 그녀의 불만 가득한 눈길을 슬며시 피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이트 앤젤의 얼굴에 화창한 햇살 대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니, 아니. 어쩐지 일찍 출격하자고 하신다 싶더니. 대체 어제 저와 나눈 이야기는 뭐였습니까?”

 

“아, 뭐. 사령관이 성장하는 모습 봐달라며. 잘 기억하고 있어.”

 

“기억한다는 분이 바로 다음 날 작전 회의 불참이라는 거예요? 아니, 미치셨어요? 대장?”

 

“야! 나 네 상관이거든? 너 미쳤냐?”

 

“대놓고 상관 명령 무시하는 상관한테 제가 무슨 경의를 보여요? 미쳤죠. 제가 안 미치고 있겠습니까?! 이 쓸모도 없는 흉부 지방만 가득한 꼬맹이가!”

 

“이게! 너는 쓸모가 없어서 흉부 지방을 쫙 뺏냐!”

 

“뭐라고요? 좋습니다. 오늘 한 번 같이 죽어봅시다! 이 썩을 꼬맹아!”

 

 하늘 위에서 아예 머리채라도 잡고 싸울 생각인지, 둘의 대화가 격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작전 회의실에 있던 사령관과 철혈의 레오나, 불굴의 마리, 신속의 칸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화면이 보이지 않는 화상통신 너머로 듣고 있었다.

 그 누구도 쉬이 입을 열지 못하자 사령관은 목 뒤가 쭈욱 잡아 당겨지는 감각을 느끼며 화상통신의 음성 통신까지 꺼버렸다.

 

“...정말, 아침부터 활기차네. 둠 브링어는.”

 

 철혈의 레오나는 씰룩이는 미간을 왼손으로 짚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불굴의 마리와 신속의 칸은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 입가를 유지한 채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각하, 그녀들의 행위는 엄연히 군법에 어긋납니다. 각하의 성장으로 그녀들을 크게 혼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사령관. 부대원과 함께 하극상이라니. 이건 군법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인 것 같군.”

 

“...”

 

 둘의 장난기가 섞인 말들에 사령관의 얼굴이 계속 씰룩이려는 것을 안면 근육 제어회로가 억지로 꾸욱 잡아 당겨대었다.

 

‘저 망할 꼬맹이. 진짜 두고 보자.’

 

 결국 제어회로만으로 통제가 되지 않는 입가를 숨기기 위해 사령관은 왼손으로 입가를 가리고는 대충 공중에 오른손을 휙하고 내젓고는 작전 회의를 속행하기 시작했다.

 

“..그건 차후에 결정하지.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그의 말에 지휘관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령관이 작전 회의실의 원형 테이블을 두들기자 그들의 앞에 원형 홀로그램이 올라왔다.

 원형 홀로그램에는 3D 입체 지도로 그려진 섬의 모습이 떠올라 있었으며 사령관이 왼손을 공중에 크게 오른쪽으로 휘두르자 홀로그램 역시 오른쪽으로 휙하고 돌기 시작했다.

 

“우선 어제 정찰 보고를 받아서 알겠지만 섬 내의 철충의 수는 극히 적다고 예상된다.”

 

“전군이 출격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각하.”

 

“음. 불굴의 마리, 네가 건의한 출격 인원의 수의 20%를 네 재량껏 나누어 대기자로 돌려라.”

 

“예. 각하.”

 

 불굴의 마리는 사령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른손으로 턱을 괴며 차출할 인원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이미 출격 포트에서 대기 중이었으니 어느 이들을 남길지 그녀는 곰곰이 작전 계획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생각에 빠진 사이 사령관은 신속의 칸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의 시선과 신속의 칸의 시선이 맞부딪히자 사령관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 섬은 당연하게도 중앙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네 앵거 오브 호드의 경우 중앙으로 이동한다면 적잖이 기동에 방해가 될 거다.”

 

“알고 있다. 사령관. 그래서 작전 계획서에도 적어두었다시피 진격 방향을 해안선으로 정했지 않나.”

 

“그래. 다만 해안선을 따라 진격한다면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해안선을 따라 섬의 북서 방향까지 이동한 뒤 안쪽으로 진격해라.”

 

“그렇게 된다면 방금 사령관이 말한 것처럼 우리 부대의 기동력이 절감된다만.”

 

“진격 방향은 스틸라인 전선 쪽으로 가면 문제 없다. 만일 전투 상황이라면 네 유격이 크게 전황을 호전시킬 테지. 그곳에서 네 부대의 보급까지 처리할 거다.”

 

 사령관의 입에서 보급이라는 말이 나오자 신속의 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사령관의 날카로운 눈길에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의 포켓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매만지고선 입꼬리를 다시 올렸다.

 

“우리 부대의 보급까지 맡아주는 마당에, 어쩔 수 없군. 알겠다.”

 

“그래. 부탁하지.”

 

“부탁이라 할 것까지야.”

 

 신속의 칸과의 대화를 마친 사령관의 시선이 다시 빙 돌아 철혈의 레오나에게 도달했다. 그와 시선을 맞춘 철혈의 레오나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수색부대는 우리 부대의 발키리를 중심으로 구성했어. 그런데 그 잠수부까지 꼭 넣어야 해?”

 

“본인의 요구사항이기도 하고, 그녀 덕분에 여기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 알게 되었으니 그 정도 요구를 수용해주어야겠지.”

 

“흐응..뭐, 상관없어. 만약 그 앙헬이라는 인간의 무덤을 발견하면 어떻게 할 거야?”

 

 철혈의 레오나의 질문에 사령관은 잠깐 멈칫했으나 이내 그녀와 눈을 맞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 정도는 해 볼 가치가 있겠지.”

 

“알겠어. 우리 발할라는 그럼 섬 내 수색을 중점에 두고 이동할게. 굳이 저런 작은 섬 정도면 우리가 전투에 크게 나설 필요는 없을 테니.”

 

 철혈의 레오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두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녀의 오른손이 머리카락을 꼬고 있는 것을 본 사령관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언제 한 번 짚어줘야 하나. 저 버릇.’

 

“..작전의 모든 부대의 보급과 부상자 후송은 항상 그랬듯 내가 담당한다. 현장 최종 지휘 권한은 내게 있지만, 그것도 항상 그랬듯이 너희들의 임의로 행동해도 무어라 하지 않겠다.”

 

 사령관의 말에 지휘관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사령관이 현장 지휘 권한을 사용한 적이 없었기에 결과적으로는 그녀들에게 전적으로 작전을 맡긴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여기의 그 누구도 그것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불굴의 마리는 십분 제 지휘능력을 발휘할 기회에 만족했다. 신속의 칸은 그 누구도 죽지 않고 돌아올 궁리를 했다. 철혈의 레오나는 빨리 이 작전을 끝내고 쉬고 싶었다.

 사령관은 사뭇 비장한 어조와 함께 오전 회의의 종료를 알렸다.

 

“작전 개시까지 앞으로 15분, 모두 건투를 빈다.”

 

 사령관의 말이 끝맺음을 짓자마자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회의실 밖으로 나섰다. 그녀들이 사라지고 나니 텅 빈 작전 회의실에서 사령관은 하아-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같은 작전 회의, 한마디 한마디 입 밖으로 말을 뱉을 때마다 시험장에서 애매모호 하기 짝이 없는 문제에 답을 찍어내는 듯한 감각에 사령관은 목까지 잠근 단추를 몇 개 열어 재꼈다.

 

“주인님, 수고하셨어요.”

 

 사령관이 의자에 몸을 깊숙이 뉘자 그의 의자 뒤의 그림자에서 은발의 메이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령관은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그저 오른손을 들어 내저었다.

 

“수고는 이제부터지. 리리스, 함교로 가..하아.”

 

“조금 쉬었다 가시는 게 어떨까요?”

 

“..아니다. 출격 시간이 늦춰지면 곤란하지.”

 

 사령관은 동공이 풀린 눈으로 그녀들이 나간 문을 지그시 바라보다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사령관이 일어서자 그의 의자 뒤편에 서 있던 블랙 리리스 역시 그의 등을 따라 걸었다.

 뒤에서 그의 그림자를 쫓는 블랙 리리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사령관은 입만 열면 계속해서 한숨이 새어 나올 것만 같아 입을 꾹 닫은 채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사령관 해 먹기 힘들어 죽겠네. 주인공은 이걸 다 어떻게 한 거야?’

 

 아침부터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이른 탓일까, 그의 NNIE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머리가 점점 차가워지는 감각이 그를 엄습했다.

 

‘..고생한다. NNIE 회로.’

 

 이제는 아예 한 몸처럼 느껴지는 회로에게 사령관은 반쯤 잠긴 눈으로 감사를 전했다. 사령관이 고생할 때마다 같이 고생하는 NNIE 회로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뚜벅-뚜벅-

 

 함교로 나아가는 사령관의 발걸음 소리에 복도의 그림자 속에서 숨어 있던 이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령관, 좋은 아침.”

 

 살짝 목이 쉰듯한 목소리와 노란 안전모 아래 삐죽이 내려온 주홍빛 머리칼,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멜빵 작업복을 입은 소녀가 코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인사하자 사령관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래, 좋은 아침이다.”

 

 사령관은 무덤덤하게 인사를 받아주는 한편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내려다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음영이 짖게 깔려 다크서클과 피로가 역력했던 얼굴 대신 얕아진 다크서클 위로 혈색이 돌고 있는 소녀의 얼굴을 확인한 사령관은 단말기를 들어 그녀의 ID를 읽어내었다.

 

“..더치걸 109.”

 

“헤헤, 함교로 가는 거야?”

 

 그가 자신의 인식번호를 읽어준 탓일까, 더치걸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펼쳐졌다. 사령관은 무릎을 굽혀 그녀와의 시선 높이 맞춰주며 말을 이었다.

 

“그래. 곧 섬에서 상륙 작전을 개시할 거다. 조금 시끄러워질 테지.”

 

“응. 그건 LRL에게 들었어. 사령관, 혹시 섬에 도착하면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

 

“..아마 상륙 작전이 끝나면 해변에서 작은 연회를 할 생각이다. 그때 물자를 옮기는 걸 도와줬으면 한다.”

 

 그의 부탁에 더치걸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 탓에 그녀의 머리에 씌워진 안전모가 기울이자 사령관은 그걸 고쳐 씌워주었다.

 사령관의 손길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더치걸을 바라보던 사령관은 그녀와의 첫 만남 때보다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인간? 인간이야?’

 

 작전 중 구출되었던 그녀가 오르카 1호에 들어왔을 무렵, 처음 마주친 사령관을 보자마자 했던 말에 당시의 사령관은 적잖이 당황했었다.

 

‘나, 어디로 가면 될까? 광산? 동굴?’

 

 얼굴의 여기저기 땟자국을 묻히고 반쯤 깨진 안전모를 푹 눌러쓴 더치걸의 얼굴에는 이미 사신이 다녀가기라도 한 듯 얼굴의 절반을 뒤덮은 거무죽죽한 음영 사이로 힘 풀린 눈동자가 그에게 비쳤다.

 

‘..심해에 그런 곳은 없어.’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그녀의 얼굴에 대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저 죽기만을 기다리는 그녀의 공허한 두 눈동자에 그때의 사령관은 지레 자신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고만 것 같아 책임 없는 죄책감에 가슴을 쥐어 잡았었다.

 

‘..그럼 난 어디로 가면 될까? 인간님?’

 

‘..먼저 씻고, 밥 먹고, 숙소로 가서 푹 자. 해야 할 일은 내일 알려줄게.’

 

“사령관?”

 

“아.”

 

 문득 그때를 생각하던 사령관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더치걸이 그를 불러 일깨웠다. 사령관은 걱정이 담긴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더치걸의 눈길에 굽힌 무릎을 펴며 일어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나는 함교로 갈 테니, 너는 어서 비전투 인원 대기실로 가도록.”

 

“응, 사령관.”

 

 사령관의 낮게 깔린 음색에도 더치걸은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이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허겁지겁 멜빵 작업복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사령관에게 건넸다.

 그녀가 건넨 물건은 다름 아닌 담배 한 갑이었다. 사령관은 그녀가 내민 담배 한 갑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걸 왜?”

 

“요새 사령관 바빠서 집무실에서도 못 나오잖아. 항상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데 우리가 줄 게 없어서 다 같이 저번 수색 때 사령관이 좋아하는 담배라도 찾아 왔어.”

 

 더치걸이 내민 담배는 흰 바탕에 붉은색 윗단이 눈에 띄는 담배였다. 사령관은 이 담배가 너무 독한 탓에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함 초창기에는 보급이 힘든 탓에 별 투정 없이 받아 피웠을 뿐.

 하지만 사령관은 그녀가 내민 담배 한 갑을 아무 말 않고 받아 들었다. 사령관이 담뱃갑을 받아주자 더치걸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작전이 끝날 때까지 다른 애들이랑 기다릴게. 사령관.” 

 

“그래. 더치걸 109.”

 

 더치걸은 사령관의 무뚝뚝한 대답을 들은 뒤 작은 손을 살살 흔들다 이내 다른 방향으로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사령관은 사라지는 더치걸을 바라보다 등 뒤의 블랙 리리스에게 눈길을 주며 그녀에게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작전 개시까지?”

 

“8분 남았습니다. 주인님.”

 

 블랙 리리스는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그의 무뚝뚝한 물음에 성실히 답해주었다. 사령관은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함교로 향했다.

 

뚜벅-뚜벅-

 

 항상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사령관은 손에 쥔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어 꼬나물고 싶다는 욕구를 꾹 참으며 길게 이어진 복도를 쭉 걸어나갔다.

 담밸 피지 않았음에도 그의 목은 줄담배라도 핀 것마냥 타올랐고 명치 아래에서 격한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사령관은 목 주위의 이미 열려있던 단추들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격한 감정을 내비쳤고 그 순간 그의 NNIE 회로가 다시 한번 호르몬 제어에 돌입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들의 호의를 기쁘게 받아주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미운 사령관이었다.

 

27) Day 77. AM 07:29

 

쏴아아-

 

 잔잔한 파도가 바다에서 흘러 적막만이 맴도는 모래사장으로 들어왔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 아래 해변을 가득 메운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밀려 들어온 바닷물에 적셔지며 연갈색의 반사광을 뽐내었다.

 그리고 푸른 하늘 위에는-

 

“얏-호!”

 

 검은 제비가 제트 부스터를 달고 하늘을 누비고 있었다.

 

“여기야! 여기!”

 

 슬레이프니르가 제트 부스터의 성능을 과시하기라도 하는 듯 섬의 해안가 위를 종횡무진 날아다니자 해안가의 인근 숲에서 거대한 검은 물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족히 이십 여기는 되어 보이는 검붉은 몸체와 안광을 내뿜는 로봇들, 철충들이 숲에서 해안가로 모습을 드러내며 하늘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슬레이프니르를 향해 제각기 다른 중화기를 일제히 겨누었다.

 슬레이프니르는 자신을 겨누는 철충들을 보고 씨익 미소를 지은 채 당당하게 하늘 위에 가만히 부유한 채 머물렀다. 철충들이 가만히 있는 그녀를 향해 조준을 마쳤을 때, 섬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기를 찢는 포격음이 터져 나왔다.

 

쿠-웅

 

쿠-웅

 

 갑자기 들려오는 포격음에 철충들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몸체를 돌리자 푸른 하늘 위로 호선을 그리며 검은 무언가가 밝은 태양을 가리며 그들을 향해 쇄도해 다가왔다.

 

콰-앙!

 

콰=콰광!

 

 검은 물체가 해안가의 자글자글한 모래사장과 맞닿는 순간 가공할만한 폭음과 함께 거대한 불구덩이가 터져 나와 해안가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던 철충들을 휘감았다.

 

“휘유! 퍼펙트!”

 

 슬레이프니르는 열 댓은 넘어 보이는 철충들이 연신 터져나가는 광경을 보며 포격이 날라온 방향에 대고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세워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수신호를 읽은 레이븐 역시 척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시선을 아래로 옮기며 목청을 세웠다.

 

“포격 명중!”

 

“이얏호!”

 

 레이븐의 말에 파니는 오른손으로 포를 쥔 채 왼손을 머리 위로 들어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대었다. 비스트헌터는 묵묵히 연기가 품어져 나오는 포신을 확인하고선 2차 포격을 준비했다.

 

“흥! 한 방에 저 정도라, 뭐. 합격점이네.”

 

 멸망의 메이는 옥좌에 두었던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는 다리를 꼬고선 오른팔로 뺨을 괴며 AA캐노니어의 포격을 비웃음이 서린 미소로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거만한 태도에 나이트 앤젤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의 대장에게 물었다.

 

“저희가 나설 필요도 없겠는데요?”

 

“없긴 뭘 없어.”

 

 멸망의 메이는 선글라스를 살짝 들어 옆에서 고도를 맞춰 비행하고 있는 부관을 쏘아보며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쟤들은 집중 포격뿐, 우리처럼 대규모 폭격은 불가능하지. 이번 작전의 진정한 개막은 우리의 몫이야.”

 

“하, 네네. 알겠습니다. 어서 지휘하십시오.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 안 해도 할 거야. 자, 둠 브링어. 개막식은 땅개 애들한테 내줬으니-”

 

 멸망의 메이는 말꼬리를 흐리다 왼팔을 쭉 앞으로 내뻗으며 왼손가락 마디 하나하나를 아주 천천히 감다 이내 콱하고 왼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그 어느 때보다 거만하고 확신이 찬 미소가 얼굴 전체에 번져 올랐다.

 

“-멸망의 시간이야. 둠 브링어 전원 출격.”

 

-예스! 맘!

 

-예! 대장님!

 

-..밴시, 출격합니다.

 

-다이카, 출격..합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르카 1호의 후방 사출 포트에서 네 개의 호선이 날아오르며 그녀의 머리 위로 구름을 그리며 섬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멸망의 메이는 연이어 올라오는 옥좌의 스크린들을 빠르게 훑고는 거만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옥좌의 여러 버튼을 연신 작은 주먹으로 강하게 내려찍으며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옥좌의 오른쪽 스크린에 대고 외쳤다.

 

“자! 어서 폭격을 승인해!”

 

-폭격 승인 요청 확인. 둠 브링어 멸망의 메이 소장 확인. 폭격 승인을 허가합니다.

 

기-이잉

 

 옥좌의 오른편 스크린에서 기계적인 여성의 말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오르카 1호의 뒤편에서 거대한 철문이 개방되어 아래에서부터 연이어 거대한 크기의 미사일들이 햇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철-컥

 

“다이카! 얼른 폭격 포인트를 지정해! 최대한 넓은 곳으로! 벌레들이 많은 곳으로!”

 

-네. 대장..님.

 

“대장, 사령관님이 했던 말, 잊지 마세요.”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던 나이트 앤젤이 연신 빨간 버튼을 두드리는 자신의 대장을 향해 말을 걸었으나 이미 발동이 걸린 멸망의 메이는 그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걱정도 많아. 어차피 사용하는 건 구식 화약을 이용한 미사일이니 끽 해봐야 섬의 4분의 1 정도가 날아가는 것뿐이야.”

 

“..전 말렸습니다. 대장.”

 

“하! 누가 날 말려! 나, 멸망의 메이야! 자! 폭죽 파티를 시작하자고!”

 

철-컹

 

피-슈우우웅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사일에 연결된 엔진 고정 장치가 해제되며 거대한 미사일들이 하얀 연기를 아래로 내뿜으며 줄지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 광경을 갑판 위에 서 있던 이들과 철충들을 유인하던 슬레이프니르, 그리고 둠 브링어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르던 미사일이 해안가를 향해 호선을 그리며 낙하해 해안가 인근의 숲으로 연이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쿠-직

 

 미사일의 탄두가 나무 사이를 뚫고 딱딱한 지면과 맞닿는 순간 그 거대한 몸체에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균열이 일어났다. 그 순간 수풀 사이에서 그 광경을 보던 철충들의 앞에 환한 섬광과 함께 이윽고 가공할만한 폭음과 불길이 미처 도망치기도 전에 그들을 덮쳤다. 

 

콰과-광!

 

쾅!

 

 동시다발적인 불길과 폭음이 조용한 하늘과 대지를 덮쳤다. 나무들이 불길에 휘말려 으스러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고 적갈색의 불길과 짙은 회색의 연기들이 푸른 하늘을 가득 메우자 멸망의 메이는 그 풍경을 몹시 만족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 소리야. 이 굉음, 이 불길, 이 풍경!”

 

 멸망의 메이는 그 광경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곁에 서 있는 부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두 눈에는 오만함이 섞인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어때. 아름답지?”

 

“..아름답네요.”

 

 나이트 앤젤은 호기로운 대장의 눈빛에 입가를 피식 올리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가끔 꼬맹이처럼 굴다가도 할 때는 화끈하게 해버리는 자신의 대장을 나이트 앤젤은 내심 인정해주었다.

 미사일을 여러 발을 떨군 멸망의 메이는 여전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은 채 자신의 폭격으로 인해 난장판이 된 섬을 바라보다 이내 옥좌의 스크린에 비친 통신을 보고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흥하고 콧소리를 내었다.

 

-뭐야, 할 말이라도 있어?

 

 퉁명스러운 그녀의 목소리가 우중충한 분위기의 실내를 가득 메웠다. 좁고 길쭉한 공간, 사방의 어두운 노란색 라이트만이 미약한 빛을 내뿜는 상륙정 내에는 다수의 녹색 슈트를 입은 병사들이 자리에 앉아 자신들의 총기를 매만지며 침묵을 유지한 채 자신들의 대장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굴의 마리는 수화기 너머로 날라온 멸망의 메이의 퉁명스러운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자신의 용무를 전달했다.

 

“이제 곧 우리의 차례다. 상륙 지점에 폭격은 자제하도록.”

 

-하! 내가 그 정도로 머리도 없는 줄 알아? 거긴 이미 볼 일 다 봤어. 

 

“음.”

 

 불굴의 마리는 멸망의 메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뒤쪽으로 돌렸다. 사방이 철갑으로 만들어진 상륙정의 안에는 제각기 다른 모습을 지닌 이들이 그녀와 같이 몸에 짝 달라붙는 군복을 입은 채 일제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들의 손에는 저마다의 개인 화기들이 들려져 있었으며 머리 위에는 헬멧 대신에 제식 야간투시경을 착용한 그들의 두 눈에는 비장함이 깃들어 있었다.

 

“..수고했다. 멸망의 메이 소장.”

 

-흥! 내가 너한테 수고스럽다는 말이나 들으려고 나선 줄 알아? 괜히 나서다 폭격 지역에 들어오지나 마.

 

“명심하지.”

 

 

 불굴의 마리는 단말기의 통신을 끊고는 몸을 반 바퀴 돌려 자신의 부하들을 내려다보았다. 비장한 각오가 서린 그녀들의 얼굴들을 확인한 불굴의 마리의 두 눈가에 푸른 전자기가 파직하는 소리와 함께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촤-아아아

 

 녹색의 철갑 상륙정 세 척이 푸른 수면 위를 빠른 속도로 가로지르며 이윽고 폭격으로 인한 연기가 가득 메운 해변에 덜컹거리는 육중한 소리를 내며 모래를 밀어내고선 해변의 끄트머리에서 멈추어 섰다.

 

철컹-

 

 상륙정들의 녹색 몸체 위에는 저마다 다른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중앙의 상륙정에는 마치 성벽의 모습을 그려놓은 듯한 문양이, 왼쪽의 상륙정에는 늑대의 문양이, 오른쪽에는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 그려진 문양이. 저마다 다른 문양이 그려진 상륙정들의 철제 개폐문이 일제히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전 스틸라인 대원들을 들어라.”

 

 어두운 상륙정 내에 개폐문 사이로 밝은 빛이 새어 들어오자 불굴의 마리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누구인가.”

 

 그녀의 물음에 그녀의 등을 바라보던 스틸라인의 병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한 목소리로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Steel-line! Steel-line!”

 

 그 외침에 불굴의 마리의 몸체가 푸른 전자기에 휩싸이며 그녀의 발이 딱딱한 철제 바닥에서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이 떠오르는 동시에 그녀의 발치에 놓여 있던 네 개의 구체가 푸른 빛을 뿜어내며 그녀의 발끝에서부터 무릎, 허리, 어깨를 빙 돌며 이내 그녀의 몸 주변으로 날아올랐다.

 

“그래. 우리는 스틸라인. 오르카 1호를 지키는 굳건한 성벽.”

 

“인류 재건을 위해. 사령관 각하를 위해.”

 

 그녀의 중후하게 낮게 깔린 목소리에 상륙정 내에 있던 병사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 누구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아주 서서히 느린 속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의 병장기를 가슴까지 들어 올렸다.

 천천히 내려가던 철제 개폐문이 완전히 내려가 붉게 타오르는 숲과 밝게 빛나는 해변이 그녀들의 눈에 들어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불굴의 마리의 두 눈이 더욱 푸르게 빛나며 그녀의 입에서 강렬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우리는-전장에서 서서 죽는다!”

 

“우리는 서서 죽는다! We die standing! We die standing!”

 

 불굴의 마리의 선포가 끝나자마자 수십의 스틸라인의 병사들이 빠른 속도로 불굴의 마리를 스쳐 지나가며 상륙정에서 뛰쳐나가 그녀들의 전장으로 향했다. 불굴의 마리 역시 비장함이 깃든 두 눈과 함께 전선을 향해 날아갔다.

 

“서서 죽는다! 그것이 우리의 바램! 가자! 병사들이여! 개전의 시간이다!”

 

“와아아아!”

 

28) Day 77. AM 07:42

 

“자, 우리도 출격의 시간이다.”

 

 앵거 오브 호드의 상륙정 안, 신속의 칸은 자신의 거대한 돌격용 캐논을 오른손에 쥔 채 자신을 바라보는 무수히 많은 시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의 작전 계획은 항상 그렇듯 심플하다.”

 

 멸망의 메이나 불굴의 마리와 같이 광기도 중후함도 섞이지 않은 그저 평상시와 같이 말하는 그녀의 말투와 달리 유독 어두운 상륙정 안에서 그녀의 연갈색의 워페인트가 그녀의 눈매를 더더욱 부각했다.

 그녀의 말에 상륙정 안의 인원들은 저마다의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달린다. 부순다. 찢는다. 항상 하는 것이다.”

 

덜컹-

 

 그녀의 낮게 깔린 말과 함께 그녀의 등 뒤로 상륙정의 철제 개폐문이 열리며 밝은 햇빛이 상륙정 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몇몇 인원들이 갑작스러운 밝은 빛에 눈가를 찌푸렸으나 햇빛을 등진 신속의 칸은 그저 묵묵히 말을 이어갔다.

 

“사막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모래를 밟는다.”

 

“휘-유”

 

 워울프들이 제각기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서로 입에다가 담배를 물려 주었다. 퀵카멜들은 그녀들의 철부지 같은 행동에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따로 더 할 말은 없군.”

 

짤그랑-

 

 신속의 칸은 왼손으로 허리춤의 포켓 안에서 두 개의 인식표가 달린 군번줄을 꺼내어 자신의 목에 걸었다. 등 뒤의 햇빛 탓에 그녀의 얼굴에 짙은 음영이 깔려 사뭇 비장함이 깃든 그녀의 번쩍이는 두 눈만이 짙은 음영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눈에 들어왔다.

 완전히 열린 상륙정의 입구를 등지고 신속의 칸이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여라. 우리들의 적을.”

 

철컥-

 

“죽여라.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어리석은 것들을.”

 

키-잉

 

“습격해라. 모든 철충들을.”

 

기이이이잉-

 

키잉-키잉-

 

 신속의 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들의 군화에 장착된 외골격 기동장치에 시동이 걸리며 조용했던 상륙정 안이 철제 바닥과 바퀴의 마찰음 소리에 한껏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신속의 칸은 명치 위로 짤랑대는 군번줄을 한 번 보고는 양손으로 자신의 캐논을 들어 올리곤 활짝 열린 모래사장을 응시했다.

 

키잉-키잉-

 

“가자, 사막의 전사들아. 습격의 시간이다.”

 

카-앙!

 

카-앙!

 

 신속의 칸을 선두로 앵거 오브 호드의 병사들이 저마다의 마찰음을 내며 상륙정 안에서 빠른 속도로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촤-아악

 

 해변의 모래들이 그녀들의 보조 바퀴에 뒤집히며 좌우로 갈라졌다. 왼편에서는 불타오르는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케한 연기가 신속의 칸과 그녀의 대원들의 눈과 코를 맵게 만들었으나 그녀들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가속하기 시작했다.

 

카-앙! 카-앙!

 

 자갈이 섞인 모래 사이로 그녀들의 기동장치들이 자갈과 부딪혀 큰 소음을 내기 시작하자 워울프들은 담배 연기를 몰씬 뿜어내며 저마다 웃음을 지으며 허리춤에서 쌍권총을 꺼내 들었다.

 

철-컥

 

 퀵카멜들은 저마다의 외골격 갑주에 장착된 기관포를 연신 빙글빙글 돌려대며 묵직한 캐논포를 비스듬히 들어 올리며 모래사장을 가로질렀다.

 그때 신속의 칸의 머리 위에 달린 통신기로 누군가 그녀에게 통신을 걸어왔다.

 

-대장님!

 

“그래. 듣고 있다. 탈론 페더.”

 

 익숙한 부관의 외침에 신속의 칸은 속도를 멈추지 않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통신기 너머의 탈론 페더는 침착한 목소리로 모래사장을 가로지르는 그녀에게 전황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현재 대장님의 왼편, 숲에서 다수의 철충들이 대장님 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1분 뒤, 교전이 예상됩니다!

 

“그래. 알겠다.”

 

 신속의 칸은 통신을 끊고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정면을 응시하며 자신을 따라오는 대원들에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1분 뒤, 교전이 예상된다. 전 대원, 나를 따라와라!”

 

“예!”

 

 그녀의 외침에 앵거 오브 호드의 대원들이 일제히 큰 목소리로 호응했다. 신속의 칸은 허리를 낮춘 채 자신의 기다란 캐논을 쭉 앞으로 내밀며 계속해서 숲속을 힐끗힐끗 응시했다.

 이윽고 수풀이 크게 요동치는 것을 확인한 신속의 칸은 능숙하게 모래사장 위를 S자 형태로 가로지르며 숙인 허리를 곧게 펴고는 길쭉한 캐논의 총구를 수풀을 향해 겨누었다.

 

“..교전 개시!”

 

쾅!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캐논의 총구에서 묵직한 발사음이 터져 나오며 수풀을 헤집고 나타난 철충의 몸에 탄환이 직격 해 철충 한 기가 그대로 붉은 화염과 터져나갔다.

 신속의 칸을 뒤따라 오던 이들 역시 저마다의 회피기동을 수놓으며 수풀 속에서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철충들을 각자의 화기로 부수어 나갔다. 

 

타-앙!

 

투-두두두!

 

“예쓰! 한 기 처치!”

 

“야! 그거 내가 박살 낸 녀석이거든?!”

 

콰-앙!

 

“시끄러워! 이 멍청이들아! 얼른 대장님 뒤를 따라가!”

 

 연신 대포를 숲속에다가 때려 박던 퀵카멜의 호통에 워울프들은 깔깔 웃으며 이미 저 멀리서 철충들을 상대하는 대장을 바라보았다.

 

키-이이잉

 

 홀로 숲속으로 돌진해 철충들의 정면으로 파고 들어간 신속의 칸의 캐논의 총열이 가공할만한 속도로 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근접전이라는 신호였다.

 

카-앙!

 

 신속의 칸은 나무 사이에 숨어 있던 나이트 칙 한 기의 중앙을 향해 자신의 캐논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캐논 총열에 달린 칼날이 마치 드릴이 철판을 뚫고 들어가듯 나이트 칙의 몸체로 밀고 들어가 몸체 내부를 미친 듯이 갈아대기 시작했다.

 

카-가가각!

 

 철과 철이 갈려 나가는 기분 나쁜 마찰음과 불똥이 연신 신속의 칸의 귓바퀴와 얼굴을 때렸으나 그녀의 얼굴에는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그때 그녀의 두 눈에 나무 사이로 삐죽이 튀어나온 레기온 스나이퍼의 총열이 들어왔다. 신속의 칸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총열에 몸이 뚫린 나이트 칙을 있는 힘껏 들어 그것을 방패처럼 들고는 그대로 레기온 스나이퍼가 있는 방향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타-앙!

 

팅-!

 

타-앙!

 

 레기온 스나이퍼는 자신에게 돌진하는 신속의 칸을 향해 계속해 화염을 내뿜었으나 신속의 칸은 나이트 칙의 몸체를 들고선 더욱더 속도를 올리며 레기온 스나이퍼의 앞까지 가공할만한 속도로 도달했다.

 

찰-칵

 

 신속의 칸의 캐논의 장전 소리와 함께 나이트 칙의 몸체를 뚫고 나온 그녀의 캐논 끄트머리에서 화려한 불꽃이 타올랐다.

 

쾅!

 

 묵직한 캐논의 포격음과 함께 그 캐논을 코앞에서 맞은 레기온 스나이퍼의 몸체의 절반이 숲 속의 나무들을 헤치며 쓰러져 나가 이내 숲속은 다시 정적을 맞이했다.

 신속의 칸은 레기온 스나이퍼의 작동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선 캐논의 끄트머리에 달린 나이트 칙의 망가진 몸체를 외골격 장갑이 부착된 다리로 뻥 걷어차 버렸다.

 

“..저거 너 따라 할 수 있겠냐?”

 

 워울프 한 명이 자신의 곁에 서 있던 다른 워울프에게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투로 묻자 그 워울프는 입에 꼬나문 담배꽁초를 모래사장에다 퉤하고 뱉으며 똑같이 어이가 나간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면 내가 지휘관을 하지. 병신아.”

 

“그치? 우리 대장도 참 화끈한 성격이라니까. 보기와 달리.”

 

“떠들 시간 있으면 얼른 따라붙어!”

 

“예이~예이~”

 

기-이이잉

 

 신속의 칸은 그녀들의 떠들썩한 대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따라오는 그녀들의 등 뒤로 넓게 펼쳐진 바다의 푸른 빛이 그녀의 짙은 갈색 눈에 들어왔다.

 

‘..사령관, 그대라면 날 버리지 않겠지. 믿고 있겠다.’

 

 저 푸른 바다 위에서 자신들을 보고 있을 남자를 떠올리자 그녀의 팔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믿을 사람이 있다는 건, 이렇게도 편한 것이었군.’

 

 어느새 그녀의 곁으로 워울프들과 퀵카멜들이 속속히 모여들자 신속의 칸은 눈을 한 번 지그시 감고선 다시 눈을 부릅뜨며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말했다.

 

“작전은 지금부터다. 가자.”

 

“네! 대장!”

 

“얼른 끝내고 술이나 한잔하고 싶네.”

 

“사령관의 보급이 곧 올 거다. 아마 너희들이 좋아하는 술도 있겠지. 그러니 그것이 오기 전에 끝낸다.”

 

 신속의 칸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숲에서 나가 해변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등을 보던 대원들은 저마다의 미소를 입가에 건 채 그녀가 지나간 모래사장 길을 따라 바퀴자국을 남기며 그 위를 질주했다.

 

차아악-

 

 그녀들이 제각각의 바퀴가 그려낸 모랫길 위로 파도가 밀려 들어와 그녀들의 흔적을 지워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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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4편은 암만 써봐도 최소 4만자 넘기겠다 싶어서 반으로 나눌려고 해.

하편은 아마 3일? 아니면 4일 걸릴 것 같다.

저번 편 댓글에 시간대를 정리하기 힘들다는 피드백을 받았어. 그래서 각 플룻마다 날짜와 시간대를 정리해서 적어뒀는데..이게 너희가 읽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이번 리오보로스 유산 이후부터는 또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시간대만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야. 이것도 씨발 이렇게 길게 쓰게 될 줄 나도 몰랐다.

전투씬은 이전에 한 번 써본 이후로 처음 써보는 거라 몰입이 오히려 안 될거 같다. 오르카 1호 출격 포트나 구조도 거의 내 창작 기반이라 더 그럴거 같고.

아무튼 항상 댓글도 달아주고 추천도 해줘서 너무 고맙다. 처음에 쓸 때는 추천 10개 넘기기가 힘들었는데 어느새 50까지 찍히네. 항상 읽어줘서 고마워.

앞서 그랬듯이 피드백이나 오타 지적은 항상 환영해. 글 문구도 이렇게 쓰는 게 어순이 더 좋다는 식의 이야기도 환영이야. 내가 글 쓸때마다 고통받는 부분이라 문학적인 지적도 진짜 환영이야.

난 출근하러 가볼게. 다음에 또 보자.